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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스민 Mar 02. 2025

조증카지노 게임 인한 첫 입원(초기)

길었던 3주

2024년 6월 말, 조증카지노 게임 인해 강제 카지노 게임하게 되었다.


6월 중순부터 나는 하루하루가 버겁게 느껴졌다.

모두가 나를 괴롭게 하는 대상으로 느껴졌고, 누군가나를 시기한다고도 느꼈다.

종말이 다가온다는 느낌이 점점 사실이 되어갔고, 매일 온몸을 누군가 누르는 듯했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만이 나를 구하고 함께할 운명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한 달에 한 번씩 상담받으러 가는 병원에 갈 때, 아버지가 데려다주셨다.

병원에서 주치의 선생님과 싸우고, 오는 길에 아버지와 싸웠다.


입원 일주일 전부터는 가족 구성원 모두 악한 영이라는 생각이 들어 방문을 걸어 잠그고 나오지 않았다.

그러던 중부모님께서는 나의 상태가 심각함을 인지하시고 입원을 준비하고 계셨다.

부모님은 나의 비위를 맞춰주셨고, 당시의 나는 갑자기 바뀐 부모님의 태도가 의아했다.

그리고 입원 하루 전, 부모님은 기분전환을 얘기하며 넓은 호수가 있는 공원에 나를데려가셨다.

그곳에서 내가 무슨 말을 하든 잠잠히 들어주었고

저녁에는 소고기 집에 가서 먹고 싶은 것을 마음껏 먹으라고 하셨다.


다음 날(카지노 게임 D-day), 방문을 걸어 잠그고 침대에 쓰러져 잠들어있었는데

모르는 남자 두 명이 문을 열고 들어와서는 같이 나가야한다고 했다.

비몽사몽 한 와중에 나는 순순히 알겠다고, 옷 입고 나갈거니 기다려달라고 했다.

나는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구하려고 보낸 사람들이라고 생각했기에따라갔다.

(지금 돌아보면 왜 그렇게 생각한 걸까.. 싶다)

집 앞에는 구급차가 있었고, 아버지가 계셨다.

아버지는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하라고 말하며 같이 탑승했다.

손을 잡아주려는 아버지에게 몸에 손대지 말라고 말했다.

가족들에 대한 경계심적대감이 높아진 상태였다.

구급차는 어느 곳에 도착했고,

나는 부모님과 함께 문을 열고 어느 공간에들어가서 처음 보는 선생님께 내 생각을 간단하게 얘기했다.

그 당시에는 드디어 모든 악한 영에게서 해방된다고 생각했다.

사실은 그곳이 병원이었고, 부모님께서 약 2~3주 동안 내 증상에 대해 주변에 조언을 구하고, 입원을 결정하고, 사설구급차를 따로 비용을 주어 불렀다는 것은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당시에 선생님께 말할 때 '모두가 행복했으면 좋겠어요'라는말 외에 별말 안 했던 것 같은데

부모님께서는 내가 꽤 오랫동안 혼자 떠들었고, 선생님이 조용히 벨을 누르셨다고 한다.

(벨을 누른다는 것은 카지노 게임을 위해 보호사님들을 부르는 것을 의미한다)


상담이 끝난 후

왜인지 승리감에 취해 병원 의자에 앉아서 여유로운 태도로 쿠션을 얼굴에 두드렸다.

어느 누구도 믿을 수 없다고 판단해 타인이 주는 음료나 물을 일절 먹지 않고 있었는데

그 공간은 믿을 수 있다고 생각되어 정수기 물을 마셨다.

시간이 조금 지나고 위아래로 파란 옷을 입은 건장한 남성 두 명이 다가왔고 엘리베이터로나를 데려갔다.

이들은나를 돕도록 하나님께서 보낸 이들이라고 생각했기에 순순히 따라갔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하나님만이 유일하게 내가 믿을 수 있는 대상이라고 생각하며

사설구급차 대원, 병동 보호사분들을 믿을 수 있는 대상이 보낸 사람들이라고 확신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고, 내가 입원할 곳에 도착했다.

