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분주했던 한 주를 마무리 하고, 새로운 한 주를 앞둔 일요일 저녁. 속절없이 도지고 마는 월요병에 예방 접종을 하듯, 집 근처 쇼핑몰 지하에서 아들이 좋아하는 단골 가게의 수제비를 먹고, 제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을 할짝거리며 운동 삼아 쇼핑몰과 서점을 한 바퀴 돌고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저희 가족의 주말 저녁 루틴이었습니다. 단란하고, 평범하고 소박해 보이지만 한편으론 의미없이 허한 마음에 저녁 식사에 디저트까지 먹은 후였는데도 조금은 헛헛하기도 했네요. 그러나 그런 느낌마저 월요병의 전조 증상이겠거니... 하고 애써 무시했습니다.
‘그 일’을 겪고, 아니 여전히 겪으며 4년 여가 지나고 있습니다. 이제는 남편과 나란히 앉아 주일 저녁 미사를 드리고 집에 오는 길. 우리는 여전히 제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을 나눠 먹으며 돌아옵니다.토요일에 주일학교에서 어린이 미사를 드린 아이는 그동안 집에 남아 잔소리꾼 엄마 눈치 안보고 신나게 게임을 하는거죠. 저희 가족의 달라진 주말 풍경입니다.
남편과 여전히 나눠먹는게 한가지 더 있습니다. 손이 자주 닿는 찬장 속, 늘 먹는 차와 커피 봉지 옆에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는 신경정신과 처방약입니다. 제 몫이 양도 좀 더 많고, 종류도 좀 더 다양합니다. 물 한 컵을 나눠마시며 각자의 알약을 털어넣고, 나눠먹을 게 없어 정신과 약을 나눠먹는 사이가 되었다며 제법 농담을 주고받으며 킬킬거릴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횟수도 양도 줄었으니 조만간 아주 끊어보자고 서로 독려도 하면서요.
이 카지노 게임 사이트 일이 저와 그 사람의 악연으로 인해 시작되었기에, 저는 가족에게 죄인이 된 것만 같았습니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 일이 나 때문이라고, 카지노 게임 사이트 것을 제가 다 망쳤다는 생각에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타인을 향한 원망과 분노보다 저를 향한 자책과 후회가 훨씬 더 저를 힘들게 했습니다. 그런데, 이 카지노 게임 사이트 과정을 함께 겪으며 남편은 단 한번도 저를 원망하거나 탓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제 탓이 아니라고. 일어날 일은 일어나게 돼 있다고, 이미 벌어진 일을 돌이킬 순 없으니 우리 둘이 정신 바짝 차리고 이 어려움을 이겨내자고. 얼빠지고 넋을 놓은 채 울고만 있는 저를 일으켜 세우고, 다독이고, 때로는 정신 차리라고 다그치며 어깨를 흔들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남편도 실은 맨정신으로는 힘이 들긴 했는지, 자진해서 저와 함께 신경정신과 치료를 받고, 의사의 처방대로 성실하게 약을 먹었습니다.
방귀 뀐 놈이 성낸다고 했던가요. 미안카지노 게임 사이트 죄스러운 마음이 커질수록 저는 남편의 한마디 한마디에 예민하게 반응카지노 게임 사이트, 조금이라도 수가 틀리면, 그래 다 나 때문이라는 거지. 맞아 다 내탓이야 내 탓! 하며 스스로에 대한 분노를 엉뚱하게 남편에게 쏟아붓곤 했습니다. 옆에 있던 아이도 영문 모르고 제가 던진 감정의 폭탄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도 했구요.
신경정신과를 다니기는 했지만, 의사 앞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도 수치스럽고, 자존심이 상해서 입 꾹 다물고 별로 얘기를 하지도 않았습니다. 어서 약이나 주세요. 털어넣고 까무라치듯 잠이나 잘래요. 그러다 자는 듯 죽으면 더 좋구요. 저는 의사 선생님 눈도 안마주치고 느린 몸짓과 까칠한 눈빛으로, 진료는 됐고, 약이나 내놓으슈... 자세로 일관했습니다.
