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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 스테파노 Apr 29. 2025

[짓기] 신념의 베블런 효과, 허영심이 소비카지노 게임 사이트 세계관

'인정'을 위한 인간의 투쟁

토스타인 베블런이 19세기 말 <유한계급론에서 포착한 '베블런 효과'는 단순한 경제 현상을 넘어선다. 가격이 오를수록 수요가 늘어나는 역설적인 소비 행태는, 상품 자체가 아닌 그 가격이 상징하는 '지위'를 소비하는 인간의 근원적 욕망, 즉 과시욕과 허영심의 발현이었다. 근대 도시의 익명성 속에서 유한계급은 눈에 보이는 소비를 통해 자신의 존재 가치와 차별성을 증명하려 했다. 이는 사회적 관계 속에서 자의식을 형성하고 타인으로부터 '인정(Anerkennung)'받으려는 인간의 근본적인 투쟁과 깊이 연결된다는 점에서 헤겔 철학의 메아리가 들리는 듯하다. 우리는 타인의 시선과 인정 없이는 온전한 '나'를 구성하기 어렵다고 헤겔은 설파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 기묘한 베블런 효과의 논리가 오늘날 물질적 상품을 넘어 추상적인 영역, 특히 '신념'이나 '세계관'의 영역까지 침투한 것은 아닐까 하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계급적 지위가 모호해지고 소유만으로 차별화가 어려워진 시대에, 사람들은 이제 어떤 '생각'을 가졌는가, 어떤 '가치'를 표방하는가로 자신을 규정하고 타인과 구별 짓는 새로운 방식을 찾고 있는 듯하다. '강남좌파', '행동카지노 게임 사이트 지식인', '합리적 보수'와 같은 라벨들은 이러한 현상의 단적인 예다. 이것들은 단순히 정치적 스탠스를 나타내는 것을 넘어, 특정 사회적 그룹에 속하며 특정 지적, 도덕적 위치에 자신을 자리매김하려는 시도로 기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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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블런 효과를 Google AI가 만화로 구현


마치 고가의 명품백처럼, 이러한 '신념 라벨'은 소유하는 것만으로도 자신을 특별한 존재로 만들고, 타인으로부터 특정한 종류의 인정, 즉 '깨어있는 시민', '지식인', '합리적인 사람'이라는 인정을 손쉽게 획득하려는 욕망을 충족시킨다. 신념 자체가 일종의 '베블런 상품'이 되는 역설적인 상황이다. 아직 소수의 목소리이고 차별화된 주장일수록 더욱 '비싸 보이고', 따라서 더욱 매력적인 '소비재'가 되는 것이다.



신념의 소비 현상; 사회 비판 철학의 관점에서


이 지점에서 우리는 프랑크푸르트 학파를 비롯한 사회 비판 철학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는 자본주의 사회의 '문화 산업'이 대중을 비판적 사유 능력을 상실한 수동적인 소비자로 전락시키고, 표준화된 문화 상품을 통해 기존 질서에 순응하게 만든다고 비판했다. 오늘날 '신념의 소비' 현상은 이러한 문화 산업의 논리가 더욱 추상적인 영역까지 확장된 결과로 해석될 수 있다. 복잡한 사회 문제와 씨름하며 자신만의 관점을 정립하는 지난한 과정 대신, 이미 포장된 '진보', '정의', '공정'과 같은 라벨을 구매함으로써 손쉽게 도덕적, 지적인 우월감을 획득하려는 태도. 이는 깊은 사유와 비판적 성찰을 회피하고 문화 산업이 제공하는 '신념 패키지'를 소비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MZ들 사이 '미닝아웃'이 유행이다. Meaning+comingout의 조어로 '가치소비'를 말한다. 일종의 신념 라벨링이다. ESG에서 '환경'에 주목하는 이유이기도.현대해상제공


기 드보르가 말한 '스펙터클의 사회' 역시 이 현상을 설명하는 강력한 도구다. 현대 사회는 실제 경험보다 이미지, 표상, 그리고 보여지는 것의 스펙터클이 현실을 대체한다. 신념의 소비는 전형적인 스펙터클적 행위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신념을 내면화하고 그것을 통해 세상을 어떻게 이해하며 실천하는가가 아니라, 타인에게 '어떤 신념을 가진 사람으로 보여지는가'가 된다. 소셜 미디어 프로필에 특정 정치적 입장을 과시하거나, 특정 사회 운동을 지지한다고 선언하는 행위는 깊은 성찰의 결과이기보다, 타인에게 보여지는 자신이라는 '상품'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디스플레이'에 가깝다.수 년 전 프로필에 넘쳤던 프랑스 삼색기와 우크라이나 깃발의 실루엣을 상기해 보면 이해가 쉽다.


장 보드리야르의 시뮬라크르론에 이르러 이 비판은 더욱 날카로워진다. 그에 따르면 현대 사회에서 기호와 이미지는 원본과의 연결성을 잃고 스스로 현실을 대체하는 '시뮬라크르'가 된다. '진보'라는 신념 라벨이 깊은 학습과 실천을 통해 얻어진 사유 체계가 아니라, 그저 '진보적인 사람처럼 보이게 하는' 공허한 기호로 소비될 때, 이는 시뮬라크르가 된다. 라벨은 존재하지만, 그 라벨이 지칭하는 현실은 희미해지거나 왜곡된다. '행동하는 지식인'이라는 라벨을 소비하지만 실제로는 깊이 있는 연구나 사회 참여 없이 피상적인 의견만 개진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할 것이다. 신념은 더 이상 세상을 이해하고 변화시키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그 자체로 '있어 보이는' 시뮬라크르 상품이 된다.



