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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무완 Apr 20. 2025

'여윈' 내 건너 '옅은' 고개 넘어

땅이름으로 배우는 배달말(37) 여시골, 예수골, 카지노 게임골

캥캥 카지노 게임 우는 골짜구니

우리 땅이름 곳곳에 여우가 나타난다. 여우골, 여우내, 여우고개처럼 말이다. 여우가 유달리 캥캥 울거나 아름다운 여자로 훌쩍 둔갑하여 사람 홀리는 곳이라는 이야기가 단골로 나온다. 내가 사는 곳에서 ‘여우’를 말밑으로 하는 ‘예시골’ 두 곳이다.


큰골을 따라 들어가다가가매골 입구를 지나 오른쪽의 공동묘지로 향하는 골짜기를 가리킨다. 예시는 카지노 게임의 옛말 ‘여ᅀᆞ’에서 변한 말로서,이 골짜기에 카지노 게임가 많았던 데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한자로는 禮示谷예시곡으로 표시하였다.(대구동, 362쪽, 밑금은 글쓴이가 함.)


큰골에서 갈라져왼쪽으로 올라간 골짜기.카지노 게임가 살았던 데에서 붙은 이름이다. 여우의 옛말은 ‘여ᅀᆞ’인데 이것이 변하여 여시 또는 여스로 되었다가 다시 음변화하여 각각 예시와 예스로 된 것이다. 예시골은 전자의 경우이고, 예수골은 예스골에서 다시 음변화하여 생긴 이름이다. (내동, 371쪽, 밑금은 글쓴이가 함.)


≪동해시 지명지≫에 나온 땅이름 유래다. 여우는‘여ᅀᆞ’에서 왔다. 반치음(ㅿ)과 아래아(ㆍ)를 붙여 [시]나 [스] 어슷하게 소리낸 까닭에 ‘여ᅀᆞ’는 [여시]나 [여스]는 소리날 법하다. 그래서 지역말에서 ‘여우’는 ‘여시, 여스, 여수, 예수, 야시’로 다양하게 나타난다. 오늘날에야 멸종위기야생동물로 지정해서 보호해야 할 만큼 여우가 드물지만 1960년대 이전만 해도 이 땅에 여우는 흔했다. 다만 이미 오래전부터 여우는 그닥 반가운 짐승으로는 보지 않았다.


카지노 게임가 우는 밤이면

잠없는 노친네들은 일어 팟을 깔이며 방요를 한다

카지노 게임가 주둥이를 향하고 우는 집에서는 다음날으레히 흉사가있다는것은 얼마나 무서운말인가.

_현대시비평연구회 편저, 다시 읽는 백석 시, 소명출판, 2014, 160쪽에서 3연만 옮김


1936년 백석이 낸 시집 ≪사슴≫에 실린 <오금덩이라는곧 일부다. 오금덩이라는 깊은 산속 마을이 배경인데, 이 곳 사람들은 한밤중 카지노 게임 울음 소리는 불길한 일을 몰고 오는 상징으로 여긴다. 카지노 게임 울음은 죽음을 부른다. 카지노 게임는 무덤을 파헤쳐 송장을 꺼내 먹는다는 말도 전하지 않나. 그래서 카지노 게임 우는 밤이면 남자 어른들이 일어나 팥을 이리저리 쓸어 펼칠 때 나는 소리를 내며 오줌을 눠서 불길한 일을 막으려고 한다. 액막이인 셈이다.

그래서 궁금하다. 우리 땅 곳곳에 여우골이고 여우내고 여우고개다. 사람이 살지 않는 고갯마루나 골짜기야 그렇다손 쳐도 마을 이름에다 굳이 반갑지 않은 여우를 끌어다 붙인 까닭은 무엇이람. 더욱이 마을 이름으로 삼은 곳은 왜 이리 많은가.

카지노 게임사진 출처: 픽사베이

카지노 게임내는 여윈 내다

춘천시 남면 가정리에 여우내가 있다. ≪조선지지자료≫에 ‘여우내’라고 나온다. ≪춘천지명사전(중)≫은 건천(乾川)인 까닭에 “여우처럼 모습을 바꾸는 냇물”(22~23쪽)이라서 붙은 이름으로 보고, “‘여우[狐]+내[川]’로 추정”한다. 춘천시 사북면에 있는 ‘여우내’도 ≪춘천지명사전(하)≫은 ‘여우[狐]+내[川]’(308~309쪽)로 분석한다. 가정리 여우내와 마찬가지로 이 내도 평소에는 말라 있다가 큰 비가 내릴 때만 흐르는 건천(乾川)이라서 붙은 이름으로 봤다. 비슷한 말밑으로 ‘여우비’나 ‘여우볕’이 있다.


뙤약볕 나는데도

오는 비,

카지노 게임비.


시집 가는 꽃가마에,

한 방울 오고,


뒤에 가는 당나귀에,

두 방울 오고.


오는 비,

카지노 게임비.

쨍쨍 개었다.