받은 약이 다 떨어져서 2주일만에 병원에 갔던 어떤 하루. 그날도 저는 선생님의 다정한 질문에 아무런 답도 하지 않고 부옇게 앉았다가 결국 한다는 소리가
“별로.. 말하기 싫어요.”
그런 저를 가만히 바라보던 의사 선생님이 이러시는 거예요.
“남편 분이 아내 걱정만 많이 하십니다.”
본인도 힘들어서 약을 먹지 않으면 한숨도 못자고 퀭한 눈으로 출근하면서, 의사 앞에서 하소연은 못할망정 내 걱정만 카지노 게임 사이트 있다니... 너무 미안하기도 카지노 게임 사이트, 고맙고, 내 자신이 밉고...마음이 참 복잡했습니다.
제가 결국 두손 두발 다 들고, ‘아버지, 살려주세요..’ 울며불며 제 발로 거의 20년 만에 성당 앞 제대를 다시 찾았을 때, 남편도 기꺼이 함께 가 주었습니다. 남편은 비록 본인이 열심 신도는 아니었지만, 독실한 불교 신자인 어머님 덕에 대학입시, 취업 등 인생의 중요한 시기마다 어머님의 간절한 108배를 보고 자랐어요. 그런데도 순하게 저를 따라 그에게는 난생 처음일 성당에 왔습니다. 처음에는 성호경을 어떻게 긋는지도 몰라 어정쩡하게 곁눈질을 하며 신부님이 시키는대로 열심히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하며 미사를 드리던 그는, 이윽고 예비 신자 교리반에 등록하여 주일마다 수업을 듣고, 몇 달 후 세례를 받아 2023년 7월 ‘요한’이 되었습니다. 그 무렵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저희 아들도 세례를 받고 ‘베드로’가 되었고, 저와 남편은 결혼 19년 차이던 작년 11월 ‘요한‘과 ’데레사‘로 하느님 앞에서 다시 결혼했습니다. 그리고 올해는 결혼 20년 차이자, 성가정으로서의 첫 결혼 기념일이었어요.
미사 중에 모았던 두 손을 열어 남편의 손을 가만히 잡았습니다. 이제 남편은 일요일 저녁 미사로 한 주를 마무리하는 것이 너무 좋고, 성당에 오면 마음이 평화롭고 편해진다고 합니다.
연애부터 결혼까지 합해서 25년. 그 세월동안 여러 가지 일들을 함께 하며 때로는 울고 때로는 웃었습니다. 서로 내 말을 안 듣는다고 원망카지노 게임 사이트 싸우기도 했는데, ’그 일‘이 있고 ’그 일‘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기막힌 여러 가지 일을 함께 겪으며, 서로의 기분을 먼저 살피는 ’배려의 눈치‘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에게 좀 화가 나는 일이 있어도, 저 사람이 나한테 이번 일로 힘들 때 어떻게 해주었는지 를 생각하면, 그 진심의 바탕을 알기에, 사소한 일쯤은 아무것도 아닌 게 되고 맙니다. 이까짓게 뭐라고, 그런 일도 겪었는데. 단 한번도 내 탓 하지 않고 같이 겪자, 함께 이겨내자 다독였는데... 생각하면 그까짓 거 화날 일이 뭐였는지 금방 잊어버리고 맙니다. 비로소 ’남편‘이 진짜 ’내 편‘이 되고 그가 나에게 얼마나 소중카지노 게임 사이트 고마운 사람인지를 절절히 느낍니다. 이토록 큰 일을 겪고 나서야 깨닫는 걸 보면, 저란 인간은 참 어리석기 짝이 없죠.
