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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시옷 Feb 09. 2025

한강의 '회복카지노 게임 추천 인간'은 무엇이 시적인가

송종원 평론가의 글을 읽고

창작과 비평 계간지에 송종원 문학 평론가가 쓴 '시적인 산문이라는 평가에 대해서'라는 글을 읽었다. 창비 블로그에 쬐금 소개되어 있는 글을 읽고 뒷부분이 너무너무 궁금해서 계간지 유료 구독까지 하며 전문을 읽었다.

한강의 소설에 대해 '시적 산문'이라고 표현하는 문장 앞에서 고개를 끄덕거리곤 했지만, 만약 누군가 나에게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물어보면 어버버 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잘 모른단 얘기다. 그런데 송종원 평론가의 글은 '시적 산문'이란 표현을, 한강의 소설을 한층 깊이 있는 이해로 단숨에 닿게 했다. 내가 '시'를 제대로 이해하고는 있었던가? 카지노 게임 추천 반성까지 들었다.


<채식주의자와 <소년이 온다 등을 영어로 번역한 데보라 스미스는 '시적'이라는 말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카지노 게임 추천 대목에서 "작품 특유의 분위기와 어조와 결이 하나의 정제된 이미지로 다가오"며 "생생한 인상"을 받는다고 쓴다. 그는 <채식주의자의 어조와 분위기를 "단정적인 어조와 무심함"이라 표현하기도 카지노 게임 추천데 아마도 이는 작품에서 '영혜'라는 인물이 취한 주체적 태도와 관련될 것이다.


한강의 작품이 주는 시적인 인상은 저 같은 수사(세상의 나무를 형제라고 돌려 말하는 비유의 방식)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보다 더 범위가 크다. (중략) 현실의 자매 한 명이 다른 한 명을 정신병원에 가두는 중이고, 갇힘 당하는 존재가 쇠창살 너머 저편의 나무에서 우애를 느끼는 상황, 작품 속에 시적인 문장이 한줄 새겨져 있는 것이 아니라 시적인 상황 하나가 통째로 던져져 있는 셈이다.


시는 의미적 유사성만이 아니라 소리와 문자의 형태까지도 연상의 소재로 활용하며 전개되는 특징이 있는데, '나무'에서 '물구나무'로의 이어짐은 그런 면에서 꽤 자연스럽다. 그런데 이 전환에서 시적 방법으로서의 연상작용보다 더 중요한 지점은 거꾸로 선다는 것 자체이다. (중략) 시를 떠올리면 생각하게 되는 이미지나 분위기, 어조 등은 저 음미를 위한 방편에 불과하다.. 시는 최종적으로 삶의 의미를 묻는 자리에 이르러 완미한 상태가 된다.


'회복하는 인간'을 읽고 고마카세에서 나눈 감상들 역시 ‘시적인 산문’이라는 평가와 연결된다.


언젠가 당신은 스스로에게 물은 적이 있다.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당신과 언니, 둘 가운데 누가 더 차가운 사람이었는지.

(디 에센셜, '회복카지노 게임 추천 인간' 228쪽)


작품 곳곳에서 시의 모습을 한 문장들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누가 더 차가운가’라는 질문을 통해 당신과 그녀(동생과 언니)에 대해 이야기했다. 처음에는 상대방을 대하는 매정함과 냉정함의 비유로 ‘차가움’을 이해했지만, 한강의 작품에서 ‘시’는 더 넓은 의미를 가진다.

누가 더 깨지기 쉬운 사람이었는지,

누가 회복이 필요한 존재인지에 대한 은유로서 차가움은 기능하기도 한다.


당신의 마음을 최대한 차갑게, 더 단단하게 얼리기 위해 애썼다.(231쪽)


‘차가움’은 상대의 행위로 인해 얼어붙은 자신을 표현카지노 게임 추천 말, 나아가 존재 자체를 비유하며 확장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왜 주인공이 경험카지노 게임 추천 고통을 '화상'으로 표현카지노 게임 추천지도 추측해 봄 직하다. 언니의 장례를 산에서 치르고 내려오는 길, 주인공이 발을 삐고 직접구로 뜸을 뜨다 화상을 입는데 오랜 시간 차갑게 얼어 있던 주인공이 언니의 죽음을 계기로 언니에게 의지하던 유년, 자신을 향한 언니의 사랑을 깨닫는 은유다. 타인의 손을 잡을 때 내 손이 차가울수록 온기가 더욱 선명하듯, 상처로 인해 존재의 온도가 낮았던 사람에게 그 (사랑의) 뜨거움은 불에 덴 것과 같은 강렬한 감각이 된다. 다시 말해, 언니를 향한 원망과 후회, 자책, 사랑 등 언어로 형용하기 어려운 동생의 심리는 강렬한 감각적 이미지로 구현된다.


먼 화요일 오후의 레이저치료실에서, 간호사가 습윤테이프를 뗀 순간 처음으로 선홍색 피가 흥건히 흘러내리리라는 것을 당신은 모른다. 처음으로 그 자리가 쓰라리게 느껴지리라는 건을 모른다. 그날 이후 놀랍도록 빠르게 진물이 줄어가리라는 것을 모른다.(243쪽)


소설 후반부터 주인공의 화상이 미래에 결국 회복될 것임을 단정적으로 서술하는 문장이 반복된다. 회복은 주체의 의식적 바람과 상관없다.(지금 당신이 겪는 어떤 것으로부터도 회복되지 않게 해 달라고(중략)기도를 입속으로 중얼거리고, 또 중얼거린다, 243쪽)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는 작가의 믿음이자, 인간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내포한 시적 명제다. 회복되지 않기를 기도하는 동안에도 회복은 서서히 진행되는 아이러니,

시이자 산문으로서 완전한 결말이다.


세속적인 기준으로 볼 때, 평범한 중산층의 삶을 사는 언니가 왜 주인공에게 열등감을 느꼈는지 분명히 드러나지 않지만 '통념'에 관한 주인공과 언니의 대화에서 짐작할 수는 있다.

자매의 부모는 어릴 때부터 자매를 비교하며 상대적으로 흡족한 언니에게 애정과 관심을 크게 기울였는데,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못한 사랑은 '기대'라는 형태로 작용했을 것이다. 언니는 기대에 부응카지노 게임 추천 삶을 저버릴 수 없었고, 자기 삶의 자유가 훼손될수록 동생이 밉거나 부러웠을 것이다.

누구도 통념 안에서만, 밖에서만 살 수 없다.

중요한 것은 통념의 경계를 유연하게 넘나들며 자신의 욕망을 채우고 타인과 연결되는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쉽기만 한 일이라면 '시'라는 장르의 탄생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시란, 인생의 육성이니까.(평론가 신형철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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