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마음속에 보석상자 하나쯤은 가지고 있어야 하지.
두 달 전, 알고 지내는 한국의 NGO 단체와 몇몇의 교회 선교담당자에게 '탄자니아 킬리만자로 산자락 시골마을 아이들에게 특별한 추억을 선물해 주세요'라는 내용을 담은 초대장을 보냈는데 연락 온 곳이 없다.
충분히 이해한다.
가까운 동남아도 아니고 비행기를 18시간 타야만 올 수 있는 너무나 먼 나라가 아닌가?
손님들이 머물만한 숙소도 마땅치 않다.
당연히 샤워시설과 화장실도 열악하다.
하루에 몇 번씩 정전도 되고 인터넷도 제대로 터지지 않는다.
제대로 된 식당은커녕 킬리만자로외에 마땅한 관광지도 없다.
(킬리만자로만으로도 충분하지만은)
봉사팀이나 선교팀을 초대하기엔 너무나 열악한 환경이다.
어쩌면 나의 초대가 엄청난 부담이 되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에게 추억을 선물해 줄 누군가가 왔으면 싶었다.
무료 카지노 게임을 위한마을 운동회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무료 카지노 게임에게 특별한 하루의 추억을 선물해주고 싶었다.
나에게는 ‘나에게도 유년의 시절이 있었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유년의 기억이거의 없다.
태어나자마자 유년을 건너뛰고 청소년기가 된 것 같다.
생각해 봐야 상처뿐인 기억이라서 나 스스로가 봉인시켜 버린 것이 이제는 기억이 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하긴 유년을 기억하기엔 나이를 먹긴 했다)어쨌든 나에게는 아~ 좋아. 그때로 돌아가고 싶은 유년의 기억이 없다.
한때 나는 어릴 때의 추억을 소환하는 이들이 너무부러웠다.
퍽퍽하고 가시밭길 같은 삶의 여정이 소환한 어릴 때의 추억만으로도 충분한 위로가 되었고힘이 되어주는 것 같았다. 그것은 마치 보석상자와도 같았다.
소환할 추억 한 자락 없는 인생이야말로 얼마나 가난한 인생인지.
그래서 나는 세상에서 가장 가난하고 불행한 존재 같았다.
소환할 유년의 추억이 없는 것은 상처가 되었고 그 상처는 누군가에게 또 상처를 만드는 무기가 되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세상 모든 아이들이 훗날 소환할 수 있는 유년의 빛나는 추억이 담긴 마음의 보석상자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소환된 어릴 적 추억 중 가장 부러웠던 추억이 교회학교의 추억이다.
어떻게 된 것이 내가 만난 사람들 중에 어릴 적 여름성경학교 추억 한 자락 없는 이들이 없었다.
지금은 교회에 다니지 않는 이들도 여름성경학교에서 초코파이나 삶은 계란 한번 얻어먹어본 기억이 있는 것이다.
여름 성경학교. 캠프. 수련회. 교회오빠와의 에피소드등 교회에서의 추억이 있는 이들이 부러웠다.
그런 부러움의 경험 때문이었을까?
이곳에 오자마자 나는 이곳의 아이들에게 교회 마당에서 신나게 뛰어놀았다는 추억 한 자락 선물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기획한 것이 마을운동회였다.
동네 아이들을초대해서 신나게 뛰어놀게 하고,게임도 하고, 선물도 주고,배불리 한 끼 먹이고 싶었는데, 나와 선교사 두 분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서 한국의 교회와 단체들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었는데. 꼼짝없이 우리 세 명이서 해야 했다.
과연 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도울자가 나타났다.
친하게 지내는 현지 청년들에게 나의 계획을 이야기하니, 자신들이 뭐든 돕겠다며 자원해 주는 것이 아닌가!! 등잔밑이 어둡다더니.
이렇게 하여 나의 머릿속에만 있던 마음의 보석상자 만들어주기프로젝트가 세상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먼저는 무엇을 하면서 놀 것인가? 프로그램을 만들고, 무엇을 먹이고, 어떤 상품을 줄 것인가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준비하기로 했다.
