오늘은 1년 만에장기이식센터 외래가 있는 날.장기이식센터에 가고 있다고 소중한 사람에게 카톡메시지를 보냈더니, 깜짝 놀란 이 사람이 대번에 전화를 걸어왔다.
교수님과는 신장내과의 진료실에서 만나지 않고, 대체로 장기이식센터의 진료실에서 만난다. 그뿐이다.
어제는 해가 쨍했다. 무척 더웠다. 그래도 기절하지 않고 무사히 귀가했다. 그래, 차라리 내일도 쨍해라. 그런데 이게 웬일? 아침에 창밖을 내다보니 땅이 촉촉하게 젖어서 아스팔트가 진해졌다.
딱히 빗소리가 나지는 않는다. 폭우가 쏟아지지는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안고 서울로 갈 준비를 한다.
전철시간에 늦지 않도록 후다닥 나오는데, 엘리베이터가 자꾸만 올라간다. 아휴. 그냥 걸어서 내려간다. 엘리베이터는 자주 12층에 선다. 오늘도 12층에 섰다. 기왕에 걸어서 내려가는 것, 저이보다는 빨리 내려가야지! 후다다다다다다다닥. 이겼다!
1층을 다섯 계단 남겨둔 참에 "안녕하세요~"하고 먼저 인사를 건네신 여사님 목소리를 듣고 여사님이 계신 것을 알았다. 빠르게 뛰어내려오느라 발끝에만 집중했다.
우리 동을 늘 깨끗하게 청소해 주시는 인자한 얼굴의 여사님. 늘 내가 먼저 인사를 드리는데, 엘리베이터는 이겼지만 인사는여사님께졌다. 인생이 이런 거지. 이겼다, 졌다. 따지는 것이 무의미하다.
입구를 빠져나오며, 비가 오지 않기를 바라며 중얼거렸다. 정류장까지 가는 잠깐 동안, 얼굴에 떨어지는 보슬비방울들을 살짝 느낀다.
어제는 예보만 생각하고, 노란 온라인 카지노 게임을 가지고 나왔었다. 병원이 끝난 오후에는 해가 쨍했다. 역시. 내가 온라인 카지노 게임을 가지고 나오면 해가 뜨고, 내가 온라인 카지노 게임을 가져 나오지 않으면 비가 온다. 늘 그랬다. 그래서병원 1층의편의점에서 산 온라인 카지노 게임만 38개쯤 됐었는데... 주기적으로 잃어버리고, 이제는 제일 좋아하는 노란 온라인 카지노 게임 하나 남았다.
어쨌든 장마철에 온라인 카지노 게임을 두고 나온 어리석은 나는 불안하다. 1년 만에 만나는교수님께 비에 맞은 생쥐꼴을보일 순 없는데... 전철에 앉아서 맞은편 청년을 본다. 저이도 온라인 카지노 게임이 없다!갑자기 안심이 되며 마스크 속 얼굴에미소가 번진다.
점점 복잡해지는 전철 속에서 수시로 사람들을 관찰한다. 대부분 온라인 카지노 게임을 챙기지 않았다. 안심에 안심이 켜켜이 쌓인다. 그렇게 고개를 두리번거리다 멈춰 선 열차 밖을 보니, 일산의 어느 역 계단외벽이햇빛을 받아반짝빛난다.
비는 오지 않을 것이다.
오랜 글 친구인 손주부 작가님께서 결말을 궁금해하셔서 덧붙입니다. 서울로 올수록 해는 쨍, 비는 한 방울도 내리지 않았고 덕분에 살짝 땀이 흐른 채로 교수님을 뵈었습니다. 오늘따라 교수님은 제 예쁜 바지(영화 시암선셋 아시죠? 바로 그 컬러입니다!)도 안 보시고, 하여간... 별로 눈길도 안 주시고 피 많이 뽑아두고 가고, 내년에 또 보자고만 하셨습니다. 흥! 오늘 선크림도 열심히 발랐는데... 야속한 양반 같으니라고.
외래 진료는 엄청 일찍 끝났고, 전철을 기다리며 생각했습니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이 없어서 다행이다! 정말로 해가 쨍하고 더웠거든요.
비가 내리지 않기를 바라며, 온라인 카지노 게임이 괜한 짐이 될 것 같아서 두고 나왔는데 이렇게 예측이 들어맞는 날도 있네요! 오늘 여러분들 계신 곳에도 비가 내리지 않기를... 혹 비가 내리더라도 마음만은 산뜻한 하루이시길 빌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