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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일락 Apr 07. 2025

'먹다'의 반대말

하루 한 알만 먹어도 그날 필요한 영양은 물론 포만감까지 느껴지는 약이 있다면, 당신은 그 약을 먹겠는가. 10년 전쯤, 나는 주변의 누군가에게서 이런 말을 들었다.

“그냥 약 한 알만 먹고 끼니를 끝냈으면 좋겠어. 하루 세끼 먹는 게 너무 귀찮아.”

10년이 넘도록 두고두고 꼭꼭 씹어도 삼킬 수 없을 만큼 이해할 수 없는 말이라 마음에 담아두었다.


약만 먹고 사는 삶이라니. 내겐 정말 상상할 수 없는 삶이었다. 내게 먹는 건 대단히 중요하다. 고등학교 시험기간에는 시험이 끝나고 좋아하는 분식집에서 라볶이에 들어간 라면을 포크 가득 돌돌 말아 한 입 먹는 걸 상상하면서 버텼다. 아무리 바쁘고 마음이 심란해도 끼니는 꼭 챙겼다. 모니터를 보거나 시간에 쫓기며끼니를 때우는 건 정말 싫었다. 간장에 비빈 밥이라도 그릇에 꾹꾹 눌러 담아 참기름까지 잊지 않고 뿌려 먹어야 먹은 것 같았다.


먹는 건 거의 내 삶의 전부였다. 과일소주가 유행이던 시절에는 퇴근하고 마트에서 새로운 맛 소주를 사겠다는 일념으로 회사생활을 견디고, 회사 주변에 아는 맛집이 하나 더 느는 걸 뿌듯해하며 자랑했다. 점심시간 10분 전, 팀 사람들과 메신저로 뭘 먹을지 이야기하는 게 그렇게나 재밌었다.

“우리 내일은 뭐 먹을까?”

점심시간이 끝나고 회사로 돌아가며 하는 이 대화는 우리의 내일을 기대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정말 그걸로도 충분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 내게 ‘먹다’의 반대말은 ‘굶다’였다. 굶을지언정 맛 없는 건 입에도 대지 않겠다는 의지가 충만했었다.


친한 친구도 먹는 걸 진심으로 좋아한다. 친구와 나는 대학시절 방학 때마다 일주일 정도 같이 기차여행을 다녔는데, 여행의 기준은 오로지 먹을 것이었다. 음식사진을 찍는 일이 흔하지 않던 그때, 남도의 밥상을 받고 도무지 앵글 안에 담기지 않아 둘 모두 한껏 카메라를 들고 상에서 일어났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진지하게 음식사진을 찍고 나니, 느껴졌다. 우리를 바라보는 식당 안의 시선들이. 그래도 마냥 좋았다. 술 한 잔을 더 주문할 때마다 랜덤으로 안주가 하나씩 추가되는 전주의 막걸리 골목에서는 안주가 궁금해서 계속 술을 마시다 기절 직전의 상태로 서울 가는 기차에 올라탔다.


우리는 여전히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먹는 이야기를 한다.

“우리 동네 근처에 휘낭시에 잘하는 카페 생겼잖아! 같이 가자.”

“방금 유튜브에 우리 학교 근처 순두부찌개집 나온 거 알아? 대박. 저기가 아직도 있었어.”

우리는 이런 말로 ‘어떻게 지내?’, ‘그냥 그럭저럭 지내’ 같은 말을 대신한다.


먹는 걸 좋아하는 만큼 요리도 잘하는 친구와 다르게, 나는 요리엔 영 소질도 관심도 없다. 결혼을 해서도 배달음식만 줄기차게 먹었고, 카지노 게임 사이트가 이유식을 시작할 때는 시판이유식을 주문했다. 하지만 카지노 게임 사이트가 밥을 먹고 나서는 이야기가 달라졌다. 어떤 반찬가게의 음식도 방금 만든 따뜻한 밥과 반찬을 대신할 수 없었다.


