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수능 날이 다가왔다.
수능 날 아침, 엄마는 정성껏 보온도시락을 싸주었다. 엄마가 승용차로 수능 장소까지 데려다준다는 걸 나는 싫다고 했다. 엄마는 나를 데려다주고 수능이 끝날 때까지 학교 앞에서 기다릴 작정이었다. 나는 혼자 가겠다고 했다. 엄마는 서운해했지만, 유난 떨고 싶지 않았다. 추운 날 학교 앞에서 수능이 끝날 때까지 서서 기도하는 부모들. 그 모습에 엄마의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종일 추운 곳에서 떨며 서 있는 엄마의 모습을 생각하니 부담감에 숨이 막혀왔다. 나는 엄마를 수능 장소에 한사코 못 오게 했다.
담담한 마음으로 버스를 타고 수능 장소로 향했다. 머릿속이 텅 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일 년 동안 공부한 게 머릿속에 하나도 남아 있지 않고 다 달아나 버린 것 같았다.
수능을 치를 학교 앞에 도착하니 후배들이 따뜻한 커피와 찹쌀떡을 건네주며 응원했다. 후배들의 박수를 받으며 입장했으나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묵묵히 시험을 치르고 결과에 승복하겠다는 마음뿐이었다. 결과가 좋든 나쁘든 그걸로 끝낼 작정이었다.
아침 8시에 입실하여 오후 6시까지 길고 긴 수능시험을 마쳤다.
막상 수능이 끝나고 나니 허탈했다. 마지막 시험이 끝나자 후련할 줄 알았던 마음이 먹구름이 낀 것처럼 답답해졌다. 종일 긴장한 채 딱딱한 의자에 앉아서 시험을 치르고 나니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시험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결과가 좋지 않을 것 같은 두려움이 밀려왔다. 아이들은 희비가 엇갈린 표정이었다.
성호가 이대로 집에 들어갈 거냐면서 놀러 가자고 카지노 쿠폰. 나는 내키지 않았다.
어디론가 떼거리로 몰려가는 아이들을 피해 버스 정류장으로 향카지노 쿠폰.
흐린 하늘에 진눈깨비가 흩날리기 시작카지노 쿠폰. 눈송이는 도로에 닿기가 무섭게 녹아내렸다. 나는 옷이 젖을까 봐 정류장으로 뛰어갔다. 무심코 집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그때 정류장으로 버스 한 대가 멈춰 섰다. 버스 문이 열렸고, 버스 기사가 내 쪽을 쳐다보았다. 나는 엉겁결에 버스에 올라탔다. 종착지가 어딘지도 모르는 버스를 타고 엉거주춤 서 있었다. 어딘들 어떤가. 갑자기 팽팽했던 줄이 끊어지듯 마음속에서 툭! 소리가 났다. 퇴근 시간이 지나서인지 버스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내 앞에 앉아 있던 남자가 버스에서 내렸다. 나는 그 자리에 앉았다. 창밖으로 거리의 풍경들이 빠르게 지나갔다. 진눈깨비는 눈으로 바뀌어 내렸다. 수천수만 개의 눈송이가 아우성치듯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거리의 사람들은 차갑고 축축한 눈을 맞으며 흘러가고 흘러오고 있었다. 아는 사람도 없고, 목적지도 모르는 버스가 편안해졌다. 창에 머리를 기대고 흐트러진 자세로 앉아 있다 보니 서서히 긴장이 풀렸다. 창밖으로 불빛들이 하나둘 스쳐 갔다. 나는 나도 모르게 그것들을 세고 있었다. 하나, 둘, 셋, 넷……. 눈을 감았다. 감은 눈 속으로 오늘 본 시험 문항들이 차르르 펼쳐졌다 사라지곤 했다. 최선을 다했지만,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다. 수능 결과가 불안했다. 집에 도착하면 예비 정답이 뜰 것이다.
"학생, 종점이야. 내려."
어느새 잠이 들었는지 버스 기사가 나를 흔들어 깨웠다. 어느덧 버스가 종점에 와 있었다. 버스 안은 아무도 없었다. 허둥지둥 버스에서 내린 나는 검색해서 집으로 가는 버스로 갈아탔다.
집안 분위기는 저기압이었다.
수능 점수는 생각보다 더 좋지 않았다. 내 점수를 확인한 엄마는 앓아누웠다. 음식도 거부하고 머리를 싸맨 채 누워있었다.나는 엄마의 눈치를 보며 집안에서 최대한 소리를 죽였다.
즉석 죽을 데워서 들고 엄마 방으로 갔다.
"엄마, 이거라도 좀 먹어."
누워있던 엄마가 벌떡 일어났다.
"정우 너, 재수해."
"싫어. 안 한다고 했잖아."
"그 점수로 어디 갈 데가 있다고?"
"그냥 내가 가고 싶은 학과에 맞춰 갈 거야. 강요하지 마."
"엄마는 너 그런 대학엔 못 보내. 재수하면 더 좋아질 거야. 정우야 일 년만 다시 해 보자."
