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 이해일
편집장의 말
2020년 봄호의 주제는 성장통/혼란/아노미입니다. 대한민국에서 입시를 치른 대부분이 그랬겠지만, 학창 시절에는 대학만 가면 모든 게 해결될 거라 생각했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막상 대학은 문제의 끝이라기보다는 시작이라고 함이 더 어울리는 공간이었지요. 입시라는 좁은 길을 빨리 달리는 연습만 하던 저는 대학에 온 뒤로 갑자기 넓은 벌판 한가운데 서서 갈팡질팡하는 기분이 되었습니다. 물론 여전히 그렇습니다만 그 벌판을 헤매며 만난 수많은 사람과 새로운 생각도 많았습니다. 그 작은 성장들을 123호에 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2020년 신입생으로 대학에 들어오게 된 학생들에게 이번 봄은 유독 더 혼란스러울 것 같습니다. 지구촌 시대에 걸맞게 삽시간에 세계의 문제가 된 이국의 전염병은 우리의 일상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습니다. 조잡하지만 나름대로 도움이 되는 입학 초반의 행사들도 모두 취소되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연세》가 어떤 분들에게는 대학에 대한 첫인상일지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봄호를 만들었습니다. 인생의 첫 대학 교지가 흥미롭고 즐거우며, 무엇보다 새로운 생각들에 대한 자극이 되었으면 합니다.
첫 번째 카테고리인 ‘성장기’에서는 우리가 지나고 있는 터널과도 같은 통과의례를 다루고 있습니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는 실제로 현재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고시생의 글입니다. 고시를 준비한다는 것, 그리고 행정가가 된다는 것의 의미를 되돌아봅니다. 세상과 단절되어 타인뿐만 아니라 본인과도 경쟁해야 하는 고시 생활의 이면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잊지 말아야 하는 시험 너머 세상과의 관계에 대해 성찰카지노 쿠폰.
<나의 월경용품 표류기는 초경을 한지 10년을 맞은 글쓴이가 생리대 파동 이후 대안 월경용품을 탐구했던 과정을 풀어냅니다. 일회용 생리대부터 면 생리대, 월경팬티, 탐폰, 월경컵까지, 다양한 월경용품을 모두 사용해본 글쓴이의 직설적이고 사실적인 후기가 들어있습니다. 글쓴이의 경험 속에 녹아 있는 여성의 몸과 터부에 대한 속 시원한 비판도 기대해주시기 바랍니다.
<어른에 대한 단상은 “도대체 어른이란 뭔데?”라는 질문과, 때로는 장난스럽고 때로는 진지한 답변들을 소재로 카지노 쿠폰. 우리는 으레 어른을 ‘책임’이라는 키워드와 연결하곤 카지노 쿠폰. 과연 그 안에 어떤 자세한 맥락들이 있는지 생각해보는 글입니다. 독자들 또한 어린 시절 ‘어른’에 대해 가졌던 환상을 떠올려보며 공감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2020 봄호 학내기획은 ‘여기는 어디?’라는 부재가 있습니다. 수험생 시절 대학이란 나의 노력의 종착지이자 내 모든 문제가 해결된 파라다이스였습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대학 또한 이 사회의 일부였고, 사회의 문제는 그대로 대학의 문제기도 했습니다. 계속해서 고민하고 싸워나가야 하는 이 공간이 처음에는 많이 실망스럽고 어지러웠던 기억이 납니다.
이번 호 학내기획은 ‘연세대학교 사회학과 류석춘 교수 사건 학생대책위원회’에서 기고했습니다. <그래서 (류석춘 사건) 어떻게 됐다고요?에서는 2019-2학기 강의실 내 혐오발언으로 회자되었던 사회학과 류석춘 교수 사건의 쟁점과 배경을 소개하고, 학생대책위원회에서 주장하는 진정한 문제 해결이 무엇인지 역설합니다. 이 글에서도 알 수 있듯이, 비록 폭력과 혐오에서 자유롭지 않은 캠퍼스였지만 그 안에서 좌절하기보다는 성장하고 연대하는 이들이 있다는 게 느껴졌으면 합니다.
