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세의 카지노 게임 속에서와 환상교향곡이 불러온 아침 카지노 게임
카지노 게임 속에서
헤르만 헤세(1877~1962)
기이하여라, 카지노 게임 속을 거니는 것은!
모든 수풀과 돌이 외롭다
어떤 나무도 다른 나무를 보지 못한다
모두가 혼자이다.
나의 삶이 아직 밝았을 때
세상은 친구들로 가득했다
이제, 카지노 게임가 내리니,
더는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정녕, 어둠을 모르는 자는
누구라도 현명하지 못하다.
어둠은 어쩔 수 없도록 가만히
사람을 모든 것으로부터 갈라놓는다.
기이하여라 카지노 게임 속을 거니는 것은!
삶은 고독한 것
아무도 다른 사람을 알지 못한다.
모두가 혼자이다.
Im Nebel
Hermann Hesse
Seltsam, im Nebel zu wandern!
Einsam ist jeder Busch und Stein,
Kein Baum sieht den andern,
Jeder ist allein.
Voll von Freunden war mir die Welt,
Als noch mein Leben licht war;
Nun, da der Nebel fällt,
Ist keiner mehr sichtbar.
Wahrlich, keiner ist weise
Der nicht das Dunkel Kennt,
Das unentrinnbar und leise
Von allen ihn trennt.
Seltsam im Nebel zu wandern!
Leben ist Einsamsein.
Kein Mensch kennt den andern,
Jeder ist allein.
이 시를 읽으면 먼 옛날 대학교 2학년 때 속리산으로 과여행(科旅行)을 갔던 때가 기억납니다. 여행 끝날 저녁을 먹은 뒤 여관 앞마당에 모닥불을 피우고 옹기종기 모여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여관집 라디오에서 노래가 흘러나왔습니다. 그러자 여학생 하나가 “어머, 저 노래 너무 좋지 않아요?”하고 말문을 열자 기다렸다는 듯이 다른 여학생 하나도 “그래요, 너무 좋아요,”하며 맞장구를 쳤습니다. 모두가 말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습니다.
나 홀로 걸어가는 카지노 게임만이 자욱한 이 거리, 그 언젠가 다정했던 그대의 그림자 하나,
생각하면 무엇 하나 지나간 추억,그래도 애타게 그리는 마음,아아아 아아아아----
노래를 부르는 여자 가수의 청순하고도 애절한 목소리가 가슴속으로 스며들었고 곡조도 가사도 그때 우리 모두의 젊은 감성을 촉촉이 적시는 아릿한 슬픔을 띠고 있었습니다. 그 노래는 정훈희가 부른 ‘카지노 게임’였습니다. 그때부터 거의 6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이 노래를 들으면 그 젊은 날의 추억이 생생히 떠오릅니다.
1960년대의 우리는 모두가 가난하였고 군사정권 아래의 나라 정세는 무척 불안하였습니다. 60년대 말 대학생들은 학교를 다니면서도 데모를 해야 했고 공부를 하면서도 바라보는 미래는 카지노 게임 속과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카지노 게임’라는 노래가 그렇게 가슴에 와닿았고 우리보다도 어린 여가수가 ‘아아아 아아아아’하고 부르짖을 때 우리는 같이 마음속으로 부르짖었던 것입니다.
이 시를 쓸 때 헤세는 삼십 대 초반이었지만 75년의 삶 내내 영원한 방랑자(放浪者)로 살았던 그에게 삶은 그때까지도 ‘카지노 게임 속을 거니는 것’과 같이 느껴졌나 봅니다. 카지노 게임 속에 만나는 수풀과 돌이 외롭다는 것은 수풀과 돌을 바라보는 시인 자신이 외롭다는 이야기입니다. 카지노 게임가 아니어도 숲의 나무는 다른 나무를 보지 못합니다. 하지만 스스로가 외로운 시인은나무가 서로를 보지 못하고혼자가 된 것이 카지노 게임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카지노 게임 속을 계속 걷다 시인의 눈은 바깥에서 안으로 향하고 드디어 자신의 삶 속에 내린 카지노 게임를 발견합니다. 그리고 카지노 게임가 내려 혼자가 된 것은 수풀도 돌도 나무도 아니고 바로 자신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여기에서 주저앉지 않고 시인의 마음이 반전하는데 이 시의 묘미가 있습니다. 카지노 게임와 같은 어둠의 존재는 우리 삶의 도처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 존재는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다가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불가항력적으로 우리와 우리 주변의 모든 것의 관계를 단절시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녕, 어둠을 모르는 자는 누구라도 현명하지 못하다,’라고 단호히 외치는 시인은 어둠을 알고 또 대처할 준비도 되어있다는 말입니다.
