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이와 함께 만들어가는 인생은 그 자체로 재미이며, 의미입니다.
물리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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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 14:30
음악 15:00
통합그룹치료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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째깍째깍, 미세한 기계음이 귓가를 스치고 지나간다. 벽시계에 걸려 있는 시침과 분침이 서로 엇갈리며 지나가는 소리다. 매 시간마다 복도는 북적대는 사람들의 소리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좁디좁은 골목의 한복판을 뚫고 지나가듯, 병원 복도 역시 바쁜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그곳은 언제나 인산인해를 이룬다. 그 틈바구니 가운데 실수로 다른 사람의 발을 밟지 않도록 언제나 긴장하고 있어야 한다. 잘못하면 아이를 안고 있는 어느 어머니를 크게 아프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엘리베이터는 늘 꽉 찬다. 실제로 성인 열 명은 족히 들어갈 수 있는 너비지만, 휠체어 하나, 유모차 하나만 들어가도, 보호자 네댓 명이 들어갈 공간마저 충분치 않다. 층마다 멈추는 통에, 다음 치료 시간에 맞춰 치료실에 들어가려면 늦어도 오 분 전에는 미리엘리베이터에 탑승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잠시만 한 눈을 팔고 있으면 치료 시간에 늦는 건 당연지사가 된다.
카지노 게임들을 간병하는 어른의 자세만 보아도, 부모인지, 돌봐 주시는 선생님인지 구별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연령대 때문에도 그렇고, 카지노 게임를 드는 자세를 자세히 관찰하면 그 차이가 명확하게 구분되기 때문이다. 부모들은 주로 카지노 게임를 내 가슴 안쪽으로 끌어안는다. 혹여나 카지노 게임를 떨어트릴까 봐 온 힘을 다해 카지노 게임를 품 안에 온전히 감싸려 한다. 그러나 돌봐주시는 선생님들은 주로 어르신이어서 그럴만한 힘은 없으시다.
어떤 아이는 강직으로 인해 몸이 뻣뻣하게 굳어 있다. 이미 딱딱해질 대로 딱딱해져 몸을 접을 수 없다. 비좁은 공간에 들어갔을 때 자기 자신을 위해 몸을 안쪽으로 움츠려, 공간을 좀 더 넓게 만들 여력이 전혀 남아 있지 않다. 강직성 사지마비를 앓고 있는 아이들 부모님들은 족히 삼십 킬로그램에 육박하는 아이를 들쳐 안고, 휠체어와 유모차 사이 가운데 서서, 가로로 공중에 길게 뻗어있는 아이를 힘겹게 겨우 들고 있다. 아이가 공중에서 의지할 곳이라곤 엄마의 강한 두 팔 뿐이다.
가끔씩 어떤 아이들은 수술용 침대와 같이 생긴 바퀴 달린 침대에 뉘어 엘리베이터에 간신히 탑승한다. 또 다른 기구한 아픔을 지닌 여아가 그 위에 누워, 콧줄이 달린 채 어느 순간 나와 두 눈이 마주친다. 분명히 마주쳤는데 제대로 보면 아이의 초점이 그리 명확해 보이지 않는다. 아이는 간신히 눈을 뜨고 있지만, 병원에 막 도착해서 누군가를 제대로 응시할 만큼의 여력이 남아 있지 않다. 지금까지 장애인콜택시에 누워서 거친 도로의 결을 그대로 느끼며 왔기 때문에 매우 피곤한 상태다. 그런 아이를 위에서 내려다보는 마음이 내심 불편하다. 바로 무릎을 굽혀 아이 눈높이로 내려가서 그 어떤 말이라도 따뜻하게 건네주고 싶지만, 아이는 콧줄에 의지해 무엇을 말하기가 여간 불편하다. 자주 보이진 않지만 드문드문 이곳을 찾는 모습을 볼 때마다, 정기 진료 후 오랜만에 치료받으러 온 여아가 아닐까 가늠해 볼 뿐이다. 그 아이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싱긋 웃는 표정으로 아이의 눈길에 답례하는 것과 가슴으로 아이를 위해 기도하는 것뿐. 기회가 되면 아이 엄마께 살갑게 인사드리는 것 밖엔 없다.