동시에서 보듯 여우비는 해가 비치는데 잠깐 내리다 금방 그치는 비다. 비구름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이 바람에 날려서 구름이 없는 곳에 와서 뿌리기 때문에 마치 마른 하늘에서 비가 오는 것처럼 보인다. 먼 데서 날려 오면서 자연히 빗방울이 통통하게 살찐 비가 아니라 여윈 비가 될 수밖에 없다. 그뒤 ‘여윈 비’가 ‘여우비’로 되었다는 설명이 있다. 지금이야 얼굴이나 몸이 말라 파리하다고 할 때 ‘여위다’라고 하지만, 옛말에서는 ‘물기가 말랐다’고 할 때도 썼다. 같은 맥락에서 골짜기나 냇줄기 따위 몸피가 오그라들고 메말랐다 하여 ‘여윈 골, 여윈 내’라고 하다가 ‘여우골, 여우내’로 둔갑하지 않았나 싶다. 여우내는 지리 용어로 말하자면 ‘건천(乾川)’이다. 여우고개도 고갯길이 조붓하게 난 작은 고개라서 붙은 이름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여우고개’를 찾으면 “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에 있는 고개. 높이는 98미터.”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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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지노 게임사진 출처: 픽사베이

카지노 게임골은 옅은 골이다

다른 해석도 가능한데, ‘여우’의 옛말인 ‘여ᇫ’과 ‘녙다’(옅다)의 말줄기인 ‘녙’과 소리가 어슷함으로 해서 생겨난 말로 볼 수 있다. ‘옅다’는 물이나 생각이 깊지 않거나 높이가 높지 않다는 뜻이다. 그런데 옛말에서는 ‘옅다’를 ‘엿다’로 쓰기도 해서 ‘여튼골, 여튼내, 여튼고개’를 ‘여슨골, 여슨내, 여슨고개’로 얼마든지 소리바꿈이 일어날 법하다.

문제는 ‘녙/엿’에 해당하는 소리를 제대로 받아적지 못하는 데서 오해가 일어난다. 이를테면 지역말에서 ‘영감’을 [이응감]으로 소리내는 것처럼 ‘옅골’을 [이]와 [으]가 한꺼번에 소리나면서 뭐라 받아적기 어려웠을 수 있다. 지금 우리는 이 소리를 받아적을 방법이 없지만, ≪훈민정음≫을 지을 때는 이 소리를 분명히 알았다. <훈민정음 합자해에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다.


[ㆍ]와 [ㅡ]가 [ㅣ] 소리에서 일어난 소리는 우리 말에는 쓰임이 없고,아이들 말이나 시골 말에 더러 있지만,마땅히 두 글자를 어울려 쓸 것이니기으기아(아래 글자 참고)와같은 글자다.그 세로로 된 글자를 먼저 쓰고 가로로 된 글자를 나중에 쓴 글자는 다른 글자(가로로 된 글자를 먼저 쓰고, 세로로 된 글자를 나중에 쓴 글자)와 다르다. (원문:ㆍㅡ 起ㅣ聲於國語無用. 兒童之言邊野之語. 或有之當合二字而用. 如기으之類. 其先縱後橫 餘他不同.)

<훈민정음합자해에서 보는 [이]가 먼저 소리나고 [으]가 나중에 날 때 받아 적기 방법

이 말은 [ㅡ]가 먼저 소리나고 [ㅣ]가 나중에 나는 소리일 때 ‘의’로 적는다면, 거꾸로 [ㅣ]가 먼저 소리나고 [ㅡ]가 나중에 나는 소리일 때, ‘이으’로 적으라는 말이다. 그래서 ‘옅(은)+내, 옅(은)+골, 옅(은)+고개’를 ‘이으은내, 이으은골,이으은고개’로 적어야 하지만 ‘아이들 말’이고 ‘시골 말’이니 내쳐지면서 표기가 사라진 듯하다. 결국 ‘옅(은)+골’이 ‘엿골’을 거쳐 ‘여시골, 예시골’이 된 다음 ‘카지노 게임’라는 이야기가 끼어든 것으로 볼 수 있다.

처음으로 돌아가 ‘여시골/예시골’을 보자. 마을 앉음새로 보면 두 곳 모두 ‘큰골’을 지나서 나오는 골이라는 설명에 먼저 눈길이 간다. 깊지 않은 골, 옅은 골이라는 뜻으로 ‘옅골’이라고 하다가 ‘아ᆜ골 여읏골’처럼 되면서 생겨난 땅이름으로 보인다. ‘이으~, 여으~’ 가 ‘여우~’와 비슷하게 소리나는 데다 말밑 의식이 흐리터분해지면서 ‘여시’나 ‘여수’, ‘예시’, ‘예수’라는 소리로 알고 ‘여우골’로 둔갑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여시골은 여우가 많은 골짜기가 아니다. 옅은 골, 다시 말해 깊지 않은 골짜기다.

동해시 내동 예시골


배달말 한입 더

여윈잠깊이 들지 않은 잠.=겉잠.

여윈못물이 말라버린 못

옅다[1] 수면이 밑바닥에 가깝다. [2] 생각이나 지식 따위가 깊지 아니하다. [3] 높이가 그다지 높지 아니하다. [4] 빛깔이 보통의 정도보다 흐릿하다. [5] 안개나 연기 따위가 약간 끼어 있다. [6] 액체에 녹아 있는 물질의 양이 보통보다 적다. [7] 냄새가 약하다 [8] 정도가 깊지 아니하다. [9] 소리가 높지 아니하고 작다. [10] 연한, 날짜, 시간 따위가 얼마 되지 아니하다. [말밑] 녙다 ≪석보상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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