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라미드가 보이는 방을 이틀 예약했다.
방의 한쪽 벽은전부 통유리 창으로 되어 있었는데 그 창 너머로거대한 두 개의 피라미드가 솟아 있었다. 숙박비는 그 뷰를 차지하는 값을 자신 있게 반영했다. 이집트의 물가에 비해 높은 가격인 걸 짐작했지만 호텔 예약 사이트의 사진이 너무나 환상적이었기 때문에 다른 선택은 생각도 하지 않았다.
‘파노라마 피라미드 인(Panorama Pyramid Inn)’ 호텔 건물은 피라미드에서 500미터쯤 떨어져 있다. 하지만 피라미드 자체가 워낙에 거대했기 때문에, 우리가 객실에 들어간 순간 두 개의 피라미드가 눈앞에서 쏟아질 것 같은 모습으로 펼쳐 있었다.
우리 가족은 모두 소리를 내질렀다. 왼쪽은 멘카우레 왕, 오른쪽은 쿠푸 왕의 것이었다. 남의 무덤을 보고 이렇게 좋아한 적이 없었다. 세계인이 몇 손가락 안에 꼽는 그 신비로운 건축물이 우리 앞에 있었다. ‘압도당한다’라는 말밖에 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아이들은 비명을 질러대며 침대 위로 폴짝폴짝 뛰어올랐다. 피라미드를 배경으로 우리 애들이 점프를 하고 있다. 살면서 볼몇 안 될 광경이었다.
하지만, 여기 또한, 도대체, 왜, 왜 이렇게 더러운 것인가? 어지간히 비위가 강한 나도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상태였다. 이 침대 시트는 피라미드만큼 나이를 먹은걸까?사진으로는 분명 시트가 새하얀 색이었다. 하지만 육안으로 본 그 색은 그저 ‘누리끼리’ 그 자체였다. 내 부엌 행주였다면 락스 팍팍 넣고 후련하게 삶아 줬으련만. 시트 표면에는 작은 보풀들이 가슬가슬하게 일어 있었다.
이 시트는 대체 몇 명의 지구인을 재워 줬을까? 나는 살림을 하는 사람으로서 자꾸 시트의 위생 상태에 집착했다. 이 정도 더러우려면 몇 년을 사용해야 하는지 순수한 궁금증마저 올라왔기 때문이다. 10년이면 3,650일. 이런 뷰의 객실에 공실이 있을 리 없으니 2인이 자도 7,300명.
아니다. 10년만 사용해서 이렇게 더러울 리가 없다. 20년이라고 잡아보면 14,600명…. 베개는 더 심하면 심했지나을 게 없었다. 이런 데다 맨살을 대고 자야 하는구나. 우리 애들도 눕혀야 하는구나. 이제 나는 피라미드 뷰보다도 역사를 가늠하기 힘든 침대 시트의 위생 상태에 압도당했다.
“사진이랑은 좀 다르네.”
남편이 같은 말을 반복하며 방안을 돌아다녔다. 예약을 맡았던 남편은 내게 뭔가 설명하고 싶은 기분에 빠져 있었다.
“그래도 저 풍경 좀 봐. 우리가 언제 이런 데서 자보겠어?”
우린 화장실을 둘러보았다. 방금 전 누가 샤워하고 나온 듯 샤워부스에는 물과 이물질이 가득했고 바닥엔 수전에서 튄 물기를 받아줄 매트도 하나 없었다. 우리 신발 밑창에 붙어 있을 이집트 거리의 흙먼지와 낙타의 똥 가루가 이미 그 물기에 섞였다. 몇 분 둘러보지 않았는데도 어느새 객실 바닥은 흙탕물이 여기저기 묻게 되었다. 닦아낼 만한 천 조각도 보이지 않았다. 수건은 누군가 이미 그런(?) 용도로 사용했을 법한 색으로 얌전히 걸려 있었다. 아이들은 한국 엄마에게 배운대로 신발을 벗고 그 바닥을 신나게 밟고 다니다 다시 침대로 뛰어올랐다.
