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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쾌주 Mar 11. 2025

TTL

처음 만카지노 게임 사이트 자유

아주 어렸을 때, 친척 집에서 다이얼을 돌리는 전화를 써 본 기억이 있다.

우리 집에 있던 전화는 벽에 걸 수 있고 본체가 따로 없이 수화기와 통화기 사이에 번호가 있는 형식이었다. 물론 꼬불꼬불하고 긴 선이 이어져 있었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 친구 집에 있던 자동응답기 기능이 있는 무선 전화기를 아주 오랫동안 부러워했다. 커다랗고 털이 북슬북슬한 콜리가 전화기를 물어다 주는 광고를 보고 현혹되는 착실한 소비자의 천성을 지닌 탓이었다.


내가 중학교 때는 너도 나도 삐삐를 가지고 있었다. 우리는 8282, 119, 38317, 1010235 같은 암호로 대화했다. 우리 집 형편은 언제나 고만고만했는데도 아빠는 누구보다 빠르게 삐삐를 샀다. 검고, 커다란 기종이었다. 엄마에게는 핑크색의 동글동글하고 예쁜 삐삐를 사주셨고, 내게도 곧 삐삐가 생겼다. 어떤 디자인이었는지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별의별 걸 다 기억하면서 이건 왜 기억나지 않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98년, 아빠는 삐삐의 4배쯤 되는 크기의 시커먼 벽돌 같은 것을 가져왔다. 휴대전화였다. 011-5XX-XXXX. 나오자마자 구매한 사람들의 가운데 자리가 2~300번대였던 걸로 기억한다. 아빠는 그 커다란 벽돌로 수시로 내게 삐삐를 쳤다. 내용은 늘 그냥 호출, 아니면 8282였다. 집으로 전화를 해서 아무도 받지 않으면 엄마와 나에게 무조건 삐삐를 쳤던 것이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 휴대전화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예쁘지도 새롭지도 않았으니까. 거리 곳곳에 공중전화가 있으니까.

하지만 고등학생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티저라는 새로운 형식의 광고가 등장했다. 흑백 세상 속에서 꿈꾸는 듯한 눈빛의 한 소녀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TTL이라는 단어 외에는 아무런 정보도 주어지지 않았다. 얼마 후 새로운 광고가 공개됐고, 거기에는 "처음 만카지노 게임 사이트 자유, 스무 살의 011"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나는 이 광고에 푹 빠져들었다. 그리고 부모님과 티브이를 볼 때마다 이렇게 중얼거렸다. 처음 만카지노 게임 사이트 자유, 열일곱 살의 011. 엄마는 엄한 얼굴로 네가 무슨 휴대전화가 필요하냐며, 꿈도 꾸지 말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셨고, 아빠는 피식 웃기만 했다.

나는 휴대전화가 갖고 싶었던 게 아니라 TTL이 갖고 싶었다. 착실한 소비자의 천성이란 그리 쉽게 사라지는 게 아니었다.


몇 달 후, 집의 전화벨이 울렸다. 그날은 내 생일이었고, 아빠는 휴대전화를 사 줄 테니 당장 나오라고 하셨다.

언제나 성실한 모범생이었던 나는 흥분한 와중에도 아빠에게 되물었다. 엄마에게 허락받았냐고. 아빠는 그럼! 하고 특유의 말투로 대답을 하셨고 나는 같이 놀고 있던 친구에게 아빠가 휴대전화 사준대!! 를 외치며 미안하다고 양해를 구하고 집을 나섰다.

그렇게 나에게도 TTL이 생겼다. 미성년자는 가입할 수 없었기에 아빠의 이름으로 가입을 했고, 요금도 아빠가 내주시기로 했다. 전화 요금이 비싸니 꼭 필요할 때만 사용하라는 말과 함께. 회색에 노란색으로 포인트 컬러가 들어간 휴대전화는내 작은 손에 너무 크지 않게 딱 맞았다.


하늘을 날듯한 기분으로 나는 집에 돌아왔다. 나갈 땐 아무도 없던 집에 인기척이 느껴졌다. 엄마! 나 휴대전화 샀어!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엄마의 표정을 보며 나는 깨달았다. 아빠는 엄마에게 허락을 받지 않았어!

내 뒤를 이어 집으로 들어온 아빠에게 엄마는 나에게 휴대전화를 사줬냐고 물었고, 아빠는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생일이잖아.