아이들은 적정 연령을 지나면 이곳에 더 이상 오지 못한다. 키가 자란 고등학생을 좀처럼 보기 힘든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소아의 나이는 법적으로 만 17세까지로 규정되어 있다. 그 나이를 지나면 아직 고등학생이어도 아이들은 성인 재활 병원으로 전원을 해서 그곳에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 아직 어린 모습이 남아 있는데, 그때부터는 몸은 청년에 해당되어 구별되기 시작한다. 아이들의 마음은 여전히 여리고, 제대로 말할 수 없는 아이들이 많음에도, 아이들이 의지했던 선생님과 갑자기 헤어져야 한다. 갑자기 어느 날 새로운 병원에, 새로 만난 치료사 선생님을 통해 다시 새롭게 적응을 해야 한다. 딱하고 가련한 아이들은 재활에 적응하는 걸 넘어서 새로운 환경에 다시 적응해야만 한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어느덧 금세 눈물이 눈가에 맺힌다.
기쁨 이는 그 가운데서 많은 질문을 가지고 있다. 왜 저 누나는 못 걷게 되었으며, 옆에 있는 귀여운 동생은 왜 계속 말없이 웃고만 있느냐 질문한다. 못 걷는 누나는 뇌병변 장애를 가지고 있고, 시종일관 웃고 있는 동생은 희귀 질환으로 고생 중이란 대답이 이어질 뿐이다. 발작적 웃음이라고 어느 병원 인터넷 백과사전에 정의되어 있을 만큼 시종일관 미소를 짓고 웃는 것은 그 아이가 가지고 있는 병변의 대표적인 특징이다. 겉은 웃고 있지만 속은 많이 아팠던 것이다. 평생 그 아이는 웃을 수밖에 없는 아픔을 가지고 태어난 것이다. 염색체 미세결실이 원인의 75% 정도라고 알려져 있을 뿐이다.
사람들은 일부러 무관심하진 않다. 다만 이 상황을 모를 뿐이다. 그리고 새롭게 이 상황을 알아갈 만큼 삶의 여유가 없을 뿐이다. 전국에 장애 아동이 줄잡아 30만 명이라고 하는데, 우리 주위에서 볼 수 있는 이런 아픔을 가진 아동들은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겉으로만 그럴 뿐이다. 이따금 지인의 카지노 게임라던가, 길가에서 간혹 보이는 아동들이 전부이기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대학 병동에 찾아가면 수백 명의 환자들이 병동마다 꽉꽉 들어차 있고, 대기를 걸고, 다음 순번을 기다리고 있는 예비 환자들 역시 그만큼인현실을 돌아볼 때, 현실은 보이는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 질병이나 장애로 고통받고있는 카지노 게임들의 상황도 그와 별반 다름이 없다. 커다란 차이가 있다면, 카지노 게임들이 맘 놓고 치료받을수 있는 어린이 병원의 수는 현실적 필요에 비해 상당히부족하다는 사실이다. 물론 카지노 게임들의 수가 매년 가파르게 감소하는 추세를 보인다고 통계는 말하지만, 여전히 카지노 게임들은 제 때에 치료를 받지 못하고 질병이 악화되기가 일쑤다. 그만큼 병원의 수와 아이들이 받고 있는 처우는 너무 가혹하다. 아픈 아이들이 무상으로 치료받을 수 있는 날은 요원한 꿈일 뿐인가. 한 달에 백에서 이백, 삼백만 원, 혹은 그 이상으로 청구되는 고지서는 낱장이지만 너무 무겁다.
