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력에 이끌려 서로 좋아하여 사귐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엄마와 아빠는 연애결혼을 했다고 한다. 70년대의 이야기이니 흔하다면 흔하고, 흔하지 않다면 흔하지 않은 이야기일 것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않고 엄마는 공장에 취직을 했다. 그리고 거기서 관리직으로 일하는 한 남자를 알게 되었다. 당시 사람치고는 큰 키에(172cm였다고 한다.) 잘생긴 얼굴(장동건 같은 느낌이었다고 한다)의 그는 본사에서 일하면서 공장을 자주 방문했고, 그때마다 현금다발을 두둑하게 바지 뒷주머니에 꽂고 다니면서 여직원들에게 커피를 사 주곤 했다고 한다.
두 사람이 어떻게 해서 연애를 시작하게 됐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엄마는 거기에 대해서는 자세한 얘기를 해 주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 생각이지만 엄마는 아빠에게 한눈에 반했던 게 아닐까 싶다. 사랑은 빠져버리는 것이기에.
두 사람은 청춘남녀답게 알콩달콩 카지노 가입 쿠폰를 시작했고, 이내 결혼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외할머니는 결혼에 반대했다. 엄마는 21살이었고 아빠는 30살이라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고, 그 외에는 아빠의 인상이 마음에 안 든다고 하셨다 한다. 여자를 고생시킬 얼굴이라는 것이 외할머니의 평이었다. 과연 현명하셨다.
엄마는 외할머니의 반대에 무릅쓰고 아빠와의 결혼을 추진했다. 그리하여 처음으로 시댁이 될 곳에 인사를 갔다 온 날, 엄마는 너무 심란해서 한숨도 자지 못했다고 했다. 깐깐한 인상의 시어머니와 시아버지 외에도 결혼을 하지 않은 시누이와 시동생까지 함께 살던 그 집은 글자 그대로 다 쓰러져가는 초가집이었다.
요즘이야 이혼보다 파혼이 쉽다고 하지만 어디까지나 남의 이야기에 입을 얹을 때나 할 수 있는 소리다. 하물며 당시에는 더 했을 것이다. 결혼식이 다가오면서 엄마는 살이 빠지기 시작했다. 동글동글하고 도럄직한 몸을 가졌던 엄마는 10kg이 빠져 빼빼 마른 상태로 결혼식을 하게 되었고, 긴장을 해서인지 심란해서인지 웨딩 사진에는 웃는 얼굴의 사진이 한 장도 남아있지 않다.
현명한 외할머니의 예상대로 아빠는 엄마를 무지막지하게 고생시켰고, 30대가 된 나는 엄마와 조금이라도 진지한 얘기를 하게 되면 아빠와 왜 이혼하지 않았냐고 물었다. 엄마는 외할머니의 이혼과 재혼(정식 절차를 밟은 건 아니지만)을 자식 입장에서 겪으면서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당신의 자식들에게는 그런 일을 겪게 하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그리고 아빠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나는 일 년에 두 어번은 엄마에게 반 농담, 반 진담으로 지금이라도 얼른 이혼하라는 얘기를 꺼냈다. 엄마의 답변은 다양했지만 결론은 그럴 수 없다는 것이었다. 아빠가 엄마와 순순히 이혼을 해주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주된 대답이었다. 뭐든지 저지르고 보는 성격으로 자라난 나는 그런 엄마가 답답했지만 나이가 들면서 이혼이 말처럼 쉬운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조금씩 알 수 있었다. 실제로 두 분이 이혼을 하셨다면 가운데에서 내가 고생할 일 또한 더 많아질 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꾸준히 엄마에게 이혼을 권유했다.
아빠가 10개월간의 투병 생활 끝에 돌아가신 지금은 그렇게 생각한다.
어찌 됐든, 엄마는 아빠를 사랑했던 거라고. 안타깝지만 그러했다고.
내가 그러했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