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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빛고은 Apr 25. 2025

워킹맘으로 살아가기

나는 아이 둘을 키우는 워킹맘이다. 출근시간 8시, 퇴근시간 4시 40분으로 큰애는 8시 반, 둘째는 9시 40분에 학교와 어린이집에 간다. 큰애의 하교시간은 1시 30분이고 둘째는 4시이다. 출퇴근 시간으로 인해 육아 공백이 하루에 4시간 정도 생기고, 회식이나 업무가 있는 날은 6시간 정도 생긴다.


내가 아이를 키우면서 일을 할 수 있는 이유는 친정 엄마의 도움 때문이다. 엄마는 집에서 버스로 30분 거리에 사시는데 아침 7시 반에 오셔서 저녁 5시 반~7시 사이에 가신다. 엄마는 올해일흔이되셨다. 나이 마흔이 넘어 아이를 키우는 일이 버거울 때우리마는 얼마나 힘드실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직 일흔이되어보지 못한 내가 감히 지금의 엄마가 아이를 돌보는 일의 강도가 솔직히 가늠이 되지 않는 게 사실이지만 그래도나는 매 순간, 하루하루 엄마의 존재가 감사하고 죄송하다.


나는 16년 차공무원이지만, 한 달에 받는 돈은 이것저것 떼고 실수령액 월 250~300을 받는다. 올해는 담임을 안 해서 수당이 더 적어져서 지난 4월에는 230을 받았다. 그 돈으로 학원비 100만 원을 하고, 관리비와 생활비를 쓰고 엄마에게 월급은 70을 드린다. 하루 평균 4시간을 일하시고 아침 7시 반부터 5시 반까지 아이들의 등하교, 식사 준비, 집안일을 하시고 받는 돈이 고작 받는 돈이 70이다. 최저시급에도 훨씬 못 미치는 돈이다.


만약에 돌봄, 가사 도우미를 구해서 썼다면 70 가지고는 어림도 없다. 엄마의 70세에 남은 기력을 내 카지노 게임 추천들을 키우는데 쓰는 돈이 70밖에 안돼서나는 불효를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엄마의 출퇴근이 나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엄마는 8년 전 유방암 판정을 받으셨다. 다행히 치료가 잘 되시고, 지금은 반년에 한 번씩 정기검진을 받으시면서 상태를 보시지만 면역 수치가 낮은 편이라 감기에 잘 걸리시고 한번 걸리면 낫는 데까지시간이 오래 든다. 새벽까지 기침이 나와서 잠을 못 주무셨다면서도 엄마는 어김없이 7시 반에 딸 네 집으로 딸 네 애들을 키우러 오신다.


나는 그런 딸이다. 아이 둘을 키워야 하고, 학교 일도 해야 하고, 그래서 늘 엄마께 손을 벌리는,손이 아직도 많이 가는 딸. 엄마가 나에게 해 주시는 것에 비하면 나는 고작 은행어플 깔아드리는 거, 교통카드 신청해 드리는 거, 생필품 최저가로 대리 구매해 드리는 거. 그 정도이다. 그리고 육아시간을 쓸 수 있으면 부리나케 와서 엄마와 교대하는 것.


남편은 매일 6시 30분에 출근을 한다. 매우 성실한 사람이고 반듯한 편이다. 출퇴근 시간이 1시간 거리라 어쩔 수 없이 일찍 나가는데 퇴근은 보통 7시~8시 사이에 한다. 남편도 아침, 저녁 시간에 등하교를 해줄 수 없는 사정이다. 그래서 회사에서 보통 가지치기로 업무 분장이 나뉘 듯, 우리 집에서 아이들 케어는 거의 내 몫이(될수밖에 없)다.


나는 엄마 손을 빌려 아이들육아를맡기고 아이들의 학원 스케줄과 하루 일정, 상담 등은 직접 맡아한다. 큰애는 평균 하루에 2개~3개의 학원에 간다. 아직 손이 많이 가는 나이라, 오늘은 어디 어디를 가고 어떤 숙제를 챙기라는 말을 매일같이 한다. 그리고 셔틀을 타야 하는 학원에는 내가 되도록 둘째와 함께 라이딩을 다. 큰애가 그걸 좋아한다. 그리고 얼마 전 셔틀 안에서 거친 언행을 하는 아이들이 있다는 소리를 듣고, 아이교육에 좋지 않을 것 같아 지치고 힘들어도 웬만하면 가려고 애쓴다.


