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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명원 Mar 14. 2025

카지노 쿠폰 반짝이는 계절- 장류진

글이, 책이 나오면 물론 기쁘고 행복하지만 어쩐지 홀딱 벗고 거리에 나앉은 기분이 들곤 했다. 읽는 이들은 내 속내를 다 알게 되었는데, 나는 여전히 나 이외의 것을 알지 못한다는 생각에 두렵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쓰는 일을 계속해 오고 있는 나는 생각한다.

‘소설이라면 그런 마음에서 조금은 더 자유롭지 않을까.‘

그래서였을까. 장류진 작가의 에세이 ’우리가 반짝이는 계절’을 읽다가 이 부분에서 멈칫했다.

<소설을 쓰면서 자주 듣는 질문 하나. 작가님의 소설에는 실제 작가님의 모습이 얼마나 들어가 있나요?

나는 내 소설에 실제의 내가 '딸기우유에 딸기가 들어 있는 만큼' 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딸기우유에는 딸기가 얼마나 들어가 있을까?

우유갑을 돌려 뒷면을 보자. 거기 깨알같이 적힌 성분은 0퍼센트이다. 한마디로 딸기우유에는 딸기가 들어가지 않는다. 하지만 그 음료수의 정체성은 '딸기'이고 실제로 맛도 딸기 맛이 난다. 딱 그런 식으로 내가 쓴 소설에 내가 들어가 있다.

여태까지 세 권의 책을 냈다. 소설집 두 권과 장편소설 한 권. 그 소설을 각각 펼칠 때마다, 소설을 구성하고 있는 문장들을 읽어 내려갈 때마다, 나는 한 시절의 나를 본다. 소설 속 인물에서 나를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그 인물을 고심해 만들고 빚고 쓰던 때의 내 모습을 본다. 거의 나노 단위로 들어가 있는 미세한 착향료 같은 나 자신의 흔적을 발견한다.


이 부분을 여러 번 다시 읽으며 공감했다. 아, 이런 거였지. 딸기우유 같은 것.


사실 이 에세이는 글에 관한 이야기라기보다 친구와 함께한 카지노 쿠폰 여행기이다. 오래전 교환학생 시절을 보냈던 카지노 쿠폰의 추억을 떠올리며, 그때의 친구와 함께 다시 찾아가는 여정기이다. 여행이라는 것은 처음은 처음이라서 새롭지만, 이처럼 초행이 아닌 경우에는 지난 추억을 되새기는 재미와 또 다른 새로움을 발견하는 흥분도 있다.

사실 나에게도 카지노 쿠폰는 특별하다. 물론 작가처럼 카지노 쿠폰를 여행한 적은 없지만, 가본 적이 없다고 하기도 애매하다.


십 년도 훨씬 더 된 어느 해 여름, 내가 탄 비행기는 카지노 쿠폰 반타공항에 내렸다. 서서히 고도가 낮아지는데 작은 창밖으로 빽빽한 숲이 보였다. 싱그러운 초록의 숲이 아니라 마치 심연과도 같은 검은색에 가까운 짙고 깊은 녹색의 숲이었다.

나는 그 반타공항에서 몇 시간 머물렀다가 다시 파리로 향할 예정이었다. 반타공항엔 온통 무민이 가득했고, 식료품코너에선 순록고기, 사슴고기를 통조림이나 훈제로 팔았다. 북유럽이로구나, 카지노 쿠폰로구나 실감했다.

파리로 가는 비행기를 기다리며 몇 시간 전 보았던 심연과도 같은 숲을 떠올렸다. 언젠가는, 카지노 쿠폰에 다시 와야겠다. 카지노 쿠폰를 여행해야겠다. 그때 그랬다. 하지만 그 이후 여러 나라를 여행했지만 정작 카지노 쿠폰엔 다시 가지 못한 채 많은 세월이 지났고, 이 책을 만나 그날의 ’카지노 쿠폰’를 기억해 냈다.

<이번 카지노 쿠폰 여행에서도 여러 기념품을 샀다. 머리띠, 냉장고 자석, 에코백, 그림엽서, 자작나무 접시. 그것들은 내 모습을 찍은 사진은 아니다. 내 모습을 담은 물건도 아니다.

내가 사지 않아도 나와는 관련 없이 원래 존재했을 물건들이다. 그렇지만 나는 일상생활에서 그것들을 마주할 때마다 여행의 순간들을 떠올릴 것이다. 이걸 샀던 바로 그 여행지와 그때의 내 모습이 자연스레 떠오를 것이다. 여행을 하다 그 물건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 여러 옵션들 중 하나를 고를 때의 설렘, 그렇게 고른 것을 가지고 숙소로 돌아와 짐 한편에 고이 챙겨둘 때의 만족감. 마침내 집에 무사히 도착해서 꺼내보았을 때의 뿌듯함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내 인생의 굿즈, 내 인생의 기념품, 소설.


카지노 쿠폰의 반타공항에 내렸을 즈음의 나는 글을 쓰고 있지 않았다. 오래전 신인 추천을 받고 몇 해간 쓰던 글을 멈춘 건 ’바빠서‘라고 핑계를 댔고, ’나중에‘라고 미뤄놓았다.

작가의 글처럼 나도 많은 여행지에서 모아온 마그넷이 현관문을 채우고도 남을 정도로 빼곡하다. 그중에서 그날 카지노 쿠폰 반타공항에서 샀던 무민 마그넷을 찾아내어 한참 봤다. 그것은 내 여행의 기념품이다. 그날 내가 잠깐 머물렀던 카지노 쿠폰의 반타공항을 생각나게 해준다. 하지만 그 무민 마그넷을 살 때엔 당연히 알지 못했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그날의 나와 그날의 시간을 떠올리며 이렇게 글을 쓸 것이라고는.


나는 여행을 좋아하고, 여전히 가는 곳마다 마그넷을 모아온다. 때로 머그잔이거나 손으로 그린 엽서일 때도 있다. 그뿐만 아니라 이제는 다녀온 여행의 시간을 글로 쓰는 사람이 되었다. 말하자면 나 역시 ’글‘을 기념품으로 갖게 된 것이다.

기념이란, ’어떤 것을 오래 잊지 않고 간직하는 일’이다. 나는 앞으로도 기념품을 많이 간직하는 시간을 살고 싶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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