가수 션이 푸르메 어린이 재활병원 건립 사업에 사람들의 시선을 모으고, 기부 운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한 이유도 거기서 출발했다. 현재 그분은 루게릭 병원 건립을 완공시키고, 승일 루게릭 병원은 2025년 1월 5일에 준공 발표가 났다. 션을 비롯한 수많은 기부 행렬을 통해 루게릭 병으로 고생하던 박승일 대표와의 약속을 기어코 지켜 낸 것이다. 그는 푸르메 재단 넥슨 어린이 재활병원 건립에도 주요한 역할을 했고, 해당 병원은 최근 9주년을 맞이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선한 영향력, 크리스천 션님이 주도적으로 그 역할을 했기 때문에 기업의 막대한 기부금 출현도 이끌어 낼 수 있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작은 힘들을 보태 어린이 재활 병원이 세상에 새롭게 그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다.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나는 의료 현장에서 아이들을 치료하기 위해 헌신하는 많은 의사, 간호사, 간호조무사, 행정 직원 분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해오는 과정 중에, 그분들의 노고를 글로나마 치하해 드리고 싶단 생각을 종종 해왔다. 그리고 오늘 새벽 가톨릭 사제 '헨리 나우웬'의 flying, falling, catching이라는 책 한 권을 읽으면서, 지금 우리 가족이 처한 현실을 글로 짧게 풀어내고 싶었다. 다음은 가톨릭 사제로서 하버드, 예일, 노트르담 대학교에서 신학과 심리학을 가르치다가, 교수 직을 내려놓고, 노년에 지적 장애인과 그들을 돕는 이들이, 서로를 돕고 하나의 공동체로 살아가는 라르쉬 데이브레이크에서 살던 그의 책에서 발췌한 이야기다.
"자세히 들을수록 그 짧은 공중그네 곡예가 얼마나 긴 시간인지 절감하게 된다. 중대한 고비 때는 삶이 느린 동작으로 흐를 수 있음을 나도 안다. 교통사고를 겪은 사람들이 흔히 말하듯이, 핸들의 통제력을 잃는 순간부터 나무나 다른 차에 부딪히는 순간까지 그들은 아주 많은 것을 보고 생각하고 느꼈다. 자신의 일생 전체가 1초 만에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는 사람들도 있다." (본문 147p)
오늘도 기쁨이는 재활 병원에 간다. 십 년 차 베테랑 환자다. 치료를 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치료를 받는 사람으로서 베테랑이 되었다. 그는 많은 아이들의 다양한 치료 상황과 그들의 불편한 몸짓, 어눌한 언어 등을 보며 자랐다.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아이는 아픈 사람에 대한 숭고한 사랑을 지닌 채 잘 자라주고 있다. 수술하는 의사의 꿈을 품고, 거의 매일 밤 의료 프로그램을 본다.
밤에는 '내게 샘솟는 기쁨'을 부르지만, 치료 현장에 가서는 물리치료가 주는 실제적인 큰 통증을 호소한다. 낫기 위해 통증이 어쩔 수 없이 생기는 것인데, 그 통증이란 게 카지노 게임가 참을 수준을 넘어서는 때가 자주 있기 때문이다. 집에 오면 날마다 치료 시간을 두고 부모와 실랑이를 벌인다. 그는 주도적으로 자신의 치료에 무엇이 어떤 순서로 놓여 있는지 알고 싶어 하고, 개입하고 싶어 한다. 치료받는 자신이 그 주체이고 대상자이기 때문이다.
엄마와 아빠는 아이의 의견에 적극 경청한다. 그래도 별반 달라지는 것은 없다. 병원 시간표는 모두가 발맞춰 같이 움직이면서 짜는 타임 테이블이기 때문이다. 선생님의 갑작스러운 상황이 있을 땐, 다른 치료로 대체되거나 다른 치료사 선생님으로 갑자기 바뀌기 마련이다. 기쁨 이도 그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하고, 갑작스러운 변화에 적응해야만 한다. 마찬가지로 고열에 시달리는 아이가 갑작스럽게 약속된 시간에 올 수 없는 경우가 발생하면, 그 시간을 채우기 위해 직원 분들의 손놀림은 다시 바빠진다. 또 다른 아이가 그 빈 시간을 채워야 병원 운영이 원활하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모든 아름다운 백조들이 물밑에서 분주하게 두 발을 휘젓고 있다. 결코 쉽지 않은 재활 병원의 현실 속에서 아주 가끔이지만, 병원과 보호자 간 트러블도 발생하는 경우도 있을 터, 모두가 적정한 긴장감을 가지고 서로에게 예의를 다하며, 서로의 마음까지는 더 이상 다치지 않게 하려 노력한다. 우리 아이들이 처해 있는 일상의 순간을 채집한 표본으로서, 실제 상황을 애써 담담하게 말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오늘도 기쁨 이를 차에 태우고 병원에 가면 현관 옆 사이드에 위치한 행정직원 선생님들께 밝게 인사를 건네야겠다. 치료실에서 유니폼을 입고 계셔 언뜻 보면 잘 구분이 가지 않는 젊은 선생님들께도 예의를 갖춰 인사를 드려야겠다. 모두 다 특수 교사로서, 아이들을 위해 일생을 헌신하기 위해 공부하고 연구한 분들이다. 그분들은 아이들의 현재이며, 미래이고, 의사 선생님의 역할을 자임하는 주치의와 다름이 없다. 참 고마운 분들이다. 스승의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아내와 기쁨이는매년 그러했던 것처럼 올해도 감사 편지를 자신의 담당 선생님들께 쓸 채비를 하고 있다. 항상 예의를 중시하고 인사하는 걸 빼놓지 않는 현명한 아내 덕분에 기쁨 이는그 덕을 톡톡히 봐 왔다. 아직 그가 인지하고 있지 못할 뿐이지만,그는 엄마의 지혜로 세상을 살았다.
