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것에 늘 마음이 쏠려 잊지 못하고 매달림
살아오면서 카지노 게임 1등을 해본 적이 없다.
1등을 할만큼 잘 하는 무언가도 없었고 1등을 하고 싶을만큼 무언가를 간절히 바란 적도 없었다. 당연히 그만큼 노력해본 적도 없다. 몸을 움직이는 일이 아니면 뭐든 평균 이상은 해냈지만 그게 다였다.
초등학교 때 나의 역할은 언제나 분단장이었다. 반장은 커녕 부반장도 된 적이 없다. 단 한번 부반장 후보에 오른 적이 있지만 나를 후보로 추천한 아이도 나를 뽑지 않았다. 애초에 하고 싶지도 않았건만, 카지노 게임 잠시라도 그런 일로 아이들의 입방아에 오른 일이 몹시도 언짢았다. 그런 나를 보며 엄마는 늘 애가 애살이 없어서 큰일이라고 했다.
애살이란 경상도 방언으로, 무엇을 하고자 하는 적극적인 마음이나 욕망을 뜻하는 말이다. 샘과 같은 뜻이라고 할 수 있다. 이상한 쪽으로 주제 파악을 빨리 한 카지노 게임 우리집은 어차피 가난하기 때문에 내가 욕심을 내서는 안되며, 남을 부러워해서도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쿨하다고 믿었다. 30대가 되기 전 카지노 게임 누군가를 진심으로 축하해준 적이 없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축하할 일이 생기면 부러우니까. 부러우면 지는거니까. 가난한데 지기까지 하는 건 참을 수 없으니까, 카지노 게임 늘 쿨하게, 축하해 하고 짧고 건조하게 말했다. 세상의 모든 것이 내게는 신포도였다.
그런 내가 오빠가 죽은 후 가장 먼저 했던 생각은 나는 이제 영원히, 엄마아빠의 첫번째가 될 수 없겠구나 라는 것이었다. 지금은 이게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인지 잘 알고 있지만 그때는 그런 것이 중요했고 나는 아주 오랫동안 내가 애정결핍이라고 믿고 있었다. 중학교 내내 엄마에게 버림받았다고 생각했다. 쓸데없이 어릴 때부터 읽어댄 책들의 영향으로 죽은 사람은 절대 이길 수 없다는 생각이 내 머릿속에는 너무나 단단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중학시절은 내게 있어 가장 평화로운 시기로 기억된다. 아침에 일어나면 엄마가 아침을 차려주셨고, 도시락을 들고 등교한 나는 1교시가 끝나면 바로 도시락을 먹어치웠다. 점심시간에는 매점을 가거나 학교 밖의 분식집에 갔고, 수업이 끝나면 도서대여점에 가거나 친구들과 노래방을 가기도 했다. 그러다 집에 가면 늘 엄마가 신문을 읽다가 나를 맞이해주었다. 나는 대여점에서 한아름 빌려온 만화책을 읽으면서 라면을 끓여먹었고, 5시부터 2시간동안 만화영화를 보았다. 7시부터 엄마는 저녁 식사 준비를 했고, 나는 그 옆에서 엄마에게 지분거리다가 8시가 되어 아빠가 오시면 저녁을 먹고, 다시 만화책이나 소설책을 보다가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곤 했다. 매일매일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공부는 쉬웠고, 점수도 등수도 잘 나왔다. 엄마나 아빠가 정말로 나를 무방비하게 내버려뒀다면 내가 그럴 수 있었을까?
오빠가 있을때의 카지노 게임 오빠가 나랑만 놀아주길 바랐다. 친척들이 모인 날이면 내가 제일 막내였고 혼자 여자였기에 사촌오빠와 오빠는 어느샌가 사라지고 없었다. 그때마다 카지노 게임 왜 여자로 태어났을까, 하고 슬퍼했다. 오빠가 친구를 데려오면 카지노 게임 낯을 가려 인사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무조건적으로 발길질부터 해대는,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시건방지기 짝이 없는 꼬맹이였다.
엄마가 외출을 하면 카지노 게임 화장이 짙다느니, 치마길이가 짧다느니, 하면서 잔소리를 해댔고, 밤이 되면 언제 집에 오냐고 30분에 한번씩 삐삐를 치고 전화를 걸었다. 엄마가 딸한테 시집살이를 한다며 여기저기 우스개소리를 해댈 정도였다.
하지만 아빠에게는 그런 적이 없었다.
여느 집들이 그러하듯 우리집에도 은연중에 아빠는 나의 편, 엄마는 오빠 편이라는 공식이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빠는 무조건적으로 내 편만을 들어주었고, 엄마는 그러면 안된다며 엄격하게 오빠와 나를 동시에 혼냈다. 하지만 내가 초등학생 꼬꼬마일때 오빠는 중학생이었고, 엄마와 함께 라디오에서 팝송을 즐겨듣고, 같은 소설책을 읽었다. 혈액형마저도 아빠와 나는 A형, 엄마와 오빠는 AB형이었다. 나는 엄마가 전적으로 내 편을 들어주지 않는 것이 못내 불만이었다. 늘 오빠가 나를 먼저 괴롭혔는데!
결국 나는 엄마의 사랑도, 아빠의 사랑도, 그리고 오빠의 사랑도 모두 차지하고 싶었던 욕심쟁이였을 뿐이다. 다른 곳에서는 몰라도 내가 가장 사랑하는 가족들에게만은 내가 무조건 1등이 되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내가 태어난 이후 언제나, 한결같이, 나만을 가장 많이 사랑해준 것은 아빠였다. 왜 그걸 이렇게야 늦게 깨달아서, 끝없는 회한의 눈물을 흘리게 되는 것인지, 나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엄마 아빠의 최초이자 최고의 딸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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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착은 사랑일까? 집착의 유의어에는 애착이 있다.
두 글자의 공통점은 착(着)이다. 이 단어는 붙다, 옷을 입다, 머리에 쓰다, 등의 의미를 가진다. 직역하자면 집착은 착 달라붙어 움켜쥔다는 의미다. 그 목적어는 사랑이다.
아빠가 매일매일 내게 하루에 세번씩 전화하고, 매번 뭘 먹었냐고 묻고, 독립한 후에도 가구 배치를 마음대로 바꿔주려 하고, 옮긴 회사마다 사원은 몇명이고 팀은 몇개고, 돈은 벌고 있는 회사냐고 관심을 가지고, 이사를 할 때마다 어떻게 당신에게 말도 없이 이사를 할 수 있냐며, "이야, 니는 참 배땡긴다." 라고 말씀하곤 하셨던 것을 집착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귀찮다고 여겼던 나에 대한 아빠의 애착은 내가 앞으로는 경험해보지 못할, 세상에서 가장 큰 사랑이었다.
그래서 아빠에게 느꼈던 배신감이 더 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빠는 내 아빠였다. 나는 아빠를 져버릴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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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시간동안 우울증으로 괴로워하며 죽고 싶다는 무수한 생각이 사실은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는 표현이었음을, 뒤늦게 깨달은 카지노 게임 언제부턴가 살아가면서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에 적극적인 마음을 갖고 임하며 욕망하는 삶을 살기 시작했다.
이를 미쳐 다 보여주기도 전에 내 곁을 떠나버린 아빠를 위해서도, 단 한번도 네가 미덥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고, 늘 믿고 있다고 말해주는 엄마를 위해서도, 나는 더더욱 삶에 집착하며 살아간다.
이 글은 아빠에 대한 내 처음이자 마지막 집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