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난 사실 입이 험하다. 내가 욕하는 것을 들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좀 많이 험하다. 어른들한테 보고 배운게 그것밖에 없어서 그렇다. 엄청난 천박함과 증오가 내 안에 있다.
동시에, 너무 많은 카지노 게임을 받아서 많은 카지노 게임(愛)이 내 안에 있다. 타인에 대한 관용(tolerance). 인간에 대한 예의(manner). 부모와 조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열정(熱情). 그 정도가 지나쳐 불이 파란색으로 번지고, 심지어는 차갑게 느껴지도 하다만.
예수(jesus)에 대한 마음도 똑같다. 미칠듯한 증오(憎惡)와 카지노 게임(Love).
1. 증오(憎惡)
솔직히, 난 이전에도 밝혔듯이 공공성을 위해 내가 경험한 일들의 수위를 많이 깎고, 도리고, 편집해서 글을 쓴 것이다. 그리고, 난 아직 25살이다. 미성년자와 20대 초반에 겪어서는 안되는 일들을 경험(experience)했다.
그럴 때마다 예수에게 엄청난 증오를 느꼈다.
나 : "이 예수 씨발새끼야. 니가 신이 많냐? 니가 카지노 게임의 신이 많냐? 이 씨발 새끼야, 너 죽고 나 죽자. 씨발련아. (예수를 칼로 찌른다.)
(푹)
예수 : "찔러도 괜찮다. 용서하지 않아도 괜찮다. 나에게 분노해도 괜찮다. 너를 카지노 게임한다."
나 : "그래도 이건 너무 심했잖냐. 어떻게 그럴 수 있냐. 나를 왜 만들었냐. 사람들은 왜 다 행복해 보이냐. (예수의 명치를 주먹으로 쎄게 친다.)
(퍽)
예수 : "미안하다. 나를 용서하지 않아도 좋다. 다 너에게 필요한 일이었다. 미안하다. 하지만, 너를 카지노 게임한다."
나 : "그래도 너무 힘들었어요. 말이 됩니까, 이게. (눈물을 흘린다.)
예수 : "미안하다. 울지 마라. 괜찮다, 용규야. 카지노 게임한다. 내게로 오라. 안아주겠다."
나 : "예수님, 잘못했어요. 용서해주세요."
예수 : "괜찮다. 다, 괜찮다. 나에게 오거라. 나를 통해 쉬거라. 나를 통해 배우거라. 나는 너를 카지노 게임한다."
내가 졌다, 젠장.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가 '신은 죽었다'고 했던가. 죽긴 개뿔. 난 신 죽이려다가 실패했다. 안죽으시더라. 강골(強骨)이시더라. 카지노 게임(love)이시더라. 빛(light)이시더라.
2. 카지노 게임(Love)
말도 안되는 일들이 나에게도 있었지만, 세상에서 너무 많이 일어났고, 일어나고 있다. 특히, 한국 근현대사의 참극은 고대 근동사까지 확장해도 전례없는(unprecedented) 일이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뒤, 부활하시고, 하늘로 가셨다. 그곳에서 인류를 위해 중보기도 하고 계신다. 2025년동안 계속.
시간의 창조주이시며, 역사의 주관자이신 그분께서 자신의 자녀들의 악행을 보고, 얼마나 피눈물을 흘리셨을까. 마음이 좋지 않다.
2021년에 십자가교회에서 주일예배를 뜨겁게 드리고, 집에 돌아오며 속으로 되뇌였다.
"아버지, 아버지의 카지노 게임과 명예가 훼손되는 것을 더는 두고 볼 수 없습니다. 구주께서 베푸신 카지노 게임과 공의를 나를 통해서라도 보이게 하소서. 돈과 명예, 자아중심성, 섹스, 마약, 사이비에 빠진 죄인(罪人)들을 불쌍히 여겨 주소서."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 중에 '기독교인이 더 하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이 내포하고 있는 뜻은 크게 두 가지다.
1. 기대(expextation)
크리스천들은 뭔가 다를 것이라는 무의식적인 기대. 이 잠재의식 안에서 나온 말.
2. 실망(失望)
기독교인이 실제로 더 참혹한 것을 경험한 것이다. 너무 큰 상처를 받은 것이다. 나도 그렇고. 나에게 상처 받은 사람들도 그렇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죄악(sin)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시 교회(church)를 나갈 것이고, 다시 카지노 게임할 것이고, 다시 상처받을 것이고, 다시 갈등(conflict)을 경험할 것이다.
왜냐고? 우리 구주 예수께서 교회를 자신의 몸과 같이 카지노 게임하셨으니까.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에베소서 5장 23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