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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리티 Mar 10. 2025

레코드카지노 쿠폰 들락거리는 사람들

조금 이상하지만 마주치게 된다

산책에 대한 나만의 원칙이 있을까.


만화책 <우연한 산보의 주인공 우에노하는 산책의 세 가지 원칙을 갖고 있다. 첫 째 인터넷이나 책으로 사전조사하지 않는 것, 둘 째 가다가 재밌어 보이는 옆길로 새는 것, 마지막으로 계획을 세우지 않고 느긋하게 걷는 것.

요즘처럼 시간관리 해도 모자란 시대에 한심한 시선으로 볼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같은 공간에 존재하는 듯 보여도 다른 세상을 사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발터벤야민은 이렇게 썼다. '산책에는 다른 무엇보다 무위에 의해 얻는 것이 노동에 의해 얻는 것보다 더 가치있다는 생각이 깔려있다. 산책자는 잘 알려진대로 탐구하는 것이다.'


딱히 원칙이란 걸 세우지는 않았지만 세 가지 모두 좋아하는 방식이다. 사전조사는 어느새 직업병인지 습관인지 굳어졌지만, 산책가들은 이미 알고있다. 진짜 보물은 지도에도 블로그에도 드러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때로는 모르는 상태로 걸을 때 또 다른 것들을 마주친다.연희동을 서성이다가, 담벼락골판지 같은 종이위 손으로 거칠게 대충 글씨를 봤다. LP, 그리고 화살표. 그게 전부였다. 이거혹시, 간판인 것인가.

화살표가 그려진 방향을 따라 골목으로 들어갔다. 주택의 차고 안에 가게인지 창고인지 모를 공간이 보였다. 들어가 보니, 중앙에 카지노 쿠폰판이 돌아가고 있었고 벽쪽은 LP들이 가득 꽂혀있었다. 단순히 카지노 쿠폰판만이 아니라 온갖 골동품같은 잡동사니들이 곳곳에 있었다. 오래된 컵이나 머그잔, 도자기, 조각품들, 전등, 필름카메라 등등이 진열되었다. LP들은 70년대 오래된 가요와 재즈 앨범 위주였다. 아마도 주인아저씨가 모아온 것이 아닐까. 가게라고 하기엔 개인적인 취향들인 것 같고 그렇다고 개인 소장고라고 하기엔 차분하게 정돈되어 있어서 편하게 구경할 수 있는 분위기였다. 이 동네를 지나는 사람들이 종종 들락거리는 가게인 것 같다. 그리고 보니 산책에서 카지노 쿠폰가게가 보이면 꼭 들어가보는 것이 나만의 원칙이 되었나보다. 카지노 쿠폰가게에 대한 몇몇 장면들이 기억속에 남아있다.


'김밥레코즈'라는 콜렉터들 사이 소문난 카지노 쿠폰가 홍대로 이사하기 전, 연남동에 있을 때였다. 일을 마치고 가는 길에 모처럼 여유가 있어서 카지노 쿠폰 앞에 내놓은 박스에서 건질 앨범이 있는지 눈이 빠져라 고르고 있었다. 몇 달전에 사려고 했던 앨범에 다운된 가격표가 붙어있어서 집어올리던 중, 어느 외국인 남자가 휘리릭 스쳐서 카지노 쿠폰로 들어간다. 혹시 엔터테인먼트 업계 종사자일까. 가끔 낮 시간 극장이나 바이닐숍에 있을 때 종종 보는 부류가 있다. 눈에 띄는 칼라풀한 헤드폰을 쓰고 스코트랜드풍의 화려한 글렌체크 자켓, 캐주얼한 진바지가 예사롭지 않았다. 안쪽을 힐끗 보니 역시나 주인장과 뭔가 이야기가 오가고 있다. 계산하려고 들어가보니, 그 외국인이 음악 추천을 부탁한 듯한 분위기였다. 대화가 방해될까 다른 앨범들을 구경하며 내 순서를 기다린다. 사실 초면인 사람에게 음악 추천은 쉽지 않다. 과연 어떤 곡을 추천할까 나도 같이 궁금해졌다. 그런데 얼핏 서로 아는 사이 같기도 했다. 아마도 재야의 음악관계자 혹은 뮤지션 정도는 되는 것인가 추측해볼 무렵 드디어, 플레이어에 주인장 추천한 곡이 올라왔다. 대화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는 사이 같이 들어본다.한국의 싸이키델릭한 락 넘버를 이야기한다.