경제 상승 사이클 속에서 유동성이 풀리며 카지노 게임 사이트 자산 가격이 치솟았던 지난 몇 년간, 저희 집의 자산 현황 역시 결혼 20년 중에 피크를 찍었습니다. 더 나은 삶을 위해 현재의 행복을 유예한 채, 앞으로의 행복을 위해서, 우리 가족의 안녕을 위해서,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 우리의 노후를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앞만 보고 달렸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애초에 세웠던 목표치보다도 훨씬 초과 달성을 했는데도, 우리는 오히려 지금보다 훨씬 서로를 보듬지 못하고 자주 싸웠습니다. 얼마 전 우연히 날짜 지난 카톡 사진을 보니, 사진 속의 제 얼굴이 너무도 표독스럽게 일그러져 있었습니다. 촬영한 날짜를 보니, 제가 그토록, 악마에게 영혼이라도 팔아서 되돌아가고 싶어 했던, 그 카지노 게임 사이트 일이 일어나기 전이었어요. 그때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지금 나의 이 고통은 다 사라지고 내내 웃기만 하고 있었을 거라는 제 생각은 착각이었습니다. 남편한테 이 얘기를 했더니.
“생각 안나? 우리 19년도에 대판 싸워서 일주일 동안 말도 안했잖아.“
이럽니다. 제가 날려 버렸다고 미치고 환장하게 아까워하는 부동산들과 그 밖의 금융 자산이 그때는 한 푼 축나지도 않았고, 심지어 앞으로 점점 불어날 일만 남았다고 한치의 의심없이 기대로 가득할 때였는데, 그때 저는 별로 행복하지 않았나 봅니다. 지금의 제가 그토록 돌아가고 싶어하는 바로 ‘그 시간, 그 자리’에 있었는데 말이예요. 인간이란 참... 어리석기 짝이 없습니다.
연애부터 결혼까지 도합 25년, 그동안 내내 책을 좀 더 많이 읽지 그래? 하는 저의 잔소리에 ‘내가 당신 학생이냐‘ 고 화만 내던 남편이 ‘책 읽는 사람’이 된 것도 감사한 변화입니다. 책 읽기도 습관이라 안 하던 사람에게는 힘든 노릇이고 어린 시절 책읽기가 습관이 되지 않은 성인이 독서에 취미를 붙이기는 더 어렵다는 것을 알기에 남편의 이런 변화가 너무 감사카지노 게임 사이트도 놀랍습니다. 거실 한쪽에는 도서관에서 식구 수대로 제한 권수를 꽉꽉 채워 빌려온 책들이 쌓여있고, 아이와 저와 남편은 함께 포개져서, 혹은 따로 또같이 엎드리고 뒹굴며 책을 읽습니다. 아직은 남편은 제가 책을 고르고 추천해주기를 더 좋아해서, 저는 이번에 남편이 재미있게 읽은 책의 알고리즘을 타고 다음 책을 골라 도서관에서 쏙쏙 빼오는 재미가 여간 쏠쏠한게 아닙니다. 아들에게 책을 읽게 하는 것과는 또 다른 짜릿함과 충만한 기쁨이 있습니다. 책과 친하지 않았던 사람이 기꺼운 독서가가 된다는 것은 담배를 끊거나 살을 빼는 것 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알기에, 저는 남편의 책 읽는 모습이 그저 감사카지노 게임 사이트 기쁩니다. 물질적인 자산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그 이상으로, 그것으로 인해 훨씬 더 질적으로 풍족카지노 게임 사이트 풍요로울 우리의 노년의 삶과, 책 읽는 아빠의 모습을 기억 속에 간직할 아이의 유년기의 추억에 더불어서요.
그러나... 가장 다행인 것은, 제가 비로소 저 스스로를 오롯이 제대로 들여다보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 증거로 지금 이렇게 브런치 북에 11번째 글을 쓰고 있네요.
무디기 짝이 없어 두부모나 간신히 자를까 싶은 뭉툭한 칼날 같은 시간관념을 가진 제가, 출근시간도 약속시간도 늘 맡아놓고 지각생이고, 심지어 주일 미사에도 늦어 십자가의 예수님과 신부님 눈치를 보며 까치발로 기도를 하는 제가, 누가 시킨 것도 감시하는 것도 아닌데스스로 월요일로 정해놓은 브런치 연재글은 심지어 늦을까봐 일요일 저녁에 미리 올리기도 합니다. 쓰다가 떠오르는 기억에 북받쳐 소리를 지르고 가슴을 쥐어뜯으면서도, 그 기억을 쓴 글을 본 어떤 분이 '잘 썼다' 지나가는한마디 해주면 잘썼다는 그 칭찬에 기분이 좋아 헤벌쭉하는 걸 보면 저도 확실히 정상은 아닌 듯 합니다.