나는 프런트의 직원을 객실로 불렀다. 직접 눈으로 같이 확인하며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스무 살쯤 막 된 듯한 젊은 남자는 갸우뚱하는 표정만 지을 뿐이었다.
“이게 왜? 이게 뭐?”
라고 하는 것 같았다. 나는 매니저를 불러 달라고 했다. 검은 정장을 입은, 약간 더 나이 든 젊은 남자가 들어왔다. 190cm는 될 듯한 키, 장대한 골격, 광이 나는 갈색 피부, 새카만 머리칼과 콧수염이반질반질하게 빗질 된 남자였다. 이런 남자들이 옛 피라미드의 벽돌을 통나무에 굴리며 옮겼던 걸까.
매니저는 전혀 긴장하지 않았다. 나와 함께 방 상태를 둘러보면서도 사과의 말 한마디 없었다. 방을 바꿔 달라는 나의 요구에 다른 방은 예약이 다 차서 없다고 했다. 하긴 다른 방이 있다 한들 여기와 달랐을까. 그는 이 방에서 자던가 다른 호텔을 알아보라며고개를 돌렸다. 대신 환불은 없단다. 환불을 받고 싶으면 우리가 예약한 사이트에서 알아서 받고 나가라고 했다. 이 대목에서 나는갑자기 화가 솟구쳤다. 그동안 이 나라에서 감내해야 했던 온갖 장사꾼들의 사기와 말장난으로나는이미충분히 지쳐 있었다. 피라미드뷰를 보는 대가로 우리가 얼마를 지불했던가? 그런데 그냥 나가라니?
“경찰을 부르겠어요!”
나는 이 말을 내뱉으며 동시에 이것이 얼마나 무용한 말인지 직감했다. 거구의 매니저가 눈썹을 치켜뜨며 손바닥을 내게 쫙 펼쳤다.
“그러세요!”
내가 무슨 근거로 이집트 경찰을 신뢰할 수 있다고 믿었을까. 또 무슨 확신으로 ‘경찰’이라는 말에 이 남자가 긴장할 거라 믿었을까. 촌극이었다.
그날 밤, 우리는 그 호텔 건물의 루프탑에서 저녁을 먹었다. 겨울 공기가 알싸해 코를 훌쩍였지만 담요를 덮어쓰니 견딜만했다. 그리고 검은 밤하늘 아래 조명을 받아 빛나고 있는 멘카우레 왕과 쿠푸왕의 거대한 무덤을 보았다. 유리창을 걷은 맨눈으로.
아름다웠다. 너무 아름다웠다. 그리고 어렴풋하게 슬펐다. 5천 년의 비바람과 태양 빛과 별빛, 그리고 그 시간만큼의 사람의손길을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을 저 거대한 인공 구조물. 이 앞에 경외감을 품고 섰을, 그리고 이제는 사라져버린수많은 사람들을 생각했다. 시간의 흐름이 질서 없이 풀어졌다.
그때 바로 옆 건물의 루프탑에서 요란한 음악 소리가 들렸다. 여러 명의 사람들이 춤을 추며 환호하고 있었다.
“결혼식 피로연 같아.”
남편이 말했다.
밤의 피라미드를 배경으로 반짝이는 하얀 히잡과 드레스를 입은 신부가 보였다. 춤을 추던 사람들이 한 명씩 다가와 신부를 꼭 끌어안아주었다. 신부는 환하게 웃으며 그들에게 화답했다. 이상하게, 나 역시 그 신부를 안아주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나도 저렇게 드레스를 입고 식을 올리던 날이 있었다. 지난 10년 동안 네 아이를 낳고 남편과 겪어왔던 여러 순간들이 머릿속을스쳤다. 저 신부의 앞날이 행복하기를. 많은 일들을 감내해야 하겠지만 그때마다 부디 다시 일어서고 다시 사랑할 힘을 얻기를.
조금만 발 뻗으면 건너갈 수 있을 것 같은 거리에서우리 아이들이박수와 환호를보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