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1학년의 기억
엄마는 초등학교 입학식에 입고 갔던 까만 원피스를 기억하냐고 물었다.
까맣고 비싼 원피스를 예쁘게 입혀 입학식에 데리고 갔다고.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력이 좋은 나에게 까만 원피스는 생경하기 그지없었다.
엄마는 남동생에게 물려주어야 한다고 늘 청바지와 로봇캐릭터의 운동화만 사줬다.
엄마는 동생만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다시 상담을 시작하면서, ‘왜 이렇게 나는 겁쟁이인가’라는 물음에 답을 찾고 싶었다.
새로운 변화에 대해서 남들보다 더 겁이 났다. 공무원이란 직업의 특성상 2년에 한 번 못해도 3년에 한 번은 업무환경이 바뀌었다. 그때마다 나는 변화에 대한 두려움에 잔뜩 위축되었다.
겁에 질린 강아지 같다고나 할까. 안 그래도 위축된 나의 어깨는 평상시보다 더 긴장해 위로 솟아있었고, 잠을 잘 때조차도 어깨는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았다.
선생님은 나에게 초등학교 1학년의 기억을 물었다. 입학식은요? 소풍은요? 기억나지 않는다. 나에게 1학년은, 한글을 몰라 나머지 수업을 받아야 하는 창피함과 모두가 돌아간 텅 빈 운동장을 걸어 나오던 기억 그리고 청소도구가 필요하다는 선생님의 말씀에 가장 먼저 사갔지만, 칭찬은커녕 지각했다고 혼이 났던 기억뿐이다. 내 기억이 왜곡된 것일 수도 있지만 내 학교생활의 시작은 그런 장면뿐이다. 비싸고 까만 원피스의 기억 따위는 남아 있지 않다.
선생님은 물었다. 학교에 다녀오면 집에 엄마가 있었냐고.
엄마는 식당에서 일했다. 늘 자정이 다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아빠는 막노동의 고됨을 술로 해소한 후 집으로 돌아왔다. 자정까지 아무도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동생의 저녁을 챙겼고, 동생을 씻겼고, 동생과 잠이 들었다.
선생님은 아이가 학교에 가는 건 엄청난 변화이기 때문에, 무섭고 두려운 일이라고. 하루 종일 긴장감이 쌓인 아이는 엄마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긴장을 완화하고, 다음 날 학교에 갈 힘을 얻는다고. 나에겐 사치스러운 이야기이다.
엄마와 함께 산 마지막 그 집은 공용화장실도 공용욕실도 밖에 있었다. 늦은 밤 마당에 있는 화장실을 가는 건 불편했다. 아직 스테인리스 요강이 나오기 전이었는지, 집에는 사기요강이 있었다. 그 밤 요강이 넘치기 직전, 나는 요강을 들고 화장실로 향했다. 하지만 요강은 생각보다 무거웠고, 손아귀의 힘은 점점 빠졌다. 마당 한가운데에 다다랐을 때 결국 요강을 놓치고 말았다. 한 밤의 정적을 깨고 요강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깨졌다. 나는 컴컴한 마당 한가운데에서 얼음처럼 얼어붙은 채 깨진 요강을 막막하게 바라봤다. 사슬의 고리처럼 다른 기억도 떠올랐다. 그 집은 온수도 나오지 않았다. 물이 가득 찬 들통을 연탄보일러 위에 올려놓고, 따뜻하게 데워지면, 연탄보일러에서 들통을 내려, 욕실로 들고 갔다. 엄마가오기 전에 동생을 씻겨야 했다. 그래야 엄마에게 사랑받을 수 있으니까.
요강을 깬 그 밤도. 들통을 들고 낑낑거리며 들고 가던 그 밤도. 내 주위엔 아무도 없었다.
학교에서 힘든 일이 있어도 말할 사람이 없었다. 친구 간의 오해나 다툼이 있을 때도 마음을 털어놓을 사람이 없었다. 모든 문제를 혼자 해결해야 했다.
선생님은 나에게 부모가 있어도 없는 것과 같다고 했다.
나는 대답했다. 네에 늘 혼자였어요. 어린 시절 나는 혼자였다. 그래서 첫아이가 어린이집에 가도 불안했고, 유치원에 가도 불안했다. 상상 속의 내 첫아이는 어린 시절의 나처럼 무서워 떨고 있었다. 아이보다 내가 더 겁을 냈다. 그 불안은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을 하면서 정점을 찍었다. 나는 육아휴직을 하고 아이의 등하교를 챙겼다. 어떤 일이 있어도 아이를 혼자 보내지도 혼자 돌아오지도 않게 했다.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조잘거리며 말하는 아이의 입에 집중했다. 그럼에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아이를 위한 노래도 만들었다.
틀려도 카지노 쿠폰.
실수해도 카지노 쿠폰.
혼나도 카지노 쿠폰.
카지노 쿠폰. 카지노 쿠폰. 다 카지노 쿠폰.
눈물이 터졌다. 선생님은 조용히 나의 울음소리가 잦아들기 기다려 주었다.
그 노래는 하늘 씨를 위한 노래였네요.
8살의 하늘 씨가 듣고 싶은 노래였네요.
아이를 위해 만든 노래는 나의 노래였다. 8살의 내가 듣고 싶은 노래였다.
8살의 나에게 엄마가 불러주길 원했던 노래였다.
선생님께 칭찬받지 않아도 카지노 쿠폰.
요강을 깨뜨려도 카지노 쿠폰.
들통을 들지 않아도 카지노 쿠폰.
카지노 쿠폰. 카지노 쿠폰. 다 카지노 쿠폰.
그랬구나. 그래서 그렇게 아이에게 다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었구나.
엄마의 칭찬을 받고 싶었구나. 엄마가 다 괜찮다고 다독여주길 바랐구나.
엄마의 사랑을 받고 싶었구나.
선생님은 상담 때마다 말해주었다. 하늘 씨가 원하는 엄마의 사랑은 이 세상에 없다고.
그래 없다. 내가 바라는 엄마의 사랑은 없다. 하지만 나는 있다. 나의 사랑은 있다.
나를 사랑하는 나의 마음은 있다. 이제 나는 나를 위해 노래를 불러 줄 것이다.
틀려도 카지노 쿠폰.
실수해도 카지노 쿠폰.
혼나도 카지노 쿠폰.
내가 옆에 있어 줄게, 내가 칭찬해 줄게, 내가 사랑해 줄게.
카지노 쿠폰, 카지노 쿠폰. 그러니까 다 카지노 쿠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