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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세연 Mar 29. 2025

"그 나이에 '카지노 쿠폰'를 타?" 백번 들은 여자의 항변

중형 세단을 버리고, 나는 다시 작고 소중한 카지노 쿠폰로 돌아왔다

내 차는 카지노 쿠폰다.


올해로 꼭 10년 된 레이. 주차장에 들어설 때마다, 마치 누가 잘못 주차해 둔 장난감 같아 보인다. 작고 소박한, 나만의 미니카. 그런 내게 누군가는 묻는다. "너 그 나이에 왜 아직도 경차 타? 창피하지도 않아? 돈이 없는 것도 아니잖아." 지금은 웃으며 넘기지만, 사실 예전엔 그 말이 꽤 신경 쓰였다. 나도 한때는 남의 시선을 참 열심히 의식하며 살았던 사람이었으니까.


사실 레이는 내 첫 차다. 10년 전, 회사를 다니면서 아침 조찬 회의가 6시에 있을 때 출근하기가 너무 힘들어서 홧김에 지른 게 바로 레이였다. 그땐 주변 친구들도 대부분 차가 없었던 시절이라 경차여도 부러움을 샀다. 그걸로 출퇴근도 하고, 아울렛도 가고, 여행도 가고, 제법 즐겁게 잘 돌아다녔다.


그런데 사람 마음이라는 게 참 웃긴다. 차를 몇 년 타고 다니니까 슬슬 주변에서 들리는 말들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너도 이제 차 바꿔. 작은 차 타면 딱 그 정도 사람으로밖에 안 보인다니까." 지금 생각하면 웃기는 소리들이지만, 그땐 그 말들이 너무 진지하게 들렸다. 결국 보태보태병에 걸리고 말았다.


좀 더 큰 차, 좀 더 비싼 차, 좀 더 멋진 차를 타고 싶었다. 결국 뽑은 지 고작 2년 좀 넘은 카지노 쿠폰를 주차장에 짱 박아두고 중형 세단을 새로 뽑았다. 참고로 카지노 쿠폰도 새 차였다. 이유는 단 하나, 나는 차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다. 카센터에만 가면 자동으로 순한 양이 된다. "이거 교환하셔야 해요. 이것도 많이 닳았네요."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내 대답은 "넵!"이었다. 그렇게 늘 선 '결제', 후 '아, 좀 더 타다 교환할 걸 그랬나.'의 연속인 대한민국 1타 호갱이었다. 그래서 나는 중고차를 살 수가 없었다. 아니, 살 엄두조차 못 냈다. 인생은 길고, 사기는 많고, 나는 또 그만큼 아주 잘 속으니까.


새로 뽑은 중형 세단은 나를 뿌듯하게 만들었다. '좀 있어 보인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괜히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마음 한편이 계속 불편했다. 운전석이 넓어졌는데, 내 안의 공간이 더 좁아진 느낌이 들었다. 남의 이야기에 휘둘리는 내가 스스로 너무 불편했던 것이었다.


결국, 2년도 채 타지 않고 다시 카지노 쿠폰로 돌아왔다. 카지노 쿠폰를 안 팔길 정말 잘했다 싶었다. 내 첫 차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이 작은 차 안에는 내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그중, 내가 가장 소중하게 기억하는 건 내가 키우던 내 강아지(내 동생) 주뚜랑 동물 병원 가는 길에 주뚜가 응아가 마려웠는지 조수석에서 응아를 해서 내가 엄청 웃었던 기억이 있다. 이 작고 귀여운 차 안에 그날의 감정이 아직도 그대로 있었다.


레이를 타고 다니자, 내 일상은 다시 가벼워졌다. 좁은 골목길도 걱정 없이 지나가고, 주차도 너무 편하고, 기름값도 적게 들고, 무엇보다 톨비, 공영주차장 요금이 50%나 할인된다는 장점이 정말 크다. 그리고, 솔직히 더 큰 장점은 10년 된 경차를 타고 다닌다고 하면 사람들이 나를 굉장히 좋게 본다는 것이다. "신 작가, 굉장히 검소하고 겸손한 사람이었네." 이런 칭찬을 마구 느끼고 있다.


나는 내 인생에서 꼭 지켜야지 다짐한 세 가지 'ㄱㅅ'이 있다. 바로 '검소', '겸손', 그리고 '감사'다. 그리고 내 카지노 쿠폰는 이 세 가지를 모두 가졌다.


검소하다. 화려하지 않지만, 묵묵히 달린다.

겸손하다. 저렴하고 작지만, 공간은 넓고 깊이 있다.

감사하다. 첫차로 시작해 지금까지 함께해 준, 내 삶의 친구로서 고맙다.


한때는 부끄러웠던 존재가 지금은 나를 설명해 주는 것이 되었다. 돌아보면, 남의 시선을 좇던 그때보다 지금의 이 소박하고 단단한 시간이 훨씬 좋게 느껴진다. 차는 단순한 이동 수단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게 카지노 쿠폰는 삶을 대하는 태도를 가르쳐준 작고 위대한 선생님이다.


이제 나는 남의 시선 대신 나의 속도로 달린다. 작고 가볍게, 그러나 단단하게. 오늘도 나는 카지노 쿠폰를 타고 힘차게 골목을 빠져나갈 것이다. 그것도 아주 당당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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