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한강 작가와 나는 생일이 똑같다. 11월 27일. 그래서 그런가. 나는 그의 글에서 묘한 동질감을 느낀다.
동질감의 시작은 <채식주의자였다. <채식주의자에서 영혜가 육식을 거부하고 일상적 폭력의 구조물이 드러났을 때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영혜는 동물성을 거부하고 식물이 되기를 갈망하지만,동물적 폭력을 제거한 '카지노 게임 추천'는 죽음으로 귀결된다.
<호밀밭의 파수꾼에서도 비슷한 것을 느낀 적이 있다. 홀든은 기득권의 위선을 까발리고 변덕스럽고 충동적인 선택을 하는데, 그 기저에는 옛 친구 제인과 죽은 동생 앨리에 대한 기억이 있다. 홀든은 제인과 앨리의 카지노 게임 추천성, 그 특별한 개별성이 훼손되어 납작하게 해석되는 것을 견디지 못했다.
영혜와 홀든의 공통점은 '카지노 게임 추천'를 갈망하여 세계와 불화한다는 것이다. 한강이 <채식주의자를 쓰며 던진 질문은이것이었다. 살아있는 인간이 결백한 '카지노 게임 추천', 즉 '흰' 것을 실현할 수 있는가.
안타깝게도 폭력을 지운 카지노 게임 추천한 세계, 악이 없는 카지노 게임 추천한 선(善)은 살아 있는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는다. 선은 이루어지는 동시에 악을 배태한고, 선이 선의 지위를 얻는 순간 권력의 도구가 된다. 우리가 살아가는 유동적 세계에서 절대적 '카지노 게임 추천'는 존재할 수 없다. 오직 죽은 것, 정지한 것, 부재한 것에만 '카지노 게임 추천'의 옷을 입힐 수 있다.
'카지노 게임 추천'는 존재하지 않지만, '카지노 게임 추천한 순간'은 있다. 홀든이 아이들을 지키는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 말한 그 순간, 동생 피비가 오빠를 따라 나오는 올망졸망한 순간에, 한강 작가가 말한 '인간의 가장 연한 부분'이 드러난다. 우리는 그런 '흰' 순간에 우리의 본성에 내재한 카지노 게임 추천를 느낀다. 카지노 게임 추천의 순간은 우리를 변화시킨다. 유동적 세계에서 더 나은 것, 더 선한 것, 더 옳은 것을 지향하여 움직이게 한다.
다시 말해 한강 작가가 찾던 '흰' 것은 카지노 게임 추천 그 자체라기보다는 가능성으로 우글거리는 잠재태이고, 변화 가능성이고,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카지노 게임 추천한 순간'이다. 한강은 결백한 '카지노 게임 추천', 즉 우리가 다시 돌아가야 할 침묵의 세계이자 죽음을 딛고 일어섰다. 그리고 비로소 '조잡하고 비루한 삶이더라도 우리는 끝내 살아야 하지 않는가' 라는 질문으로 나아갔다.
좋은 문학은 이처럼, 죽음을 잊지 않되 삶을 향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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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실, 한강
p12 하나의 장편소설을 쓸 때마다 나는 질문들을 견디며 그 안에 산다. 그 질문들의 끝에 다다를 때-대답을 찾아낼 때가 아니라-그 소설을 완성하게 된다. 그 소설을 시작하는 시점과 같은 사람일 수 없는, 그 소설을 쓰는 과정에서 변형된 나는 그 상태에서 다시 출발한다. 다음의 질문들이 사슬처럼, 또는 도미노처럼 포개어지고 이어지며 새로운 소설을 시작하게 된다.
<채식주의자 한 인간이 완전하게 결백한 존재가 되는 것은 가능한가? 우리는 얼마나 깊이 폭력을 거부할 수 있는가?
<바람이 분다, 가라 마침내 우리는 살아남아야 하지 않는가?
<희랍어 시간 인간의 가장 연한 부분을 들여다보는 것-그 부인할 수 없는 온기를 어루만지는 것-그것으로 우리는 마침내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이 덧없고 폭력적인 세계 가운데에서?
p34 돌아보면 제가 문학을 읽고 써온 모든 시간 동안 이 경이의 순간을 되풀이해 경험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언어라는 실을 통해 타인들의 폐부까지 흘러 들어가 내면을 만나는 경험. 내 중요하고 절실한 질문들을 꺼내 그 실에 실어, 타인들을 향해 전류처럼 흘려 내보내는 경험.
어렸을 때부터 궁금했습니다. 우리는 왜 태어났는지. 왜 고통과 사랑이 존재하는지. 그것들은 수천 년 동안 문학이 던졌고, 지금도 던지고 있는 질문들입니다. 우리가 이 세계에서 잠시 머무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이 세계에서 우리가 끝끝내 인간으로 남는다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요? 가장 어두운 밤에 우리의 본성에 대해 질문하는, 이 행성에 깃들인 사람들과 생명체들의 일인칭을 끈질기게 상상하는, 끝끝내 우리를 연결하는 언어를 다루는 문학에는 필연적으로 체온이 깃들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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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한강
p87 오래전 그녀는 바닷가에서 흰 조약돌을 주웠다
- 침묵을 가장 작고 단단한 사물로 응축시킬 수 있다면 그런 감촉일 거라고 생각했다.
<해설: 우리가 인간이라는 사실과 싸우는 일은 어떻게 가능한가? (문학평론가 권희철)
p164-165 모든 인간 존재의 근본에는 어떤 결핍의 원리가 있기 때문에 바로 그 결핍으로 인해서 타자의 이의 제기와 부인에 노출되고, 절대적 내재성(혹은 자율성)에 대한 환상을 포기할 수 있다. 바로 그 노출과 포기 속에서, 타자에 의해 나의 실존이 근본적으로 부단히 의문에 부쳐지고 있다는 그 점에서 나는 나 스스로를 뛰어넘을 수 있는 가능성을 이끌어낼 수 있다. 그러므로 결핍은 충만함의 반대가 아니라 오히려 초과로 이어진다. 이 초과를 위해 인간은 타자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p169-170 모든 ` 존재자'들이 있기 위해서는 그것들을 개방하는 '존재'의 차원이 앞서야만 한다고 할 때 바로 그 존재'가 이를테면 '흰'빛이다. 그러므로 '흰'은 단순한 하얀색이 아니다. 그것은 모든 색들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며, 그것의 밑바닥 어디에선가 잠재태의 색채들이 현실화의 표면을 향해 우글거리며 올라오는 중이다.. 그러므로 '흰'은 하얗지 않고 카지노 게임 추천하지 않고 잡(雜)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