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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주 May 02. 2025

[성장통] '어른'이 되기 위한 '무료 카지노 게임' 되기

피카소와 무료 카지노 게임

성장과 통증의 기억들


나란 사람이 질적으로 바뀌었다고 느낀 적이 있다. 그 시작은 신체적 성장이 멈춘 20대 초반부터였다.대학에 진학하게 되면서부모님과 떨어져 생활하기 시작했다. 통금 없는 외출을 할 수 있었고,성인에게만 허락된 것들을 즐길 수 있었다.10대 시절에는 부모님의 울타리가 좁고 답답하게만 느껴졌다. 통제가 심할수록 벗어나고자 하는 갈증은 심했다. 시간이 흘러 마침내 울타리가 해제되었고 나는 한결 자유로웠다. 하지만 자유롭다는 것이 꼭 좋은 일만은 아니었다. 자유롭기 위해서는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역량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나는 울타리 밖에서 이리저리 부딪치고 상처받으며 세상을 배워나갔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가능성과 한계를 알게 되었다. 방 안에서 상상만 하던 세계를 현실 속에서 직접 느낄 수 있게 된 것이다.


출산을 하고 무료 카지노 게임를 키우면서 다시 한번 질적 도약이 있었다. 무료 카지노 게임를 낳은 초반에는생명이란 것이 너무나 신비롭고 놀라웠다.세상에 이렇게 예쁘고 사랑스러운 것이 있을까?세상에 이렇게 고통을 잊게 하는 존재가 있을까? 세상에 이토록 나를 마음대로 조종하고, 조종당하면서도 기쁨을 느끼게 하는 존재가 있을까?무료 카지노 게임는 그야말로 기쁨이자 경이로움이었다.무료 카지노 게임가 자라면서 점차 어려움이 생겨났다.무료 카지노 게임를 기르는 과정에서 전혀예상치 못한 낯선 나의 모습이 나타나게 되었다.내가 이토록 감정 조절이 안 되는 사람이었나? 내가 이토록 참을성이 없는 사람이 없나? 내가 이토록 쉽게 화를 내는 한심한 사람이었나?나도 모르게 불쑥 나타나는 무절제하고 가벼운 모습이혐오스러웠다. 무료 카지노 게임를 기른다는 것은 이 세상에 가장 아름다운 것과 이 세상에서 가장 추한 것을 동시에 만나는 일이었다.황홀한 지옥이 있다면 바로 이곳이었다.


페미니즘을 공부하면서 다시 한번 정신적 동요가 찾아왔다. 미투 열풍이 한창이던 시기에 페미니즘 도서를 읽게 되었다. 그동안 가정과 사회에서느꼈던 불편감이 무엇이었는지, 그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번번이 실패할 수밖에 없었는지 알게 되었다. 성인이 된 초반에는 내가 참으면, 내가 상황에 적응하면 갈등이 없고 평화가 찾아올 줄 알았다. 하지만 희생은 더 큰 희생을 요구했고 더는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무기력해졌다. 급기야 나는 주체적으로 살 수 없다고 생각해 버렸다. 나의 역할과 의무에 팔다리가 꽁꽁 묶여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누가 묶었는지도 모르는 감옥에 갇힌 기분이었다. 이런 나의 고통이 개인적 성향이거나 특수한 조건이어서 생기는 문제가 아니었다.페미니즘은 나란 개인이 사회의 구조 속에서 어떻게 관계 맺고 있는지 알게 해 주었다. 내가 스스로의 선택으로살아왔다고 믿었지만, 실은사회구조와 통념 속에서 일방적으로 길러져 왔다는 것을 알았다.뭔가 세상에 속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억울하고 화가 났다. 분노라는 에너지는 대학원을 진학할 수 있는 연료가 되었다.


대학원에 진행하여 다시 한번 성장의 기회를 맞이했다.40살이 넘어 입학한 대학원에서는이 전의 인생에서 알 수 없었던 전혀 다른 세상을 보게 되었다. 대학원을 다니면서 심리이론을 배우는 것뿐 아니라 배운 이론을 나에게 적용해 보며 자기 분석을 했다.그림 속에 투영된 나를 성찰했다. 내게 결핍된 것이 무엇인지, 내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갔다. 새로 알게 된 세상의 범주는나의 내면에만 머물지 않았다.실습을 위해 찾아갔던 폐쇄병동과 사회복지기관에서 정신장애와 발달 지연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내 삶의 가까이 없어서 몰랐던,혹은 무관심했던 세계를 보게 되었다.놀랍고 낯설고 두려웠다.매 걸음이 시행착오였다.어두운 숲 속을 헤치며 나아가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어두운 길을 걸을 때마다 두려움은 사라져 갔다. 깊은 숲 속도 생명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낯선 길을 함께 걷고 있는 사람들도 만나게 되었다. 어둠 속을 걸으며 우정과 용기를 배워갔다.


