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떨어지기 선수
제주에 혼자 일 년 살기를 결정카지노 가입 쿠폰 내려온 1월 14일, 겨울 복판인데 이미 내 맘은 봄이었다. 숙소 앞뒤론 숲이 빽빽이 들어차 있고 마당 공간이 널찍해 마음이 저절로 헐렁해졌다. 매일 뭘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없기에 내 마음은 어슬렁거리고 꽉 찬 느낌이 매일 나를 둘러쌌다.
무얼 억지로 하지 않아도 좋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앞에 멍한 카지노 가입 쿠폰 침대에 누워 하늘만 바라봐도 배가 불렀다. 이런 시간이 내게 오다니, 이렇게 살 수도 있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는 말은 사실인가 보다. (근데 탄핵은 왜 안 되고 있는지, 원)
무엇보다 ‘나만의 방’, ‘나만의 공간’이 생겼다는 배부름이 최고였다.굳이버지니아 울프가 아니더라도,'자기만의 방'이 생겼다는 황홀감으로 두근거렸다.
충남 홍성 우리 집엔 아래채가 두 개 있다. 하카지노 가입 쿠폰 우리 부엌 맞은편, 예전 바로 앞 초등학교 선생님들이 자동차 없던 시절 발령받으면 지내던 자취방, 헐다 남은 방 한 칸이 있다. 한동안 창고로 썼었다. 여기엔 옛날에 쌀 곳간으로 쓰던 너비 두 팔 남짓 헛간이 한 칸, 바로 옆에 방으로 들어가는 불 때던 부엌이 작게 하나 붙어 있는 일명 코딱지 방 한 칸. 이곳을 오랫동안 고치려 애썼으나 목수인 친구마저 방이 지대가 조금 낮아 허물고 새로 지으라던 곳이다. 내가 감각이 있으면 어떻게든 고치고야 말 텐데 그런 솜씨가 아쉽게 없다. 전에 구들을 새로 손 보고 흙을 벽과 바닥에 맥질해 발라 불 때는 방으로 고쳤는데 불을 때 보니 바닥 흙이 마르면서 갈라지고 연기가 새는 게 아닌가. 결국엔 못 쓰고 상근예비역 근무하러 서울서 알바하던 큰아들이 돌아와 살게 되자 남편이 다시 보일러를 깔고 흙벽을 발라 보수를 해 이년 못 되게 살았지만, 현재 살기엔 영 아니올시다 다. 아들이 아래채에 음악실을 지어 나가자 겨울이나 장마철이면 습기가 빠져나가질 않아 곰팡이가 전체적으로 조금씩 피어 있다. 지금은 그냥 고구마저장소로 쓸 뿐이니 고구마에게 양보했다.
내 공간을 절실하게 갖고 싶어 하는 마음을 아는 남편이 뒤늦게 그럼 고칠까... 하면서도 선뜻 나서주질 않는 바람에 포기하고 말았다. 또 하나 있는 아래채는 큰아들이 그 흙집서 지내다 아빠가 지어준 컨테이너 방 한 칸. 작사 작곡을 하며 나에겐 생소하던 믹싱도 하는 곳. 음악을 하고 싶어 해 흙집에 살 때는 계란판을 벽마다 둘러붙여 쓰더니 컨테이너 방에는 방음스펀지도 붙여 작업실을 만들고 한 일 년쯤 살다가 동거하면서 건넛마을로 제금 나 이듬해 결혼했으니 그 방도 빈방이다. 너 결혼했으니 그 방 내놓으라 해도 자기가 들인 돈도 몇백 된다며 내부를 아빠와 함께 만들었으니 강력하게 자기의 예비공간으로 둬주길 바라는 큰아들, 그 방도 물 건너갔다. 나만큼이나 자기 공간을 갖고 싶어 하는 큰아들을 이해하니 도리 없다. 가끔 음악 하는 친구들과 믹싱도 하고 음악을 가르치기도, 아카펠라 동아리방으로도 쓰고 친구들과 맥주 마시며 축구도 함께 보며 지새니 독립된 방이 내겐 없다. 남편은 자신만의 독립된 방을 원하지 않으니 내 절실함이 그다지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유별나게 느껴질 테지.
