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친정어머니를 이르거나 부르는 말.
엄마아빠의 연애 이야기를 하면서 카지노 게임 사이트에 대한 언급을 잠시 했었다. 엄마아빠의 결혼을 반대하셨었다고, 아빠의 얼굴이 여자를 고생시킬 상이라고 했었다는 이야기. 현명하신 카지노 게임 사이트의 예언은 맞아떨어졌다. 그런 카지노 게임 사이트의 예언이란 아무래도 빅데이터가 쌓여서 만들어진 결과였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촉을 믿는다. 촉이란 일종의 과학이다. 다만 이 과학적 근거가 발생하려면 몸으로 빅 데이터를 쌓아야 한다는 것이 단점이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의 예언 또한 그렇게 쌓인 것이었다.
1920년대에 태어난 카지노 게임 사이트는 결혼을 했다가 이혼을 하셨다. 시대가 시대였어서 정식으로 절차를 밟으셨는지 어떤지는 모르겠다.다만 엄마가 국민학교를 다니던 시절 이혼을 하셨고, 엄마 위에는 이모가 둘이나 더 있었으니 나름대로는 오래 참으셨던 것이라고 짐작할 수밖에. 이혼 사유는 외할아버지의 외도였다. (그 시절 외도를 하지 않은 사람이 있긴 했던 걸까? 이 의문은 주변 사람들의 외가에 대한 이야기를 토대로해 타당한 근거를 두고 생겨났다.)
그 과정에서 제법 큰 두 딸은 데리고 가셨고, 어린 막내딸은 카지노 게임 사이트의 어머니에게 맡겨졌다. 덕분에이사도 하고 전학도 해야 했던엄마는 당신께서는절대이혼을 하지 않겠다고 결심을 하셨다한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가 새롭게 맞이한 외할아버지는 사별한 처지였고, 이전처와의 사이에 세 딸과 아들 하나를 두고 있었다. 세 딸은 엄마와 비슷한 또래였지만 아들은 갓난아기였고, 재혼 후 얼마되지 않아새 외할아버지는 돌아가셨다. 그렇게 카지노 게임 사이트는 핏줄도 이어지지 않은 갓난아기와 세아이를 책임지게 되었다. 정작 당신의 친딸은 내팽개쳐진 셈이었다.
내게는 분명 작은 이모와 큰 이모가 있는데, 엄마는 종종 미야이모라거나 희야이모라는 분들과 통화를 했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 집에 가면 아직 어린 나이의 외삼촌이 있는데 가끔 우리 집에 오는 쪼꼬렡외삼촌이 또 있었다. (내가 어린 시절 가나초콜릿 한 박스를 집에 사 오신 이후 지금까지도 그렇게 부르고 있다.) 그리고 또 정체를 알 수 없는 이모가 있었다. 이 이모는 자주 볼 수는 없었지만 그냥 그런 사람이 있다 정도로 내 기억 속에 남았다. 어릴 때는 막연하게 카지노 게임 사이트는 아이를 참 많이 낳았구나,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나이가 들고 엄마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게 되면서 이생각은 사라지고 진실을 알게 되었다.엄마는 한 때 카지노 게임 사이트와 크게 싸워서 몇 년간 카지노 게임 사이트댁에 방문하지 않았었는데, 그 이유인즉 카지노 게임 사이트가 늘 외삼촌 편만 들어서 그런 거였다.
큰 이모와 작은 이모는 지방에 살았지만 우리 집은 카지노 게임 사이트와 같은 지역이었고, 이사를 해 카지노 게임 사이트댁에서 가까워진 이후엄마는 일주일에 적어도 두 번씩은 카지노 게임 사이트를 찾아가 밥도 같이 먹고 말동무도 해드리곤 했다. 당시 엄마가 말씀하시는 카지노 게임 사이트는 연세에도 불구하고뉴스를 챙겨보는 것은 물론, 신문도 열심히 읽으시고, 노인정에 가시면 정치이슈로 다른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다투고 올 정도로 멋진 분이었다.
다만 그런 카지노 게임 사이트도 예전 분이라 어쩔 수 없었는지 아들이라는 이유로 유독 외삼촌을 챙기셨다. 생활보호 대상자로 지정이 되신 후 쌀이 생기고 돈이 생기면 당신 것도 챙기지 않고 모조리 외삼촌에게 줘버리시는 거였다. 엄마는 그런 카지노 게임 사이트에게 스스로를 좀 챙기라고 지청구를 하셨고, 그 과정에서 언성이 높아진 모양이었다.
