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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초롱 Feb 22. 2025

외계인에게 납치되어-상

퀴어 초단편 옴니버스 소설집 <사랑은 이상하고 네 번째 소설

처음엔 한 통의 전화였다. 쿠팡 배달기사였다. 고객님! 죄송한데 건물 출입 비밀번호가 뭐예요? 일분일초가 아까운 긴박함 속에 간신히 짜낸 듯한 친절함 때문에 카지노 쿠폰 초조해졌다. 비밀번호, 음, 그런 거 없는데요. 해안로2길 5-14번지 아니세요? 아닌데요. 김송희씨 아니세요? 어딘가 다급한 배달기사의 목소리 때문에 카지노 쿠폰 움츠러들었다. 네, 아닌데요. 네, 죄송합니다! 배달기사의 전화는 걸려 왔을 때처럼 끊어질 때도 단호했다. 잘못 걸려 온 전화를 받았을 뿐인데, 카지노 쿠폰 가슴이 두근거렸다. 카지노 쿠폰 모르는 번호로 걸려오는 전화가 싫었다. 아니, 아는 번호로 걸려오는 전화도 부담스러웠다. 누군가 카톡으로 ‘한나씨’라고 이름만 부르고, 한참 동안 다음 톡이 없을 때도 불안했다. 그렇게 소심해서 어떻게 대민 업무를 하겠어요? 계장은 ‘한나씨’하고 부를 때마다 깜짝 놀란 눈으로 돌아보는 한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맞아요. 못 하겠어요. 카지노 쿠폰 그런 말을 속으로 삼키며 입으로만 웃어 보였다. 공탁, 소장접수, 소송. 법원에 찾아오는 민원인들은 대부분 화가 나 있었고, 카지노 쿠폰 삼 년째 법원 종합민원실의 막내로서 그들을 맞이하는 문지기가 되었다. 사람을 대하는 일은 많이 한다고 익숙해지는 일이 아니었고, 근속연수가 늘수록 한나의 목소리는 그에 반비례하게 작아졌다. 한나의 목소리가 작아질수록 한나를 둘러싼 사람들의 목소리는 그에 비례하게 커졌다. 어깨를 움츠리며 고개를 바닥으로 떨굴 때마다, 카지노 쿠폰 자신이 작아지는 것 같았다. 실제로, 물리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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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것부터 시작하는 게 중요합니다. 먼저, 자신의 감정을 명확하게 전달하세요. 나는 속상합니다. 나는 화가 났습니다. 따라 하세요.


‘자신감 없는 당신, 이것이 부족해서다’ 출근길에 유튜브 강의를 들으며 카지노 쿠폰 조용히 중얼거렸다. 나는 속상합니다. 나는 화가 났습니다. 그때 또 전화가 걸려 왔다. 모르는 번호였다. 여보세요? 한나가 긴장한 채 전화를 받자, 상대방이 쾌활하게 물었다. 김송희 고객님이시죠? 아니요. 해안로2길 5-14번지 아니세요? 아니에요. 그래요? 이상하네. 이번에는 사과도 없이 전화가 끊겼다. 몇 달간 스무 통도 넘는 전화를 받았다. 가스검침원에게서, 택배기사에게서, 은행 대출상담소에서, 노래연습소에서, 여행사에서. 전화가 거듭될수록 한나의 참을성도 줄어들었다. 전화번호를 바꾸라고 연락하고 싶었지만 연락처가 없으니 연락을 할 수도 없었다. 내가 만만한가? 만만한 번호라는 게 있나? 나는 전화번호조차 만만하게 생겼나? 카지노 쿠폰 생각했다.


