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영롱한 어항, 예민한 집사
TV에서나 본 적 있었다. 물고기를 키우는 연예인들의 일상이나 화려한 물고기들이 가득한 회장님 실의 수족관 정도.
집을 자주 비우고 그렇게 부지런하지 않은 우리 집에서 생물 키우기는 옵션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의지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었으니.. 아이가 어디선가 자꾸 생물을 받아오기 시작했다. 시작은 장수풍뎅이 알이었던 같은데 각종 곤충류를 거쳐 드디어.. 물고기가 도착했다.
코리도라스라는 긴 이름의 물고기. 이름..은 아니구나. 어쨌든, 그렇게 대뜸 곤충 채집통에 담겨온 코리도라스의 삶이 우리 집에서 시작되었다. 작고, 움직임이 거의 없던 그 아이를 그래도 우리 집 아이가 제법 성실히 관리해 주기 시작했다. 그래봤자 매일 밥 주기, 일주일에 한 번 물 갈아주기 정도.
그렇게 무지로 키운 물고기인데 이 아이가 생각보다 너무 잘 자라주기 시작하면서 우리의 고민이 깊어졌다. 채집통이 TV 아래 있어 늘 시선이 갈 수밖에 없었는데꼬물거리던 이 아이가 몸집이 좀 커지니 눈에 잘 띄고, 아무 장비 없는 물에서 저렇게 강인한 생명력을 이어가는 걸 보니 대견하기도, 측은하기도 한 것이다. 그러고 보니 벌써 이 아이가 우리 집에 온 지 4개월 차였다!
이제는 결단을 내려야 할 때가 왔다. 저렇게 잘 버텨주었는데 저 좁은 곳에서 더 이상 막 키울 수는 없다는 생각에 드디어 물고기 용품 파는 곳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월요일에 샵에 가기로 결정한 전날인 일요일엔 정말 운명처럼 어항이 눈앞에 나타나기에 이르렀다. 가볍게 산책을 나가던 차였다. 동네에 누가 어항을 두 개나 재활용 수거장에 내놓은 것이다! 하나는 너무 컸지만 하나는 30 큐브의 유리어항. 딱 내가 생각한 사이즈였다.
그리고 일요일. 역시, 무엇이든 키우는 것엔 돈이 든다.어항을 빼고도 여과기, 조명, 히터, 온도계, 모래자갈, 수동펌프, 장식품 등등.. 분명 사장님은 최소한만 권하시는 것 같았는데 샵을 나설 즈음엔 어느새 양손 가득, 10만 원이 훌쩍 넘는 쇼핑을 마친 후였다. 그리고 코리도라스의 친구로 같은 종 한 마리, 루비 테트라라는 조그만 녀석들 두 마리도.
한바탕 물난리를 치르고 세팅을 마친 어항은 제법 영롱하다. 역시 강인한 생명력의 우리 코리도라스, 이제쯤 이름을 밝히자면.. 우리 삼뽕이(몸에 점이 세 개라 어째 저째 붙인 이름인데 막상 글로 쓰니 상당히.. 흠흠)는 흡사"물 만난 물고기"를 연상케 했다. 그동안 그 좁은 데서 어찌 지냈나 싶을 만큼 30cm 큐브 어항을 종횡무진하기 시작했다. 그래. 미안하다. 너는 이렇게나 활발한 아이였는데 말이야. 그리고 곧, 다른 친구들도 활동을 시작했다.
역시나, 작은 문제가 하나 있다면 소리에 예민한 내가 느끼는 곤란함이다. 분명 '신경도 쓰이지 않으실 거'라 카지노 게임 추천 소음의 기준은 일반인..이었다. 모두가 떠난 후 칠흑같이 고요한 거실에서 작업을 하는 나에게 거실에 있는 저 여과기의 소리는.. 확실한 소음이다. 분명 가족 모두와 있을 땐 아 저 정도면 괜찮겠다 했건만 키보드 소리만 나는 공간에서는확실히 존재감 있는 소리다. 적응이 될까. 적응할 수 있을까.
이제 겨우 1일 차. 자꾸만 소음에 예민해지는 신경을 삼뽕이에 대한 대견함을 다시 떠올리는 것으로 애써 눌러본다. 잘, 어우러져 보자꾸나.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