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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에 Feb 28. 2025

존재무료 카지노 게임 곳에서 사유무료 카지노 게임가

[ 문장보관소 ] 02

#<정의를 위하여(강남순, 2016, 동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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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적 사유는 새로운 변혁을 모색하기 위한 비판적 저항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한나 아렌트 Hannah Arendt는 "위험한 사상이란 없다. 사유하는 것 자체가 위험한 것이다"라고 했다.

p. 14

_ 변혁을 바라면 사유하라. 이 조건이 충족되어야 자기 혁명이 시작될 수 있다. 사유는 내가 내 안에서 '새로운 가능성' 찾아 주체성이 확립시키는 원료가 된다. 그 힘으로 민주적인 사회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동력이 만들어진다. 그러나 쉽지 않다. 나-타자-세계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들과 씨름하는 힘겨운 투쟁의 과정이다.



개천 비하와 용 지향적 정치관이 지니고 있는 결정적인 인식론적 오류가 있다....

'개천에서 용 나는 사회'를 지향하는 정치적 비전은 이러한 존재의 공생적 유기성을 보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세계는 개천에서 솟아 나와 권력과 부를 향유하는 극소수의 용을 선망하고 양산해 내는 사회가 아니다. 오히려 그 개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도록 개천 자체를 살 만한 공간으로 만드는 사회이다.

p.70

_ 우리가 잘 사는 유일한 길은 '공존'이다. 상호 의존적인 사회 관계망 속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할 수 있는 길이다. 그것을 개천에서 살고 있는 다수의 보통 사람들의 표현으로 바꾸면 '함께 (일)무료 카지노 게임 재미'이다. 이를 위해서 요구되는 것은 단 하나다. 개천이건 용이 사는 어느 곳이건 관계없이 '우리의 문제를 공유하는 문화'의 정착이다.



그람시는 이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에 무관심한 사람들은 인간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기생무료 카지노 게임 것'이라고 했다. 또한 무관심은 인간의 지성을 파괴하면서 역사 속에서 더욱 나은 세계를 향한 최선의 계획들을 뒤틀고 망가뜨리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봤다.

p.82

_무플보다 악플이 낫다, 는 것을 알면서 무관심이 습관이 되는 이유는 적극적인 도피다. 겉으로는 정의, 평등, 평화를 외치더라도 어느 쪽으로 움직일 것인가를 끊임없이 계산하는 것이다. 내면이 아닌 외면의 지배를 받는 노예의 길을 선택하는 것이다.



시인 기형도는 <정거장에서의 충고라는 그의 시를 "미안하지만 나는 이제 희망을 노래하련다"라고 시작한다. 'n포 세대'라고 사람들이 말을 해도 우리는 이제 "미안하지만 희망을 창출하고, 갈망하고, 노래해야 한다. 여러 가지가 낙관적이어서가 아니라 절망적이기에 더욱 절절한 희망을 부여잡고 있어야 한다. 나나 우리만이 아니라 너와 그들이 그 어느 것에 의해서도 차별받거나 존재가 부정되지 않고 함께 살아가는 세계를 꿈꾸는 것, 이러한 희망은 사치가 아니다. 우리는 희망한다. 고로 존재한다.

p.219

_ n포 세대도 십 년 넘게 더 늙었다. 하지만 세상은 여전히 활력이 넘친다. 그 활력에 슬쩍 올라앉아 '그냥' 희망을 노래하자. 희망반대말은 절망이 아니다. 두려움을 핑계로 삼아 몸집을 불리는 무관심을 먹이로 무료 카지노 게임 안/주이다.



정거장에서의 충고

기형도

미안하지만 나는 이제 희망을 노래하련다

마른나무에서 연거푸 물방울이 떨어지고

나는 천천히 노트를 덮는다

저녁의 정거장에 검은 구름은 멎는다

그러나 추억은 황량하다

군데군데 스러져 있던

개들은 황혼이면 처량한 눈을 껌벅일 것이다

물방울은 손등 위를 굴러 다닌다

나는 기우뚱 망각을 본다

어쩌다가 집을 떠나 왔던가

그곳으로 흘러가는 길은 이미 지상에 없으니

추억이 덜 깬 개들은 내 딱딱한 손을 깨물 것이다

구름은 나부낀다, 얼마나 느린 속도로 사람들이 죽어갔는지

얼마나 많은 나뭇잎들이 그 좁고 어두운 입구로 들이닥쳤는지

내 노트는 알지 못한다

그동안 의심 많은 길들은

끝없이 갈라졌으니 혀는 흉기처럼 단단하다

물방울이여, 나그네의 말을 귀 담아선 안된다

주저앉으면 그뿐, 어떤 구름이 비가 되는지 알게 되리

그렇다면 나는 저녁의 정거장을 마음속에 옮겨놓는다

내 희망을 감시해 온 불안의 짐작들에게 나는 쓴다

이 누추한 육체 속에 얼마든지 머물다 가시라고

모든 길들이 흘러온다,

나는 이미 늙은 것이다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는 어떠한 양태든지 간에 고정된 틀 속에 모든 사람을 맞추려 하는 일치성을 강요하는 시도가 얼마나 인간의 개별성과 다양성을 억누르며 그로 인해 인간을 사회적·실존적으로 죽이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적절한 예이다.

