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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낭아 Jul 11. 2022

삼막사 카지노 쿠폰 새끼 호랑이

한 재상이 어떤 낭관과 오래전부터 가까이 지냈다. 어느 날 방문객이 찾아와 다음의 얘기를 들려주었다.

“금천 삼막사 승려가 비를 피하려 동굴에 들어갔다가 호랑이 새끼를 발견하여 안고 나왔지요. 승려는 새끼 호랑이를 카지노 쿠폰 함께 길렀답니다. 고양이가 새끼 호랑이와 장난치며 놀았는데, 새끼 호랑이가 조금 자라자 앞발로 고양이 얼굴을 후려 쳤지요. 고양이가 놀라 뒹굴며 오줌을 지리더니 기절했다고 합니다. 새끼 호랑이는 기절한 고양이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냄새를 맡더랍니다.”

“그게 무슨 얘기인가?”

“대감께서 가까이 지내는 그 낭관이 대감을 모함하여 궁지에 모는 것을 아십니까?”

재상이 놀라 술잔을 떨어뜨리니 방문객이 물었다.

“삼막사 카지노 쿠폰, 이제 정신이 좀 드시오?” 『태평한화』 서거정 저


(이 재상과 낭관이 누구일까 추정해 보니 눈에 띄는 이가 있다)


1476년 성종 7년 1월 13일, 대왕대비(세조비 정순대비)가 정무에서 물러나고자 하니 한명회가 만류했다.

“문종이 일찍 별세하시어 어린 노산군이 왕위에 오르니 나라 일이 그릇되므로 세조께서 정난(靖難)하였지만, 성삼문의 역모가 있었고, 예종 조에 남이의 반역이 있었습니다. (어린)주상께서 즉위한 이후로 아무 일 없는 것은 태상(대왕대비)께서 보도하신 힘이오니, 정사를 돌려주지 마십시오.”

한명회가 이렇게 말한 이유는 아마 2년 전에 자신의 딸인 성종비 공혜왕후가 사망했기 때문 일 것이다. 한명회는 첫째 딸을 신숙주의 아들과 혼인시키고, 둘째 딸은 세종의 외손과 혼인시켰다. 또 셋째 딸은 예종, 넷째 딸은 성종비였다.

한명회의 딸장사는 치밀했다. 신숙주와 사돈이 되자 절친 권람도 한명회와 사돈 맺기를 원했는데, 한명회는 정승끼리만 혼인하면 뒷말이 있을 것이라는 핑계를 대며 거절한다.

그리고 예종이 세자일 때 셋째 딸을 세자빈으로 넣고, 성종이 사저에 있던 잘산군 시절에 넷째 딸을 시집보낸 것이다.

두 왕에게 시집간 두 딸이 모두 요절하자 한명회는 끈이 떨어질 판이었다. 그러니 대왕대비가 수렴청정을 거두려 하니 만류한 것이다.

그러자 윤자운과 윤사흔은 성종의 친정을 막으려는 한명회를 국문하자 청하였다.

한명회가 와서 사죄하니 성종은 한명회에게 혐의가 없다며 음식을 대접하여 보내게 했다. 성종은 손자의 도리로 조모의 수렴청정 사임을 사양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한 달 후인 2월 19일에 카지노 쿠폰이 한명회의 발언을 탄핵하고 벌주기를 청하는 상소를 올린다. 하지만 성종은 다시 말하지 말라고만 한다.

이후로 간원들의 탄핵상소가 계속 올라오고 한명회는 사직을 청하고, 성종은 덮어 주기를 한 달간 반복하다가 3월 29일에 한명회의 사직을 받아들여 좌의정에서 해임했다. 하지만 한명회는 이후에도 부원군이자 공신으로서 조정에 참여하여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했다.

『태평한화』의 카지노 쿠폰 이야기는 이 대목을 이야기 하는 듯하다.