드디어 갖게 된 TTL을 빼앗기거나 환불을 해야 할까 봐 너무너무 무서웠던 나는 숨을 죽이고 현장을 지켜보았다. 얕게 한숨을 쉰 엄마는 하여튼 딸이라면 죽고 못 산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렇게 내게는 처음 만카지노 게임 사이트 자유가 생겼다.


지금이야 초등학생도 휴대전화를 가지고 다니는 시대지만 그때 우리 반에 휴대전화를 가진 사람은 나를 포함해서 딱 2명이었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 학교밖에서 취미활동 동아리를 하고 있었는데 그곳에 있는 언니 오빠들은 모두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었기에 문자를 주고받을 사람은 많았다. 딱히 할 얘기가 있어서라기보다는 그냥 재미있는 문자를 주고받으면서 우리는 킬킬거리곤 했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 동아리 사람들에게 받은 문자를 같은 반 친구에게도 보냈다. 딱히 친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어차피 보낼 곳이 더 없었다. 그 애는 재미있어하면서 내 이름을 아이디어뱅크라고 저장해 놓았다. 한 줄에 8 글자씩 4줄을 쓸 수 있고 작은 액정으로 한 번에 두줄밖에 보이지 않던 문자 메시지로 보냈던 것은 주로 이런 것이었다.


/) /) /) /)

(..)(.. )~♥

@--^----


다음에 내가 갖게 된 폰은 "내 손 안의 작은 세상"이라는 문구를 달고 나온 아주 작은 폴더폰이었다. 하얗고 깔끔한 외관에 파랗게 빛나는 외부 액정은 정말로 예뻤다. 그리고 대학생이 된 후 나는 한번 더 휴대전화를 바꿨다.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브랜드에서 나온 우아한 디자인의 슬라이드 폰이었다.

이 일로 내가 뒤에서 욕을 먹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당시의 나는 중2병과 우울증이 더해져 세상에 불만이 많았다. 나의 여러 가지 것들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불행하다고 생각했고 그런 얘기들을 거리낌 없이 아무에게나 얘기했다. 그리고 나는 아빠가 뼈 빠지게 택시 운전해서 번 돈으로 사치품을 사달라고 조르는 나쁜 년이 되어있었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나는 딱히 타격을 받거나 하지는 않았다.

다만 내가 속상했던 건 그 뒤에 추가로 붙은 "남들 하는 건 다 해보지 않고는 사죽을 못 쓰는 년"이라는 내용과, 이 뒷담이 나온 곳이 인터넷의 비밀 게시판이었다는 것이다. 그곳은 나와 친한 무리가 나만 쏙 빼고 자기들끼리 놀기 위해 만든 공간이었다. 도메인까지 사서. 아직도 주소를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거기서 하는 얘기가 고작 내 욕이라니. 시시하고 억울했다.

그 애들은 모두 휴대전화를 갖고 있었다. 그 애들은 모두 수동 필름 카메라를 갖고 있었다. 그 애들은 모두 디지털카메라를 갖고 있었다. 그 애들은 모두 용돈으로 취미 생활을 했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 단지 휴대전화 하나를 갖고 있었을 뿐이다. 20살이 된 후 정기적으로 받던 용돈도 없어졌다.


지금과는 달리 타인에게 관심 없는 척하면서 살았던 카지노 게임 사이트 다양한 이유로 조용히 그 무리와 멀어졌다. 살면서 있었던 타인과의 트러블에 대한 대처 방식 중 가장 우수한 대응이었다.


이후 나는 폰을 아주아주 오랫동안 썼다. 대략 8년 정도 쓰다가 그 후에는 중고 기기를 두세 번 더 사서 썼다. 그렇게 나는 2020년까지 011 번호를 유지했다. 딱히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다. 처음에는 사기업의 횡포로 내 번호를 바꾼다는 게 싫었고 나중에는 주변 사람들이 신기해하는 것이 재밌었다. 정작 아빠는 신상품을 좋아하는 성미답게 10년도 더 전에 스마트폰으로 바꾸신 후였다.


*


고등학교 때 샀던 나의 최초의 폰은 사치품이 맞았지만, 그 후로 폰을 바꾼 것은 내 자의가 아니었다. 신상품을 좋아하는 아빠가 다소 비합법적인 경로로 새로 나온 기기를 저렴하게 손에 넣게 되어 그때마다 내 폰을 바꿔주신 것이었다. (물론 당신 폰도 많이 바꾸셨다.)


남들 하는 걸 우리 딸도 다 해보았으면 하던 아빠 덕분에 나는 내 손 안의 작은 세상에서 처음 만카지노 게임 사이트 자유를 실컷 맛보았다. 참으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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