그날은 한나의 좁은 어깨가 더 움츠러드는 날이었다. 붐비는 버스에서 한 남자가 한나의 배를 뾰족한 가방 끝으로 밀치고 지나갔고, 엘리베이터 문이 닫힐 때 안에 있던 동기가 한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닫힘 버튼을 눌렀다. 경비는 오늘도 한나의 인사를 받아주지 않았고, 한나가 육회를 못 먹는다고 열 번쯤 이야기했음에도 점심 회식은 육회비빔밥으로 결정되었다. 마침내 점심시간이 지났을 때 한 민원인이 한나 앞에서 웃통을 벗었다. 내가 만만해 보여? 그의 목소리가 크레센도로 커지고, 한나가 새하얗게 질리자 계장이 나섰다. 한나 앞에서는 옷을 다 벗을 기세였던 민원인은, 몸집 큰 계장이 나서자 선량한 시민으로 변신했다. 오늘은 먼저 들어가세요. 계장이 한숨을 쉬며 한나에게 조퇴를 권했다. 한나가 법원을 나오자마자 또 그 전화가 울렸다. 김송희씨죠? 그 다섯 글자가 한나를 폭발하게 했다. 아니라고요! 카지노 쿠폰 꽥 소리를 지르고 전화를 끊었다. 내가 만만하지? 카지노 쿠폰 씩씩거리며 해안로2길 5-14번지를 검색했다. 버스로 4정거장이었다. 가서 말해주리라. 나는 속상합니다. 나는 화가 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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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로2길 5-14번지 빌라 이층 앞에서 카지노 쿠폰 세 시간을 기다렸다. 걸음을 돌려 다시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가 돌아오기를 열 번쯤, 계단에 앉아 있다 서기를 백 번쯤, 마른 얼굴 세수를 천 번쯤 반복했다. 한나의 상상은 지옥처럼 깊어졌다. 식은땀이 나고 손이 벌벌 떨렸다. 이름은 송희지만 남자일지도, 어쩌면 팔뚝에 호랑이 문신이 새겨져 있을지도, 그녀를 보자마자 냅다 욕을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카지노 쿠폰 자신감 상승 유튜브를 보았다. 사소한 것부터, 나의 감정 표현부터. 마침내 김송희가 집 앞에 나타났을 때, 카지노 쿠폰 천 번쯤 그 일을 반복한 것처럼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카지노 쿠폰 그간의 사정을 횡설수설 설명했다. 한나의 말투는 항의라기보다는 애걸에 가까웠고, 그마저도 너무 긴장해서 말한 탓에 거의 우는 것처럼 들렸다. 한나가 말할 때마다 그녀의 목소리가 가느다란 현악기 줄처럼 떨렸다. 하지만 그 긴긴 말끝에 카지노 쿠폰 기어이 이 말을 덧붙였다. 그래서 제가 화.가.났.어.요. 김송희는 문 앞에 서서 한나의 말을 끊지 않고 끝까지 들어주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랬구나, 언니. 미안해요.


미안하다고 말하는 건 송희였는데, 고개를 숙이고 선 건 한나였다. 미안하다는 송희 말을 듣자마자 긴장이 풀렸는지 한나가 비틀거리며 벽을 짚었다. 대단한 일을 치른 것처럼 눈물이 났다. 한나에게는 일생일대의 일이었는데, 막상 자신의 목소리로 들은 자신의 이야기는 대수롭지 않은 것 같았다. 언니, 물 한잔 마시고 가요. 자연스러운 송희의 제안에 카지노 쿠폰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듣고 싶은 말을 들었는데도 허탈하고 몹시 피로했다. 그동안 한나의 적은 송희였는데, 그 모든 일의 목격자 또한 송희라니. 카지노 쿠폰 묘한 동지애를 느꼈다. 카지노 쿠폰 에라 모르겠다하는 심정으로 송희를 따라 집 안으로 들어섰다.




<사랑은 이상하고는 이상한 사랑에 대한 퀴어 초단편 옴니버스 소설집입니다. 매주 화요일과 토요일 브런치를 통해 공개합니다. <사랑은 이상하고는 소설 배달 서비스 <주간 정만춘 Season1으로 2024년 여름, 연재했었던 콘텐츠입니다. <주간 정만춘은 새로운 장르로 지금도 연재 중이니 신청을 원하시면 아래 링크를 클릭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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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요. 사랑은 다 이상하다고 생각해요.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요.

이상해 보이지만 듣고 보면 또 이상하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 변명. 자세히 보아야 멀쩡하고, 오래 보아야 이해가 되는 사람들에 대한 옴니버스 초단편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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