근래 계속 컨디션 난조를 보이고, 다크서클이 눈 아래까지 짙게 내려온 아내 대신 나는 오늘도 하루 종일 병원에 있을 예정이다. 아이 수술 후에 깁스를 달고 한 달 가까이 시간이 흐르는 동안, 아이와 내 정서적 거리는 부쩍 가까워졌다. 아이는 자신이 좋아하는 아빠를 좀처럼 놓아주지 않는다. 아빠가 자기 자신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주길 바란다. 사랑에 여전히 목마른 아이를 보며 아빠는 할 수 있는 만큼 성실히 아이의 마음을 알아주기로 한다. 우선순위를 다시 재정렬한다.
5월 21일은 부부의 날이다. 스승의 날 다음 주가 부부의 날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엄연히 5월 21일은 부부의 날이다. 모두가 백년가약을 맺고 서로 사랑하기로 언약했던 그날을 추억하고 기억하라는 의미로 만든 날일테다. 나는 날마다 부부의 날이라고 생각하며 산다. 부부가 행복하지 않으면, 그들의 아이는 결코 온전한 의미로 행복을 유지할 수 없다. 아이는 부모보다 훨씬더 예민하고 민감한 촉수를 갖고 태어났기 때문이다. 얼핏 주고받는 대화의 낌새마저 금세 알아채고, 민감하게 반응할 줄 아는 지혜자들이기 때문이다.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 의미 있게 살고 싶다.
비록 예상치 못한 시나리오가 쓰여, 십 년 넘게 병원 생활을 하고 있지만, 이곳에서의 삶도 엄연히 아름다운 삶이고 나의 삶이다. 그리하여 나는 날마다 위대한 삶을 꿈꾼다. 그 위대한 삶이란 가장 가까운 나 자신을 먼저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 힘으로 내 가족과 이웃의 반경을 확대하며 사랑하는 삶을 배우는 삶이다. 소중한 아내와 아이를 내 곁에 두고, 이 세상이 얼마나 재미있고 의미로 가득한지 직접 보여주고 알려주고 싶다. 나 자신이 예술가가 되어, 다양하고 다채롭게 세상을 살아가는 법을 아이에게 제대로 가르쳐 주고 싶다. 여행 작가가 되어, 이 세상 다양한 문화권과 언어권에서 보고 들은 이야기를 글로 남기고 싶은 꿈도 있고, 강연가가 되어 제2의 김창옥 강사처럼 삶을 노래하고 싶기도 하다. 그런 마음으로 오늘도 아이와 함께 병원에 간다. 내 아이가 온전히 회복되는 그날까지 더디고 느린 속도이겠지만,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유산을 반드시 남겨야겠다. 모두에게 희망을 전하는 삶의 전령사로서 재미있고 의미 있게 살아갈 것이다. 더불어 함께 다른 이들을 일으키며 그런 멋진 삶을 날마다 꿈꾸고 도전할 것이다. 내 곁에 작은 거인과 함께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어린이날을 기념하며, 둘이 떠난 여행, 엄마는 나 홀로 쉬는 시간^^
이젠 꽃사진을 아들이 직접 찍기 시작했답니다. 아래는 아빠 사진, 카지노 게임 사진은 다음 기회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