여기까지의 경험들은 모두 나를 확장하고 성장시켰다. 내가 알던 작은 세계 너머 더 큰 세계를 열어주는 방식이었다.하지만 철학을 배우면서는 모든 것이 달라졌다.철학은 내가 그동안 블록처럼 조립하면서 만들어온 체계를 흔들었다. 배움이라는 것이 기존의 지식과 신념 체계에새로운 것을 하나씩 연결해 가는 과정이 아니었다. 기존에 쌓아온 것을 허무는 과정이었다.내가 알고 있던 세계에 대해 의심하고 재고해야만 했다. 철학은 더 나은 삶을 고민하게 했다.철학을 통해 인간의 마음을 공부하며 나의 감정과 기억을 써 내려가는 글쓰기를 했다.대학원을 다니면서 심리적 문제에 직면하는 훈련이 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감정을 글로 쓴다는 것은쉽지 않았다. 매일 글을 쓰는 과정에서 억압시켰던기억이 떠올랐다. 감당할 수 없어서 기억 저편으로 밀어 넣었던 기억이 글쓰기를 계기로 무의식을 뚫고 밖으로 나오고 싶어 했다. 수업에서 선생님은 내게 사진 한 장을 보여주셨다."우리의 수업도 이런 그림을 그리는 게 아닐까요."


무료 카지노 게임다큐멘터리 영화 <피카소의 비밀(1956)


사진은 60대의 피카소가 자신이 그렸던 그림을 반복해서 다시 그리는 장면이다.이 장면은 무슨 의미를 담고 있을까? 나의 기억을 쓴다는 것은 무엇일까? 사진은 마치 선불교의 화두처럼 느껴졌다.인생의 다음 단계로 나가기 위해 풀어야 할 수수께끼였다.



피카소가 무료 카지노 게임 같은 그림을 그린 이유


피카소의 그림은 아이의 그림 같다.무료 카지노 게임들의 장난 같은 그림을 보고 "피카소의 그림 같다"라고 말하기도 하고, 피카소의 그림을 보며 "이런 건 나도 그리겠다"라고 하며조롱하기도 한다. 피카소는 왜 어린아이 같은 그림을 그렸을까?


피카소는 "라파엘로처럼 그리기 위해 4년이 걸렸다. 그러나 어린아이처럼 그리기 위해서는 평생을 바쳐야 했다."라고 했다. 피카소의 아이 같은 그림은 그림 실력의 문제가 아니었다. 피카소는 이미 10대 때 이미 사실주의 기법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었으며12세경에는 라파엘로처럼 그릴 수 있었다고 자신했다. 그뿐만 아니라 20세에 파리에서 개인전을 열 수 있을 정도로 피카소는 그림을 잘 그리는 것으로 인정받는 화가였다.하지만 당시 미술계는 보이는 것을 똑같이 재현하는 것이 목적이 아닌, 미술만이 할 수 있는 새로운 회화 방식을치열하게 고민하던 시대였다.


피카소는 아이의 그림처럼 그리고 싶어 했다. 어린아이처럼규칙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고 순수하게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다.하지만 이미 대상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 기술을 습득했기에 오히려 천진난만한그림을 그리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 되었다. 라파엘로와 같은 대가의 규칙을 따라 그리는 것도 물론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이미 습관이 된 기술을 버리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다.새롭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알던 것을 모조리 잊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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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옷을 입은 소녀, 1905년, <아비뇽의 아가씨, 1907, <도라마르의 초상, 1937


피카소는 그림을 그릴 때 계속 질문했다. “초상화를 그릴 때는 위에 있는 것을 그려야 할까, 얼굴 내부를 그려야 할까, 아니면 얼굴 뒤를 그려야 할까?” 끊임없이 질문하며 자기만의 방식을 찾아갔다. 10대에는 그림을 배우며, 있는 그대로를 재현하는 데 집중했지만 <잠옷을 입은 소녀에는 인물이 정서적인 면을 느낄 수 있도록 표현되어 있다. <아비뇽의 처녀에서는 형태가 과장되고 왜곡되는 등 선이 파괴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후 그림들에서는 얼굴의 정면과 측면, 내면과 외면, 현재와 미래 등 다양한 시점을 평면의 그림에 담아낸다.피카소는 회화의 배우고 익혀 갔지만, 결국 열심히 쌓아온 것을 스스로 무너뜨리면서마침내 자신의 방식을 찾았다. 다시 무료 카지노 게임의 마음으로 돌아가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 갔다.



어른은 왜 무료 카지노 게임가 되어야 할까?


