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파가 물러갔다고 하나 아침저녁으로 날씨가 아직도 쌀쌀하다. 을씬년스러운 잿빛하늘사이로 뭐라도 올 듯 말 듯 하는 날씨는 습기를 머금어서 한기가 올라온다.
집 가까이에 한강공원을 끼고 있어 요즘 유행처럼 번진 조깅을 하는 한껏 차려입은 젊은 남녀들이 뛰어간다. 조거팬츠나 반바지에 타이즈를 입고 길쭉한 각선미를 뽐내는 청춘을 보고 있노라면 발가락이 꿈실거리며 나도 덩달아 쫓아 합류하고 싶은 마음이 동하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 만다.
나 같은 몹쓸 몸을 가진 중년이나 노년의 사람들은 동네 한 바퀴로도 마실 겸 운동이 충분하다고 생각해서인지 길가에는 산보를 하는 이들이 늘었다.
봄에는 미세먼지로 여름에는 너무 습하고 더워서 가을에는 쓸쓸해서 겨울은 추워서 결국 사시사철 운동과 담을 쌓은 나로서는 운동은 언감생심 마음뿐이다. 한 겨울에도 중무장을 하고 산책을 하는 신혼 같은 젊은 커플이나 중년, 노년 커플들이 보인다. 몸이 불편한 아마도 중풍을 맞아 한쪽다리가 불편하게 갸우뚱거리며 위태롭게도 걸음을 걷는 노인도 보인다. 살집이 푸짐한 젊은 아가씨는 혼자 무어라 남들이 듣는지 마는지 신경 안 쓰고 중얼거리며 걸어간다. 무슨 장애인지 장애로 살이 찌고 건강을 해칠까 엄마의 등에 떠밀려 아침저녁으로 나온 듯싶다. 부지런히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고만 있는 나는 괜스레 멋쩍고 살짝 창피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개중에는 추운 날씨에도 산책을 하는 이들 중 대다수가 반려견들을 데리고 나온 이들이다.
장갑을 낀 손에는 목줄을 꼭 움켜잡고 간식과 용변비닐이 들은 작은 가방을 멘 젊은 처자는 힘에 겨워하며 덩치 큰 녀석을 컨트롤하느라 진땀을 뺀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관리받고 사랑을 받으면 모두 이뻐진다고 허연털이 곱씰하게 풍성한 사모예드녀석은 눈이 가고 한번 만져라도 보고 싶게 생겼다.
아침저녁으로 느린 걸음으로 산책을 하던 통통한 아가씨가 어눌한 목소리로 예쁘다 예쁘다 하면서 가던 길을 멈추고 사모예드를 쓰다듬느라고 쭈꾸리고 한참을 있는다.
종종 길가에서 담배를 피우러 나오면 자주 보는 그 젊은 처자는 아이 냄새하고 내게 큰 목소리로 소리를 쳐서 나는 이 아가씨를 먼발치에서 보이기만 하면 주늑이 들어 얼른 한쪽으로 피하기 일쑤였다.
개주인인 듯한 여자는 얼렁 자리를 피하고 싶었다가 아가씨가 살짝 남달리 일반사람 같아 보이지 않은 걸 느꼈는지 한참 동안을 자신의 개를 쓰다듬는 것을 보고만 있었다.
일반인과 무엇인가 달라 어디가 불편하거나 모질라 보이지만 딱히 물어보거나 궁금해하지도 않았는데 쪼그려 앉아서 연신 개를 만지는 아가씨를 보자 불현듯 예전 어린 시절이 생각이 났다.
한참 오래전에 국민학교 6학년부터 중학교 일 년까지 애완동물(반려동물)을 키웠던 시절이 있었다.
카지노 쿠폰라 불리던 견종의 어린 강아지를 지인에게 받아와서 집에서 길렀다.
처음 보는 생김새가 곰 새끼 인지 강아지인지 구분이 안 가게 털이 뭉실하고 통통한 녀석을 우리 집에서는 그냥 곰돌이라고 불렀다.