문제는 몇 명이 올 것인가인데짐작조차 할 수 없어서 최대한 200여 명을 예상하고 소다. 비스킷. 사탕등 간식들과 무료 카지노 게임이 좋아하는 고기 듬뿍 들어간 카레라이스 재료들을 준비했다.
노트와 양말등 선물과 무료 카지노 게임에게 보여줄 영화도 선정하고 운동회에 필요한 줄다리기. 풍선. 축구공도 준비하고 청년들과 함께 시뮬레이션도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회의가 들었다.
제대로 된 음향시설은커녕 장소도 그늘이라고는 나무밑이 전부인 허허 들판인 데다 모든 것이 어설프고 부족한 것은 너무 많고 한국 같아서는 절대 도전할 수 없는 상황에 유년의 추억을 선물하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는 것인가?
괜히 나의 감성에 너무 집중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소망이 생기고 힘이 나야 되는데 갈수록 자신이 없었고 힘도 빠졌다.
과연 무료 카지노 게임에게 보석상자와 같은 선물이 될까? 싶었다.
함께 하는 청년들이 아니었다면 은근슬쩍 없던 일로 하고 싶을 정도였다.
처음 의도와는 달리 조마조마한 의기소침해진 마음으로 마침내 맞이한 디데이.
많아야 200명쯤의 무료 카지노 게임이 오겠지 싶었는데 500여 명의 무료 카지노 게임이 몰려왔다.
히잡을 쓴 무료 카지노 게임. 맨발로 온 무료 카지노 게임. 다 떨어진 옷을 입고 무료 카지노 게임. 아이를 업고 온 무료 카지노 게임.
각양각색의 수많은 아이 중 제대로 갖춰 입은 아이는 찾아볼 수 없었지만, 표정만큼 기대로 한껏 들떠있었다.
몰려오는 무료 카지노 게임을 보면서 나는 와~ 좋아해야 하는데 어쩌지? 막막했다.
이렇게 많은 무료 카지노 게임이 올 줄을 예상하지 않은 것이 나의 가장 큰 실수 같았다.
모든 것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제일 부족한 것은 함께 할 스텝들이었다.
어쩌면 추억은 고사하고 실망을 안겨줄 수도 있을 것 같아 바글바글 모여든 아이들을 보면서 불안하기도 했는데, 소식을 들은 동네 아줌마들이 돕겠다며 찾아왔다.
그녀들이 500인이 넘는 밥을 하고 무료 카지노 게임을 챙기고 무료 카지노 게임이 신나게 놀 수 있도록 케어했고 줄을 세우고 지도했으며부족한 것들을 현지에서 조달할 수 있도록 도왔다.
분명히 부족해 보였는데 차고도 넘쳤다. 이것이 5병 2 어의 기적인가?
하지만 나는 다른 것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정신이 하나도 없는 하루였다.
우왕좌왕 허둥지둥 갈팡질팡이었지만 그런 나와 상관없이 무료 카지노 게임은 즐거워했다.
처음 해보는 게임에 무료 카지노 게임은 신나 했고 승패에 상관없이 무료 카지노 게임은 마음껏 웃고 함성을 질렀다.
해가 뉘웃해질 때까지 마음껏 뛰어논 무료 카지노 게임에게 양말과 노트 한 권을 쥐어 보내고 집에 보내려고 하는데 무료 카지노 게임은 집에 가지 않으려고 했다.
내일도 오냐고 물었다. 그리고 어떤 무료 카지노 게임은 마마 아산테 하며 안아주었다.
좀 더 완벽하게 잘하고 싶어서 걱정하고 두려워하고 회의했던 마음이 미안했다.
나의 마음과는 달리 무료 카지노 게임은 그저 무엇인가를 함께 모여서 하는 것에 행복했으리라.
그리고 두고두고 기억할 수 있는 추억이 되었으리라.
오늘이 훗날 어른이 된 아이들이 힘들 때마다 꺼내보는 보석상자가 되어주길.
얼른 방에 들어가서 씻고 눕고 싶은 피곤함이 온몸을 휘어 감았지만, 나 역시 무료 카지노 게임과 오래오래 함께 있어주고 싶었다.
오늘은 나에게도 언젠가 꺼내볼 수 있는 보석상자와 같은 하루였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