어른은 나이가 들었다고 자연스럽게 되는 것이 아니었다.사회에서 역할을 부여받고, 아이를 돌보면서 어른 행세를 했지만 내 역할이 벅차게 느껴지는순간이 많았다. 나는 무엇이든 능숙하게 잘 해내고 싶어 하는 욕심이 있었기에어려움을 드러나거나 쉽사리 포기하지 못했다. 이런 성향이 유익할 때도 있었지만 지나칠 때는 늘 독이었다. 힘들고 어려워도 악착같이아는 척, 이해심이 많은 척, 젊잖은 척, 세상을 아는 척했다. 하지만 속은 겉처럼 단단하지 못했다.


내가 생각하는 어른은스스로를 돌볼 수 있어야 한다.스스로를 돌볼 수 있는 사람만이 타인을 돌볼 수 있기 때문이다. 자기 앞가림을 할 수 있어야 남의 앞가림도 살펴 줄 수 있다. 나는 어른답지 못했다. 내 안에서 아이 같은 모습이 나타났을 때 자책하거나 감추기 급급했다. 나는 스스로를 돌보는 것을 배우지 못한 채 어른이 되었다. 못난 모습을 보이면 스스로 비난하기 바빴다.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기보다는 누군가 나의 어린 모습을 보고 혼을 낼까 두려웠다. 나는 비난받는 것이 두려워서 그것을 피해 살아왔다.


나이가 드는 과정은그저 세상에 잘 적응하는 일이었다. 사회에서 하라는 것을 하고 하지 말라는 것을 하지 않으면서 착한 모범생으로 살아가는 것이 가장 무탈하다고 배웠다.학생이라면, 자식이라면, 직장이라면, 여자라면 등등 온갖 사회의 규범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었고, 나는 그 역할에성실히 적응하려고 했다.젊은 시절 잠시 의문을 품고 반항을 시도했지만 상처로 돌아왔다.좌절이 반복되면서 세상에 도전하는 것을 피하게 되었다. 오히려 세상을 무서워하게 되었다. 무서워서 숨는 신세를 받아들이는 것조차수치스러워서 내 상황을 합리화했다."사는 게 다 그런 거야" 하면서 부조리함을 받아들이게 되고, "남들도 다 그렇게 살잖아" 하면서 관성적 삶과 타협했다.


뒤늦게 공부한 철학에서는 자신의 인생에 주인이 되라고 했다.누구에게나 자신의 삶을 끌고 나갈 권리가 있다고 했다.나의 기쁨을 찾으라고 했다. 남이 하라는 거 말고 나의 기쁨을 찾으라고 했다. 진짜 나의 기쁨을 찾으라고 했다. 그것은 이기적이고 나쁜 것이 아니라고 했다. 그것이야말로선이며 인간으로서 자연스러운 삶이라고 했다. 이것을 깨닫게 되자 어린아이처럼 설레었다. 동시에 두렵고 막막했다.


내가 언제 기쁜지 알아차리는 센서가 많이 고장 나 있었다. 나이가 들면서 했던 온갖 '척'들은 나의 기쁨이 무엇인지 혼탁하게 만들었다.어른인 척하느라 '진짜 나의 마음'을 잘 알아차리지 못할 때가 많았다.좋지 않아도 웃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았다.나는 계속 물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무엇을 할 때 기쁨을 느끼는 존재일까? 그리고 무엇을 할 때 슬픔에 젖는 존재일까?어른은 궁리하고 노력해야 알 수 있는 이런 것들을 아이들은 단박에 알아채곤 한다.매혹적인 것을 본능처럼 알아낸다. 좋아하는 것을 보면 바로 얻으려고 하고, 좋아하는 것을 빼앗기면 바로 울어 버린다. 이런 아이의 순수함이 어른들을 당황하게 하지만아이들은 기쁨과 슬픔을 분명히 알아챈다는 특징이 있다.나도 무료 카지노 게임처럼 느끼고 싶어졌다.



어떻게 무료 카지노 게임가 될 수 있을까?