통통하고 어린것은 예쁘긴 사람이나 짐승이나 매한가지라 뭉실한 털이 있는 녀석이 꼬물거리고 커가는 모습을 보는 게 즐거웠다 하지만 영원히 강아지일 수 없는 노릇이니 카지노 쿠폰는 주인집 식성을 닮아 잘 먹고 무럭무럭 크더니 이제는 좁은 마당에서 키우기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그 시절에 애완견사료가 없을뿐더러 있어도 비싸서 사지도 못했기에 늘 사람이 먹고 남은 것을 챙겨주었는데 덩치가 커지니 잔밥으로는 택도 없이 부족했다.
예쁘다고 이 반찬 저 반찬 챙겨주니 까다로워진 녀석은 계란에 밥을 비벼서 대령해야 먹었다. 고기만 유난히 좋아해서 아버지는 개아범소리를 들어가며 대폿집에서 돼지갈비를 비닐봉지에 모아 오기도 했다. 야채를 해치우기 위해 나는 실험 삼아 당근이든 상추든 마요네즈를 발라주었더니 곰돌이 녀석은 그제야 야채도 먹기 시작했다. 물론 비싼 마요네즈가 사놓으면 없어지자 곧 나의 행각이 발견이 되어서 곰돌이는 다시 채식을 멀리하기 시작했다.
곰돌이는 강아지 때는 귀여웠지만 다 크고 나니 정말 짐덩어리가 되었다. 털이 많다많다해도 이건 정도가 지나쳤다. 밖에서 키우니 한번씩 씻기려고 하면 샴푸는 들지도 않아 거품이 생기지도 않고 개샴푸라고 비싼걸 사왔더니 한번에 반통을 써야했다 젖은 털을 말리려다 헤어드라이기를 태워먹었다, 마당은 늘 털뭉치들이 잡초처럼 자랐고 사람이 아니라 개냄새가 집안을 잡아 먹었다. 많이 먹기도 먹으니 당연히 많이도 쌌고 좁은 마당에서 해결이 힘들어 아침저녁으로 산책을 빌미로 밖에서 해결을 해야 했다. 당연히 나와 동생이 해야 하는 숙제가 되었고 어린 시절 나는 여간 성가시지 않아 귀찮아했다.
당시 동네 골목에는 개똥은 정말 약에 쓰는지 너무도 흔하게 여기저기 굴러다녔지만 덩치가 있는 녀석의 것은 대번에 범인이 누구인지 발각이 되기 때문에 좀 더 멀리 한적하고 후미진 데를 찾아야 했다. 사람이 없어야 했고 가급적 흙바닥이면 좋았기에 주로 가는 것은 강변도로의 녹지라던지 공원이라는 것이 별로 없던 시절이라 학교 운동장에 화단옆이라던지 그런 곳을 찾아야 했다.
카지노 쿠폰를 데리고 나가면 새파란 혓바닥과 사자갈기 같은 목털을 지닌 남다른 외모 덕에 주변에 시선이 집중이 되었다. 처음에는 으쓱거리며 자랑스러웠다가 이내 아이들이 몰려들고 사람들이 물어보는 것이 귀찮고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고심 끝에 잔꾀를 내어 숙제를 해야 한다던지 공부를 해야 한다고 핑계를 대었지만 결국 카지노 쿠폰와의 산책을 그만둘 수 없는 이유는 카지노 쿠폰 녀석은 바깥나들이 맛을 들여 집안에서는 끝내 용변을 보지 않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본의 아닌 곰돌이와의 산책은 나는 무지 곤욕스럽고 짜증이었지만 곰돌이는 자신이 응가를 해야만 좁은 마당을 벗어나 해방을 느끼는 시간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인가 학교를 파하고 집에 왔는데 옆집여자아이가 카지노 쿠폰를 주무르고 쓰담 드고 곰돌이는 한두 번이 아닌지 이 여자아이 앞에서 얌전히 배를 까고 부비거리는 것을 목격을 했다.
정말 꼴도 보기 싫고 귀찮은 존재인 곰돌이였지만 주인 말고 다른 사람에게 저러고 있는 모습을 보니 배우자의 불륜을 목격한 듯 나는 화가 치솟고 배신감이 들었다. 아마도 옆집아이가 조금 모자란 바보라 불리던 아이여서 더 그랬는지 모르겠다. 정상이 아닌 아이가 카지노 쿠폰를 만지고 친하게 지내는 것 자체가 불쾌하고 무엇인가 더럽고 안 좋다는 감정이 불타올랐다.
