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1/30 얼룩소
카지노 가입 쿠폰와의 인연 시작
십수년 전 시사인이라는 잡지에 카지노 가입 쿠폰에 올레길이 생긴다는 소식이 실렸어요. 카지노 가입 쿠폰에 올레길을 만드신 분은 서명숙 이사장님이고, 이분은 카지노 가입 쿠폰가 고향이시고 시사인의 전신인 시사저널에서 오랜 기간 기자로 활동하셨어요. 그 인연 때문인지 올레길 관련 소식을 시사인이 가장 먼저 전했고, 마침 시사인을 창간 때부터 열심히 봐온 저는 이를 아주 관심있게 지켜보았죠. 올레길 오픈 날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직장 때문에 갈 수는 없었어요.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저는 오랜 염원이었던 세계여행을 위해 직장을 그만 두고 긴 시간 해외로 나가게 돼요. 카지노 가입 쿠폰는 까맣게 잊은 채. 장기간 여행을 다녀온 뒤 새로운 삶을 시작하다 잠시 머리를 식히고 싶었어요. 그때 떠오른 게 카지노 가입 쿠폰였고, 올레길이었어요. 걷는 걸 정말 좋아하는 제게 딱이었죠. 그렇게 갑자기 비행기표를 끊고 이틀만에 카지노 가입 쿠폰로 날아왔어요.
카지노 가입 쿠폰는 고등학교 수학여행으로 다녀간 이후 처음이었어요. 올레길 1코스 근처에 숙소를 잡고 다음날 아침 일찍 올레길을 걷기 시작했어요. 그 올레길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났어요. 올레길이라는 게 한 길로 이어져 있고, 비슷한 시간대에 출발을 하면 계속 비슷한 간격으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게 돼요. 남편은 한 친구와 길을 걷고 있었고, 저는 혼자였어요. 그렇게 걷다가 서로 말을 섞게 됐고 인연이 이어졌어요. 연애하면서 둘다 카지노 가입 쿠폰도에 살고 싶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하지만 아무 연고도 없는 카지노 가입 쿠폰에 터를 잡는다는 게 뜬구름처럼 여겨졌어요. 결국 그냥 원래 살던 곳 주변에 신혼집을 구해 살았죠. (나중에 서명숙 이사장님을 실제로 뵀어요. 저희 사연을 듣고 왜 결혼식에 부르지 않았냐고 물으셨죠. 요즘도 가끔 저희 카페에 들르세요.)
카지노 가입 쿠폰로의 이주 결정
남편은 IT업체에 다녔는데, 일주일 내내 하는 야근을 너무나 당연히 생각하는 곳이었어요. 제대로 수당도 챙겨주지 않으면서 사람을 잘도 부려먹었죠. 싱글일 때는 잘 버티던 남편은 결혼한 뒤에도 같은 생활이 지속되자 너무 힘겨워했어요. 사람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분위기 속에서 노동 착취를 당한다는 느낌이 강했던 것 같아요. 점점 인상이 험악해지는 남편을 지켜보다가 문득 카지노 가입 쿠폰가 떠올랐어요. 그리고 남편에게 말했어요. 카지노 가입 쿠폰로 가자. 제 말을 들은 뒤 남편이 보여준 표정을 전 잊지 못해요. 결혼 후 그렇게 밝은 남편의 얼굴은 처음 봤거든요.
아이는 생각만큼 쉽게 생기지 않았고, 둘만 살았던 터라 결정이 더 쉬웠던 것 같아요. 뭐라도 해먹고 살 수 있겠지. 남편과 저의 커리어를 살려 일자리를 구하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어요. 그럼 무얼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카페를 생각했어요. 숙소는 아무래도 규모가 좀 있어야 하는데 저희는 가진 돈이 별로 없었거든요. 카페라면 작게라도 시작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전 그때부터 카페에 일자리를 구해서 로스팅부터 다양한 경험을 쌓기 시작했어요. 남편은 이주하기 전까지 직장생활을 지속했고요. 가슴 속에 사표를 넣어두고 다녀서인지 남편의 얼굴은 이전처럼 어둡지 않았어요.
조금씩 카지노 가입 쿠폰 이주 열풍이 불기 시작하던 시기였어요. 올레길을 계기로 카지노 가입 쿠폰의 속살을 알게 된 많은 사람들이 카지노 가입 쿠폰행을 택했죠. 이명박, 박근혜 정권 시기였는데, 이런 정치적인 분위기와 연관이 있다고 저는 보고 있어요. 당시 이주민들은 대체적으로 진보적인 성향을 많이 띄고 있었어요.(제 주변이라 꼭 맞지는 않아요.) 기존의 사회체제를 거부하고 이주를 해온 사람들이었으니까요. 그래서 당시 카지노 가입 쿠폰로의 이주가 아니라 이민이라는 말이 쓰이기도 했어요.
