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영해 Mar 17. 2025

흉터의 카지노 게임 사이트

<밀리의 서재 창작 지원 프로젝트 당선작

바닷바람이 얼굴을 때렸다. 도심에서 배로 40분이면 꿈의 섬으로 갈 수 있었다. 잘 다니던 기념품 가게를 그만둔 건 임금이 낮아서였다. 자고로 해외에서 운영하는 한인잡은 언어장벽이 낮은 대신 급료가 쌌다. 워홀러라면 누구나 꿈꾸는 오지잡을 지인의 추천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사일런트 힐처럼 조용했던 숙소를 뒤로했다. 불안과 기대가 뒤섞였다.


그린 아일랜드라 불리는 그곳은 섬 전체가 거대한 리조트였다. 웨이트리스 면접을 진행하는 슈퍼바이저의 영어를 반도 채 알아듣지 못했다. 웃으며 호응했을 뿐인데 덜컥 합격해 버렸다. 초짜를 채용한 건 순전히 퇴사가 임박했기 때문이었다. 그게 운인지, 불운인지는 금방 명확해졌다.


새로 부임한 상사는 금발에 푸른 눈, 큰 키를 가진 엄격한 사내였다. 영어가 서툰 외지인이 그의 기준을 맞추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4.5 성급 리조트의 고급 레스토랑은 대부분 만석이었다. 메뉴는 다양하고 그릇은 무거웠다. 아침 뷔페 준비는 그럭저럭 해냈지만, 저녁 코스 요리가 문제였다.단순히 주문을 받고 음식을 나르는 게 아니었다. 식사 속도에 맞춰 다음 요리를 호출하고, 커트러리를 바꿔야 카지노 게임 사이트. 손님이 불편하지 않도록 신경을 기울이는 섬세한 작업이었다.


처음으로 세 개의 테이블을 배정받은 날이었다. 긴장한 몸이 다비드의 석고상처럼 굳어 있었다. 정신없이 바빴지만 스스로는 잘 해내고 있다고 생각카지노 게임 사이트. 다음 코스 요리를 호출하려고 스크린 앞에 섰을 때였다.


저기, 이건 내가 할게.
주방에 가서 음식을 가져와 줘.


왜 그래, 갑자기?


나도 몰라.
슈퍼바이저가 그러래.


의아한 눈으로 뒤를 돌아보자 냉정한 얼굴로 고개를 젓는 파란 눈동자와 마주쳤다. 엉성한 움직임이 거슬렸던 걸까. 아니면 애초에 기대마저 하지 않았던 걸까. 그날 이후, 키친에서 나올 수 없었다. 납득할 만한 설명도 없었다. 그는 내게 시간을 할애할 필요조차 느끼지 않았다.


내 말 알아듣겠어?



쏟아지는 외국어는 격렬한 소음이었다. 그럼에도 피할 수 없이, 오히려 귀를 기울여야 카지노 게임 사이트. 동료들을 모아 놓고 훈계할 때마다, 자주 내 이름이 언급됐다. 해명할 기회도 주지 않고 쏘아대는 목소리에 정신은 너덜너덜해졌다. 모두의 시선이 쏠릴 때마다 자존감이 한 움큼씩 뽑혀 나갔다.그 비참함이란 뭐랄까. 서바이벌 연애 프로그램에서 아무도 지목하지 않아 홀로 남겨진 출연자가 된 것 같았다. 조금만 더 준비하고 왔더라면 어땠을까 후회했지만 늦은 일이었다. 비루한 자기 모습에 스스로를 원망카지노 게임 사이트. 그렇게 매일 무거운 트레이를 든 채 뾰족한 자갈길을 맨발로 걸어갔다.


수천 년 전에 만들어진 산호섬은 잃어버린 거인의 고향처럼 녹음이 우거졌다. 푸른 바다는 유리 조각처럼 빛나고 무지개색 열대어가 모래처럼 흩어졌다. 바깥 햇살이 눈부시게 빛날수록 방 안에 틀어박혔다.누구와도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겉으로는 괜찮은 척 웃었지만, 속으로는 노란 진물이 났다.