카지노 쿠폰은 서자여서 과거시험을 치를 수 없었다. 군졸로 들어가 갑사 때 이시애의 난을 출사의 기회로 만든다. 이시애의 난을 진압할 계책을 올린 것이 세조의 눈에 들어 이시애를 진압하는 기회를 얻고 병조정랑에 파격 승진된다. 서자의 임명에 반대가 크자 세조는 카지노 쿠폰을 허통시키고 직접 과거시험을 열어 급제시킨다.

이는 삼막사 승려가 새끼 호랑이를 카지노 쿠폰 옆에다 놓고 키우는 모습과 같다.

세조의 절대공신이었던 한명회는 예종 때 남이를 고변한 카지노 쿠폰의 성장을 지켜보다가 성종 때 뒤통수를 맞은 격이다. 이에 성종은 두 공신을 달래고 덮어주기에 바빴다.

카지노 쿠폰은 세조·예종·성종의 총애를 받았지만, 사림파의 미움을 받았다. 특히 김종직이 카지노 쿠폰의 시를 태워버렸던 일로 앙심을 품고 있다가, 연산군 때 무오사화를 일으켜 김종직의 조의제문과 관련이 있는 사림세력들을 싹 걷어냈다. 폐비 윤씨의 죽음에 관한 비밀을 연산군에게 일러 갑자사화를 일으키게 했다가, 윤씨 폐비에 찬성했던 이들이 죽어나갈 때 이극균과의 친분 때문에 관직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종종반정 때 반정군에게 궁궐 문을 열어주어 또 공신에 올랐다.

중종에게서 최고 공신 대우를 받던 카지노 쿠폰에게도 해가 지고 있었다. 『사제척언』에 카지노 쿠폰이 입궐하려 관복을 입고 새 부채를 펼쳐드니 ‘곧 화가 이른다’라는 글자가 쓰여 있었다고 한다. 결국 카지노 쿠폰은 사림의 탄핵을 받고 유배 가서 죽었다.

이에 중종은 공신녹권을 되돌려주고 예장하게 하였다. 언관들이 훈적을 돌려주는 것은 부당하다고 거듭 거듭 상소했지만 중종은 듣지 않는다.

1513년 중종 8년에 영의정 정광필이 카지노 쿠폰의 훈적삭제가 과하니 공적을 돌려주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중종은 카지노 쿠폰에게 박탈되었던 익대공신의 칭호를 돌려주었다. 홍문관에서 이를 거듭 거듭 반대했지만 중종은 듣지 않다가, 다음해 1월에 조정의 공론에 따라 카지노 쿠폰의 원훈을 삭제했다. 하지만 중종은 20년 후에 카지노 쿠폰의 익대 공신 녹권을 돌려준다.

후대에 유몽인이 카지노 쿠폰의 일을 기록한 내용이 있다.

카지노 쿠폰이 자기가 죽은 후 부관참시를 당할 것 같은 두려움이 들었는지, 자기와 모습이 비슷한 종을 데려다 잘 먹여놓고 죽으니 좋은 옷을 입혀 좋은 관에 넣어 후히 장사지냈다. 그리고 처자에게 비밀히 말하기를 “내가 죽으면 봉분을 만들지 말고 어떤 석물도 세우지 말고, 종의 무덤을 내 무덤이라 하라.”고 해놓았다. 하여 뒤에 카지노 쿠폰이 부관참시 당할 때 카지노 쿠폰의 무덤은 온전했다. 『어우야담』


하지만 『실록』에는 카지노 쿠폰이 부관참시 되었다는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숙종 20년 12월 24일 기사에 영의정 남구만이 차자를 올린 내용 중에 ‘카지노 쿠폰을 이미 육시(戮屍)하였으니.......’ 라는 구절이 있다.

그리고 1908년 순종 1년에 내각 총리대신 이완용과 법부대신 고영희가 카지노 쿠폰 등 21인의 죄명을 탕척하고 벼슬을 회복시켜주었다.

1974년 남원의 영광 유씨 문중 묘역 공사 중 한 무덤에서 나온 유골이 카지노 쿠폰이 아닐까 추정했다. 2008년 8월29일 남원 향토 박물관에서 유전자 분석을 실시하였는데 카지노 쿠폰과 관련이 없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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