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ed by 초조
내가 작성 중이던 학위 무료 카지노 게임을 삭제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제출을 일주일 앞둔 어느 날이었다.
논문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마무리를 짓지 못할 만큼 급한 사정이 있던 것도 아니었다. 그저 최선을 다해 논문을 쓰고 부가적인 절차들까지 모두 마무리하고 나자 이대로 논문을 제출하는 무료 카지노 게임 나답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었다.
그래, 어딘지 나답지 않다는 생각.
“너다운 게 뭔데?”
잠자코 듣고 있던 친구가 물었다. 곧이어 친구에게서 당혹스러움이 떠올랐다. 그건 나에 대한 감상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입으로 그런 드라마틱한 말을 내뱉었다는 사실로부터 비롯된 수치심 같았다. 무료 카지노 게임 덩달아 민망해져서 말을 좀 아끼고 싶어졌다. 그래서 외쳤다.
무료 카지노 게임오—
[상태이상: 닭]
자신의 생명력에 근거하여 살아있는 상태. 불시에 허공을 찢을 듯이 울고, 호기심 가득한 부리와 발톱으로 온갖 것들을 부지런히 쪼아댄다. 순간적으로 치미는 욕구와 충동을 참지 않으며, 넘치는 생명력을 주체하지 못해 종종 알을 낳기도 한다. 길들여지지 않기 때문에 그 자체로는 자원으로서 그다지 환영받지 못한다.
그렇다. 논문 제출을 일주일 앞두고 나는 ‘닭’ 상태가 되어버리고 만 무료 카지노 게임다. 그런 적 있지 않은가? 내려야 하는 역에 도착했는데 내리고 싶지 않아지거나, 혼자 여행을 가려고 짐을 꾸렸다가 갑자기 그만두고 싶어지는 것. 그 기묘한 충동에 굴복하는 날 우리는 내려야 하는 역을 지나치고, 모든 일정을 취소한 뒤 낮잠에 들곤 한다. 충동에 굴복한 스스로를 납득시키기 위해 수많은 논리가 따라붙기도 하지만 그런 합리화는 장식적인 것에 불과하다. 우리의 몸과 영혼은 살아있고 살아 있는 것들은 완벽히 길들여지지 않는다. 그러니 기묘한 충동이 드는 것도, 그 기묘한 충동을 수행하는 것도 모두 우리가 살아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 길들여지지 않는 생명력이 돌출하는 현상을 ‘닭’ 상태라고 부르고 있다. 그것을 대외적으로 얼버무려야 할 때에는 ‘나다움’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던 것 같다.
나는 수고롭게 완성한 논문을 제출하지 않겠다고, 더 나아가 되돌릴 수 없도록 파일을 삭제해 버려야겠다고 생각했고 이 충동이 ‘닭’ 상태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의 일에 대해서도 대강 짐작했다. 아마도 오타 하나 지우는 듯한 가벼운 손놀림으로 논문을 삭제하게 될 것이고, 이 소식을 들은 주변인들은 인간의 탈을 쓴 닭을 보는 듯한 표정으로 바라볼 것이며, 나는 그 사이에서 조금 외로움을 느끼면서도 살아있다는 감각에 심장이 쿵쿵 뛸 것이다. 그러고 나면 또 다른 무언가에 달려들어 바닥에서부터 몰두하기 시작하겠지. 이 대학원 생활의 끝으로서는 더없이 훌륭한 완결이었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무료 카지노 게임 한참 동안이나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기를 망설이고 있었다.
“사람은 언제 죽는다고 생각해?”
“사람들에게 잊혀졌을 때?”
친구는 시큰둥한 말투로 답했다. 그무료 카지노 게임 정론이라는 생각에 잠시 뜨끔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나다움을 잃었을 때야.”
친구가 팔뚝을 걷어 내게 내보였다.
“나 지금 무료 카지노 게임 오그라들어서 닭살 돋았어.”