나는 괜히 심술이 나서 곰돌이의 목줄을 확 잡아당기고 만지지 말고 당장 나가라고 소리쳤다.
놀란 눈으로 한 참을 나를 보던 그 여자카지노 쿠폰는 겁에 질려서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고도 몇 번을 계속 내가 없을 때마다 카지노 쿠폰를 보러 왔고 나는 그때마다 어머니에게 볼맨소리로 바보가 자꾸 카지노 쿠폰를 만지게 하냐고 불평을 했었다.
어머니는 카지노 쿠폰가 친구도 없고 얼마나 심심하면 오겠니 하면 카지노 쿠폰를 두둔했었다.
그러고 얼마 후에 대문이 열려있는 틈을 타 카지노 쿠폰를 누가 훔쳐갔다. 목줄이 잘라져 있고 빈 밥그릇 굴러다니는 그 모습을 보고 난 이게 다 그 옆집아이 때문이라고 생각을 했다. 그리고 카지노 쿠폰를 잃어버린 후 나는 더 이상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았다.
당시 우리 동네에는 구수동에 구화학교라던지 지금은 꺼려하는 홀트아동복지회라던지(추후 홀트아동복지회는 합정동으로 이사 가고 여성의집이라는 미혼모복지시설로 바뀌었다 없어졌다) 그런 복지시설들이나 학교가 많이 있었다. 아이들이 장애가 있으면 교육을 위해 동네로 많이 이사를 왔고 꼭 언어장애뿐 아니라 다른 장애여도 받아주는 데가 없어서인지 동네에는 몸이나 마음이 불편한 아이들이 많았다. 그 옆집아이가 발달장애인지 무슨 병이 있는지 몰랐고 보통아이들과 조금 다르거나 어눌하면 그냥 바보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불렀다.
그 아이는 아마 발달 장애였을지도 모르겠다. 아이의 엄마 아빠는 맞벌이로 일을 하였고 언니는 학교를 가고 나면 혼자서 집에 오도카니 그냥 있었던 것 같다.
혼자라는 것이 어린 그 아이에게 얼마나 큰 외로움이고 두려움일지 그때는 몰랐다. 사람이 잘나고 못나고 다 층하가 진다 생각하고 나만 못한 이들을 무시해도 그게 부끄러운 일인지를 몰랐었다.
그 여자카지노 쿠폰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부모와 가족들은 힘든 삶이 되어 카지노 쿠폰를 외면하지는 않았는지 모르겠다.그때는 너무 어렸기에 그냥 그런 시절이라서 불편한 사람에 대한 편견과 무시가 일반화되었던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마음이 좀 편해졌었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40여 년이 지나서 오늘 같은 모습을 보고 난 후 왠지 모르게 마음 한구석이 퀭하고 움찔하는 것을 보면 나의 잘못과 편견을 스스로도 인정하는 것 같다.
플란다스의 개라는 만화영화를 보고 너무 슬프다고 눈물을 뚝뚝 흘리던 어린 나는 현실 속에선네로와 파트라슈를 괴롭히던 집주인이었던 것 같다.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카지노 쿠폰를 옆집 여자아이에게 키우라고 보내줄 걸 그랬어하고 속으로 상상을 했다.
그때 그카지노 쿠폰는 중년이 되었을텐데 어른이 된 옆집여자카지노 쿠폰는 커서 저 아가씨같이 변했을까? 자꾸 얼굴이 오버랩되며 지금 그시절의 여자카지노 쿠폰가 내게 다시 되돌아와 이야길 한다.
"나는 외롭고 쓸쓸하지만 아가씨가되었고 그 못된 오빠가 당신이라는 걸 알아요". 환청처럼 목소리가 귓가를 맴돌다 사라졌다.
내가 옛 생각을 떠올라 지켜보던 사이 이내 한 사람은 한참을 개를 만지고 또 한 명은 또 그렇게 목줄을 쥐고 서서 있다가 각자가 갈길을 떠났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을 사랑하지 못하고 이해하지도 못한 어린시절의 못난 나만 남아서 길가에 서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