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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cis Lee Mar 30. 2025

6. 카지노 게임 이 세상 권력을 추구하지 않은 이유는?

하늘나라는 이 세상의 왕국이 아니다.

기독교의 모태인 유대교는 원래 지상천국을 꿈꾸는 종교다. 그래서 내세나 부활에 대한 관념이 부족했다. 물론 바리사이들은 영계와 부활을 믿었기에 유대교 전체가 내세관이 없다고 볼 수는 없다. 그리고 하시딤파에서 갈라져 나온 에세네파와 더불어 선택된 자들로 구원을 기대한 것에서 카지노 게임 계파와 비슷한 내세관을 지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카지노 게임 생존 당시에 정치적 종교적으로 막강한 세력을 발휘하던 사두가이파는 영계와 부활을 안 믿었다. 그리고 언젠가 다윗과 같은 기름부음받은 자. 곧 지상의 유대 왕국을 통치하는 왕인 메시아가 나올 것을 믿었다. 그런데 카지노 게임는 그런 의미의 지상 왕국의 도래를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는 늘 제자들에게 하늘나라만 강조한 것이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의 권력과 출세를 무시했다.


문제는 카지노 게임를 따르던 제자들 가운데 상당수가 그가 유대교가 바라는 메시아, 곧 다윗의 후손으로 유대 왕국을 다시 일으켜 세울 것으로 기대했었다는 사실이다. 그런 제자들에게 카지노 게임는 한사코 자신이 그런 정치적 왕이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그러나 많은 제자는 그의 말을 믿지 않고 언젠가 카지노 게임가 로마 제국에 맞서 유대 왕국을 다시 세울 것을 기대했다. 그러나 카지노 게임는 무기력하게 정치 종교 기득권 세력에 잡혀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그 당시 로마의 통치를 받던 유대 왕국에서 십자가형은 극악한 범죄자가 받는 형벌이었다. 메시아로서 유대민족의 영웅적 지도자가 되기를 바랐던 제자들의 충격과 실망은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그러나 카지노 게임의 제가 가운데 극히 일부는 카지노 게임가 죽고 나서 그의 가르침을 재해석하고 내세관을 키웠다. 특히 카지노 게임 부활 사건과 오순절 사건으로 카지노 게임교, 곧 오늘날의 기독교가 수립되는 역사가 전개된 것은 이들 극소수의 카지노 게임 제자들이 있기에 가능했다. 정확한 숫자는 알 수 없지만 카지노 게임가 가장 인기 있을 때 그를 추종하던 제자들은 2만 명 정도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카지노 게임가 죽고 나서 이른바 ‘다락방 공동체’에 모인 이들은 최대 수십 명에서 수백 명이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이들은 70년 예루살렘 파괴 이후 해체되고 바울이 소아시아에 세운 ‘교회 공동체’로 대체되고 만다. ‘정통’ 카지노 게임 공동체는 사라지고 ‘짝퉁’ 바울 공동체가 살아남은 것이다. 역사의 아이러니지만 그 종교적 이유는 문자 그대로 신앙의 신비일 뿐이다. 그런데 순수한 종교 공동체로 세력을 키워나가던 기독교가 콘스탄티누스와 그의 아들 테오도시우스 덕분으로 로마 제국의 국교가 되고 그 전통을 유럽 제국이 이어가면서 강력한 정치 세력이 되어 버렸다. 카지노 게임가 바라던 것과는 정반대의 신성한 (기독교) 로마 제국이 지상에 수립된 것이다.


카지노 게임는 정치권력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리고 늘 자신이 말하는 왕국은 하늘의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래서 그가 가르친 이른바 주기도문에서도 신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지기를 바란 것이다. 카지노 게임가 말한 신의 뜻은 무엇인가? 그것은 무엇보다 신의 나라가 오는 것이다. 신의 나라가 온다는 것은 신의 통치가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지상의 인간 정치가들의 통치를 대체하는 신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세상이 바로 하늘나라다. 그런데 그런 신의 통치는 이미 하늘에서는 이루어졌다. 신이 거주하는 곳이 하늘이니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그런 신의 통치가 카지노 게임 당시에는 지상에서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카지노 게임는 하늘나라가 가까웠다고 선언한 것이다. 아직 하늘나라가 안 온 것이다. 하늘나라는 신이 통치하는 다시 말해서 신의 뜻이 펼쳐지는 나라다. 그런데 그 나라는 인간이 살고 있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 카지노 게임가 빌라도와 나눈 대화에 나오는 말이다.