‘나는 누구?’에서는 특별한 정체성과 배경을 가진 글쓴이들이 자신이 속한 문화의 내밀한 이야기를 솔직하게 들려줍니다. <10년차 오타쿠도 자아성찰이란 걸 하는 모양입니다는 매우 흥미로운 글입니다. 학창 시절 반마다 꼭 ‘그림 그리는 애’가 있지 않았나요? 바로 그 ‘그림 그리는 애’였던 글쓴이가 자신이 경험한 오타쿠 문화를 면밀히 분석카지노 쿠폰. 많은 이들에게 소중한 취미이자 공동체일 오타쿠 문화에 대해 애정을 가지는 한편, 고질적인 문제를 지적하고 비판하기도 카지노 쿠폰.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어느 한 페미니스트 크리스천의 간절한 기도는 평생 크리스천으로 살아온 학생이 성인이 된 이후 페미니즘을 접하며 겪은 가치관의 충돌에 대한 글입니다. 꼭 기독교와 페미니즘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지금까지 알아 왔던 것들과 실제로 마주한 것들이 달라 혼란을 겪는 경험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 경험은 성인이 되어 대학에 온 후로 유독 자주 마주하게 되기도 합니다. 글쓴이가 풀어내는 고민과 내면의 화해가 고민 많은 모든 독자에게 응원이 되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준비한 ‘우리는 지금?’에는 타인과 관계에서 오는 혼란, 그리고 성장을 이야기하는 글들을 모았습니다. <누가 내 파이를 가져갔나는 적극적 우대 정책, 특히 ‘할당제’에 대해 다룹니다. 최근 20대 사이에서 ‘공정’이 화두로 떠올랐다는 분석이 많습니다. 하지만 실제 공정성 담론이 작동하는 양상을 보면 오늘날 우리가 날을 세우게 된 가치는 공정이라기보다는 취약한 나의 밥그릇인 것 같습니다. 이런 현실에서는 나의 파이를 가져간 타인에 대한 적개심이 눈에 띕니다. 글쓴이는 할당제를 반대하는 대표적인 주장들을 반박하며 결과적 평등은 기회의 평등에 자동으로 따라오지 않음을 역설합니다.
<성적 취향을 여행하는 새내기를 위한 안내서는 비록 제목에는 새내기가 들어있지만 모두에게 도움이 될 글입니다. 미디어와 포르노에서 그리는 사랑의 클리셰는 한 쪽의 욕망만을 반영하거나 단편적이고 얕은 이미지만을 전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유독 성적인 관계에서 자주 좌절하는지도 모릅니다. 글쓴이는 상대방의 성적 취향을 존중할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의 성적 취향에도 귀를 기울여볼 것을 제안카지노 쿠폰. 섹스의 태도가 변하는 것은 때로는 삶에 대한 태도 전체가 송두리째 흔들리는 경험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잔인한 사이를 살아내기: 관계라는 영원한 성장통은 사람을 살리기도, 죽이기도 하는 관계라는 것을 탐구하며 조금 더 나은 관계를 맺을 방법을 고민합니다. 고립부터 1:1의 관계를 거쳐 공동체까지, 그 안에서 우리가 겪을 수 있는 폭력들을 인문학적 인식을 통해 해석합니다. 나아가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관계의 패턴을 파악하자고 제안합니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 자신에게 나은 관계가 무엇일지 독자가 고민하길 바란다고 합니다.
작년 겨울 122호를 내놓으면서 이번 겨울이 누군가에게만 유독 춥지는 않았으면 하고 바랐습니다. 그 바람이 무심하게도 겨울의 냉기는 언제나 가장 약한 곳에 가장 잔인한 모양입니다. 코로나19는 치사율은 높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습니다만, 그럼에도 목숨 잃은 이들의 대부분은 폐쇄 병동에 장기 입원 중이던 정신질환자와 장애인입니다. 중국에서는 코로나19로 가족들이 모두 격리된 장애인이 집에서 목숨을 잃기도 했습니다. 개인의 성장통과 다르게 사회의 성장통은 너무나 많은 희생을 수반하는 것 같아 조금은 절망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부디 이 혼란이 모두 지나갔을 때 이렇게 잊히고 가려졌던 이야기들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으면 합니다.《연세》는 언제나 더 약하고 더 어두운 곳을 글로 옮기는 교지가 되겠습니다. 당신의 봄이 많이 아프지 않길 바라며, 123호를 내놓습니다.
편집장 이해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