예전에 취업을 하지 않고 부모가 주는 용돈을 받아 쓰면서 공주처럼 살던 친구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일을 하면 나 자신이 닳아지는 것 같아서 나는 지우개같이 안 살 거라고.'


아이가 없고, 미혼일 때, 내 일만 하면 될 때, 나는 그 소리가 참 한심해 보였다. 내 일을 갖고 있는 것이 얼마나 좋은 것이고 당연한 것인데, 쟤는 저런 소리를 할까. 하지만 학교 일을 마치고 동동거리면서 아이들을 챙길 때 나는 친구의말이 떠오른다. 나처럼 지금 이렇게 사는 게 지우개처럼 사는 거구나... 더러워진 노트를 깨끗하게 지워내는 지우개 같은 삶. 집이 깨끗해지고 카지노 게임 추천들을 먹이고 입히고 가르쳐도 내 몸은 닳아 없어지는 지우개 같은 삶. 내 몸만 닳아 없어지는 게 아니라 일흔되신 엄마의 몸도 닳게 하는 못마땅한 나의 삶. 애석하게도, 뾰족한 방법이 없어서 그렇게 또 하루를 어김없이 살아가고 엄마의 눈치 보고 엄마에게 미안해하는 나의 삶.


나의 에너지는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너무나 많이 쓰이고 있다. 그리고 가정에서의 내 업무분장은 불공평하다고 느낀다. 공동 업무를 같이 해야 하는 동료는 없을 때가 많다. 더구나 내가일을 다 해놨어도 피드백 하나 없다.나는이런 문제상황에 대하여 여러 번 컴플레인을 해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거나, 나보고어쩌라는 거냐고 할말을 잃게 하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그렇다. 맞는 말이다. 내가 낳은 아이들 내가 선택한 결혼 생활, 그러니까 내가 하는 건 당연하다. 그러니 그 누군가에게 따스한 말을 해달라고, 내가 참 힘들다고 털어내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하지만 이 가정은 나 혼자 일구지 않았다.


혼자 카지노 게임 추천를 낳지 않았고 혼자 결혼을 하지도않았다. 나의 동료이자 공동 업무 담당자는 분명히 있다. 바로 나의 남편. 이 집의 아빠. 이 가정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의 책임과 의무는 공동이다. 하지만 아이를 낳으면서부터 공동이라는 말의 무게는 한쪽으로 기울어졌고, 나는 신혼 때 그것이 불만이라 “왜” 집안일을 똑같이 하지 않느냐는 둥, “왜” 나만 애를 더 봐야 하는 둥, “왜” 우리 엄마만 힘들어야 하는 둥. 불만을 토로하고 나에 대해, 그리고 그 역할을 대신해주고 있는 우리 엄마에 대해 감사나 미안함을 표하지 않는지 모르겠다면서 남편의 태도에 화를 냈다.


그래서 나는 전쟁 같은 10년을 보냈다. 지금은 어떠한가? 나는 많이 내려놨다. 나는 더 이상 “왜?”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고요한 외침이고 변하는 것은 없었다. 여전히 나는 아이들을 무탈하게, 그들의 일정을 체크하면서 스케줄을 소화해 내고 있다. 그게 나에게 주어진 기본값이랄까.


아이가 클수록 엄마로서 챙겨야 할 것들이 많았다. 양육에서 교육까지 신경을 써야 했고, 그와 동시에 나의 에너지 소진은 더욱 빨라졌다. '왜 나는 남편과 공평한 삶을 살지 못하는 것인가'의 의문을 가지는 순간, 가슴이 답답해지고 짜증이 나는 나를 발견한다. 그래서 나는 내 마음을 다스리려고 노력한다. 내가 하는 노동에 “왜 내가 해?”라는 말을 해도바뀌고 달라지는 것, 나를 응원해 주는 것은 없다.


직장인이라면 공감할 말. 일이 힘든 건 참겠는데, 사람이 힘든 건 못 참겠다. 그렇다. 참다 참다 한 마디 큰 소리로 잔소리를 늘어놓을때 남편은 오히려 더 짜증을 낸다.