당시에는 입원인 줄 몰랐고, 나를 보호하기 위해 마련된 장소라고 생각했다.

보호사분들이 가져온 짐을 검사했다.

심신의 안정을 위해 필요한 여러 물품을 가방에 넣고 다녔기에 짐이 많았다.

그래서 시간이 좀 걸렸다.

압수한 물건들 대부분은 반입이 불가했고 내게 주어진 건 끈이 끊어진 종이쇼핑백에 담긴 일기장, 도라에몽책.. 이 전부였다.


처음에는 작은 방에 격리되었다.

웅크린 채로 침대 위에 누우며 드디어 쉴 수 있겠다는 생각에 안도했다.

밖에서는 문 두드리는 소리,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간호사들의 목소리도 들렸다.

나를 괴롭게 하려는 지인들이 여기까지 찾아왔고, 간호사들이 이를 막아주고 있다고 생각했다.

여자아이의 통화소리도 들렸는데

나와 힘들어한 정황이 똑같았고 자살을 생각하고 있다고 아빠에게 말하는 듯했다.

나는 조증으로 힘들어 죽고 싶은 상황 속에서도 자살만큼은 지옥에 가는 일이기에 절대 하지 않겠다고, 차라리 하나님께 나를 죽여달라고 기도해왔다.

그런데 여자아이의 통화내용은 자살에 대한 의견 빼고는 나와 같았다.

무서워져서 '사탄아 떠나가라' 속으로 외치며 기도했고, 얼마 시간이 지나자 목소리가 사라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환청일 확률이 높다.

내가 갇힌 방 앞에는 보호사, 간호사 외에 드나들 수 없고

휴대폰 사용이 금지되어있기 때문이다.

나는 피해망상환청까지 점점 상태가 좋지 않아지던 중이었다.

지금 글을 적으면서 돌아보니 더 확실해진다.


모든 소리가 사라지자, 작은 방 문도 열렸다.

다음은 4인이 같이 있는 보호관찰실배정되었다.

나를 상담해 주었던, 주치의가 된 선생님은 여러 검사지를 주시며 천천히 풀라고 하셨다.

모든 상황이 연출된 것처럼 느껴졌다.

베드로를 감옥에 보낸 것처럼 하나님이 이곳에 나를 보냈다는 확신을 가졌다.

옆에 계신 분이 몸이 아프다고 하며 힘없는 모습을 보이시자,

나는 예수님의 보혈의 은혜로 기도해 줄 수는 있지만 낫고자 하는 의지를 말해야 한다고 했다.

하나님의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되도록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생각하며

같이 있던 조용한 동생에게도 말을 걸고, 위로의 글귀가 적힌 도라에몽책을 건네고, 지켜주겠다고 말했다.

이때가 카지노 게임의 에너지가 차오르는 시기에 해당된다고 생각한다.


방에서 나와 약해 보이거나 괴롭힘 받는 사람을 보면 지켜주겠다고 자처했다.

(왜그랬을까 생각해보면, 내가 투영되어서인 듯하다)

처음 TV가 있는 장소로 나왔을 때, 왠지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걸로 보이는 무리가 있었고

소외되어 보이는 할머니께 원하는 자리로 같이 가드리겠다고 했다.

어려 보이는 여자 무리 3명 중 한 명이 들으라는 듯이 내 욕을 할 때,당돌하게 맞받아쳤다.

그 욕한 사람이 같은 무리 사람을 장난으로 세게 때리는 것을 보고는 대신 나서서 사과를 요구하기도 했다.

당시에는 내가 굉장히 의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보면 내 맘대로 상황을 판단하고, 당황스러운 태도를 보이지 않았나 싶다.


보호관찰실에서의 시간도 어느 정도 지나고, 새로운 방을 배정받았다.

그렇게 시작한 카지노 게임생활이 처음에는신이 났지만 점점 지쳐갔다.

에너지가 넘치고 기운차던 시기가 지나 무력감이 나를 지배했다.

내가 있었던 곳은 이 병원에서초기카지노 게임에 병적 증세가 안정되기 전까지 시간을 보내는 곳이었다.