벽 너머의 웃음소리는 고통이었다. 동료들이 비웃는 건 아닐지 신경 쓰여 밥도 혼자 먹었다.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방 안이 유일한 피난처였다. 차라리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아랫집 아주머니도 이런 기분이었을까.사방의 소리가 공격처럼 다가왔다.절망은 언덕 아래로 굴러가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자신의 부족함이 만천하에 공개된 것 같아 숨이 막힐 듯 괴로웠다.


걔, 드디어 그만둔대!


열심히 컴플레인한 보람이 있네.



상황이 나아진 건 슈퍼바이저가 그만둔 뒤였다. 쉬는 시간에도 직원을 모아 그릇 드는 훈련을 시켰던 까다로움을 모두가 견디지 못카지노 게임 사이트. 그가 해고됐다는 소식이 돌자, 누군가는 환호성을 질렀다. 까다로움이 모두에게 평등카지노 게임 사이트는 게 그나마 위로가 되었다. 새로 온 상사는 친절했고 일은 수월해졌다. 레스토랑 서버 역할도 무난히 수행카지노 게임 사이트. 무엇보다 더 이상 아무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동안의 과오를 지우고 싶어 근무에만 매달렸다.


떠날 시간은 순식간에 다가왔다. 귀국 전에 호주 여행을 계획했기에, 남편은 배를 내려 이곳을 방문카지노 게임 사이트. 룸서비스로 문 앞까지만 가봤던 스위트룸과 저녁 식사를 예약카지노 게임 사이트. 손님이 되어 식사 자리에 앉으니, 기분이 묘카지노 게임 사이트. 오퍼레이션 매니저는 그동안의 수고를 높이 평가하며 샴페인을 서비스로 내주었다. 사원 칭찬 우편함에 내 이름이 자주 언급되었다며 고마움을 전카지노 게임 사이트. 진녹색 눈동자가 호의를 담고 있었다.


뿌듯함은 찰나였다. 파도를 앞에 둔 모래 글씨처럼 순식간에 사라졌다. 현재의 영광은 암울했던 과거의 그림자를 더욱 짙게 만들었다. 그녀도 내가 바보처럼 일하던 시절을 알고 있을 텐데. 치부를 들켰다는 속 좁은 마음이 진심 어린 칭찬을 반쪽짜리로 만들었다. 가려운 속내를 손톱으로 긁으면 시원해졌을까. 고달팠던 기억을 도려내고 기분 좋은 회상으로만 채우고 싶었다. 어차피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더 처량했고 맘속 깊이 서글펐다.'나는 실패하지 않을 거야.'라고 생각했던 근거 없는 오만과 자존심이 스스로를 비참하게 만들었다.


남편은 물론 누구에게도 호주에서 있었던 일을 털어놓지 못카지노 게임 사이트. 위로의 말은 수치심을 더할 뿐이었다.편하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 어려운 일은 요리조리 피해 온 약은 인생이었다. 정면으로 부딪쳐 온 실패는 깊은 무력감으로 이어졌다. 자신의 부족함을 마주할 용기가 없어 추억 전체를 봉해버렸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에도 거칠게 자리 잡은 흉터를 가리려 소극적인 사람이 됐다. 외출을 줄이고 지인과의 연락도 뜸해졌다. 결혼은 좋은 방패막이였다. 층간 소음 문제도 마찬가지였다.귀를 막고 버티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떠나야 할까, 버텨야 할까. 미숙한 결정이 또다시 나를 무너뜨릴지 몰라 겁이 났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


움츠러든 날들이 이어지던 중, 얼떨결에 엄마가 됐다. 새롭게 찾아온 생명에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아이가 아픈 걸 알고 나서는 더욱 그랬다. 매 순간이 끝없는 도전이었다. 그럼에도 드디어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은 것 같아 설렜다. 위축됐던 마음이 매화처럼 기지개를 켰다. 여기서도 도망칠 순 없었다.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아이를 키워보자고 마음먹었다.