p.262

_무엇보다 무서운 것은 무의식 속에서 나는 그 침대를 편안하게 느끼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도 스스로 기어 올라. 그렇게 갇혀 누워 날카로운 이를 갈고 있었다. 다리가 잘려 나가는 것도 모르고, 혀가 갈기갈기 찢겨지는 것도 모른 채. 지금이라도 깨달은 것은 아주 다행이다. 남은 생을 위해서가 아니라 지금 당장의 나를 위해서.



세계 곳곳에서 각기 다른 정황 속에서 매일 살아가고 있는 이들에게 그 시대와 공간을 초월한 '영원한 고전'이란, 그런 의미에서 허구적이다.

p.210

_ 이 글을 만난 이후부터 조금 용기(?)를 낸 게 분명하다. 다른 이가 극도로 희열을 느꼈다는 책들이 내게는 그만큼으로 와닿지 않을 수 있고(물론 더 큰 감동이 있을 수도 있고), 세일즈포인트가 0에 가까운 책이 나의 영혼을 뒤흔들 수도 있다,는 나에 대한 믿음이 생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_ 나는 언제나 나만의 사태에 빠져 있다. 그 사태 속에서 내비치는 나만의 그림자와 은밀하게 나누는 대화에 끼어드는 조언자는 내가 선택할 수밖에 없다. 어떻게 형성되었나 되짚어 탐색할 의지 여부와 상관없이 이미 내 것이 된 가치관, 세계관의 명령에 복종하느라. 같은 책을 읽어도 다르게 사는 이유다. 어떤 책을 읽는가 보다 더 중요한 건 '어떻'읽는가이기 때문에.




미소란 인간이 자신의 '인간됨 humanity'을 유지하고 드러내는 참으로 중요한 언어 너머의 언어이다. 미소 없이 타자를 환영하는 환대, 사랑, 우정은 불가능하다. 여기에서 미소란 실제적인 미소이기도 하고 메타포로서의 미소이기도 하다. 어느 상황에서도 자신과 다른 타자를 악마화하고 정죄하는 태도를 거부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즉 무작정 어느 상황에서나 웃기만 하라는 것이 아니라, 타자와의 관계에서 자신의 인간성을 상실하지 말아야 한다는 철학적 의미를 지닌 메타포로서의 미소이다.

p.271

_ 이 글을 접하기 전. 나는 나의 미소를 '애매한 미소'라고 규정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저 좋은 사람 냄새라도 조금 풍기려고 무료 카지노 게임 사회적 미소. 하지만 나는 알았다. 나의 인간성을 잃지 않고 싶다고 호소무료 카지노 게임 몸 언어였다는 것을. 좋은 척, 훌륭한 척이 아니라 좋은 사람,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갈망의 표현이었다. 여전히 진행 중이더라도.




인간의 육체성과 사유함의 끊임없는 분리, 이 분리를 경험하는 우리의 딜레마는 자크 라캉 Jacques Lacan의 말처럼 우리가 "사유하는 곳에서 존재하지 않고, 존재하는 곳에서 사유하지 않는 것이다."

p.38

_ 나도 아이히만 Eichmann이 될 수 있다. 누군가에게는.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은 아니(라 믿)지만, 사유를 포기하는 순간, 그 순간순간이 누적된 총합만큼 가능성은 높아질 것이다. 누군가의 앞에 나서 이끌어야 하는 역할이라면 더욱. 나도 모르는 위험성의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다. 사유와 존재의 불일치.





[ 제다이 曰 ]진정한 독서력은 와닿은 문장이 내면에서 나의 것으로 체화되어 삶의 변화가 일어나는 밀도만큼 길러진다. 사유하는 곳에 존재하기. 존재하는 곳에서 사유하기. 이를 위해 낯선 표현은 자주, 자꾸 곱씹는 루틴을 가지는 방법밖에 없다.





[지담_글 발행 요일(3월 1일부터)]

.......아빠의 유산

.......문장유람(人터뷰)

.......문장유람(제다이)

,....잘 놀다 갑니다

.......모든 게 괜찮아질 당신

......금주의 영단어/ THE 좋아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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