그만큼 다양한 증상의 사람들이 있었고 부딪히고 싸우고 힘든 시간을 보냈다.

프로그램도 없고, 외출이 허용되지 않으며, 규율이 엄격했다.

아침·점심·저녁 밥 먹는 시간이 유일하게 기다려지는 시간이었다.

주로 낡은 책을 꺼내 읽고, 글을 적는 것이 유일한 스트레스 해소방법이었다.

탁구대, 운동기구도 있었지만 나는 이용하지 않았다.

책을 읽을 때에는 책에 있는 문구들이 암호처럼 느껴졌다.

병원의 모든 CCTV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지켜보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인정하지 않았지만 당시 좋아하는 이성에 대한 집착이 강했다)


병원에 있으면 일주일에 한 번씩 매점에서 필요한 것을 주문할 수 있었다.

나는 목록에 있는 것을 종류별로 구매했다.

갇혀있는 중에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선택은 매점 주문뿐이었다.

과자와 펜,노트, 샤워용품을 구매했다가

나중에는 런닝도 사고, 반팔티도 사고.. 이것저것 주문해보았다.


사실 이 당시의 기억이 온전하게 다 나진 않고 부분부분 기억이 난다. 그래서 기억나는대로 적고있기에 글이 매끄럽지 않은 부분은 양해를 구한다.


어느날에는 약으로 나를 조종하려 한다는 생각이 들어약을 거부했고, 보란 듯이 손에 쥐었다가바닥에 버렸다. 그리고끌려가서 십자가 모양카지노 게임 묶여 안정제투여받았다.

나는 온화해지다가도 적대적이어졌다.

자꾸 물건을 훔쳐가는 일이 발생해서 모두 앞에서 그러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기도 하고, 차라리 볼 때 가져가라고 서랍을 개방한 적도 있다.

환자들과 같이 있는 게 점점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나는 새벽마다 일찍 깼고, 어두운 방 안에서 책이나 성경을 읽거나, 그림을 그렸다.

매일 MP3를 귀에 꽂고 음악을 들었다.

병원은 음악청취기능만 있는 MP3만 반입 가능해서 여러 환자들이 MP3를 쓰고 있었다.

그걸 보고 나도 부모님께전화로 요청했다.

입원해 있는 동안 티머니카드를 이용해 전화를 할 수 있었는데

부모님말씀카지노 게임는당시 내가 많으면 하루에 서너 번씩 전화해서 화를 쏟아부었다고 한다.

전화에 대한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빨리 내보내달라고, 아님 하나님께 죽여달라고 기도할 거라고 분노에 차서 소리치고 끊었던 것만 기억났.


점점 힘들어지던 만나게 된 언니가 내게 힘이되어주었다.

언니는 나보다 늦게 입원했고 거식증으로 인해 들어온듯했다.

첫 만남은 화장실이었다.

화장실에서 마주친 언니는 소리치면서 갑자기 내게가진 파우치를 내놓으라고 했고, 무서워서 주고는울었다.

그런데 시간이 조금 지나고 언니가 조용히 방에 찾아와놀라게 해서 미안하다며 비누를 주고 갔다.

일반적카지노 게임 보면 무슨 상황인가 싶겠지만

이곳은 정신적으로 아픈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지금 보면 언니의 행동은 친해지고 싶다는 것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마치 조증기의 내가 가까워지고 싶은 사람들에게 한 말과 행동이 그들 입장에서는 집착과 공격으로 느껴져 거부감을 느끼게 한 것처럼.

그리고 병동에서는 매점에서 주문한 과자나 물품을 주는 것이 호의를 표현하는 방법이었다.

그 안에서나눌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었고

친밀함을 표현하는 방법은 포옹,대화,같이 다니기 등이었다.


처음에는 무섭게 다가와서 놀랐지만 우린 점점 가까워졌고, 언니가 입원이 처음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언니는 함께 다니며 맛있는 반찬을 내게 더 덜어주었고(병원은 배급량이 정해져 있다)

같이 다니며 마찰이 있는사람들사이에 중재자가 되어주고,내 얘기를 들어주었다.

어느 날은 처음 봤을 때 나를 예쁘다고 생각했다고 말해주었다.