나는 TV를 거의 보지 않고 넷플릭스 영화 보기도 서로 공감대가 별로 없으니 안방에 들어가는 건 늦은 밤 잠자기 위해서만이다. 내게 주어진 공간은 할 수 없이 부엌. 부엌 식탁에서 책 보다 글 쓰다 유튭도 보고 음악을 듣기도 한다. 좋아하는 첼로 연습도 눈치 보여 마음대로 하기 어렵다. 막내가 풀무학교 졸업한 이후로는 더군다나. 방마다 방음이 잘 안 되는데 삑사리 카지노 가입 쿠폰 연습이늘조심스러웠다. 연주 실력이 뛰어나면 모르되 해도 해도 첼리니다 보니 그들의 고막을 신경 안 쓸 수 없어 불편하다. 괜찮다 해도 영 신경 쓰이고 자유롭지 못하다.
우리 집에 내 방이 설혹 한 칸 있더라도 엄마로서 주부로서 농부로서 할 일을 다 한 다음에 한 모금의 짬이 생긴 들 성에 찰 거 같지 않았다. 통으로 된 알짜배기 시간을 갖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우리 동네 여자 축구카지노 가입 쿠폰, 애기가 셋이나 되는 젊은 친구는 나도 알지만, 바쁜 짬을 내서 <시골, 여자, 축구라는 책을 내서 브런치 대상을 받기도 했다.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여기에 글을 쓰고 있다.
한편으로 카지노 가입 쿠폰 그럼 뭐지...? 싶다가도 카지노 가입 쿠폰 남편과 '송곳 까꾸로 꽂을 땅 한 평도'소유하지 못한 채 바닥부터 기며 농사를 지어 간신히 식구들 먹여 살리고 농사터와 집터 산 빚 다 갚고 여기까지 오느라 30년간 허덕거렸잖은가? 나는 주부 말고도 '농부'라는 직업이 있었다. 내가 선택했던 일이었지만 어떤 때는 도무지 일이 끝이 없어, ‘죽어서야 끝나겠다’고 속으로 한숨지으며 지낸 세월이 있었다. 어쨌거나 비교하지 말자. 그나마 짬짬이 블로그와 일기에라도 작은 틈을 벌려 자투리 글을 적어 기억을 다 날려 먹지 않은 것만으로도 만족하자. 책을 꼭 내야 하는 건 아니지만, 노력해 보고 정 안 되면 나의 한계려니 하고 미련 없이 탁!(두 손바닥을 포개며) 접겠다고 식구들에게 선언했다. 과연 결과물 없을 때 미련 안 남을까는 장담 못 하겠다만.
내 말을 들은 막둥이는 한강처럼 노벨상 타와~라고 말했지만 그 어처구니없는 농부 아들다운 농담(농부의 말은 다 농담!)이 뼈에 하나도 아프지 않아 웃어넘길 수 있었다. 카지노 가입 쿠폰 초보자니 자유롭잖은가. 노벨상이 뭔 편의점 껌이냐? 엄마는 유상이니까 이미 상은 타 놨고요, 밥상도 매일 받고 있잖은가, 하하.
2월 말에 친구가 지나가는 말로 어느 잡지사에서 수필 공모를 한다며 알아보라 해서 글 몇 개를 그 잡지사에 냈다가 똑 떨어졌다. 어제 발표가 났다. 글쓰기를 생각하면서도 어디에 글 한 번 내 볼 생각조차 한 적이 없었다. 자그마치 1,500여 명이 응모했던 터라 확률도 턱없고 이미 예상했던 대로라 속이 쓰리거나 억울하거나 황당할 일이 1도 아니었다. 그럴 줄 알았어. 에휴, 잘 떨어졌다. 차라리 속이 편하고 자유로워졌다. 이제부터 차근히 써 나가자, 뚜벅걸음으로. 내가 누군가? 소띠 아니겠는가.