그러면서 깨닫습니다.
40줄을 넘어 어느덧 50에 더 가까이 향해가는 제 삶 동안, 박완서 선생님 글 속의 문장처럼 ‘꿈도 없이 겉핥기만 하며, 끊임없이 남이 가진 것만 쳐다보고 비교하며 헛살았다’는 것을요. 너무나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나만 홀로 뒤처질까, 아니 혼자만이 아니라 우리 아이까지 뒤처질까봐 두려워서 이곳저곳 단톡방을 들락거렸죠. ‘세상 공부’라는 허울좋은 명목 아래 남의 사는 꼴을 끊임없이 기웃대며, 그 허망한 기준이 세상의 기준이라 착각한 채, 나 자신을 거기에 견주어 가늠카지노 게임 사이트 있었음을 깨닫습니다. ‘껍데기‘와 ’알맹이‘도 분간 못카지노 게임 사이트 ‘세상 공부’의 참 의미가 무엇인지, 무엇으로부터의 뒤처짐인지도 모른 채,어디로 가고 있는지. 어디로 가야하는지도 모르면서. 그냥 남들 따라 허둥지둥 우르르르 달려가고 있던 제 모습이 이제야 또렷이 보입니다.
‘그 일’이 아니었다면 영영 깨닫지 못카지노 게임 사이트 계속 그렇게 바싹 마른 혀를 날름거리며 끝없이 갈증을 느끼며 그렇게 살았을 겁니다. ‘그 일’ 때문인지, 덕분인지 그토록 피카지노 게임 사이트 도망다니기만 했던 글 쓰기를 다시 시작했고, 브런치에 내 방이 생겼고, 외면카지노 게임 사이트 잊으려 했던 꿈도 다시 떠올렸습니다.
물론, ‘다행이다’라고 여기는 것들로 인해 잃어버린 그 카지노 게임 사이트 것들이 아깝지 않냐고 묻는다면, 솔직히 ‘그렇다’고는 못하겠습니다. 자아의 발견과 정신적 성장, 종교 생활로 얻은 마음의 평화, 가족 간의 화합 등 물질적 가치로는 환산될 수 없는 더 중요한 가치를, 어리석지만 이제라도 깨달았으니 그럼 된 거 아니냐. 이대로 이전보다 더 충분하지 않느냐 라는 질문에 그저 ’네, 그렇습니다.‘ 순순히 끄덕이기엔, 저는 더 이상 순진하지도 않고, 세상은 너무 빨리 변하고, 저는 너무 나이를 많이 먹었습니다.
이제라도 깨닫고 스스로를 변하게 한 것들을 평생 모르고 산다는 전제하에, 다시 ’그 일‘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를 준다면 돌아가겠냐.고 묻는다면 홀린 듯이 ’네네 가겠습니다!‘ 하며 난짝 돌아갈 채비를 할지도 모르겠다는 것이 저의 솔직한 고백입니다.
이 카지노 게임 사이트 일들이
사기를 당하지 않았으면 절대로 몰랐을,
‘제 인생의 참 감사한 다행들’입니다.
그 행운에 감사하며 ,
이제 저의 첫 브런치 북 <사기당해 다행이다 연재를 마감하려 합니다.
유리멘탈의 징징거리는 동어반복을 위로하고 응원해주신 카지노 게임 사이트 작가님들께,
이상한 방문을 빼꼼 열어봐주셔서,
그리고 그 안에 웅크리고 있는
이상카지노 게임 사이트 뿌우연여자에게 다정하게 말걸어주시고,
작은 불빛 비춰주셔서,
숨쉴 수 있는 작은 창을 열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카지노 게임 사이트, 또 감사합니다.
이제, 진심을 담은 더 좋은 이야기를 다시 시작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