외삼촌네의 형편이 그다지 피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 집도 큰 차이는 없었다. 다만 외삼촌네에는 아직 어린 딸이 둘이라 카지노 게임 사이트를 제대로 챙기기 힘들었던 모양이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를 챙기는 건 늘 엄마였는데, 카지노 게임 사이트는 입만 열면 외삼촌 타령을 해 엄마는 섭섭하고 또 화가 나셨던 모양이다. 막말로 외삼촌은 카지노 게임 사이트와 피 한 방울 안 섞인 남이니까.
잠깐만, 그게 무슨 소리야. 하는 내게 엄마는 설명해 준 적 없니? 하면서 그제야 카지노 게임 사이트가 재혼을 하신 이야기를 해주셨다. 그러니까 내게는 각자 핏줄이 다른 이모가... 몇 명인 거야 대체. 나는 어릴 때부터 간직해 온 물음표 살인마의 본능을 발휘해 모든 것을 다 알아냈다. 심지어 쪼꼬렡 외삼촌은 첫 번째 외할아버지가 밖에서 본 자식에,정체 모를 이모는 뜬금없이도 둘째 이모부의 전처소생이었다. 나이가 많은 편이고 얼굴을 볼 일도 거의 없다 보니 그냥 이모라고 부르게 했던 모양이다. 어쩐지 둘 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댁에서는 단 한번도 마주친 적이 없었다. 이정도면 어디가서 콩가루집안 얘기할 때 빠지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시절에는 절구가 유행이라 사방 팔방에 온갖 가루가 날렸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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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대 초반까지도 정정하셨던 카지노 게임 사이트는 치매 판정을 받고 요양원으로 가셨다. 엄마는 최대한 자주 카지노 게임 사이트를 찾아뵈었다. 소위 말하는 착한 치매에 걸리신 카지노 게임 사이트는 늘 방긋 웃으며 엄마를 맞이하셨다고 한다.
가장 먼저 장례식장에 도착한 것은 엄마였고, 그다음은서울에서 내려온나였다.이른 시간, 아무도 없는 빈소의 구석에서 망연자실한 채 앉아있던 엄마를나는 꼭 안아드렸다. 그리고 삼일 내내 엄마의 곁에 있었다. 그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쪼꼬렡 외삼촌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장례식장에 모였다. 당시 노란 머리를 하고 있던 나를 노려보던 어느 남자는 미야이모의 첫째 아들로 밝혀졌다. 피가 섞이지 않은 사촌 동생이었던 것이다. 훗날 친해져서 왜 그렇게 나를 노려보았냐고 묻자 양아치인줄 알고 그랬다고 한다. 자기 인상과 눈빛이 더러운 건 생각도 안 했나 보다. 아무 생각 없이 카지노 게임 사이트재혼하신거잖아, 하는얘기를 했다가 동생은 전혀 모르고 있던 사실이었어서 내가 더 놀랐다. 동생은 미야이모에게 전화를 걸어 그게 사실이냐고 캐물었고, 나는 엄마에게는 괜한 얘기를 했다고 혼이 났다.모자들도 좀 더 많은 대화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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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진 카지노 게임 사이트에 대한 기억은 많지 않다. 다만 번개가 요란하게 치던 날 카지노 게임 사이트의 등에 업혀 창밖을 바라보던 기억이 남의 눈으로 보는 것처럼 머릿속에 남아있다. 엄마의 말에 의하면 내가 서너 살 때 이모집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는데 어째서 이토록 머릿속에 뚜렷하게 남아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는 다른 손자들은 좀처럼 돌봐주는 일이 없었지만 유독 나는 자주 예뻐하고, 또 자주 돌봐주었다고 한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는 그 시절치고는 여러모로 굉장했던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위에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그당시엔남편이 바람을 피웠다는 이유로 여자들이 이혼을 결심했다면, 혹은 이혼이 가능했다면 지금 우리나라의 모습은 상당히 달라졌을 테니까.
심지어 카지노 게임 사이트는 성함마저 멋있다. 주 쾌자, 주자. 나는 카지노 게임 사이트의 성함을 빌어 가족, 그 중에서도 아빠에 대한 글을 쓰기로 했다. 그래서 이시리즈는 카지노 게임 사이트에 대한 이야기로 마무리를 짓겠다고 처음부터 마음먹었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가 없었다면 엄마도 아빠도 내게 존재하지 않았을 테니까.
물론 카지노 게임 사이트가 고집을 부려서 엄마 아빠가 결혼을 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카지노 게임 사이트 또한 엄마를 사랑하셨던 것이다. 낳은 정만큼 키운 정도 컸기에 카지노 게임 사이트는 외삼촌도, 다른 이모들도 다 사랑하셨을 것이다. 그리고 재혼을 하며 다른 집에 맡겨야만 했던, 막내딸의 하나뿐인 딸도 사랑하셨을 것이다. 내가 이름을 빌어 아무 얘기나 막 써도 언짢아하지 않으실 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