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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성규 May 01.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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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야기 하나를 만들고 있었다.

친구의 제안은 이랬다. 가족의 구원 과정에서 엑소시스트가 교황청의 허락 없이 악령을 쫓기 위해 지옥으로 가는데 교황을 맞이하고 혼돈에 빠지는 이야기.

명확한 규율과 처벌이 있는 세계. 누가 옳고 그른지 분명한 이야기.


나는 그게 마음에 걸렸다.

“지옥이 너무 쉬워. 그건 설명이야, 아니야. 그냥 선악의 감옥이지.”

그러자 친구는 아이디어를 고쳐줬다.

“그러면… 교황은 신의 시험으로 지옥으로 보내진거야. 신의 장난이었다고 하자. 그럼 좀 더 비틀리잖아?”


하지만 나는 거기서도 멈췄다.

“아냐, 그럼 또 신이 다 짰다는 얘기잖아. 우리는 또다시 판단을 위임하게 돼. 여긴… 혼돈이 필요해.”


그래서 나는 그 세계를 다시 짰다.

지옥도 아니고, 천국도 아닌 곳.

그곳은 무섭지 않다. 오히려 편안카지노 게임 사이트, 명확카지노 게임 사이트, 판단 불가능한 공간이다.

누구도 죄인이 아니고, 누구도 구원받지 않았다.

그저, 선택의 결과만 남는다.


친구와의 그런 대화를 통해 나는 하나의 질문을 계속 곱씹었다.

“우리가 규율 없이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신은 심판자인가, 아니면 선택의 여백인가?”


그리하여 이 이야기는 쓰여졌다.

이건 단지 판타지나 종교적 은유가 아니라,

내가 친구와 함께 구성한 판단의 해체이며,

도덕의 권한이 어디서 비롯되는가에 대한 성찰이다.


그리고 어쩌면,

이건 단순히 스토리가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이야기로 철학하는가”에 관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주인공: 가족을 구하려는 절박한 인간

사건: 교황청의 허가 없이, 퇴마사와 함께 신비한 세계로 간다. 그 곳이 지옥인지 천국인지 헷갈려하는 주인공.

목표: 가족을 악마의 손아귀에서 구출카지노 게임 사이트자 함.


가는 곳은 인간의 내면, 가장 깊은 곳에 잠재한 공포, 죄책감, 권력욕, 거짓 신념들의 집합체로 묘사.


처음에는 화려하고 찬란한 신전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지옥이라 인식하지 않고 천국을 갔다는 식으로 묘사하여 점점 지옥일 수도 있겠다는 묘사가 극적일 수 있음.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것들이 부패하고, 왜곡되고, 인간의 위선과 공포로 지어진 허상임이 드러난다. 곳곳에서 들리는 기도 소리조차, 누군가를 저주하거나 조롱하는 내용처럼..


카지노 게임 사이트은 선과 악, 둘 중 하나의 색이 강하면 재미가 없어지고, 다층성이 사려져 스토리가 교훈적으로 변하니, 선과 악을 혼합시켜 인간의 다층적 면모를 보여줘야..


주인공은 그 안에서 한 신성한 존재를 만난다. 놀랍게도 그 존재는 카지노 게임 사이트의 모습을 하고 있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은 고결하고 자비로운 듯 보이며, 주인공을 도우려 한다. 말과 행동은 일견 모두 옳고 선해 보인다. 그러나 그의 말투나 작은 표정 변화 속에 가끔 설명할 수 없는 서늘함이 스친다. (예: 자비를 말할 때 입가에 스치는 비웃음 같은.) 점점 카지노 게임 사이트의 말과 행동에서 미묘한 이질감과 위선을 감지하게 된다. (예를 들면: 가족을 버리라고 암시하거나, 신의 이름으로 비인간적 요구를 한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은 직접적으로 악한 말을 하지 않는다. 대신, “너희 가족은 구원받을 가치가 있을까?” 같은, 가족의 신앙적 문제를 말하고 주인공 내면에 의심을 불러일으키는 질문을 던진다. 그 와중에도 절대 명령하지 않고, 항상 ‘선택’이라는 이름으로 주인공을 유혹한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이 이끄는 장소는 눈부시게 아름답지만, 주인공이 오래 머물수록 공허하고 메마른 느낌이 들기 시작한다. 그의 손에 들린 성배는 빛나지만, 자세히 보면 안에 담긴 것은 맑은 물이 아니라 검은 피처럼 보인다.


‘신성한 구원’을 기대했던 주인공은 혼란에 빠진다. 교황이 보여주는 친절은 계산적이며, 가족 구원은 조건부로 제시된다. 점차 주인공은 깨닫는다. 이 교황은 ‘진짜 구원자’가 아니라, 지옥의 가장 깊은 교만을 상징하는 존재일 수도 있다는 것을.


“그는 신의 대리인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 눈빛 안에는, 천 번의 설교로도 지울 수 없는 의문이 있었다.”라는 식의 인식적 깨달음을 넣을 필요.


카지노 게임 사이트을 의심하고, 악마가 카지노 게임 사이트으로 변한 것이란 의심을 한다. 결국 판단은 독자에게 넘기고 독자에게 질문을 하는 방식.


결국 이 곳이 지옥인지, 천국인지 헷갈려하고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주인공.


이 과정에서 주인공은 종교 그 자체, 인간이 만든 신성의 허위성에 대한 의심을 품게 된다. 구원은 외부 권위(교회, 제도)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자유의지와 사랑 속에서 찾아야 함을 깨닫는다.


주인공은 끝까지 “여기는 지옥이다”라고 확신하지 못한다. 다만 “그 무엇인가가 잘못되었다” 는 본능만을 따라 스스로 선택하고 나아간다. 결국 선과 악을 구분짓는 외적 기준 대신, 내면의 감각을 따르는 것이 구원임을 암시하고 오직 자신의 선택과 희생을 통해 가족을 구하려 한다. 성공 여부는 모호하게 열어두되, 중요한 것은 ‘주체적 선택’을 통해 인간성을 되찾았다는 점을 강조.


이 스토리는 선악의 단순한 구분을 넘어서,

“주체성”과 “진짜 구원은 어디에 있는가”를 묻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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