카지노 쿠폰가게의 오디오는 대개 좋은 것을 갖다놓기 때문에 유난히 좋게 들린다. 그 사실을 감안해도 놀란다. 처음 듣는 곡이었는데 서글픈 멜로디 사이 조금 빈 듯한 공간을 기타소리가 휘몰아친다. 이제 아무도 말을 하지 않는다. 침묵 그리고 오로지 음악.


그 외국인이 나가고 계산하면서 주인장에게 물었더니 이정화가 부른 '꽃잎'이라고 했다. 옛날 장선우 감독의 영화에서 가수 이정현이 불렀던 노래의 원곡이었다. 이정화, 라는 이름이 낯설어서 유명한지 물었더니 주인장이 머쓱하게 답했다. "신중현 앨범이에요." '67년도에 한국에서도 이런 기타 사운드가 있었구나. 그런데 '67년도라면 비틀즈의 페퍼상사 앨범이 나오던 해 아니었나. 이 정도라면 페퍼상사에 아쉬울 것이 없다. 나도 신중현의 음악은 유명한 곡밖에 몰랐다. 때때로 낯선 이방인을 통해서 가까이 있던 것들을 자세히 들여다보게 된다. (이정화 -꽃잎https://www.youtube.com/watch?v=kfnAVCrRSpw)


또 언젠가 홍대의 극동방송국 삼거리에'카지노 쿠폰포럼'이라는 가게가 있었다. 주로 재즈 앨범을 팔고, 메인스트림보다는 비주류 뮤지션들이 많았던 곳인데 항상 그 앞을 지날 때는 음악이 발길을 잡았다. 어느 거리에서 이런 재즈 곡을 들을 수 있을까. 그 소리에 매혹되어 지나치지 못하고 가게를 여러 번 들어가기도 했다.

그 작은 가게의 진수는 그게 다가 아니었다. 가게가 있던 자리 길 건너 건물 3층에는 커피빈이 있었는데, 볕 좋은 날 바깥 테라스에 앉아있으면 잎이 무성한 플라타너스 나무 아래차들이 다니는 도로의 풍경이 아주 멋졌다. 그런데 바람을 타고 그 카지노 쿠폰가게의 음악이 들려오는 것이다. 카페 안에서 선곡되는 곡들도 나쁘지 않았지만 비교할만한 것은 아니었다. 그 자리에서 책을 읽고 있으면 먼 나라 여행이라도 온 기분이 들었다.


뜻하지 않은 산책에서, 또 우연히 들른 카지노 쿠폰가게에서 우리는 무언가를 마주친다. 때때로 그 무엇은 오래전부터 쭉 기다려왔다거나 간절히 바라던 것은 아니라고 해도 혹시 지금 너에게 필요한 것들이 이런 것들은 아니었는지를 물어봐주곤 한다. 이런 것들에 왜 끌리는가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놓치고 있던 것들에 조금 더 다가가게 되기도 한다. 소설가 닉혼비의 얘기처럼 좋고 나쁨에 대해 말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역시 카지노 쿠폰가게를 자주 들락거리는 하루키 역시도 이렇게 말한다.

"최근에는 카지노 쿠폰에게 '좋아요'를 받고 싶어서 하고 있는 것이 많지 않을까요. 그렇지 않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이것이 좋아'라고 조용해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카지노 쿠폰에게 받고 싶어서 뭔가를 한다는 건 역시 시시하잖아요."


그래서 다시, 기를 쓰고 시간을 내어 게으른 산책에 나서며 카지노 쿠폰가게를 들락거리는 사람이 되기를 멈추지 않는다.


Yazmin Lacey - 90 degrees

https://www.youtube.com/watch?v=9Z5bANcYW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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