'진정성'이라는 있는 데 없는 것


이러한 '신념의 베블런 효과'와 소비 사회 비판은 결국 '진정성(Authenticity)'의 문제로 이어진다. 실존주의 철학자들이 강조했듯, 인간은 스스로의 선택과 책임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만들어가야 하는 존재다. 유행하는 신념을 깊이 없이 수용하고 외적인 과시 수단으로 삼는 것은, 복잡한 현실 앞에서 자신의 자유로운 사유와 실천을 통해 스스로의 세계관을 정립해야 하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회피하고, 타인의 시선이나 사회적 흐름에 안주하려는 비진정적인 태도일 수 있다. 자신의 사유와 실천이 아닌, 타인이 부여하거나 사회가 유행시키는 라벨로 자신을 규정하는 삶은 결국 타인에게 보여지는 '페르소나' 속에 스스로를 가두는 악수의 거듭일 뿐이다.


중요한 사회적, 정치적, 윤리적 가치들이 이러한 베블런 효과, 즉 스펙터클 사회의 소비 논리에 포획될 때 발생하는 문제는 심각하다. '진보'나 '변화'와 같은 개념들이 깊은 이해와 실천 없이 단순한 차별화의 수단으로 소비된다면, 그 본래의 힘과 의미를 상실할 위험이 크다. 유행처럼 몰려왔던 관심은 유행이 지나면 빠르게 식을 것이고, 그 과정에서 중요한 아젠다들은 얄팍한 이미지 게임 속에서 본질이 왜곡되거나 퇴색될 수 있다.


그러니 이제는 '무엇을 하느냐'는 선언보다 '어떻게 하느냐', 즉 '잘 해야' 할 때다. 사회적 경제를 말한다면 자본주의 시장의 작동 원리와 민간 영역에 대한 깊은 통찰이 있어야 하고, 보편적 복지를 주장한다면 재정 구조에 대한 현실적인 이해와 냉철한 평가 시스템의 도입을 고민해야 한다. 공공 의료를 논한다면 의료 산업 전반과 비정상적인 공급 구조에 대한 전문적인 식견이 필요하며, 새로운 정치를 원한다면 정당 정치의 기본적 기능과 한계에 대한 성찰 위에 새로운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실용'같은 20세기의 낡은 라벨로 눈가림을 하다가 또 모든 것을 잃어버리기 십상이다.


신념의 라벨링. 허영의 소비. 이미지=Google Sora


아리스토텔레스가 '실천적 지혜(phronesis)'를 강조했듯, 좋은 의도나 추상적인 신념만으로는 현실의 복잡성을 헤치고 나아갈 수 없다. 깊이 있는 지식, 숙련된 기술, 그리고 현실에서 최선을 판단하고 실행할 수 있는 능력이 동반되어야 한다. 순수한 열정만으로는 부족하다. 아마추어의 열정은 금방 소진되거나 길을 잃기 쉽지만, 프로페셔널의 준비된 행동은 그 자체가 견고한 실천의 과정이 된다.



'실용'보다 '실천'을 앞 세울 때


샤넬이 말하지 않았던가. "고급스러움이란 빈곤함의 반대말이 아니라, 천박함의 반대말이다"라고. 이 말을 신념과 세계관의 영역에 적용해 본다면, 진정한 가치는 얼마나 많은 '비싸 보이는' 신념 라벨을 치장했는가에 달린 것이 아니라, 그 신념을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내면화했으며, 그것을 현실 속에서 얼마나 성실하고 유능하게 '실천'하는가에 달린 문제일 것이다. 얄팍한 고민과 준비되지 않은 일성은 가치의 빈곤함을 양적으로는 채울 수 있을지 모르나, 실천적 지혜의 부재에서 오는 천박함을 결코 가릴 수 없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주말부터 이어질 설 연휴를 앞두고 신년 기자회견을 열어 "탈이념, 탈진영의 현실적 실용주의로의 전환"을 선언했다. 사진=mbc


갑작스러운 중대 선거에서 고려할 것은 과거의 청산에만 머물 수 없는 일이다. 최근 야권 대선 후보의 '실용'이 화제다. 솔직히 낡디 낡은 구호다. 그저 진영의 품을 넓히는 제스쳐로 세력을 확보하는 정치적 셈법의 시뮬라르크로 읽혀져 유감이다. 실용이라는 정치 계산기로 도출된 의미없는 언어는 진정성을 갉아 먹기 마련이다. 실용적인 정치 세력이라는 거창한 선언보다 실천하는 정치 세력으로 거듭나는 실질적 구현이 필요한 때다. 세상에서 정답을 구하는 일은 쉬운 일이 되었다. 다만 그것을 적시 적소에 실천 할 수 있는가의 문제일 뿐이다.


이러한 사유가 불편하게 들릴 수도 있겠으나, 베블런 효과처럼 유행에 편승하여 소비되는 가치 개념이 희소가치 하락과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지 않도록, 진정한 변화와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는 반드시 직면해야 할 질문일 것이다. '무엇을 믿느냐'를 넘어 '어떻게 그 믿음을 살아가느냐'가 관건이 되는 시대, 허영심이 소비하는 스펙터클을 넘어 깊이와 성실함으로 빛나는 진정한 가치를 찾아야 할 때다. 이 사유는 적어도 나 스스로에게는 타성과 안이함을 경고하는 절실한 주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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