눈여겨보아야 할 곳은 첫 연과 마지막 연의 첫 줄입니다. 첫 연의 첫 단어도, 마지막 연의 첫 단어도‘기이하여라(Seltsam)’로 시작하지만 첫 연은‘기이하여라(Seltsam),’하고 쉼표가 있었지만 마지막 연의‘기이하여라(Seltsam)’는 쉼표가 없다는 사실입니다.첫 연은‘기이하여라(Seltsam)’를 강조하려고 쉼표를 넣었지만 마지막 연에서는 카지노 게임 속을 걷는 것이 이제는 처음만큼 기이하지 않다는 느낌을 쉼표 없는‘기이하여라(Seltsam)’가 은연중에 말해 줍니다.그렇기에 시인은 삶은고독한 것이고 결국은 모두가혼자라고 담담히 말하며 시를 끝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독일어 Seltsam에는 '특이하다'라는 뜻도 있습니다. 미묘한 차이지만 '기이하여라' 대신 '특이하여라'라고 번역해도 좋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헤세의 시는 이렇게 끝이 났지만 내 귀에는 그 옛날 대학 시절 들었던 정훈희의 카지노 게임가 여전히 메아리칩니다. 나는 문득 헤세도 정훈희의 카지노 게임를 알았으면 시를 쓴 뒤 ‘그래도 애타게 그리는 마음, 아아아 아아아아-‘하고 목을 놓아 소리치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하며 혼자 픽 웃었습니다.
베를리오즈의 환상교향곡과 카지노 게임
몇 년 전 겨울입니다. 아침 식사 후 거실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FM 라디오에서 베를리오즈의 환상교향곡이 흘러나왔습니다. 젊은 날 무척이나 좋아했던 곡인데 오랜만에 들으니 이런저런 옛날 생각이 나며 감회가 더욱 깊었습니다. 잠시 뒤 3악장 ‘들판의 정경’이 나왔습니다. 환상교향곡 중 내가 제일 좋아하는 악장이었습니다. 그날 날씨가 흐렸던 탓인지 3악장을 들으면서 나는 내가 들판에 나와 있다는 환상에 젖어들었습니다. 목동들의 피리 소리가 평화롭게 들리다가 멀리서 천둥이 치고 고요한 정적이 찾아들 때 내 등 뒤로부터 카지노 게임가 흘러나왔습니다. 그리곤 들판으로 물결처럼 밀려 나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음악은 계속되고 교향곡 속의 예술가는 애인을 생각하며 혹시라도 배신을 당할까 불안에 사로잡혀 있는데 나는 어느덧 짙은 카지노 게임로 가득한 들판을 바라보며 상념에 빠져들었습니다. 3악장이 끝나고 4악장 ‘단두대로의 행진’이 시작되자 나는 상념에서 벗어나 라디오를 끄고 책상으로 가서 노트북을 열었습니다. 책상에 앉은 내 몸엔 들판에서 묻어온 카지노 게임가 그대로 앉아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그 카지노 게임를 상상의 촉각으로 느끼며 시를 한 편 썼습니다.
아침 카지노 게임
이 아침 카지노 게임 낀 들판
카지노 게임 속의 정경은 아름답기만 하다
추억 속의 과거가 모두 정겹듯이
물방울의 작은 입자들은 모여 카지노 게임가 되고
시간의 작은 입자들은 모여 추억이 된다
나이가 들면 눈에 카지노 게임가 낀다
전만큼 세상을 잘 볼 수는 없어도
전보다 세상을 아름답게 볼 수도 있다.
나이가 들면 머릿속에 카지노 게임가 낀다
전만큼 기억력이 좋지는 않지만
전보다 쉽게 놓아줄 수도 있다
카지노 게임 자욱한 아침 들판
다정한 여인 같은 카지노 게임의 속삭임
그냥 계세요, 제 안에
누구라도 무어라도 저는 모두 품어요
하지만 잠깐에요, 아주 잠깐
태양이 뜨면 저는 가지요
품었던 것 모두 놓고
흔적도 없이 그냥 가지요
카지노 게임 모두 빠져나간 텅 빈 들판
나는 다시 내 삶의 카지노 게임 속으로 돌아와 있었다.
2025. 2월 눈 내리는 아침 석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