나보고 왜 “꽥꽥” 소리를 지르냔다. 소리를 지르는 내 모습이 오리? 아니면 돼지?같나? 동물들이 소리를 지르는 것처럼 비치는 내 모습.

“왜?”라고 남편도 묻는다. 같은 “왜”인데 방향은 다르다.


나는 그렇게 입을 닫고 마음도 닫는다. 남편에게 배운 게 있다면 남편 식 갈등회피 방법. 그렇게 하면 된다. 그렇게 하면 집은 태풍 전야처럼 고요하다. 고요하면 된다. 남편은 소리 내는 것을 불호하는 편이다. 내가 남편 말대로 소리를 꽥꽥 지르면 남편은 눈을 감고, 검지를 치켜올려 입에 갖다 댄다. “우리 공평하게 집안일은못하더라도 당신이 할 일은 좀 해!!” 참다 참다 터져 나온 내 분노가 “꽥꽥” 단 두 글자로 변하는 순간이다.


나는 어리석다. 화를 내도, 어차피 집안일과 육아는 나의 것이다. 나의 업무이다. 애초에 업무 분장은 그러했다. 심지어 주말 아침도 나는 어김없이 먼저 일어나 아이들 밥과 남편 식사를 차린다. 식탁에 엄마가 해 놓은 반찬들을 거의 다 놨을 때 남편은 본인 방 문을 열고 나와서 오른손을 얼굴 옆에 대고 말없이 ’Hi‘의 제스처를 취한다. 나보다 거진 한 시간은 더 주말 아침을 여유롭게 즐긴 셈이다. 나는 또 화가 치민다. 나만 왜? 워워워.... 소용없는 외침은 그만 집어넣어.


주말 아침 밥상은 우리 엄마의 노동력으로 일군찌개와 국이 메인이다. 아이들의 반찬도 엄마 덕분에 홈메이드이다. 워킹맘이 이렇게도 반찬가게와 담쌓을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나는 반찬을 안 사 먹는다. 모든 것이 엄마 덕분이다. 엄마가 해 놓은 반찬을 보면, 나는 언제까지 이렇게 생활 곳곳에서 엄마의 손을 빌려야 하는 것일까. 죄송한 마음뿐이다. 같은 반찬을 봐도 역시 느끼는 것은 다르다. 남편은 아무 말 없이 밥을 먹는다. “장모님이 하셨어?” 라든가 “찌개 맛있네.”라든가 “하시느라 고생하셨네.”라는 말은 없다. 여전히 식탁은 수저 소리만 요란할 뿐. 그 태도가 괘씸해서 나는 일부러 “이거 엄마가 해 놓고 간 거야, 내가 이렇게 못하지.”하고 남편 반응을 살핀다. 그래도 남편은 고개만 끄덕인다. 내가 원하는 답은 역시 나오지 않는다. 이럴 때 나는 또 “왜?”가 치밀어 오른다. '왜? 내 엄마가 해 준 것에 대한 감사함이 없는 것일까? 왜? 당연하게 여기는 거지?' 짜증을 꾹꾹 눌러 담는다. 그렇게 눌러 담다가 언제 “꽥꽥”이 될지는 모르지만.


어제는 상담교사로 퇴직하신 이모가 한 달 넘게 유럽여행을 가신다고 엄마 집으로 올라오신다고 한 날이었다. 한 달 짐인 캐리어를 끌고 올게 뻔하기 때문에 나는 시외버스터미널로 마중을 가기로 했다. 엄마못지않게 이모도 나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너무나 소중한 사람이다.


엄마가 육체적이고 시간적인 면을 도와주신다면, 이모는 나의 정신적인 멘털을 잡아 주시는 분이시다. 결혼 생활이나 직장 생활이 우울하고 힘들 때 이모에게 털어놓으면 체증이 내려가는 것처럼 이모는 내 마음을 위로해 주고 긍정적으로 다시 리프레쉬할 수 있게 상담과 조언을 해주신다.


아무튼 이모가 오신다기에 학교에서 1시간 정도 일찍 조퇴를 하려던 차에 큰애의 담임선생님께 아이가 학교에서 친구와 싸웠다는 문자를 받았다. 평소 사이가 좋지 않았던 친구와 다퉈서 자기 진술서를 쓰고 담임선생님이 가정에 알리기까지 했다는 것은 대단한 이슈다. 담임 선생님이 여러 번 참고 참다가 터져 나온 외침인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나니까.