심지어 2월 초엔가 카지노 게임에 작가신청을 했다가 떨어지기도 했는데, 뭘. 첫 번에 뭐가 되리라 기대하지 않았으니 참 다행이다.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작년 9월에도 작가신청을 했던 모양이다. 내 블로그 기록을 뒤져보다 알게 되었으니 재수에 삼수를 하고 비로소 작가에 입문하게 된 셈이다. 대학이나 대학원 시험에는 한 번에 붙었는데 그거야말로 참 요행수 아니었을까. 대학을 졸업하고 창비(창작과 비평)나 문지(문학과 지성), 민음사 등 내가 그동안 즐겨 읽던 책을 발행하던 출판사 대여섯 군데에 이력서를 제출한 적이 있다. 사람을 뽑는지 알아보지도 않은 채 혼자 소설 쓰듯 자소서 비스무리한 편지글을 써 무턱대고 디밀어 놓고 취업을 꿈꿨으니 될 턱이 없잖은가. 더군다나 내가 그토록 싫어하고 날카롭게 들이대던 평론가이자 우리 학교 모 교수의 입김이 좌지우지하던 빤한 출판업계에 겁대가리도 없이. 지금 생각해도 무모한 도전이었다. 나같이 고분고분하지 않은 뾰족한 청년이 기댈 언덕이 없었다. 결국 동기 중 이쁘고 사근사근하니 말 잘 듣는 친구가 입사했고 나는 미끄러져 처박혔다. 그렇다고 교사가 되기에 나는 뭘 가르칠만한 재목도 되지 않았고 애들에게 가르칠 만한 인격체도 아니었으며 사립고에 인맥도 하나 없었다. 당시 유명했던(지금은 모르겠다) 거창고등학교에 혹시 독일어 교사를 뽑나 싶어 원서를 내기도 했지만 역시 떨어졌다. 막 깎은 연필심 같은 나를 누가 데리고 가려했겠는가?
떨어진 기억만 선명하다.
글... 어디에고 글 잘 쓰는 사람은 흘러넘치고 책은 무한정 나오고 있다. 나까지 보태 굳이 나무를 베어 또 하나의 쓸모 있을지 없을지 모를 쓰레기 책을 이 세상에 낳아야 하나? 회의도 많이 들었지만, 그냥 세상의 필요를 떠나 내 욕구를 따르기로 결심했다. 고유한 나의 이야기를 평범하게 풀어내면 그뿐이고 그걸로 만족하리라. 스스로에 대한 기대치를 팍 낮추고 나니 조금 용기가 생겼고 카지노 게임에도 세 번째 도전할 수 있었다.
떨어지면서 조금 정리하는 시간이 되었다. 무엇을 쓸 것인가, 왜 써야 하는가, 왜 굳이 내 이야기를? 등등. 책에 목차가 있듯 쓰기에도 정리가 필요하고 들려줄 이야기와 남들이 듣고 싶어 할 이야기도 함께 생각해 보는 여유가 생겼다. 무엇보다 주제를 정리하는 것이 브런치에서는 더 필요하다는 걸 발견했다. 매거진이라는 것도 활용해 봐야겠군. 글이 30개쯤 되어가니 매거진으로 주제 나누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심장 쫄밋거려 운전면허증도 한 번에 못 딴 내가 두 번이나 미끄러지고도 한 번 더 용기를 낸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스스로를 토닥인다. 몰아붙이기보다 숨 고르고 차근히 나아갈 준비를 굳힌다. 나는 더 이상 젊지 않지만 아주 늙지도 않았으니까. 자, 이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