그리하여 빌라도가 다시 총독 관저 안으로 들어가 카지노 게임님을 불러, “당신이 유다인들의 임금이오?” 하고 물었다. 카지노 게임님께서는 “그것은 네 생각으로 하는 말이냐?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나에 관하여 너에게 말해 준 것이냐?” 하고 되물으셨다. “나야 유다인이 아니잖소? 당신의 동족과 수석 사제들이 당신을 나에게 넘긴 것이오. 당신은 무슨 일을 저질렀소?” 하고 빌라도가 다시 물었다. 카지노 게임님께서 대답하셨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다면, 내 신하들이 싸워 내가 유다인들에게 넘어가지 않게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하지 않는다.” 빌라도가 “아무튼 당신이 임금이라는 말 아니오?” 하고 묻자, 카지노 게임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임금이라고 네가 말하고 있다. 나는 진리를 증언하려고 태어났으며, 진리를 증언하려고 세상에 왔다. 진리에 속한 사람은 누구나 내 목소리를 듣는다.” 빌라도가 카지노 게임님께 말하였다. “진리가 무엇이오?”(요한 18,33~38)


그런데 요한복음에 나오는 이 장면이 공관복음에도 나오지만 한결같이 요한복음보다 간결하다. 공관복음보다 훨씬 후에 쓰인 것이 요한복음이니 이 이야기를 더 꾸며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요한복음의 장황한 설명은 이 쓰인 시기 곧 200년 경의 기독교 신자들의 신앙을 반영한 것이니 원래 카지노 게임 공동체보다는 바울이 세운 ‘제도 교회’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고 보인다.


분명한 것은 카지노 게임의 제자들이 지상 통치를 강하게 원했지만 카지노 게임는 한사코 아버지의 뜻을 실천에만 집중했다는 사실이다. 카지노 게임는 자신의 사명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나는 내 뜻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실천하려고 하늘에서 내려왔기 때문이다.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은, 그분께서 나에게 주신 사람을 하나도 잃지 않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것이다. 내 아버지의 뜻은 또, 아들을 보고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 나는 마지막 날에 그들을 다시 살릴 것이다.(요한 6,38~40)


결국 기독교에서 생각하는 카지노 게임 강생의 목적은 신을 믿는 이들에게 영생을 보장하는 것이 된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 영생이 모두에게 보장된 것은 아니다. 카지노 게임가 카지노 게임의 제자에게는 대단한 존재였지만 그를 잘 아는 사람들에게는 다음에 나오는 대로 ‘하찮은’ 존재였다.


그들이 말하였다.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 카지노 게임가 아닌가?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도 우리가 알고 있지 않는가? 그런데 저 사람이 어떻게 ‘나는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러자 카지노 게임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너희끼리 수군거리지 마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 그리고 나에게 오는 사람은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릴 것이다. ‘그들은 모두 하느님께 가르침을 받을 것이다.’라고 예언서들에 기록되어 있다.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배운 사람은 누구나 나에게 온다. 그렇다고 하느님에게서 온 이 말고 누가 아버지를 보았다는 말은 아니다. 하느님에게서 온 이만 아버지를 보았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요한 6,42~47)


여기에서 카지노 게임는 다시 한번 영생을 강조한다.


카지노 게임는 결국 이 세상에서 정치권력을 쥐러 온 것이 아니라 인간이 영생을 누릴 것이라는 소식을 전하러 온 것이라는 말이 된다. 왜 영생인가? 인류의 조상인 아담과 이브는 에덴동산 한가운데 있는 선과 악을 구분하는 지혜를 주는 나무 열매를 따 먹고 나서는 에덴의 동쪽으로 쫓겨나 아이를 낳고 기르며 살다 나이가 들면 죽는 존재가 되어 버렸다. 아담과 이브가 선악을 구분할 줄 알게 되자 신은 다음의 성경 구절대로 인간이 신처럼 영원히 살게 될 것을 두려워한 것이다.