요리책을 쌓아두고 밑줄을 치면서 공부했다. 공부도 자신은 없지만, 요리보다는 잘할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여러 요리에서 반복되는 조리법을 찾아 적고, 한 장짜리 노트로 만들었다. 재료를 사서 작게 썬 다음 물이나 기름을 넣으면 볶음, 물을 좀 더 넣고 물이 없어질 때까지 볶으면 조림, 물 대신 우유를 넣고 볶으면 리소토, 볶는 대신 끓는 물에 데친 다음 참기름을 넣으면 무침, 무침에 들깨를 추가하면 들깨무침, 냄비 말고 찜기에 넣어 전자레인지에 돌리면 찜. 이런 식이었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 밥을 차리려 부엌에 서 있으면 카지노 게임 사이트는 내 바지춤을 잡고 매달렸고, 시간은 턱없이 모자랐다. 매번 절박했다.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도 하기 전에 손이 뭔가 하고 있었다. 냉장칸에서 채소를 이것저것 골라 잡아 다진다거나, 버터를 녹인다거나, 다진 고기를 전자레인지에 데운다거나 하는 일들. 그러다가 어떤 날은 채소와 밥을 같이 휘리릭 볶기도 하고, 고기를 뭉쳐 떡갈비 비슷한 걸 만들기도 하고, 그게 뭐든 에어프라이어에 돌려 구워버리기도 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닐 때는 참기름을 듬뿍 뿌려 고소함이 모든 걸 가리게 만들거나, 김에다 재료를 훌훌 말아 김밥을 만들었다. 어떻게든 식판을 채워 카지노 게임 사이트를 식탁에 앉혔다.


턱받이를 하고, 숟가락으로 밥을 한 술 뜨고 그 위에 반찬을 올려 카지노 게임 사이트 입 앞에 가져다놓는 일. 카지노 게임 사이트가 입을 벌리지 않으면 숟가락을 자동차처럼, 어느 날은 비행기처럼 움직이며 카지노 게임 사이트를 먹게 하는 일. 카지노 게임 사이트가 먹고 나면 손과 입을 씻기고, 밥알과 반찬이 가득한 식탁과 카지노 게임 사이트의자를 물티슈로 닦는 일. 그것이 내 일이 되었다. 모든 일을 마치고 나면 오후 두 시. 카지노 게임 사이트를 재우고 나오면 세 시. 점심 때가 훌쩍 지나 있었다.


저녁도 비슷했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를 먹이고 재운 후 저녁인지 야식인지 모를 식사를 하는 일이 많았다. 요즘은 스킬이 조금 늘어, 카지노 게임 사이트밥 옆에 내 밥을 차린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 숟가락과 포크, 내 몫의 숟가락과 젓가락을 나란히 놓고 밥을 먹는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 밥 두 입, 내 밥 한 입. 카지노 게임 사이트 밥 세 입, 내 밥 한 입. 이렇게 한 입 두 입 먹다 보면 처음으로 이차방정식을 풀던 때가 생각난다. 손과 뇌가 체계적이고 정교하게 움직이는 느낌. 밥을 먹었다는 느낌보다 해야 할 일을 잘 끝냈다는 안도감이 밀려든다.


요즘 내게 ‘먹다’의 반대말은 ‘먹이다’. ‘먹다’가 맛있는 음식을 혀 위에 올리고 이로 씹는 순간의 기쁨을 위해 음식점에 찾아가거나 음식을 차리고 치우는 수고를 기꺼이 감내하는 행위라면, ‘먹이다’는 나 아닌 누군가의 먹는 즐거움을 위해 먹기까지의 수고와 나의 먹는 즐거움을 기꺼이 포기하는 행위다. 밥을 차리고, 먹이고, 치우는 일. 지금의 내 삶에는 그것만 있다. 먹지 않고 먹이는 삶이다.


먹는 삶의 즐거움이 맛이라면, 먹이는 삶의 즐거움은 뭘까. 나와 같이 살며 카지노 게임 사이트를 먹이는 일도 같이 하는 사람은 먹는 이의 즐거움이 곧 먹이는 이의 즐거움이라고 했다. 멋진 말이었다. 내가 얼렁뚱땅 만든 음식을 곰곰이 생각하는 사람처럼 오물오물 천천히 씹고 있는 카지노 게임 사이트를 볼 때, 분명 나도 행복했다. 잘 먹어주는 날은 그날의 피로가 다 풀리는 듯했고, 아무것도 먹지 않겠다 버티는 날은 가만히 앉아 있어도 머리가 얼얼해지도록 뜨거워졌다. 그건 천국과 지옥만큼 큰 차이였다. 먹이는 이의 즐거움은 ‘나’의 즐거움이 아닌 ‘너’의 즐거움. ‘너’의 즐거움이 곧 ‘나’의 즐거움이 되는 경지. 먹이는 삶을 계속하다 보면 나도 그 경지에 오를 수 있을까.


