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먹고 마시는 것을 통틀어 이르는 말
불현듯 고기 왕만두가 무척 먹고 싶은 날이 있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먹음직스러운 자태, 두툼한 피, 그 속 가득한 고기와 약간의 야채.
가끔 길을 걷다 보면 무심히 지나치게 마련인 그 만두가게가 막상 찾으니 왜 이리 없는지, 나는 집에서 지하철로 한 정거장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가게를 찾아 늦은 시각, 집을 나섰다.
별생각 없이 주문한 고기만두는 내가 원한 것이 아니었지만, 사장님이 이미 냉장고에서 만두를 꺼내 찜기에 올린 상태였기 때문에 나는 얼른 왕만두를 추가 주문했고, 생각보다 묵직해진 몸으로 집에 돌아왔다. 8개짜리 고기만두를 순식간에 먹어치우면서 냉장고에 사다 둔 만두가 떠올라서 조금 슬퍼졌지만 어쨌든 맛은 좋았다.
그리고 드디어 왕만두를 개봉했다. 스티로폼 상자 안을 가득 채운 두툼한 만두 5개. 첫 한입을 먹었는데 어쩐지 예전의 그 맛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왕만두를 먹은 게 언제인지 떠올려보려 했지만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마도 15년 전, 혹은 20년 전일 것이다. 카지노 쿠폰가 택시 운전을 하시던 시절, 밤늦게 퇴근하면서 사다 주곤 하셨던 것 중 하나가 이 왕만두였기 때문이다. 집에서 뒹굴다가, 혹은 자다가, 카지노 쿠폰가 만두 사 왔다는 얘기를 들은 나는 벌떡 일어나 카지노 쿠폰에게 향했다. 그때도 지금도 만두는 5개. 나는 혼자서 그 만두 5개를 다 먹어치우곤 했다. 가끔 엄마가 하나, 카지노 쿠폰가 하나 드실 때도 있었다. 잘 먹는 나를 보며 부모님은 무척 흐뭇해하셨다. 특히 카지노 쿠폰는 어떻게 이 커다란 만두 5개를 혼자서 다 먹었냐며 매번 신기해하셨고, 그 신기해하시는 모습이 좋아서 나는 억지로라도 만두를 열심히 먹었다. 어릴 때부터 편식이 무척 심했던 나를 거의 포기하셨던 부모님은 좋아하는 카지노 쿠폰이라도 잘 먹는다는 것이 기특하셨던 것 같다.
30살이 넘어가면서 나는 편식을 극복했다. 그냥 어느 순간, 정말로 자연스럽게, 모든 것을 먹게 되었다. 호불호는 있을지언정 못 먹는 카지노 쿠폰은 없어졌다. 한 번도 먹어보지 않은 카지노 쿠폰도 일단은 맛을 보게 된 것이다. 이후 대구에 내려가서 다 같이 식사를 할 때면 나는 반찬을 이것저것 집어 먹었고, 국에 있는 모든 건더기를 깨끗하게 건져 먹었다.
그런 나를 보며 카지노 쿠폰는 또 신기해하시는 것이었다.
"니 그런 것도 먹나!"
카지노 쿠폰의 신기해하시는 모습이 좋아서, 나는 좀 더 다양한 반찬들에 손을 댈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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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못 먹는 것은 다양했다. 이유식을 먹을 때부터 요구르트를 빼고 모든 것을 뱉어냈다는 나의 얘기에 육아 중인 내 친구들은 모두 너 같은 놈이 바로 불효자의 표본이라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고, 4살 때까지 모유를 먹었다는 말에는 저잣거리에 매달거나 파묻어 놓고 싶다는 표정을 지었다. 네가 그러고도 인간이냐고 소리를 지른 친구도 있었다.
야채는 써서 싫었고, 고기는 질겨서 싫었다. 뻥 좀 보태서 내가 먹는 것은 밥과 김치, 된장찌개의 두부뿐이었다. 양상추와 양파, 피망이 싫어서 햄버거와 피자를 고3 때 처음 먹어봤으니 할 말 다 한 셈이다. 생선회도 당연히 싫어했다. 그냥 보기만 해도 징그러워서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그런 내가 잘 먹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육회와 생간이었다. 생간은 나이가 들면서 그다지 선호하지 않게 되었지만 20대 중후반까지는 좋아했고, 육회는 지금도 아주 좋아한다. 고향에 내려가면 엄마는 정육점의 소 잡는 날에 맞춰 고기를 사서 육회를 해 주신다. 이러한 배경은 내가 2~3살 무렵 집이 정육점을 했었다는 데에서 기인한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어떤 집에서 3살짜리 아이에게 생간과 육회를 먹인단 말인가. 심지어 우리 집의 육회는 배를 듬뿍 썰어 넣고 간장으로 간을 하지만 마늘이 아주 많이 들어간다. 그런 것을 아이에게 먹여보고 흐뭇해할 만한 사람은 우리 카지노 쿠폰뿐이다.
