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의 서재 창작 지원 프로젝트 당선작
케언즈의 태양은 눈부셨다. 호주에서 이곳을 선택한 건 일본인이 많았기 때문이다. 영어는 자신 없으니 할 수 있는 언어로 돈을 벌자 싶었다. 공항에서 도심으로 향하는 길은 낯설었다.본 적 없는 거대한 나무와 맨발로 다니는 서양인의 모습에 벌어지는 입을 애써 다물었다.
예약한 쉐어하우스는 2층짜리 주택이었다. 외국 드라마에서나 보던 수영장 딸린 넓은 부지가 인상적이었다. 호주의 넉넉한 인심을 대변하는 것 같아 어쩐지 맘이 놓였다. 하우스 메이트는 태반이 일본인 여성이었다.서양인이자 남성은 단 한 사람, 집주인뿐이었다. 머리가 하얗게 세고 덩치가 큰 호주인 할아버지는 언제나 헐렁한 반팔에 반바지 차림으로 느닷없이 거실에 출몰하곤 했다.
집은 조용카지노 게임 사이트. 가끔 마주치면 인사를 나누고 잠깐의 대화를 나눴지만, 그뿐이었다. 저녁이 되면 박쥐 떼가 날아다니는 소리만 선명카지노 게임 사이트. 소음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평온하면서도 조금은 서늘한 느낌이 드는 곳이었다. 방에서 인기척은 느껴지는데 나오지 않는 걸 보고 다들 쑥스러움을 많이 탄다고 생각카지노 게임 사이트. 집세가 저렴해서 입주자는 넉넉카지노 게임 사이트. 처음에는 은퇴한 할아버지가 학생들을 돕기 위해 방을 싸게 내놓은 줄 알았다. 알고 보니 세상 순진했지만.
무작정 찾아간 쇼핑몰에서 일자리를 구했다. 기대보다 일은 쉽게 풀렸다. 호주에서의 생활도 순탄하겠다는 생각에 어깨를 으쓱였다. 자만에 가까운 마음이 삐걱거리기 시작한 건 역시나 살고 있는 집이 불편해지면서다. 인간 생활의 필수 요소인 의식주 중에서 가장 중요한 건 내 경우에 항상'주'였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층간소음도 없는 고요한 숙소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계기는 수영장이었다. 앞마당에 있는 풀장은 자주 관리를 하는 건지 깨끗했다. 그런데 카지노 게임 사이트 수영을 하지 않았다. 다들 오래 살아서 흥미를 잃은 건가 싶었다. 나라도 이 근사한 프라이빗 공간을 즐겨야지 싶어 차가운 물에 종종 몸을 담갔다. 이따금 집주인이 따라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어색한 인사를 나누고 조심스레 거리를 유지했다. 물살에 너울거리는 수북한 가슴털이 노랗게 반짝였다. 쳐다보면 실례일까 싶어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어르신이 적적하신가 보다.' 했지만 불편한 건 사실이었다. 내 집이 아니니 들어오라, 말라 할 권리는 없었다.
결정적인 사건은 어느 휴일에 일어났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2층 테라스에서 쉬고 있을 때였다. 철제 의자와 테이블은 군데군데 칠이 벗겨져 페인트 조각이 덜렁거렸다. 처음 먹어보는 서양배를 심만 남기고 폰을 보는데 집주인이 나타났다. 그리곤 별다른 말도 없이 슬그머니 맞은편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종종 있는 일이었다. 어색하긴 했어도 프리 토킹 상대가 나타나서 잘됐다고 생각카지노 게임 사이트. 형편없는 영어 실력에 누구라도 좋으니 연습 상대가 필요카지노 게임 사이트. 상대의 말을 이해하려고 귀를 기울이는 것만으로도 좋은 공부가 될 거라고 믿었다.
평범한 얘기가 오갔다. 못 알아듣는 부분도 알아듣는 척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꺼낼 때만 해도 집주인은 그저 인상 좋은 할아버지였다. 그런데 이야기가 점점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난 예전에 라디오 DJ를 했었어.
그래? 대단하네.
상당히 오래 했지.
은퇴하고 나서 이 집을 외국인에게 빌려주기 시작했어.
알다시피 우리 집 집세가 싸잖아.
보람도 있고 좋더라고.
그렇구나.
이 일도 오래 했니?
그럼. 아주 많은 여성이 이곳을 거쳐 갔지.
그중에는 나와 꽤 가까웠던 애들도 있었어.
무슨 뜻이야?
나랑 신체적으로 관계를 맺은 애들도 있었다는 얘기야.
