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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 Mar 23. 2025

온라인 카지노 게임 이야기-3

소설

집으로 들어온 길춘남은 소주가 든 봉지를 식탁에 내려놓고 어지러운 듯 비틀거리며 소파에 쓰러졌다. 잊고 있었던 기억이 떠올라 손이 떨리고, 털이 가닥가닥 섰다. 저런 게 가족인가? 남보다 못한 가족은 가족이 아니다. 차라리 혼자가 나을 것이다. 딸이라는 이유로, 또는 어리다는 이유로 맞기만 하는 선아의 모습을 보며 이건 가정폭력이 아니라 강도 높은 폭력 사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와 딸이 아니라 가해자와 피해자일 뿐이다. 길춘남은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부엌으로 갔다. 식탁에 올려져 있는 검은 봉지에서 소주를 꺼내 벌컥벌컥 마셨다. 그리고 입 주위로 흘러내리는 술을 소매로 쓱 닦았다. 순식간에 취기가 올랐지만 그 어느 때 보다 눈빛은 애리하고 날카롭다. 길춘남은 계속 생각했다. 외모가 재수 없다는 이유로, 대답을 잘 안 한다는 이유로, 덩치와 목소리가 작다는 이유로 수차례 폭행을 당했던 기억들...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는 족쇄와 같은 기억들이 물밀듯이 밀려오자 길춘남은 견딜 수가 없었다. 술 한 병이 순식간에 입으로 들어갔다. 오히려 정신이 맑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덕재야, 어떻게 생각해? 봤지? 들었지? 아랫집 선아가 울면서 아빠가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거 말이야."
'그래, 나도 봤어. 그 새끼는 인간도 아니던데? 생긴 것도 딱 일진 두목처럼 생겼더라.'
"그래? 그런 것 같기도 해. 저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어. 그때마다 죽고 싶다며 우는소리를 밤새도록 들어야 했어. 왜 때린 사람은 멀쩡하게 살고, 맞은 사람은 죽고 싶어 해야 해. 이건 불공평하지 않아?"
'그래 말이 안 되지. 때린 사람이 벌을 받아야지. 사람 때리는 인간은 때린 만큼 맞아야 돼. 그게 공평이고 정의야.'
"맞아, 맞아. 정의로운 세상이 되어야 해. 그래, 그래. 네 말이 맞아. 그럼 덕재야, 어떻게 해야 하지? 옛날 네가 나를 구원해 줬던 것처럼 이번에는 선아를 구원해 주면 어때? 정의로운 세상을 위해서 말이야. 내가 도와줄게."
온라인 카지노 게임의 눈에 광기가 번쩍였다. 붉은 동공은 바쁘게 움직였고, 한 손엔 술병을 든 채 춤추듯 과장된 행동을 하며 정의 구현을 외쳤다가, 갑자기 침울해지며 소파 구석으로 가 웅크리기를 반복했다. 그 모습은 마치 연극 무대에서 일인 다역을 맡은 연기자와 같았다. 땀을 뻘뻘 흘리며 기괴한 웃음소리를 내는 온라인 카지노 게임에게 관람객은 없었지만 어느 연기자보다 열성적이었다.
'구원? 내가 잘하는 거지. 어떻게 하면 될까... 커터 칼로 찔러버릴까? 아님 오토바이로 박아버릴까? 키키키'
"그래, 그래. 그것도 괜찮았어. 흐흐~ 쑥 들어가는 물컹한 느낌이 좋더라고.. 키키키~~ 생각났다, 나 괴롭히던 김 소장 때처럼 높은 곳에서 밀어버리는 건 어때? 키키키 재밌겠는걸..."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밤새 덕재와 이야기했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의 마음은 하나였다. 폭력은 갚아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방법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시간은 겨울의 한가운데로 흘러갔다. 가파른 골목길은 저녁이면 얼었다가 낮 동안 잠시 녹기를 반복했다. 그날 저녁도 그랬다. 공기마저 얼 정도의 한파가 불어닥쳤다. 덕재는 바로 오늘이라고 했다. 자정이 넘은 시각, 비틀거리며 아랫동네에 술을 사러 가는 선아 아빠의 뒷모습을 본 온라인 카지노 게임은 검은 롱패딩을 덮어쓰고 얼굴을 가렸다. 건물 주위 가로등은 10시가 넘으면 소등되기 때문에 어두컴컴한 구석들이 많았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은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어두운 구석을 찾아 건물 입구까지 걸었다. 그리고 준비한 생수를 길에 부었다. 생수 다섯 통이 깔린 길은 찬 기운과 만나 순식간에 꽝꽝 얼어버렸다.
"키키키~ 덕재야, 아무도 모르겠지? 얼음이 살벌하게 얼었는데 키키키"
'조용히 해! 경비 영감 깨면 곤란해져. 아니다, 이참에 술타령, 결혼 타령하는 영감까지 같이 가주면 더 좋긴 하지. 키키키~'
빈 생수통을 챙긴 온라인 카지노 게임은 다시 어두운 구석을 찾아 집으로 올라갔다. 달빛에 흐릿한 하나의 그림자가 보이다 이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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