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격하면 바로 선생님이 되는 줄 알았다. 합격 성적순으로 발령받는다는 것은 뒤늦게 알았다. 간절히 바라던 학교로의 출근은 기약 없이 밀리기 시작했다.
한 학기를 기다릴지 1년을 기다릴지 알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나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용돈을 벌었다. 주변 사람들은 빚이라도 내서 여행을 가라고 했지만 속된 말로 먹고 죽을 돈도 없었다.
교육청 단기 알바만 골라한 것은 결과적으로 도움이 되었다. 카지노 쿠폰와 교육청의 입장을 제삼자의 입장에서 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교육청으로 걸려오는 수많은 전화를 받을 때면, 현직에 가면 절대 교육청으로 전화하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하곤 했다.
고등학교에서 아주 짧게 근무하기도 했다. 임신 후 안정을 위해 잠시 휴가에 들어간 선생님을 대신해 고1 아이들의 담임을 하고 수업도 맡아야 하는 자리였다.
야자 감독도 하고, 석식도 먹고, 시험 감독도 하며 경험을 쌓았다. 당시 만든 만년 도장을 아직도 쓰고 있다.
2학기에도 카지노 쿠폰받지 못한 나는 조금씩 초조해졌다. 이미 카지노 쿠폰받은 동기들에 비해 밀리는 기분이었다. 어디에선가 합격 후 2년 간 카지노 쿠폰을 받지 못하면 합격이 취소된다는 글을 본 이후엔 불안함에 잠을 못 이룬 적도 많다.
눈앞에 닿을 것 같았던 학교로 가는 길이 왠지 모르게 좀처럼 다가오지 않았다. 언젠가 내게도 주어질 길인데 갈 수가 없으니 더욱 애가 탔다. 그때마다 생각했다. 학교 가면, 정식으로 발령받으면 정말 열심히 살 거야. 정말 최선을 다해 아이들을 대할 거야. 1년 늦게 발령받은 만큼 진심을 다해 다가가야지. 꼭. 그래야지.
미리미리 학급 경영 책을 읽어보고 준비했다. 옷도 사두고 카지노 쿠폰받을 날만을 기다렸다.
해가 지나고 새해가 밝았다. 쉴 만큼 쉬었다. 비울 만큼 비웠다. 이제 그동안 억눌러온 욕망을 터뜨릴 때가 되었다.
2012년 2월 20일경, 교육청 홈페이지에 들어가니 내가 발령받은 학교를 알 수 있었다. 어딘지 들어본 적도 없는 작은 학교. 그나마 남녀공학임에 안도하며 부랴부랴 집을 알아보았다. 2012년 3월 2일, 첫 출근을 위해 모든 에너지를 들이부어 준비를 시작했다.
카지노 쿠폰와 40분 거리에 있는 고시원을 예약하고 간단한 짐을 옮겼다. 막내딸의 독립을 응원하기 위해 함께 한 아빠, 엄마, 외할머니가 모두 돌아가신 후 텅 빈 고시원 안에서 새 학기를 준비했다.
아주 작은 노트북 하나.
성능 좋은 프린터기 하나.
몇 벌의 정장.
그리고 엄마가 싸 온 반찬 통들.
적막함 속에 작은 탁상시계의 초침만이 규칙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작고 작은 고시원 안에서
나의 첫 교직 생활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