주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자, 사람이 선과 악을 알아 우리 가운데 하나처럼 되었으니, 이제 그가 손을 내밀어 생명나무 열매까지 따 먹고 영원히 살게 되어서는 안 되지.” 그래서 주 하느님께서는 그를 에덴동산에서 내치시어, 그가 생겨 나온 흙을 일구게 하셨다. 이렇게 사람을 내쫓으신 다음, 에덴동산 동쪽에 커룹들과 번쩍이는 불 칼을 세워, 생명나무에 이르는 길을 지키게 하셨다.(창세 3,22~24)


그렇다. 신은 신과 같이 선악을 구분하는 지혜를 지닌 인간이 영생을 누리는 것을 견디기 힘들었다, 그래서 내친 것이다. 그런데 그런 신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카지노 게임를 보내서 영생을 보장한 것이다. 카지노 게임가 오기 전에 인간의 특별히 신에게 잘한 것도 없는 데도 말이다. 그리고 신의 명령을 어긴 죄를 반성하고 죗값을 치른 적도 없는데 그렇다. 인간이 반성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카지노 게임의 다음과 같은 선언에서 알 수 있다.


그때부터 카지노 게임님께서는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기 시작하셨다.(마태 4,17)


카지노 게임 이전에는 하늘나라가 안 왔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 하늘나라가 올 때 인간이 갖추어야 할 조건은 회개다. 그런데 무엇을 회개해야 한다는 말인가? 그리스어 성경에 나오는 회개는 μετάνοια다. 이 단어의 원 뜻을 반성이라기보다는 생각을 바꾼다는 말이다. 곧 지금까지 해왔던 사유 방식을 바꾸라는 말이다. 곧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사는 일보다는 신의 뜻을 깨닫고 그의 뜻을 따르는 사람이 되라는 말이다. 그런데도 그 하늘나라가 지상의 왕국과 다르다는 것을 카지노 게임가 뽑은 사도들도 알지 못했다, 그래서 그들끼리 서열 다툼을 한 것이다. 그러자 카지노 게임는 다음과 같이 일갈한다.


카지노 게임님께서는 그들을 가까이 불러 이르셨다. “너희도 알다시피 다른 민족들의 통치자들은 백성 위에 군림하고, 고관들은 백성에게 세도를 부린다.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마태 20,23~28)


한마디로 카지노 게임가 말하는 하늘나라는 지상의 왕국과는 달리 왕이 백성을 섬기는 나라다. 그러니 발상의 전환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카지노 게임가 한결같이 자신이 다스리는 자가 아니라 신의 분노로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지 못하게 된 인간이 영생을 얻도록 이끄는 존재임을 강조했다. 그럼에도 제자들조차 그의 뜻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카지노 게임는 왕이 아니다. 그리고 인간을 무자비하게 지배하는 권력자도 아니다. 그저 신의 저주를 받은 인간의 조건을 원상태로 돌려 영생을 누리도록 하고자 했을 뿐이다. 그런데 제자들마저 그 뜻을 오해하고 오히려 그를 신으로 숭배하는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지르고 만 것이다. 신의 모습으로 창조된 인간의 본래 모습을 되찾으려고 하지 않고 카지노 게임를 숭배하면서 그를 더욱 멀리 있는 존재로 만들어 버렸다. 인간을 사랑하여 인간 가까이 다가온 카지노 게임를 다시 하늘로 보내버린 것이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더 큰 문제는 그런 카지노 게임를 교주로 삼은 기독교가 유럽 역사에서 정치권력과 철저히 같이 놀아나면서 인간을 섬기기보다는 군림하는 지상 권력을 추구해 왔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주교가 군주가 되는 일이 심심치 않게 일어났다. 그 결과 유럽의 거의 모든 도시의 중심에는 정치권력의 상징인 시청이 종교 권력의 상징인 교회와 나란히 서 있게 된 것이다. 카지노 게임가 전혀 바라지 않은 일이 2천 년 가까이 전개되었다. 과연 이것도 신의 뜻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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