(좌) <노란 목걸이를 한 여인 , 1946, (우) <두살의 클로드와 장난감 말 1949, 개인소장


피카소는 60대 초반의 나이에 40살 연하의 프랑소와 질로와 함께 살며 두 명의 자녀를 낳아 기른다. 이 시기에 피카소는 자녀들의 초상을 여러 점 남긴다. <노란 목걸이를 한 여인 속의 프랑소아는다른 초상화와 다르게 정면 측면을 섞은 모습이 아니라정면으로만 그렸으며 나무로 묘사되었다. 이 그림 외에도 피카소는 질로를 꽃이나 식물로 묘사하기도 했다. <두 살의 클로드와 장난감 말에서는 아이가 말을 가지고 놀고 있다. 아마도 즉석에서 장난감 말과 자신에게 역할을 부여하며 상상놀이를 하고 있는 듯 보인다. 그림은 진짜 아이가 그린 것처럼즉흥적이고 규칙이 없어서 유쾌하고 명랑한 느낌을 준다. 피카소가 20대 초반의 연인과 어린 자녀들에게서 발견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다큐멘터리 영화 <피카소의 비밀(1956)에는 피카소가 자신의 그림을 다시 그리는 장면들이 나온다. 여기서 피카소는 자신의 그림을 수정, 삭제, 덮어쓰기를 반복하며 마치 아이가 놀이를 하는 듯 움직인다. 피카소는 그림을 그림으로써 자신을 잊었다. 반복되는 연습, 반복되는 작업을 통해 기존의 자신을 지우고 새로운 자신을 만들어 냈다. 그는 계속 창조했다. 어제의 자신을 지움으로써 현재의 자신을 창조하고, 또 미래를 창조해 나갔다.


어린아이는 쉽게 잊는다.아이들은 속상해서 크게 울다가도 다음 날이 되면 아무 일 없다는 듯 씩씩하게 살아간다.아이가 씩씩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상처 입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새로운 기쁨을 계속 만들어 나가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속상한 일을 곱씹으며 되뇌지 않는다.새로움을 만나면 신기해하고, 아름다움 것을 보면 경이로움을 느끼고, 놀라운 장면을 보며 감탄한다. 있는 그대로를 보며 자신의 느낌을 신뢰한다. 아이들은 매일 새로운 놀이를 하며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 나간다.피카소는무료 카지노 게임들의 그림과 놀이를 통해어린무료 카지노 게임처럼 상상하고, 어린무료 카지노 게임처럼 움직이고, 실수에 좌절하지 않고 계속 그림을 이어나가면서, 그 모든 과정을 즐겁게 받아들이는 것을 닮고 싶었을 것이다.


<그림을 그리고 있는 프랑소아, 클로드, 팔로마, 1954년



무료 카지노 게임를 회복한 어른으로 살아가기


자신의 그림을 반복해서 그린 피카소처럼, 또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 걷기를 반복하는 아이처럼, 나 또한기억을 떠올리고 글로 쓰는 것을 반복했다.과거에 있었던 기쁨과 고통이 현재의 몸에 반복되었다. 나는 그 느낌을 재생시켰다. 그리고 기억을 겪을 당시의 어린 내가 아니라, 기억을 바라보고 있는 현재의 시점으로 재해석했다. 지난 시간의 아픔을 위로했고, 고통의 정도를 과장하지 않고 객관화시켰다. 과거를 돌아보는 것은 과거의 허물을 들쑤시는 것이 아니었다.기쁨만큼 기뻐하고 슬픔만큼 슬퍼하는 과정이었다.그 과정에서 나 자신이 새롭게 느껴졌다. 과거와는 다르게 살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희망만을 가지고는 살아갈 수 없다. 슬픈 기억의 망각은 희망만으로 생기지 않는다. 새로운 기억을 생성해야만 한다. 새로운 기억을 생성하기 위해서는 시행착오를 겪어야 한다. 아이가 걷기 위해서는 고개 들기, 뒤집기, 일어서기 여러 단계를 거치고 이를 수없이반복한다. 아이는 이 반복을 지루해하거나 조바심을 내지 않는다.성장은 이렇게 이루어진다.갑자기 단박에 되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천천히 꾸준히 이루어진다. 앉아만 있지 않고 일어서려 할 때,잠시 멈추더라도 다시 걸으려 할 때 성장한다.어제는 슬펐지만 그래도 오늘 사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간다면 그것이 성장이다.


피카소가 아이를 동경한 것은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예술가였기 때문이다. 우린 모두 예술가로 태어났다. 피카소가 자기만의 예술을 창조했듯이 우린 모두 자기 삶을 창조할 수 있다.우리는 물감이나 크레파스가 아니다. 주어진 운명의 재료가 아닌, 그 재료를 사용할 수 있는 창조적 연출가이다. 나는 지금도 글을 쓰며 새로운 놀이를 하고 있다. 과거를 기억하지만, 다시 현재를 그리며 새로운 이야기를 창조하고 있다.무엇을 그릴지, 무슨 이야기를 쓸지는창조적 연출가에 따라 다르다.


나는 아이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 넘어져도 걷기를 포기하지 않는 마음을, 상처 입고도 다시 삶을 사는 마음을, 아픈 이별을 겪고도 다시 사랑을 시작하는 마음을 써 내려가고 싶다. 나는 어른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 걸음마를 시작하는 아이의 호흡을 맞추어 주는 마음을, 넘어져서 울고 있는 아이를 돌보는 마음을, 함께 걷게 된 것을 기뻐하는마음을 쓰고 싶다. 그렇게 다시 무료 카지노 게임가 되고 진짜 어른이 되고 싶다.



<비둘기를 안은 소년, 190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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