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자주 찾아오는 화라는 감정. 어떻게 대처하시나요
“화 속에 숨겨진
당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이야기하세요”
앵거게임 중에서
우리가 살면서 가장 많이 마주하는 감정은 무엇일까? 육아집중기를 통과하는 지금의 나에겐 아마도 화라는 감정일 것이다. 혼자 살 땐 몰랐는데 내 마음대로 안되는 두 남매를 키우면서 반 강제적으로 화라는 감정을 맞닥뜨릴 일이 크게 늘었다. 남자아이 답게 언제 튈지 모르는 성향을 가진 첫째, 자신의 고집은 절대 꺾지 않고 들어줄 때 까지 앙칼진 울음소리를 동반한 생떼로 나를 매번 시험에 들게 하는 딸. 이 둘의 콜라보로 인해 나는 하루에도 수십번 화라는 감정과 독대하는 중이다.
특히나 외출할 때 그 화는 뭉게구름처럼 몸집을 더 크게 불리게 마련이다. 어제도 체험을 하기 위해 간 과학관에서 긴 줄을 기다리며 화 한 번, 마트에 가서 자신이 원하는 장난감을 사달라고 생떼를 부리는 통에 또 화 한 번, 돌아오는 길에 뒷좌석에서 장난감 하나를 가지고 옥신각신 다투며 차 안이 울리도록 난리를 쳐대는 두 남매로 인해 화 한 번. 그 이후 집에 와서 씻고 먹이고 잠이 들 때까지 화라는 감정은 거머리처럼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화라는 감정에 대해 생각하다보니 예전에 보았던 연가시라는 영화가 떠올랐다. 사람을 숙주로 삼아 온 몸 전체를 장악하고선 서서히 죽어가게 만드는 무서운 연가시라는 존재. 섬뜩해서 한동안 잠을 못 이루었었는 데 인간에게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화라는 감정도 어쩌면 연가시 같은 존재가 아닐까싶었다. 한 번 몸 속으로 들어오면 나 자신을 송두리째 장악하고 들어앉아 화라는 감정 그 자신이 꼭 나인양 주인행세를 하고 온갖 난동을 부리게 만든 뒤에야 겨우 사그러들곤 하니까.
화라는 감정에 휩싸이는 순간만큼은 잠시 내가 내가 아닌 게 된다. 화라는 화마에 휩싸이는 순간엔 이성을 잃고 나 답지 않은 행동을 할 때가 많으니까. 아이가 어린 시절엔 화라는 감정에 더욱 쉽게 지배당하곤 했다. 내 하루를 송두리째 아이에게 헌납해야 하던 시절. 몸과 마음이 지칠대로 지친 상태에서 아이가 나의 화를 촉발하는 행동을 하면 짐승처럼 소리를 질러대거나 가끔 물건을 패대기치기도 했던 지난날. 화라는 감정이 가시고 나서야 내가 아이에게 무얼 한 걸까. 식은땀이 나면서 달래기를 수 번. 잠든 아이를 보며 내내 미안해하던 과거의 나. 물론 그 당시보다는 강도가 약해졌지만 여전히 내 마음대로 내 뜻대로 안되는 자식이라는 어려운 영역의 과목에선 늘 나를 지배하는 화라는 감정에 늘 k.o패 당하고야 만다.
그러던 중 도덕 수업 감정조절이라는 주제와 연계해서 좋은 책을 찾아보다가 앵거게임이라는 책을 접하게 되고선 화라는 감정에 대해 깊이있게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림책 속에선 앵거게임이라는 앱이 등장한다. 그리고 아이가 화를 내야 할 순간을 마주칠 때 마다 “화를 내며 공격하시겠습니까?”라는 팝업창이 뜬다. 네 라고 누르면 뾰족한 말이 나오고 배터리가 소진된다. 그에 반해 아니오를 누르면 심호흡을 3번 하라고 뜬 뒤 화를 마주하라고 지시한다. 화가 난 이유를 속으로 차분히 생각해본 뒤, 화가 나게 만든 상대에게 자신이 바라는 점을 차분히 말하라고 한다. 화라는 감정을 적절하게 잘 표현했을 경우 격려하는 멘트도 함께 나온다.
화라는 감정을 진실하게 마주하게끔 하고 잘 대응할 수 있도록 재미있는 그림과 함께 제시된 앵거게임이라는 책을 보며 무릎을 탁 치게 되었다. 화라는 감정을 막을 수는 없지만 그에 맞게 적절한 대응을 선택하면서 화가 나 자신을 집어삼키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점이 마음 깊이 와닿았달까.
앵거게임이라는 그림책을 보고 나선, 화라는 감정을 조금 다르게 인식하게 되었다. 부지불식간에 찾아오는 화라는 감정을 그저 나쁜 무언가로 여기는 대신, 화가 내게 찾아왔음을 인식하고 예라는 버튼대신 아니오라는 버튼을 누른 뒤 심호흡을 3번 하고, 다른 방식으로 화를 표현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글을 쓰기 바로 전, 아이와 소아과를 다녀왔는데 늘 그렇듯 약국에서 비싼 장난감을 사달라고 떼를 쓰는 아이를 보며 내 안의 화가 불씨를 당기기 시작했다. 인상을 찌푸리며 소리를 내지르는 대신, 마음 속 앵거게임앱을 조용히 켜본다. “화를 내시겠습니까?” 아니오 버튼과 함께 심호흡을 후우 하고 내뱉어본다. 두근거리는 심장이 진정되어오는 것을 느꼈고 단호한 어조로 아이에게 말을 했다. 엄마가 안된다고 하는데 네가 자꾸 떼를 부려 엄마도 당황스럽고 속상해. 집에 가서 진짜 필요하면 생각해보자. 라는 말로 달래본다.
겨우 5살이 된 아이는 그 말로 결코 바로 꼬리를 내릴 일은 없었지만 내 자신이 그런 식으로 화를 다스렸다는 사실에 가슴이 충만해왔다. 아이의 손을 잡고 약국문을 나오는데 꼭 전쟁에서 승리한 기분처럼 상쾌하기까지 했다. 무엇 때문에 내 안의 화가 자주 촉발되는 지 입밖으로 말을 내어보니 명쾌해졌달까. 화와의 맞대결에서 마음 속 앵거게임앱을 자주 켜다보면 언젠가는 근육이 붙어 화와의 싸움에서 더 노련해지는 순간이 올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곳곳에서 화라는 감정에 자신을 내어주고, 또 그 화들이 여기저기로 옮겨붙어 애먼 사람들에게도 피해를 주는 일들이 비일비재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럴땐 마음 속 앵거게임 앱을 작동시켜 나를 집어삼키기 직전인 화를 밖으로 꺼내어 마주한 뒤 차분히 대화를 나누어보면 어떨까?
당장 나도 이 글을 놓자마자 또 나를 덮쳐올 화라는 감정을 똑바로 응시해보고자 한다. 화가 내 안의 문을 열고 두드릴 때 바로 안으로 들이지 말고 잠시 문 밖에서 대화를 나누고 다독다독하며 돌려보내야지.
모두의 마음 속에 앵거게임앱이 잘 작동하는 평온한 주말이 되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