무료 카지노 게임 살아있다는 증거와도 같은 그 흔적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낯설고 이상한 망설임이었다. 그러나 짐작 가는 바가 없는 건 아니었다. 대학에서는 예술을 한다는 명목 하에, 대학원에서는 순수하게 공부를 하겠다는 명목 하에 나다움을 추구하며 자유롭게 살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다를 것이었다. 이제는 적든 많든 한 사람의 생활을 꾸려나갈 만큼의 벌이가 필요하고, 그걸 위해서는 사회에 적응하여 쓸모를 증명해야 한다. 생활인으로 발돋움할 때가 오고야 만 것이다.
생활인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당장의 오늘이 아닌 한참 동안의 앞날을 생각하며 살아간다는 의미였다. 그것은 늘 밑바탕에 모종의 불안을 깔고 있다. 미래의 불확실함 속에서 스스로를 구제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불안은 탐욕을 불러일으킨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가능한 한 더 많은 것들을 쟁여두고 싶어 한다. 논문 제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먹고사는 일에 있어서 학위가 필요한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일단은 학위를 얻어두고 싶다는 무료 카지노 게임 생활인으로서의 불안감이고 탐욕이었다.
이런 불안과 탐욕이 돌발 행동으로 스스로를 불안정한 상태로 몰아넣는 ‘닭’ 상태를 용납할 리 없었다. 생활인이 되기 위해, 더 이상은 길들여지지 않는 ‘닭’ 상태의 나를 내버려 둘 수 없는 시기가 왔다는 사실을 깨닫자 어쩌면 이 논문을 삭제하고자 하는 충동이 ‘닭’으로서의 마지막 발악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닭’은 이대로 가면 자신이 ‘닭고기’가 되고야 말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만 것일지도 모른다. 살아 있지 않는 대신에 무료 카지노 게임에 쓸모 있는 자원으로 가공된 ‘닭고기’ 말이다.
“To be, or Not to be(죽느냐, 사느냐).”
무료 카지노 게임 한 마디로 그 상황을 일축하고자 했다.
“닭치고는 거창한 문제의식인데.”
“닭에게도 닭의 운명과 고뇌가 있는 법이야.”
“그래서 결국 무료 카지노 게임은 어떻게 했어?”
이제 그만 결론을 말해주길 바라는 친구의 말에 나는 목을 가다듬었다. 평소라면 이쯤에서 다시 한번 다시 닭 울음소리를 낼 타이밍이었던 무료 카지노 게임다. 미리 내 목청을 가늠하려는 듯 가늘어진 친구의 눈을 바라보면서 나는 어설프게 웃어 보였다.
막연한 불안과 맥 빠진 충동 사이에서 망설이는 동안 시간은 흘렀다. 방아쇠를 당긴 뒤 아무리 기다려도 총알이 발사되지 않은 사람처럼 몹시 초조했던 것 같다. 논문을 제출하지 않는 행위로 얻을 수 있는 무료 카지노 게임 아주 보잘것없고 아무것도 아닌 것 같다가도, 아무것도 아닌 행위를 저지를 수 있는 용기를 얻고 싶다는 소망을 곱씹기를 수 차례.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을 때, 나는 내게서 ‘닭’의 누린내와는 다른 고소한 향미가 나는 것을 느꼈다.
[상태이상: 닭고기 (혹은 치킨)]
자원으로 가공된 존재. 더 이상 목을 흔들지도, 날지 못하는 날개를 퍼덕이지도, 울음소리를 내지도 않는다. 무료 카지노 게임에 필요한 존재가 되었지만 더 이상 살아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식탁 위에 올라 식욕을 돋우는 향미를 풍길 준비를 마쳤지만, 처리가 미흡한 경우 향미를 뚫고 누린내가 나는 경우가 있다.
결국 나는 논문을 제출했다. 무료 카지노 게임 나가기 위해, 적응하기 위해 ‘닭’이 아닌 ‘닭고기’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아직은 팔딱팔딱 뛰는 심장을 육질 속에 숨긴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