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백오 May 09. 2023

카지노 게임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허상인가. 세상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것이 생명체의 눈을 통해 보아질 때는 아지랑이처럼 희미하고 흐물흐물 해져서 명확함이 사라진다. 우리도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투명한 불꽃에 불과하기에 그런 것일까.

무엇이 대단하고 무엇이 하찮은가. 우리의 여러 마음들 중 무엇이 본질이고 무엇이 겉치레인가. 그 본질을 온전하게 꿰뚫어볼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히려 그렇기에 철학의 가치가 드높아지는 것 아니겠는가. 우리 눈의 렌즈는 정교하지만 무엇이든 제 멋대로 해석하기 일쑤라서 희한한 일이 자주 벌어진다.

인생은 카지노 게임과 같아서 확대해서 보든 축소해서 보든 언뜻보면 같으나 분명히 더 큰 무늬와 더 작은 무늬가 존재한다. 그 무늬는 파동의 형태라서 마루와 골이 존재한다. 우리는 모두 그 유연한 선을 따라 오르내리며, 누구는 크게 오르내리고, 또 누구는 작게 오르내린다. 파동은 처음에는 작지만 서서히 커져 나간다. 파동이 작으면 자기자신도 작기 때문에 시야가 큰 파동에 미치지 못한다. 그렇기에 자신의 파동이 충분히 크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파동이 커지면 자신도 커져서 때때로 여전히 스스로의 무늬가 작은 것처럼 보인다.

이런 이치로 내가 카지노 게임을 어디까지 축소시켰는가를 스스로 알아내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에 가끔씩 죽도록 궁금해진다. 나의 파동은 여전히 형편없이 작은가, 아니면 어느정도의 크기는 갖췄는가?

멀리 떨어진 물건의 크기는 가늠하기 힘들다. 내 주변에는 나의 것 말고는 어떠한 카지노 게임도 없어서 내 패턴의 크기를 가늠할 수가 없는 것이다. 아주 훌륭한 사람의 패턴도 멀리서 얼핏보면 나의 것과 유사한 무늬를 갖고 있다. 그러나 내가 그들의 크기에 미쳤을 리가 있겠는가? 내게 호의적인 주변 사람들은 자신의 카지노 게임은 숨겨두고 스스로를 힘껏 줄이고서는 내 카지노 게임을 우러러 보는 척을 하곤 한다. 혹은 반대로 몸집을 한껏 부풀려 나를 내려다보려 하기도 하는데, 자신의 패턴을 숨긴 것은 매한가지여서 내게 실제로 어떠한 도움이 되는 일은 거의 없다.

오로지 나보다 큰 패턴을 가진 사람만이 나의 카지노 게임을 한 눈에 보고 가늠할 수 있으리라. 그가 자신의 패턴을 가져와 내 바로 옆에 반듯이 대 크기를 비교해줄 때, 비로소 나는 내 카지노 게임의 크기를 대략적으로나마 알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되면 이 답답함과 두려움을 녹여 어딘가로 흘려보낼 수 있을텐데 말이다. 그동안 나는 타인과 패턴을 공유하는 일이 얼마나 적었던가. 그래서 생긴 오만은 얼마나 큰 독이 되었는가. 이미 큰 세계를 얻었다고 느끼기에, 더 큰 세계를 탐색할 필요성은 사라지고만다. 그러나 그런 오만은 역설적이게도 내면에 두려움을 내포한다. 나는 사실 아직도 유의미한 크기를 갖지 못한 작은 입자에 불과하다는 진실에 대한 무의식적인 인지, 그것은 아직 발굴되지 않아 돌에 박혀있을 때에도 이따금씩 빛을 발한다.

최근들어 그 원석을 약간이나마 채굴해낸 것 같다. 보석의 빛이 강해질수록 오만의 어두움은 자리를 잃는다. 이전까지는 옅은 바람에도 쉽게 꺼지는 촛불 몇 개만으로 어둠을 물리치려는 어리석은 시도만 해댔을 뿐이다. 이번에는 무언가 다르다는 게 느껴진다. 내 안의 혼미하고 어지러운 공간이 스스로를 깨닫는 절차에 있다는 게 느껴진다. 그 과정을 나아갈수록 카지노 게임을 비추는 눈은 점점 높은 곳으로 향하고, 결국에는 똑같은 장면을 비추지만 실체의 크기는 전과 다를 것이다.

카지노 게임은 태어나면서부터 내재한 것이어서 외부로부터 부여되거나 살아가면서 창조되지 않는다. 단지 탐색될 뿐이다. 어디까지 탐색할 수 있을지는 운명과 의지에 따라 달라진다. 여기저기로 복잡하게 얽혀있는 앎의 길 중 하나를 가봤다가 돌아오고, 다른 길에 대해서도 동일한 것을 반복한다. 이렇게 앎의 지도를 밝혀나가면 시야가 넓어져 더 큰 패턴을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이 과정을 운행하다보면 내 삶의 전체가 바로 이 진행을 위해 탄생했다는 어떠한 필연성이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완전히 객관적인 세상에서 그런 필연성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생명체의 믿음이란 사실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신뢰하는 기이한 느낌이라서 쉽게 저버릴 수 없고, 오히려 저버리지 않을 때 더 큰 도움이 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나는 그것을 믿어보기로 하였다. 비록 지금은 아주 미시적인 패턴의 세계에 처해 애매한 존재만을 연명할 뿐이라도, 더 많은 이의 정신과 결합하며 굴곡진 무늬를 계속 따라가다 보면 언젠가 거시에 이를 수 있으리라. 카지노 게임이 제 형상을 유지한 채 유한한 시간 속 내가 이를 수 있는 가장 높은 경지로 나를 인도할 때까지 평생에 걸쳐 비탈길을 오를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