SKY는 이미 물 건너갔는데, 엄마는 그곳 외에는 대학으로 치지도 않았다.
"엄마가 대학 못 보낸다면 나 대학 안 갈 거야. 더는 재수 안 해. 재수해 봐야 똑같아. 누구보다 내가 나를 잘 알아. 싫어!"
"선우 저렇게 되고, 너까지 이러면 어쩌자는 건데. 엄마는 살아갈 의미가 없어. 정우야, 재수해. 응?"
엄마는 눈물까지 보이며 하소연했다. 선우가 저렇게 되고 나니 엄마의 기대심리가 나에게 더 쏠린다는 건 일찍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내 능력 최대치가 엄마의 기대치를 맞춰 주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것밖에 안 된다는 건 내가 더 잘 안다.
"암튼 난 재수 안 할 거니까. 그렇게 알아."
나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등 뒤로 엄마의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선우가 퇴원해도 좋다는 병원 측 연락을 받았다.
엄마는 선우 퇴원하는 날, 병원에 같이 가자고 했다. 선우가 병원에 있는 석 달 동안 나는 한 번도 가지 않았다. 아니 갈 틈이 없었다.
"가기 싫어. 나 성호 만나기로 했어."
"넌 어쩜 그리 냉정하냐? 참 독하다! 넌 선우가 궁금하지도 않아? 동생이 그곳에서 그 고생을 했는데, 보고 싶지도 않냐고."
카지노 쿠폰 질린다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쏘아봤다.
"난 선우 퇴원하는 거 반대야. 왜 벌써 퇴원이야? 그냥 거기 더 있으라고 해."
"너는 선우가 거기 갇혀 있는 게 좋아?"
"환자가 병이 나아야 퇴원하는 거 아냐? 아직 낫지도 않았는데 덜컥 퇴원해서 또 사고 치면 어쩌려고 그래. 병원서도 그렇지. 아직 완쾌되지도 않은 애를 왜 퇴원시키냐고. 이상 생기면 병원에서 책임지겠대?"
"환자 인권 보호를 위해서 3개월 이상 입원시키면 안 되게 되어 있대. 법이."
"그게 누굴 위한 법이야! 환자 인권만 인권이야? 가족들 인권은 없는 거냐고. 가족들이 받아야 할 고통은 뭔데? 덜컥 퇴원시켰다가 사고 치면 또다시 강제 입원해야 하는 거잖아. 강제 입원. 그게 사람 할 짓이야? 서로에게 상처잖아."
선우는 약 말고는 달리 치료법이 없다고 했다. 약만 거르지 않고 잘 먹으면 굳이 더 병원에 있어야 할 필요가 없다는 거였다. 그동안엔 적응력을 기르게 하려고 폐쇄병동에 입원했던 거라고 했다. 엄마는 약을 끊지만 않고 잘 먹으면 자활이 충분하다는 주치의 말을 믿었다.
나는 선우가 퇴원하는 게 못마땅카지노 쿠폰. 선우가 집으로 돌아오는 순간, 온 식구들은 또다시 비상 체제에 돌입해야 한다. 긴장한 채 선우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봐야 하는 거다. 조현병은 환자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가족들에게도 조현병은 낯설고 견디기 힘든 재앙이나 마찬가지다. 선우는 우리 가족에게 시한폭탄이었다.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 이런 환자를 둔 가족들은 혹시라도 생길지 모를 긴급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살얼음 위를 걷는 것처럼 조심조심 촉각을 곤두세워야 한다.
3개월 만에 퇴원이라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조현병이 그렇게 금방 낫는 병인가. 완치가 안 돼 평생 약을 먹어야 하는 병 아닌가. 병원에서 나오면 재활이라는 과정을 거쳐야 사회에 적응할 텐데, 그 과정은 생략해 버리고 무작정 퇴원시키는 병원 측의 무책임도 문제였다. 더구나 폐쇄병동에서 약만 먹고 누워있던 선우 아닌가 말이다. 퇴원 후, 선우가 잘 적응할지 나로서는 의문이었다. 교도소에 오랫동안 있었던 전과자가 사회에 나와서 적응 못 하듯이, 선우도 적응하려면 막막하지 않을까. 왜 그런 과정을 생략하고 쫓아내듯 퇴원을 시키는 건지. 그 부작용은 또 고스란히 가족들이 떠안아야 한다. 집에 있다가 약을 먹지 않는다거나, 또다시 증세가 나타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전혀 환자에 대한 배려나 대책이 없었다. 만약 선우가 올 데 갈 데 없는 아이였다면?
선우만 생각하면 답답하고 참담하다.
나라에서도 아무런 대책이 없고, 병원에서는 무조건 약 처방만 주는 방법밖에 없다.
엄마는 벌써 다 잊었을까. 선우가 퇴원하면 어떤 일이 생길지 엄마는 전혀 생각지도 못하는 눈치다. 엄마는 선우에게 그렇게 당했으면서도, 벌써 다 잊어버린 것처럼 들떠 있었다. 선우 방을 청소하고 시장엘 다녀오고 선우가 좋아하는 음식들을 만드느라 분주했다.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