아니. 절대 못 오를 것 같다. 그리고 사실은 오르고 싶지 않다. 이런 말을 해도 될지 모르겠다. 나는 카지노 게임 사이트가 잘 먹는 걸 볼 때보다 내 입에 맛있는 게 들어갈 때 좀 더 행복하다. 물론 카지노 게임 사이트가 밥을 맛있게 많이 먹었으면 좋겠지만, 나도 느긋하게 밥 한 끼 잘 먹고 싶다. 이전처럼 기차 타고 비행기 타면서 맛집탐방은 못 다녀도 버스 타고 한식, 양식, 중식, 일식, 베트남 스페인 프랑스 대만 인도 음식점 골고루 다니면서 살고 싶다.


지난 주, 카지노 게임 사이트가 입원을 했다. 미열이 2주 가까이 계속 되었고 의사는 입원을 권했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 몸에선 두 개의 바이러스가 나왔지만, 다행히도 심각한 정도는 아니어서 병원에 있는 내내 카지노 게임 사이트의 컨디션은 좋았다. 수액을 꽂은 팔로 병원 안 키즈룸에 있는 게임기도 신나게 두들기고, 토퍼가 깔린 입원실 바닥을 신나게 뛰어다녔다.


사실, 나도 꽤 신났었다. 병원에선 시간 맞춰 카지노 게임 사이트 식사가 나왔는데, 병원밥이라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정말 맛있었다. 무엇보다도 매일 오늘은 뭘할지 고민 안 하고, 요리 안 하고, 설거지 안 하고 지낼 수 있는 시간이 너무 오랜만이어서 언젠가부터는 입원기간을 휴가라 여기고 즐기기 시작했다. 이제 퇴원해도 된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마지막 식사를 하면서는 아쉬움에 카지노 게임 사이트가 남긴 밥도 끄적거리며 먹었다.

“치료 아무것도 안 받고 그냥 카지노 게임 사이트 밥 세 끼만 받으면서 반값에 지내는 건 안 될까?”

남편에게 이런 실 없는 소리를 하면서 병원을 나왔다.


병원을 나와 맞이한 첫날. 도망치고 싶은 욕구가 하늘 끝까지 치솟았다. 결국 다음 날 아침에는 설거지 거리가 가득 쌓인 집을 뒤로 하고 유아차에 카지노 게임 사이트를 태워 지하철을 타기에 이르렀는데, 그러면서 가만히 생각했다. 나는 지금 뭐가 이렇게 괴로운 걸까, 하고. 생각 끝에 나온 답은 밥이었다. 못 먹고 먹이기만 하는 하루하루가 참 힘들었다는 것. 알고 나니 기분이 풀렸다.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아도 그저 알게 되었다는 것 하나로 모든 게 괜찮아졌다.


먹이는 사람이 잘 먹고 지내기는 쉽지 않다. 사실은 다른 것도 비슷하다. 재우는 사람은 잘 못 자고, 입히는 사람은 잘 못 입고, 싸는 걸 치우는 사람은 싸는 걸 잘 못한다. 누군가의 손과 발과 눈과 귀가 된다는 것. 문장으로 쓰기엔 아름답지만, 실상은 그렇게 아름답지 못하다. 내 손과 발과 눈과 귀를 온전히 나를 위해 쓰고 싶은 욕구가 마구마구 차오른다. 그런 밤에는 뭐라도 하고 싶은데, 체력이 모자란다. 역시, 밥을 먹어야 힘이 나지. 그럼그럼. 또다시 밥으로 돌아가는 생각회로. 날도 좀 풀리고 카지노 게임 사이트 감기도 좀 나으면 카지노 게임 사이트 밥은 미리 해두고 먹이는 건 짝꿍에게 맡긴 후, 든든하게 동네밥집에 밥 한 끼 먹으러 가야겠다. 밥심으로 하고 싶었던 거, 뭐라도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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