할아버지는 이 집을 거쳐 간 여성들과의 관계를 자랑스레 늘어놓기 시작카지노 게임 사이트. 구체적인 행위를 암시하는 손동작을 보고 있으니, 머릿속에 물음표가 백만 개쯤 떴다. 이건 성희롱인가. 아니면 성에 개방적인 외국인의 잡담인가. 머릿속에서 메트로놈이 좌우로 흔들거렸다. 당시 20대 후반이었던 나는 생각의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결혼을 카지노 게임 사이트고 현명한 판단을 하게 되는 건 아니었다. 그곳에서 나는 그저 어리숙한 동양인일 뿐이었다.
혹시 이런 얘기가 불편하면 안 할게.
중간중간 추임새를 넣는 집주인의 표정은 진지카지노 게임 사이트. 나쁜 의도가 없다는 듯 두 손을 내젓는 모습에 내가 예민한 건가 싶었다.'성인끼리의 대화니까 괜찮은 걸지도 몰라.','여기서 얘기를 끊으면 무례한 걸지도 몰라.' 찜찜한 마음에도 부지런히 맞장구를 쳤다. 돌아보면 일본에서 살다 온 지 얼마 안 돼서 그랬던 것도 같다. *타테마에가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내 한 마디에 할아버지가 상처받지 않을까, 이 분위기를 해치지 않을까 걱정카지노 게임 사이트.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는 나를 두고 할아버지는 혼자서 말을 이어갔다. 이렇게 그냥 들어주면 되는 건가. 불쾌한 심장 소리가 커져만 갔다.더 이상 대화를 이어가면 안 될 것 같은데, 왜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한 걸까. 맞잡은 두 손이 쉴 새 없이 꼼지락거려 테이블 아래로 내려버렸다. 그리고 카지노 게임 사이트렇지 않은 척 미소만 지었다.
어떻게 이야기를 마무리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침대에 엎드려서 주고받은 대화 내용을 복기했다. 침묵이 쌓인 방에는 흔한 발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지금이야 자그마한 소리에도 인상을 찌푸리지만, 그때는 아니었다. 낯선 타지에서 혼란을 나눌 상대를 찾아 귀를 세워도 커다란 침묵만이 벽을 세웠다. 과거를 쫓는 와중에도 신기했다. 타인의 울림이 고통이 아니라 위로가 될 수 있다니. 그럼에도 나는 철저히 혼자였다. 지금에야 넘쳐나는 소리를 그때는 듣지 못카지노 게임 사이트.
집주인이 했던 말이 성희롱이라는 결론에 다다르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제야 얼굴이 화끈거렸다. 동양인 여성만 거주하는 셰어하우스를 운영하는 이유가 이런 거였나. 망할 새끼. 잠자리에 누워서도 쉬이 잠들지 못해 몇 번이나 이불을 걷어찼다. 호주에 와서 처음으로 맺은 인연이 변태 할아버지라니. 욕이 흘러나오다 못해 헛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결국, 나는 집이 조용했던 이유를 깨달았다.모두가 그를 피하고 있었다. 나만 몰랐던 것이다. 어째서 카지노 게임 사이트 얘기를 안 해줬을까. 아니면 만만해 보이는 사람만 골라서 접근했던 걸까. 왜 난 거기서 바보같이 고개만 끄덕이고 있었을까. 수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떠다녔다. 그러나 무엇 하나 시원하게 해결하지 못한 채 가장 쉬운 방법을 택했다. 다른 사람들처럼 방 안에 머물며 집주인을 피하기로 했다.
문틈으로 스며드는 타인의 존재감은 방 안의 공기마저 무겁게 만들었다. 룸메이트에게 상담해 볼까도 생각했지만 결국은 마음을 접었다. 말하면 모든 게 사실이 되고, 침묵하면 없던 일이 될 것 같았다. 그래서 그냥 가만히 있었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일자리를 바꾸는 걸 계기로 조용히 그곳을 도망쳤다. 아직 어리고 순진카지노 게임 사이트. 예민한 사람 취급을 받을까 봐 겁이 났다. 혹시 모를 피해가 올까 두려웠다. 그렇게 견디는 게 최선이라고 믿었다. 부당한 일에 대해 한 마디 저항도 못 해본 채, 그저 자신의 마음을 숨기는 걸로 괴로움을 해결카지노 게임 사이트. 그리고 그걸로 힘든 일은 다 끝났다고 생각카지노 게임 사이트.
애초에 내 시도는 맨땅에 헤딩이었다. 일본에서처럼 호주에서도 일이 술술 풀릴 거라고 과신했을 때부터 일은 꼬이기 시작했다.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해외에서의 경험치는 준비해 온 만큼 가져간다. 가벼운 머리로 겁도 없이 *오지잡에 뛰어든 순간부터 시련은 예고되었다. 이방인이 마주할 진짜 시험은 이제부터였다.
*타테마에(建前): 일본에서 사회적 규범이나 관계를 위해 겉으로 드러내는 공식적인 태도나 의견.
*오지잡(Aussie job): 호주에서 비한국계 현지인이 주인인 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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