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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 Mar 11. 2025

카지노 게임는 계속 끓는다

-<카지노 게임 #Episode30




에필로그를 대신하여

어쩌다 보니 벌써 30화, 마지막화가 되었다. 에필로그를 써야 할 판이다. 그리고, 다음 연재는 뭘로 할지 급조해야만 한다. 그런 구조 없이는 쉽게 흔들리고 무너질 수 있는 나약한 정신임을 알기에. <고독력수프라고 했으니 다음은 <창조력수프라고 해볼까? 고독을 연마했더니 창조력이 되더라... 뭐, 이런 식으로 퉁치면 어떨까? 그래서 뭐 어쩌려고? 그냥 <고독력수프를 계속 연재해 보자. 내 안의 창조자가 '이미' 있다는 것을 알지만, 또한 '아직' 창조력 어쩌구... 떠들 만큼은 아니다. 아직 봄이 오지 않았다. 고독이 더 필요하다.



카지노 게임 2

이리하여 다음 연재 브런치 제목은 <카지노 게임 2로 정한다. 채널 아트와 바텀 이미지를 조금 다르게 그려서 시리즈물처럼 그럴듯하게 만들면 된다. <고독력수프 1을 시작할 때의 내 마음은 진짜로 고독했다. ''혼자인 것이 슬프면 외로움이고, 혼자인 것이 즐거우면 고독이다' 신학자 폴 틸리히의 말에 영감을 받아 혼자서도 충분히 즐거운 고독을 연마하기로 했다.'라고 쓸 때만 해도외로움과 고독의 차이를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걸 명확히 알았다면, 즐거운 고독이 지속가능한 상태였다면, 이런 글들을 쓰지도 않았겠지. 그럼 30화를 연재하고 나자, 고독력을 연마하자, 조금은 더 즐거워졌나? 그런 것도 같다.



나의 요정 친구

<고독력수프 1을 연재하는 동안 여러 차례 등장했던 나의 요정 친구가 이번 달로 퇴사를 한다고 귀띔해주었다. (지금 처음으로 이 글을 읽는 독자를 위해 나의 요정 친구에 대해 설명하자면 회사에서 만난 동료로 키가 150cm도 채 되지 않는 아담한 체구를 소유함과 동시에 요정처럼 몰래 도움을 주는 착한 마음을 갖고 있어서 내 마음속으로 부르는 별명이다.) 반백살이 넘어서도록 사람들과 두루두루 친하지 못하고 사람을 가려 사귀는 불안한 성정을 가진 나로서, 일처리나 경계가 명확하면서도 따뜻한 나의 요정 친구를 알게 된 것을 큰 행운으로 여기고 있었는데, 갑작스러운 이별 소식에 생각보다 마음이 크게 휑했다. 헤어질 수 있는 용기가 어느 정도 견고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나가지 말라고, 여기서 즐겁게 같이 일해보자고 설득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났으나, 그게 결국 나 자신을 위한 회유라는 생각에 요정 친구의 결정과 통보를 저항 없이 받아들이기로 했다.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위해 떠나는 친구의 앞날을 축복하자고. 나는 또다시 외로움과 카지노 게임사이에서 휘청거리며 중심을 잡아야겠지. 그래도 이젠 괜찮다. 잠깐이면 된다.



카지노 게임를 끓이며

신체에 대해, 뇌에 대해, 의식에 대해, 마음에 대해, 공부한다. 공부하지 않고서는 늘 환상의 유령에 사로잡히기 때문이다. 관계의 유령, 시간의 허상, 초조함을 부추기는 망령, 눈앞에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우리가 의심하지 않고 명백하게 보인다고 믿는 실체는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있는 전자기파의 영역인 가시광선로 말미암은 것, 또각자가 쓰고있는 왜곡된 렌즈에 의한 것이다. 오래전, 이외수 선생께서 쓰신 어떤 책에서 네 가지 눈에 대해 읽은 적이 있었고, 매우 인상적이었다.



이외수의 네 가지의 눈

인간은 네 가지의 눈을 가지고 있다. 육안, 뇌안, 심안, 영안 어떤 눈을 개안하느냐에 따라 사랑의 크기도 달라진다. 여기 잘 익은 사과 한 개가 있다. 보는 눈에 따라 어떤 차이가 있는지 열거해 보이겠다.
육안, 가장 저급한 단계에 머물러 있는 눈이다. 육안으로 사과를 바라보는 인간에게 사과는 단지 둥글고 붉은 빛깔의 음식물에 불과하다. 음식물을 먹어치우는 일이 곧 음식물을 사랑하는 일이다.
뇌안, 육안과 비교하면 천양지차로 진화된 눈이다. 뇌 안으로 사과를 바라보는 인간은 만유인력의 법칙을 떠올린다. 그에게는 탐구가 곧 사랑이다. 그러나 본성에 이르지 못하고 현상에만 머물러 있다.
심안, 현상을 떠나 본성에 이른 눈이다. 심안을 가진 인간은 사과에 감동한다. 그야말로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오더라도 오늘 한 그루 사과나무를 심는 인간이다.
영안, 영안으로 사과를 바라보는 인간은 깨달음을 얻은 자다. 신의 본성과 우주의 본성과 자신의 본성과 사과의 본성이 하나로 보인다. 비로소 삼라만상이 사랑으로 가득 차 있음을 깨닫게 된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감동할 있어야 되고, 감동할 알기 위해서는 본성 이전에 현상에 대한 탐구도 필요하며, 현상에 대한 탐구를 하기 위해서는 음식을 먹어야 한다. 영안을 뜨기 바라면서 육안을 저급하다고 회피하는 자는 생존에 위협을 받는다.



다시 처음으로

5개월 전, 로베르트 발저의 '최후의 산문'을 읽고 뼈아픈 탄식을 하며, "앞으로도 계속해서 평화롭게 빵을 먹을 수 있도록 기쁜 심정으로" 새 일자리를 구했다. 지난 10년 동안 그토록 쓰겠다고 선언했던 SF소설을 단 한편도 쓰지 못하고 SF영화만 주구장창 보았고, 작품 속에서 빛을 발해야 할 과대망상과 편집증적 성향이 현실에서 나타나 분열되었고, 꿈과 현실의 경계에서 길을 잃고 너무 오래 머물렀다. 무릇 온전한 창작을 하는 작가의 정신이란 그 얼마나 견고한 것이어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인식한 세월이었다.



카지노 게임한 부엌에 불을 켠다.

어제의 괴로운 기억, 내일의 불안한 걱정거리, 오늘의 복잡한 생각들, 월의 햇볕 한 줌, 숨통을 트이는 바람 한 자락, 흘러가는 구름 한 조각, 빛나는 별가루 한 스푼, 결코 늙지 않는 노래 한 곡, 인생을 바꿀 명언한 줄, 카지노 게임한 냄비에 인연이 닿은 모든 재료를 넣고 푹 끓인다. 모든 것이 뭉근하게 녹아들어 건강한 기억과 싱싱한 내일의 기대의 향으로 변모한다. 맛있고 맛없고 가 따로 없고 모두 몸과 마음에 필요한 영양분으로 바뀐다. 오늘의 발걸음에 힘을 실어주고 지금까지의 모든 것을 전복시키는 마법의 수프가 된다. 눈부시게 노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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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화요일, 토요일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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