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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확위 Feb 14. 2025

네 번째 엽서: 네가 선택한 그 카지노 게임


네 번째 엽서: 네가 선택한 그 카지노 게임

카지노 게임

내가 프랑스에 있다가 한국에 돌아오면서 네 결혼식을 놓쳤잖아. 남편분도 한참 지나고 최근에야 봤으니까. 네가 결혼한다고 했을 때 그 소식을 우리 가족들에게 전했더니, 내게 남편은 어떤 사람이냐고 묻더라고. 그러고 보니, 난 네게 묻질 않았더라고. 난 당연히 너의 선택을 믿었거든. 너는 바보가 아니니까. 바보가 아니더라도 실수는 할 수 있지만, 넌 중요한 결정을 실수할 사람이 아니잖아?

그렇게 네가 결혼을 하고 내가 프랑스에서 한국에 돌아온 후, 너희 집에 놀러가 처음 만나 인사를 나눴지. 묻지 않아도 괜찮은 게 맞았어. 역시나 좋은 카지노 게임이 좋은 카지노 게임 옆에 함께하고 있었으니까.

아! 그러면 네 옆에 있는 나도 좋은 카지노 게임인가?

(오늘 엽서 그림은 그분이 매일 마신다는 아이스 바닐라 라떼야!)


2025.02.14. 앗! 발렌타인 데이네 (하트)


프랑스에 있던 어느 날, 평소처럼 한국에 있는 강과 메시지를 주고받던 중이었다.

-나도 내손으로 이런 글을 적을지는 며칠 전까진 몰랐는데, 올해 결혼이란 걸(?) 할거 같아!!! 자세한 건 다 미정이고 이제 알아보려고 하는데, 그런 것들 정해지기 전에 말하고 싶었어.

나는 별로 놀라지 않았다. 그래서 나의 생각대로 답을 했다.

-어쩐지 그럴 거 같았어. 느낌이 있었거든.

-갑자기?

-응. 인스타그램을 보면서 그냥 느낌이 그랬어.

-오, 그건 맞아. 혼잣말을 적어놓은 건데, 그걸 그렇게 읽는 카지노 게임은 너뿐이지 않을까?

-음.. 나라서 안다고 하고 싶지만, 남들은 어떨진 모르지. 그래서, 결혼소식은 놀랍지 않았어. 서프라이즈 실패!

-엄마 빼고 처음 말해봐.


“엄마 빼고 처음 말해봐”란 얘기에 강의 어여쁜 어머님이 이 소식에 얼마나 기뻐하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강은 “엄마 외에 네가 최초의 카지노 게임이니 뭉클하지!ㅋㅋ”라고 했지만, 뭉클함은 어머님이 느끼셨을 기쁨에 대한 뭉클함이 더 컸던 것 같다. 매번 나와 헤어질 때마다 “우리 XX와 친하게 지내줘서 고마워~”라며 20년을 웃어주시던 분이셨다. 그러니, 자식이 남은 삶을 함께할 동반자가 생겼다니 얼마나 기쁘셨을까.


강이 결혼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은 것은 별다른 것이 아니었다. 강은 혼잣말로 몇 마디들을 적어놨다고 했지만, 내가 느낀 것은 그렇게 결혼 얘기가 오고 가기 시작했다는 그 시점의 그녀가 남겨둔 글이 아닌, 조금씩 올라오던 그녀의 사진들이었다. 강은 포스팅을 자주 하지 않는다. 가끔 올리는 포스팅이었는데, 커피 두 잔이 나란히 있었다. 그게 몇 번이고 이어졌다. 만난 지 그래도 제법 시간이 지났는데, 정다운 커피 2잔이 몇 번 계속해서 올라오자 나는 느꼈다. ‘이 관계에서 편안함을 느끼는구나.’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만을 올리는 강이다. 읽었던 책의 사진을 찍고 좋아했던 구절들과 책에 대해 글을 남긴다, 어느 날의 야경이나, 예쁜 창밖 풍경, 그렇게 자신의 일상에서 기분 좋은 순간들을 인스타그램에 남긴다. 그런 그곳에 연달아 커피 2잔이 찍힌 사진이 올라왔다. 한잔은 언제나 바닐라 라테였다. 그 일련의 커피들에서 나는 느꼈다. ‘강이 이 사람과 함께 할 것 같다. 함께하는 순간이 좋구나.’라고. 그 사진을 본 게 2022년 4월 10일이었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 11일 강이 내게 결혼할 것 같다 말했다. 나는 정말 놀라지 않았다.