실제 정착하기
제가 올 당시만 해도 땅값이 많이 비싸진 않았어요. 조금 오른 상태이긴 했지만 심한 정도는 아니었어요. 가지고 있는 돈이라곤 신혼집 전세금 밖에 없었고, 남편 신용대출로 작은 땅을 살 수 있었어요. 바닷가에 사는 건 자신이 없었고, 동떨어진 곳도 좀 두려워서 마을 중간에 터를 잡았어요. 그리고 작은 카페가 달린 집을 지었죠. 지금 생각해보면 참 겁이 없었던 것 같아요. 평생 거의 아파트에만 살아온 저는 외지에 땅을 산 것도 처음이었고, 집을 짓는 것도 처음이었어요.
없는 돈 있는 돈 다 끌어모아 간신히 집을 지었어요. 남편과 저는 처음 갖는 집이었기에 혹시 신혼부부의 내집마련 정책을 통해 대출을 받을 수 있을까 알아봤는데, 전혀 없더군요. 이런 정책은 모두 도시 아파트를 대상으로 하고 있어요. 저희처럼 시골에 집을 짓는 경우에는 어디에서도 도움을 받을 수 없었죠.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인 지방러가 됐다는 걸 이때 실감했던 것 같아요. 우리도 신혼인데, 지방에 자리를 잡는다는데 왜 아무런 지원을 받을 수 없을까 크게 실망을 했죠. (집을 지으면 십 년 늙는다는 말이 있어요. 그 말을 절절히 공감하며 집을 지었죠. 그 얘기는 굳이 꺼내지 않아요. 상처라. 여기 계시는 대부분 이주민들은 이런 사연을 갖고 계세요. 마치 남자들 군대이야기처럼, 여자들 아기 낳는 이야기처럼, 이주민들 집짓는 고통기랄까요.)
남편과 평생 싸울 걸 그때 다 싸웠다는 말을 가끔 해요. 집을 짓는다는 건 계속 선택해야 하는 일이고, 그 수많은 선택 속에서 참 많이 싸웠어요. 카페를 운영하면서도 서로의 일하는 스타일이 맞지 않아 다투는 일이 많았죠.(웬만하면 부부가 같은 공간에서 일하는 게 아니라는 어른들의 말씀은 새겨들어야 합니다.) 처음에는 주변 이주민들과 제법 어울려 지냈어요. 먼저 가서 인사를 건네기도 하고, 저희에게 인사를 하러 오는 경우도 많았고요. 그렇게 이주라는 공통점을 가진 사람들끼리 모여 함께 술도 마시고, 새로운 터전에서의 고충을 함께 나누었죠.(택배가 바람 한 번 불면 일주일이 넘도록 안 온다, 백화점은 바라지도 않고 유니클로 -지금은 매장이 있는데 그때는 없었어요. 일본과의 관계도 나쁘지 않았던 시기고요- 라도 들어왔으면 좋겠다, 공사가 끝이 안 난다 등등)
이주해온 지 얼마 안돼 저는 제가 의도하지 않은 미움을 받기도 했어요. 그저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곳에서 시작한다는 이유로 뒷말을 퍼뜨리는 사람이 있었죠. 어디를 가나 이런 사람들이 있나봐요. 그때 상처를 많이 받았어요. 낯선 곳에서의 시작이었기에 더 그랬던 것 같아요. 내가 아무 짓도 하지 않아도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구나 싶어 억울했어요. 아파트가 많은 도시는 익명의 사회지만, 여기는 달라요. 대부분 주택에 살고 장사를 하죠. 장사를 한다는 건 지역 사회에서 공인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얼굴과 이름이 알려지니까요. 처음에는 이런 부분에 적응이 잘 안 됐어요. 도시에서만 살아와서 더 그랬던 것 같아요. 상처를 한 번 받은 뒤로는 그저 타인의 삶에 신경은 끄고, 내 삶에 집중하자고만 다짐했던 것 같아요.
카지노 가입 쿠폰 토박이분들 때문에 힘들지 않느냐는 말을 종종 듣는데, 제 경우에는 별로 그렇진 않았어요. 처음에는 집 짓는 것부터 이래라, 저래라 훈수 두시는 어르신들이 많았는데 카지노 가입 쿠폰 이주민이 겉잡을 수 없이 많아지자 여기 삼춘(카지노 가입 쿠폰는 이웃 어른들을 이렇게 불러요.)분들도 관심을 거두시더라고요. 아이를 낳고 키우는 걸 보시면서부터는 흐뭇해하시고 더는 간섭을 안 하시더라고요. 카지노 가입 쿠폰어에 적응하는 건 처음엔 좀 힘들었어요. 젊은 분들은 놀랍게도 표준어를 잘 구사하시지만 연세가 많으신 삼춘들은 도통 못 알아듣겠더라고요. 지금은 이것도 많이 적응돼서 대충 문맥상 알아들으며 소통하고 있어요.
카지노 가입 쿠폰에서 먹고살기
카지노 가입 쿠폰에 정착해온 초기에는 정신없이 보냈어요. 카페가 안정을 찾아야 했기에 거기에만 온통 신경을 집중했죠. 일년쯤 지나 이제는 좀 안착을 했구나 싶을즈음에 아이가 찾아 왔어요. 그렇게 원했던 아기였는데, 아기없이 살지 뭐 하고 포기할 때쯤 저희 부부에게 아기가 왔어요. 아기를 낳고부터는 더 카페와 저희 가정만을 위해 살아온 것 같아요. 상처받지 않고 내 삶에 집중하는 게 더 낫기도 했고요.