비슷한 이유로 나는 선짓국도 잘 먹었다. 새벽 근무를 하고 돌아오실 때면 카지노 쿠폰는 동성로에서 24시간 영업하는 국밥집에서 선짓국을 사 오실 때가 있었다. 어느 날 자다가 깬 나는 카지노 쿠폰가 커다란 봉지를 들고 귀가하시는 걸 보았고, 그게 뭐냐고 물었다. 부모님은 옳다구나, 하고 국물만 떠서 내게 건네주었다. 나는 경상도식으로 빨갛게 끓인 소고기 뭇국을 무척 잘 먹었기 때문에 이것도 먹힐 거라고 생각하셨던 게 아닐까. 그리고 소고기 뭇국보다 훨씬 진하고 고소하고 달콤한 이 국물에 나는 홀딱 반했다. 선지는 어쩐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럭저럭 먹을 만했다. 커다랗고 투박하게 썰어진 무도 너무 마음에 들었다. 이후 카지노 쿠폰는 예전보다 자주 선짓국을 사오시계 됐다. (대구 동성로의 국일국밥이다. 그냥 너무 좋아하는 집이라서 영업하고 싶었다.)
카지노 쿠폰는 나를 강하게 키우고 싶으셨던 것이라 믿고 싶다. 그런 것치고는 너무 예뻐하신 덕분에 나는 온실 속의 잡초처럼 쑥쑥 자라나 지금의 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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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지노 쿠폰는 먹는다는 행위 자체를 무척 좋아하셨다. 또 많이 드셨다. 우리 집 된장찌개에는 늘 소고기가 들어갔고, 고기가 들어가지 않은 국은 없었다. 국이 없으면 나물이 여러 종류가 있어야 했다. 이도저도 귀찮은 날은 간단하게 국수나 먹자,라고 하셨지만 육수를 내고, 국수를 삶고, 고명을 만드는 것은 사실 전혀 간단하지 않다. 심지어 카지노 쿠폰가 국수를 먹고 싶어 하는 때는 대체로 여름이었다. 카지노 쿠폰에 대한 모든 글은 사실 엄마의 고생을 치하하며 시작해야 한다. 엄마는 국수면을 한 냄비 가득 삶아야 했다. 카지노 쿠폰도 나도, 늘 두 그릇씩 먹어치웠기 때문이다. 여름이 되면 우리 집 냉동실에는 늘 멸치육수가 꽝꽝 얼어있었다.
카지노 쿠폰는 식후에는 반드시 끝물이라고 부르는 디저트로 과일을 드셔야 했다. 밥을 먹고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끄물 없나]라고 엄마에게 말하곤 하셨다. 덕분에 우리 집에는 늘 제철 과일이 넘쳐났다. 봄에는 딸기, 여름에는 포도, 참외, 수박, 가을 겨울에는 단감, 사과, 배, 가끔 귤. 나는 과일을 싫어하지는 않았지만 먹기가 귀찮았고 맛이 없는 과일은 먹고 싶지 않았기에 카지노 쿠폰가 과일 먹으라고 부를 때마다 안 먹어라고 매몰차게 대답하곤 했다.
최근에 이사한 집은 지하철 역에 과일 가게가 있다. 그곳에서 파는 제철 과일을 볼 때마다 나는 카지노 쿠폰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카지노 쿠폰가 돌아가신 이후 평소엔 먹지도 않던 사과, 단감 같은 것이 계속 먹고 싶었다. 하지만 하필 작년부터 사과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았기에 정말 딱 한번, 사과를 사 먹었다. 맛있었다.
여름에 대구에 가면 종종 인근의 국도를 달릴 때가 있다. 무더위에도 불구하고 나는 슬며시 창문을 내린다. 달콤한 참외 향기가 훅 하고 끼쳐 오면 나는 카지노 쿠폰를 생각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