내 가장 친한 친구의 결혼 소식이기에, 종종 강의 안부를 묻던 부모님께도 결혼 소식을 알렸다. 시간이 된다면 참석하고 싶다고 엄마가 말하셨다. 엄마는 내가 힘들 때 곁에 있어준 강에게 평생 고마움을 느낀다셨다. 그러면서 남편 될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내게 물었다. 할 말이 없었다. 그런 얘기는 나누지 않았으니까. 결혼 소식을 전해들 은 후, 어쩌다 결혼 얘기가 나오게 되었는지-그 정도의 얘기만을 나눴다. 결혼을 해야 하는 거라고 생각 안 하고, 하고 싶다는 생각도 없는데- 해야 한다면 이 사람이랑 하고 싶다? 는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자기도 자신이 결혼할 줄 몰랐다던 사람들이 자주 하는 멘트 같았다. 언젠가 방송에 나온 연예인이 말했던 것 같다. “저는 제가 결혼할 거라 생각지 않았어요. 하지만 오빠를 만나고, 결혼한다면 이 사람이랑 하겠구나. 그런 느낌을 받았죠.”라고 말이다. 그게 전부였다. 어떤 사람이냐고도 묻지 않았다. 그걸 물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강이 좋아하는 사람일 테고, 분명 좋은 사람일 거다. 그녀는 함부로 결정하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커피잔 사진에서 내가 느꼈던 그 느낌을 믿었다. 따뜻했고, 편안했던 소중한 일상이라는 그 느낌- 그걸 계속 함께하고 싶어 선택한 사람인 거다. 그러면 된 거다.


프랑스에 있어서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다른 이들이 찍어 올리는 사진과 실시간 라이브 같은 영상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어여쁜 신부의 모습을 한 낯선 친구를 보았다.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 영상과 사진 속에서도 친구만을 봐서인지 그때까지도 신랑의 모습은 기억에 남지 않았다. 그래서 강의 남편에 대해 이름 외에 정말 아무것도 모른 채, 한국에 돌아와 처음 보게 되었다.


강을 만나러 대전에 갔다. 드디어 처음으로 그녀의 남편과 함께한다. 강은 내게 셋이 함께 있다가 자기가 화장실이라도 가면, 둘이 어색해할게 눈에 보인다며 우리가 만나기 전부터 웃고 있었지만, (그녀는 정말 우리 둘만 두고는 화장실에 갔다.) 결론적으로는 그분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는 불편하지 않았다. 낯을 가리는 분이란 건 알겠고, 말이 많은 카지노 게임이 아니란 건 알겠다. 하지만 상대가 불편해하게 하는 카지노 게임은 아니었다. 친절함과 따뜻한 배려가 기본으로 갖춰져 있는, 잔잔한 카지노 게임이었다. 함께 얘기를 나누며, 강을 굉장히 존중해 주고 내 친구를 귀여워하는 게 느껴졌다. 좋았다. 그런 모습을 보는 것이. 식사를 마치고 커피를 권하기에 아메리카노를 선택했다. 강이 말했다. 이분은 바닐라 라테만 마신다고. 커피 두 잔 사진 속 언제나 한 잔이 바닐라 라테였다. 어느 날은 아이스, 어느 날은 따뜻한… 그들의 커피 두 잔 옆에 나의 커피 한 잔이 놓였다.


친구가 남편의 이름을 조금 바꿔 말했다.

“강과 호수에, 평야가 추가된 거야.”

“뭐야 그게, 대자연이네 (웃음)”

우리는 모두 함께 웃었다.


평야라고 우리가 지은 닉네임처럼 넓은 이해심을 가지고 있었고 “드넓은 평야”라고 생각하면 잔잔한 바람이 풀들을 흔드는 청아한 모습이 떠오르지 않는가. 그런 느낌의 카지노 게임이었다. 잔잔함. 평화로움. 안정감을 주는 카지노 게임. 강과 호수가 있었다. 강 옆에 평야가 펼쳐졌다. 이제는 강과 호수, 그리고 평야가 있다. 우리의 세상은 더 넓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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