초창기 카페는 저희만의 시그니처 메뉴가 나름 유명세를 타서 적당히 먹고 살만큼 벌며 운영할 수 있었어요. 장사도 처음이었고, 카지노 가입 쿠폰에서 사는 것도 처음이라, 그때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던 것 같아요. 관광지에서 장사한다는 게 어떤 것인지 잘 알지 못했죠. 연차가 더해가면서 슬슬 관광지 장사에 눈을 뜨기 시작해요. 카지노 가입 쿠폰에서 사건사고가 벌어지면 관광객수는 급감하더라고요. 게스트하우스 살인사건 같은 게 전국적으로 이슈가 되면 몇 달은 손님이 없었어요. 직격타는 사드였죠. 저희는 대부분의 손님이 내국인이었는데도 타격이 컸어요. 중국인 관광객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자리에 호텔이나 리조트는 내국인을 대상으로 각종 프로모션을 진행했죠. 내국인 관광객이 중국인 자리를 메우면서 상대적으로 유명 관광지가 아닌 곳도 타격을 입었어요. 이주민은 점점 늘어나 여기저기 숙소며 카페가 많아진 시점이라 여파는 상당했어요.
그때 버티지 못하고 카지노 가입 쿠폰를 떠난 분들이 많아요. 여기저기에서 매물이 쏟아졌고, 오른 시세대로 팔려는 사람들도 많았죠. 카지노 가입 쿠폰 집값이 폭등했다는 뉴스 때문에 다들 카지노 가입 쿠폰에 정착했다고 하면 돈을 엄청 많이 번 줄 아세요. 그렇지만 실제 시세에 거래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죠. 매물이 많다보니 내놓은 시세에서 몇 억씩 깎아 팔고 나가신 분들이 많아요. 돈을 번 사람은 원래 카지노 가입 쿠폰에 땅이 많았고 그 땅을 최고 시세에 팔았던 몇몇 분들이죠. 서울의 집값과 카지노 가입 쿠폰의 집값은 태생부터가 달라서 아무리 오른다 해도 한계가 있어요. 실거래가도 그렇고요. 최근에는 서울 집값이 너무 오른 반면 카지노 가입 쿠폰 외곽은 전혀 오르지 않았어요. 상대적인 박탈감을 많이 느꼈죠. 제가 한 선택이라 결국 마음을 다잡았지만요.
가끔씩 팔 년이라는 시간동안 이 작은 카페로 어떻게 먹고 살았나 생각하면, 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희 동네만 해도 저희 카페가 1호였는데 지금은 15~20개 남짓한 카페가 있어요. 아주 작은 마을인데도요. 저를 아시는 주변 분들도 대체 어떻게 카페로 먹고 사느냐고 질문을 해오시기도 해요. 카페는 사실 별로 남는 장사가 아니에요. 저도 직접 해보기 전에는 잘 몰랐어요. 원두시세에 비해 한 잔의 커피값이 높으니 많이 남을 것 같지만, 유지비에 각종 세금을 내고나면 남는 돈이 별로 없어요. 테이블당 단가가 낮아서 만석이 되어도 저희처럼 작은 카페의 하루 매출은 보잘 것 없을 때가 많아요.
게다가 이주 초창기와는 달리 시간이 지날수록 오른 땅값 만큼이나 상대적으로 자금이 여유로운 분들이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도미토리를 중심으로 하던 게스트하우스에서 고급스런 단독민박 위주로 숙소도 변화됐죠. 카페는 점점 규모가 커지고, 인테리어가 다양해지기 시작했어요. 손수 페인트 칠해 만든, 규모도 작은 저희 카페는 경쟁력이 점점 떨어질 수밖에 없었죠. 사람들은 신상을 좋아하니까요. 카페도 신상, 숙소도 신상, 한국에서 장사를 잘 하려면 몇 년마다 인테리어나 메뉴를 싹 바꿔야 해요. 유행은 빠르게 변하고 소비자들의 입맛은 까다로워지니까요.
그런데 장사를 하면서 현상유지도 어려운데 유행에 따라 손을 대기란 여간 힘든 게 아니예요. 그런 돈을 모았을리도 만무하죠. 결국 장사도 돈이 많고 눈치 빠른 사람들이 잘 적응해갈 수 있는 생태계예요. 그나마 저희는 임대료와 인건비가 나가지 않아 팔 년을 버텼어요. 육지에 살았다면 당연히 반대했을 제2공항 문제에 적극적으로 반대의사를 표시하지 못한 것도, 우리집이 저 집보다는 조금더 버티기를 바라기 시작한 것도 다 먹고 사는 문제 때문이었어요. 돈은 때로 사람이 사람다움을 포기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그러다 코로나가 터졌죠. 카지노 가입 쿠폰는 다시 급변하기 시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