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보다는 장미꽃 한 송이가 더 마음에 든다며, 평생 반지 하나만을 받느니 평생 꽃 선물을 받으며 살고 싶다고. 그렇게 말하던 희진이는 스물다섯이라는 나이에 나와 결혼하고 그해에 송희를 가졌다.
짙은 향기만큼이나 그녀와의 짙은 추억이 장미꽃 한 송이에 배어 있었다.
“여기는…….”
오늘 아침에 출근할 때 곰인형을 보았던, 어쩌면 보았다고 착각했던 그 횡단보도 옆이었다. 나는 길가에 차를 세우고 밖으로 나왔다.
사실 이곳은 희진이와 이별을 한 장소이기도 했다. 놀이공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교통사고가 났는데, 나와 송희는 무사했지만 희진이는 그렇지 않았다. 그날 내렸던 카지노 쿠폰만큼이나 내 눈물도 무수히 흘러내렸다.
하지만 그날 일에 대해서 단순히 비를 탓할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분명히 보았기 때문이다.
이 두 눈으로 그 망할 미친놈을! 춤추는 곰인형을 말이다.
*
갑자기 비가 많이 내렸다. 분명히 구름 한 점 없던 화창한 날씨였고 비가 내릴 거라는 소식도 전혀 없었다. 가벼운 소나기면 비가 그칠 때까지 기다리다 가려고 했는데 구름이 얼마나 많은 물을 먹었는지 전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자기야, 무슨 일 있어? 표정이 너무 어두워 보이는데.”
“아빠, 무서워.”
“아, 아냐. 얼른 집에 가서 맛있는 거 먹자.”
억지로 웃긴 했으나 카지노 쿠폰가 보기에도 내 표정이 영 아니었나 보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가 자동차를 두드릴 때마다 드럼 스틱으로 내 심장을 두드리는 것만 같았다. 그 이유가 사실 비 때문만은 아니었다. 놀이공원에서부터 계속 신경 쓰이는 점이 하나 있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보았던 정말 흔한 곰인형들 중에서 유독 하나가 자꾸만 내 앞에서 얼쩡거렸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카지노 쿠폰는 못 본 것 같다. 굳이 내가 말할 필요도 없었고 말하고 싶지도 않았다.
아니, 절대 말해서는 안 되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검은색 구두를 신고 검은색 정장을 입고 있었으니까.
그것을 보는 순간, 마치 오랫동안 꼭꼭 숨겨 두었던 금서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처럼, 온 세상을 검게 물들이듯 묘한 불안감이 나를 엄습했다. 그래서 나는 그곳을 빠져나와 한시라도 빨리 집으로 향하고자 했다.
“자기야?”
“괜찮다니까.”
“정말 괜찮은 거 맞지?”
“당연하지. 얼른 집으로 가서…….”
“맛있는 거 먹자고?”
“아니, 송희 일찍 재우자고.”
나는 그녀를 보며 눈썹을 두 번 출렁였다. 그러자 카지노 쿠폰는 눈썹을 찡그리더니 혀를 내밀고는 ‘메롱’으로 답을 대신했다.
“일찍 자기 싫어!”
송희가 나의 엉큼한 속내를 눈치챘는지 잠자기 싫다며 울기 시작했다. 카지노 쿠폰와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웃었지만 내 표정은 얼마 가지 않아 다시 메말랐을 것이다.
“오늘따라 신호가 기네.”
신호를 기다리는 동안 내 손은 불안해서 가만히 있지를 못했다. 그런 내 모습을 보았는지 카지노 쿠폰가 자기 손을 내 손 위에 올렸다. 그러자 송희도 따라서 손을 올렸다.
정말로 행복했다.
적어도 그 짧은 순간만큼은.
“송희야!”
카지노 쿠폰와 나는 필사적으로 송희를 감싸 안았다. 덕분에 송희는 무사했다. 하지만 카지노 쿠폰는 그렇지 못했다.
“자기야……. 우희진!”
자동차 지붕이 뚫렸는지 커다란 물줄기가 내 머리에서 얼굴을 타고 아래로 흘러내렸다. 차갑지 않은 카지노 쿠폰이었다. 꽤 끈적끈적했고 따뜻했다. 그 새빨간 카지노 쿠폰은 내 눈물마저 삼켜 버렸다.
내 의도와는 상관없이 자꾸만 고개가 아래쪽으로 기울어졌다. 눈꺼풀도 마찬가지였다. 애써 내 몸을 부정해 보려 하는데, 그 순간 바닥에 떨어진 장미꽃 한 송이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그건 내가 희진이에게 준 선물이었다. 조금 전까지 그녀가 꼭 잡고 있었던……. 장미꽃 향기로 차 안을 가득 메워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내 코안을 가득 채운 건 오직 피비린내뿐이었다.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것은 그날 내가 정신을 잃을 때까지 우리는 송희를 안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비를 잔뜩 먹은 먹구름보다 더 무거워진 내 눈꺼풀은 세상을 닫아 버리지 않도록 최대한 버티고 있었다. 송희가 무사하다는 걸 알았을 때는 안심하고 눈을 감으려 했다.
하지만 차 유리창 너머로 무언가가 어른거렸을 때, 그리고 그것과 눈이 마주쳤을 때 그런 생각이 말끔하게 사라졌다. 왜냐하면 나를 쳐다보고 있는 건, 내가 쳐다보고 있는 건 바로 곰인형이었기 때문이다.
검은색 구두에 검은색 정장 그리고 무표정한 곰인형의 탈. 그것이 비를 맞으면서 차 유리창 너머로 나를 향해 쳐다보고 있었다. 분명히 무표정인데도 불구하고 마치 웃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다음은 잘 모르겠다. 어쨌든 그날은 내게 있어 마지막으로 카지노 쿠폰의 따뜻한 체온을 느낄 수 있었던, 가장 뜨거우면서도 가장 차가운 하루였다.
절대로 잊을 수 없다.
그날도, 그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