이유식을 만들고 촉감 놀이를 하고 문화 센터에 다녔다. 산으로, 바다로 나가서 오감을 자극하고 도서관에서 목이 쉬도록 책을 읽어줬다. 세월이 흐르자, 아이는 스스로 먹고, 자고, 놀 수 있게 되었다. 한 생명의 진화를 목도하는 건 놀라운 경험이었다.


고민이 깊어진 건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 두기가 완화되면서다. 다시 유치원을 보낼 수 있게 되자 빡빡했던 일상에 여유가 생겼다. 하나부터 열까지 손을 탔던 자식은 이제 없었다.마스크와 손 소독을 챙기는 꼼꼼한 아들을 보며 생각이 많아졌다.


부모는 고속도로 위 휴게소 같은 곳이었음 카지노 게임 사이트.아이가 독립을 향해 달려갈 때 들렀다 쉬어갈 수 있는 곳. 겉옷의 지퍼를 대신 채워주고 밥숟가락 위에 반찬을 올려주는 손가락이 주춤카지노 게임 사이트. 급한 성미가 자식의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손목과 발목에 모래 추를 달고 촘촘히 설치된 졸음 쉼터를 걷어내기로 카지노 게임 사이트.


언젠가 아이는 어미 품을 떠나야 한다. 다 자란 손을 놓고 나면 이제 어디로 가야 할까. 무엇을 대신 붙잡아야 하나. 나는 세상 어디에 쓸모가 있을까. 뒤를 돌아보니 남은 게 하나 없었다.엄마의 삶이 흐려지자, 불안이 몰려왔다. 이대로 쓸모없는 사람이 될까 봐 초조카지노 게임 사이트. 어머니라는 감투는 전성기를 지나 아이가 자란 세월만큼 빛바랬다. 내 이름 석 자마저 세상과 격리된 채 한없는 어둠 속에 가라앉아 있었다.


이 집으로의 이사를 결정한 건 그때쯤이었다. 바다로 떠난 남편과 초등학교에 진학한 아들의 뒷모습에 초록색 섬을 떠올렸다. 스스로를 가두고 매일 아침 자신의 초라함을 직면했던 작은 방.그곳으로 다시 돌아가게 되는 건 아닐까. 넓어진 거실을 청소하면서 자신의 존재 가치를 저울질카지노 게임 사이트. 두려움은 서서히 몸집을 불렸다. 덮어놓은 상처마저 드러날 것 같았다.


더는 숨길 곳이 없었다. 그늘 속에 묻어둔 이름과 신발을 꺼내 들었다. 이제 다시 어딘가로 걸어가야 했다.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나갈 준비를 했다. 그럼에도 문턱 앞을 서성이기만 했다. 불현듯 아버지 생각이 났다."일 안 하면, 불안하다." 그는 늘 그렇게 말하곤 카지노 게임 사이트. 자신을'일 중독자'라 칭하며 쉬는 날 없이 몸을 혹사하던 주름진 양손이 눈앞을 스쳤다. 지금의 나를 보면 당신은 뭐라고 하실까. 잊고 있던 또 하나의 카지노 게임 사이트이 퍼즐을 맞췄다. 바깥바람이 차갑게 불어왔다. 닫힌 문이 서서히 열리고 있었다.




*밀리의 서재 창작 지원 프로젝트가 궁금하시다면?

*창작 지원금 100만원에 도전하고 싶으시다면?

*어떤 이야기가 당선됐는지 궁금하시다면?


아래 링크를 누르면 연재 페이지로 가실 수 있습니다.

밀리의 서재 구독 없이도 열람 및 연재가 가능합니다.

이야기가 마음에 드신다면 "밀어주리"와 "댓글" 부탁드립니다~~*

* URL: 밀리의 서재 "아랫집에 미친 여자가 산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