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을 켜본 적이 없는 카지노 게임에 관하여
성냥을 수집했다. 성냥이라는 물건 자체보다, 그것이 담긴 종이 상자의 디자인에 마음이 끌렸다. 모서리가 닳아 있는 극장의 광고 성냥, 지금은 없어진 다방의 전화번호가 적힌 것, 빛바랜 호텔의 로고. 어떤 성냥은 처음부터 불을 낼 생각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너무 얇거나, 눅눅하거나, 아니면 불이 붙자마자 바싹 끊어지는 것들. 그런 성냥들을 좋아했다. 불을 피우는 데 실패한 도구들이 가진 무력함, 그 안의 어떤 정직함 같은 것을.
지금 생각해 보면, 어쩌면 성냥이 아니라 ‘시도’를 모으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실패했으나 분명히 누군가가 불을 내보려 했던 그 짧은 의지. 그것은 살아 있다는 증거이자, 어쩌면 누군가에게 무례하지 않게 말하려는 마음의 형태와도 닮았다.
말은 언제나 타이밍과 거리라고.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곧 카지노 게임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떠올렸다. 말을 건넨다는 것은, 상대의 온도를 감지하고 자신의 말을 조절하는 일이다.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숨이 막히고, 너무 멀리 떨어지면 목소리는 바람에 삼켜진다. 그래서 어떤 말은 도달하지 않는다. 아니, 애초에 도달할 수 없는 말이 존재한다. 우리는 계속해서 말을 건다. 마치 불을 피우려는 듯이, 반복해서.
도심의 높은 건물 하나를 기준점으로 삼아 약속 장소를 찾았던 적이 있다. 휴대전화 배터리가 나가버린 오후였고,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를 누비며 나는 그 회색 건축물의 그림자만을 따라 걷고 있었다.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는 마치 시간을 초월해 서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불확실한 도시의 위도 속에서, 누군가는 늘 기준점을 정해두지 않으면 길을 잃는다는 것을. 방향을 잡을 건물이 없으면, 아무리 많은 단어를 꺼내도 카지노 게임은 목적지를 갖지 못한 채 떠돈다. 허공에서 이내 소멸한다.
그런 것들을 생각한다. 무심한 척 다정하고, 말없이 가까운 존재들에 대해. 말이 아닌 방식으로 연결되는 사람들에 대해. 혹은 침묵을 통해 도달하는 언어에 대해. 카지노 게임은 아마도 봄이라는 계절 때문일 것이다. 겨울이 남긴 잔해가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그러나 새로운 생명이 막 움트기 시작한 그 틈새. 봄은 늘 그렇게 애매한 계절이다. 끝과 시작이 서로의 얼굴을 닮고 있어서, 헷갈리게 한다.
특히 토요일 아침, 별다른 이유 없이 일찍 눈을 뜨는 날이면 더 그렇다. 대기는 이상할 만큼 고요하고, 커튼 사이로 스며드는 빛이 무언가를 암시하는 듯하지만, 카지노 게임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침대에서 일어나, 오래전 받아둔 성냥 하나를 꺼내 본다. 포장을 뜯지 않은 작은 상자, 금색 테두리 속에 오래된 글씨가 적혀 있다. ‘자신의 불은 자신이 켜야 한다.’
불이 붙지 않아도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불을 붙이려는 마음이다. 그것을 삶의 방식으로 배워왔다. 사소한 기술들, 말의 거리, 침묵의 온도, 실패를 기록한 종이 성냥. 그것들을 잊지 않으려고 글을 쓴다. 아니, 글을 쓰기 위해서 그것들을 잊지 않으려 애쓴다.
이 글을 끝까지 쓸 수 있을지 모른다. 아니 끝까지 쓰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만 어떤 시작은 카지노 게임으로 충분하다. 아직 붙지 않은 불씨처럼, 언젠가 타오를지도 모른다는 가능성 하나만으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