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주의를 타고 들뢰즈의 '아장스망'과 불교의 '무아'를 가로지르다
존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직 배열만이 있을 뿐. 존재란 그 배열이 일으키는 사건들의 파문에 불과하다. 들뢰즈의 이 말은 우리가 부여잡고 있던 모든 고정관념의 뿌리를 흔들어 놓는다.
고정된 것은 없다. 본질도 없고, 자아도 없다. 그렇다고 무(無)의 심연도 아니다. 존재는 오직 연결의 미세한 떨림, 흐름의 순간적 접속, 배치의 고요한 리듬으로만 스스로를 드러낸다. 이것이 아장스망이다. 우리 안에는 고유한 핵심이라는 착각마저 없다. 언제나 어떤 접속, 어떤 배열, 어떤 흐름의 한순간을 살아가는 파편들이 우리일 뿐이다.
'나'라고 부르는 이 환영은 그 순간의 빛살, 말의 울림, 타인의 시선, 시간의 맥박, 기억의 부서진 조각들이 우연히 얽혀 만들어낸 일시적 사건의 흔적에 불과하다. '나'는 실재가 아니라 우주의 광활한 관계망 속 하나의 결절점일 뿐이다. 들뢰즈는 이를 '사건'이라 명명했다. 부처가 2500년 전에 꿰뚫어 본 무아(無我)의 진실이 이 현대 철학의 언어 속에서 다시 한번 그 빛을 발한다. 불교는 선언한다. 자아는 없다. 오직 다르마, 즉 조건들의 춤추는 모임만이 있을 뿐이라고.
이제 이 날카로운 깨달음의 칼날을 공간디자인의 심장부에 가져다 대보자.
우리가 건축이라 숭배해온 것은 구조물이 아니라 하나의 신비로운 배열이다. 벽돌 자체가 아니라 벽돌이 맺는 '관계'의 그림자다. 공간은 고정된 기계가 아니라 끊임없이 호흡하는 생명의 흐름이다. 물질은 그저 배치된 지점에서만 순간적으로 의미를 획득한다. 그렇기에 공간디자인은 형태를 조각하는 일이 아니라, 사건을 섬세하게 설계하는 구조적 배치의 예술이 된다. 이때의 구조는 구조주의자들이 말하는 차가운 관념적 뼈대가 아니라, 온갖 의사결정의 조건들이 숨 쉬며 모이는 살아있는 사건의 장이다.
여기서 구조론이 우리에게 손짓한다. 구조주의가 관계를 이야기했을 뿐 결정하지 못했다면, 구조론은 과감히 선언한다. "결정은 언제나 바깥에서 일어난다." 입자의 내부가 아니라 외부의 미묘한 배열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 우주는 하나의 광대한 구조적 접속체계이며, 신조차도 그 접속의 집합이 빚어낸 현상일 뿐이다. 신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신이 아닌 것들'의 구조로 이루어진 배열이라는 이 섬뜩한 통찰은 공간디자인이 더 이상 완성된 물질로 존재할 수 없는 숨겨진 이유를 명징하게 보여준다.
공간디자인은 결코 내부의 폐쇄된 세계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항상 바깥에서, 경계에서 발생한다.
빛이 침묵처럼 스며들고, 소리가 벽에 부딪혀 산산이 부서지며, 사람의 몸이 시간의 흐름 속에 움직이고, 보이지 않는 사회적 규범이 그 모든 것 위를 강물처럼 흐른다. 이 모든 이질적인 것들이 교차하는 신비로운 지점이 바로 공간이다. 따라서 디자인은 이제 형태가 아니라 사건이며, 공간이 아니라 배열이고, 장식이 아니라 우주의 발생 그 자체다.
그 발생은 미리 정해진 각본이 아니다. 들뢰즈가, 중심도 없고 계보도 없이 끊임없이 연결되고 재배치되는 생명의 운동을 리좀이라 불렀듯이, 공간은 리좀적 사유의 살아있는 장이 되어야 한다. 이때 디자인은 단순히 미적 외관을 계획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사물, 기억과 습관, 역사와 사회라는 이질적 요소들을 어떻게 결합하고, 어떻게 어긋나게 하고, 어떻게 열어둘 것인지를 결정하는 마법 같은 행위가 된다.
이것이 아장스망이다. 결정이 일어나는 그 찰나의 순간, 그것이 곧 우주적 사건으로 탄생한다.
이런 관점에서 공간디자이너는 단순한 조형자가 아니라 사건의 현명한 프로그래머다. 벽을 세우는 기술자가 아니라 흐름을 조직하는 연금술사다. 길을 설계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리듬을 유도하는 작곡가다. 디자이너는 내부의 미적 문제에 갇히지 않는다. 그는 과감히 '바깥'을 끌어들인다. 사회적 관계, 정치적 구조, 문화적 코드, 심리적 감응, 기술적 장치들을 한 데 엮어 교차시킨다. 왜냐하면 공간은 언제나 '바깥'에 의해, 그 바깥과의 관계 속에서만 생명을 얻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간은 하나의 굳어버린 결정체가 아니라, 잠재적 배치의 춤추는 움직임이다. 공간은 사건을 품는 자궁이다. 그리고 그 사건은 언제나 열린 배열로 존재한다. 완성된 공간은 없다. 존재하는 것은 오직 끝없는 생성의 파도뿐이다.
우리는 묻는다. 공간이란 무엇인가? 형태인가? 기능인가? 장식인가? 아니다. 공간은 사건이다. 그리고 그 사건은 무수한 상호작용의 빛나는 결과다.
그러므로 공간디자인은 상호작용을 설계하는 고귀한 실천이어야 한다. 존재하지 않는 것들로부터 공간을 시작하라. 그것은 본질이 아니라, 배치의 시학이다. 그것은 자아가 아니라, 조건의 춤이다. 그것은 신이 아니라, 결정의 빛이다.
공간은 리좀처럼 끝없이 뻗어나간다. 아장스망처럼 신비롭게 접속된다. 무아처럼 순간순간 해체된다. 그리고 구조론처럼 운명적으로 결정된다.
이 선언은 공간디자인을 기술과 예술의 경계에서 철학의 심오한 사건으로 이끌기 위한 아포리아이다. 디자인은 영원히 미완성의 흐름이며, 그 안에서 존재는 반복적으로 생성되고 해체되는 신비의 순간들이다. 이제 공간은 인간만의 것이 아니다. 사물, 시간, 기억, 감각, 사회, 기술이 함께 엮이는 장엄한 구조적 생성체이다.
우리는 이제 새로운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이 공간은 무엇을 결정하게 하는가?"
그리고 그 질문의 섬세한 배치 속에서, 우리는 공간이라는 살아있는 의사결정체의 비밀을 마침내 만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