스스로의 모습이 한없이 볼품없게 느껴졌던 당시에 그 말이 위로가 되어서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언니는 뭐든 힘들게 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싸우지 말고 일단 데스크에 가서 얘기하라고 했다.

당시에 주변사람에 대한 의심이 왔다 갔다 했기에 언니에 대한 의심도 종종 들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내게 도움을 준 좋은 언니였다.


매일이 전쟁터인 이곳에서계속 나를 쫓아다니며 시비를 거는 언니도 있었다.

그로 인해 점점 예민해졌고,

모두에게 적대적이게 되어 나중에는 같이 다녔던 언니에게조차 몸에 손대지 말라고 했다.

(나는 조증기에 몹시 예민해지면 주변인들에게 말걸지 말라고,몸에 손대지 말라고 하며 그들을 차단했다)


매점 간식 주문이 잘못 오고 데스크에 가서 화를 낸 적도 있다.

보통 한두 개는 늘 잘못오곤 해서 그러려니 했는데

주문한 과자가 모두 없고, 요구르트 주문 갯수는 1개에서 20개로 늘어나있었다.

누군가가 일부러 나를 골탕 먹이려고 한다는 생각이 들며 화가 났다.

(보통 때면 그렇게까지 화가 나지 않을 상황이지만 이때에는 그랬다)

데스크에 가서 화를 내며 따지자 남자 보호사님이 미안하다고 사과했고

확인 후에 물건을 제대로 받았지만 화가 풀리지 않았다.

화가 난 마음을 폭풍 일기를 쓰며 풀던 순간, 일기를 쓰다 보니

나의 내면에 괴롭힘, 부당한 대우에 대한 두려움이 있고, 방어기능카지노 게임 '분노'라는 발작버튼이 있음을 깨닫게 되었고요동치던마음이 잠잠해졌다.

분노가 가라앉은 후, 데스크에 계신 분들께찾아가서 진심으로 사과했다.

조증은 뇌호르몬 영향뿐만 아니라 내면에 억누른 감정들로 인해 발현된다.

이날일기를 통해 카지노 게임이 발현하게 된 내면의 상태를 들여다보게 되었다.



3주가 지나고

주치의선생님께안정된 사람들이 갈 수 있는 곳으로 갈 수 있는 상태라는 말을 듣게 되었다.

다만 그곳에 자리가 아직 나지 않아 잠시다른 곳에 머물러야 된다고 하셨다.

나는 자리가 날 때까지 기다릴 생각이었지만

수간호사님이 따로 조용히 부르셔서 일단 올라가는 게 좋겠다고 권유를 하여

위치를 이동하게 되었다.(계속 쫓아다니는 언니로 인해위험해 보인다고)


입원 직후 이곳에서의 3주간의 생활은 길고 길었다.

그 어느 때보다 긴 시간으로 느껴졌다.

자꾸 물건을 훔쳐가고, 시비걸고, 하루하루가 길고 지루하고..

기억나는 것보다 기억나지 않는 부분이 더 많다.

그만큼 힘들었지만 더 늦기 전에 병동에서 시간을 보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병동에서 이상할 거 없게 느껴졌던 나의 말과 행동들이 아픈 증상 중 하나였음은 시간이 흐르고 나서 뒤늦게 알게 되었다.

지금 글을 적으면서도 카지노 게임 당시 내가 했던 생각과 말들이 부분부분 또렷이 기억이 나는데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는 의문이 든다.

조증기의 감정,생각을 떠올리며 나의 아픈 증상이 어떻게 나타났는지 알게 되었다.

조증의 파편들이 더 많이 튀기 전에 폐쇄된,안전한 공간에 있었음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정신질환의 무서운 점은

심각해진 상태가 되어도 당사자는 심각성을 모른다는 것이다.

이후에 얼마나 후회할지 모른 채.

그러므로 가장 가까운 지인, 가족이 무언가 다르게 느끼거나 진찰을 권유한다면

스스로 인정이 되지 않더라도 일단 병원에 가보는 것이 좋다.

그것이 미래의 나를 보호할 수 있는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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