나는 담임선생님께 어찌 된 영문인지 문자를 조심스럽게 썼고 이내 전화가 와서 아이 상담을 했다. 다행히 큰일은 아닌 것 같아서 기분 좋게 퇴근을 했고그래도이모에게 가기 전에 아이의 얼굴을 보고 싶어서 논술 학원에서 돌아오는 아이를 기다렸다.


학교에서 그런 일이 있었고 반성문을 썼고 분명히 엄마한테 혼날까 봐 주눅이 들어있었을 내 카지노 게임 추천를 위로해 주고 그리고 또 앞으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단속해야 했기에. 예상치 못한 엄마 업무가 한 가지 더 추가된 것이다. 원래는 아이에게 학원셔틀버스를 타고 집에 오라고 하려던 계획이 변경이 된 것이기도 했다. 아이를 봤고, 그런 일을 겪고 놀랐을 아이 혼자 두고 가기가 안쓰러워 같이 데리고 가기로 결정했다. 그렇다고 이모를 마중가는 일을 안 할 수 없는 일. 왜냐하면 내가 받는 것에 비해 드릴 수 있는 것이 많지 않기에, 이런 일쯤은 하는 게 맞았다.


카지노 게임 추천는 오늘 하루 학원을빠진다고 좋아했다. 그래, 엄마가 일정이 있어서, 그리고 너에게 그런 일이 있어서 어쩔 수 없지. 런 날도 있는 거지. 둘째까지 하원시키고 엄마를 모시고 터미널로 갔다. 다행히 이모가 먼저 오셔서 기다리고 있었다. 짐이 많아서 곧바로 엄마 집으로 갔다.


친정에 도착하자 놀이터를 본 둘째는 그냥 지나치지 않고 논다고 했다. 그리고 어느새 6시. 배가 고프다고 밥 달라는둘째 말에 부랴부랴 밥을 먹였다. 그리고 구몬 선생님 오시기로 한 일정이 그제야 떠올랐다. 6시 30분. 아차 싶었다. 평소에는 이런 일이 없었는데. 내가 그걸 놓치다니. 얼른 전화해서 죄송하다고 했더니 분수곱셈 시작하니까 봐달라고 하셨다.


둘째를 얼른 먹이고 집에 가려던 내 계획은 나도 배고프다는 큰애의 말로 조금 늦춰졌다. 큰애까지 엄마가 해주시는 밥을 먹이고 집으로 돌아왔다. 남편은 평소와 같이 나를 봐도 아무 말이 없다. 이모가 오시는 걸 아는 것인지, 왜 우리가 평소와 다르게 친정에 갔다가 왔는지, 묻지 않는다. 그리고 나를 보고 하는 말.

“구몬 빠지지 마라.”


카지노 게임 추천들을 두고 커뮤니티 사우나를 다녀왔더니 온 문자.

나 학원빠지고 수업빠지고 노는거 많이 싫어해. 놀게 하는건 좋은데 수업은 지켜줘.


물론 그 문자를 받고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리고 변명을 하고 싶지도, 해명을 하고 싶지도 않았다.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어떤 상황인지, 설사 그게 합당한 이유가 없었더라도, 매일같이 애들 일정 체크하고 소화하며 애쓰는 나에게, 단 한 번의 결석으로 그렇게 일침을 가해도 되는 것인가? 자신의 호불호를 명백하게 말하면서 충고를 하는 남편은 이럴 때는 '공동양육자'였다.


일 년 중에서 364일 모든 일정을 제대로 내가 소화해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고생했다는 말은 당연히 스킵해 버리는 공동 양육자. 그러나 사정이 생겨서 일정이 한 번 어긋났을 때 즉시 반응하는 공동양육자문자는나에게는 적지 않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양육의 지분 80프로 이상을 내 노동력과 나의 엄마의 노동력으로 채우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고 고맙다는 피드백 하나 없으면서. 양육의 지분 20프로인 내 남편은 내 실수를 바로 지적해 버리고 마는. 그는. 직장 상사였던가?


발바닥이 아프고 등짝이 아프도록 '내 카지노 게임 추천'가 아닌 '우리 아이'를 돌보고 워킹맘으로서의 힘듦을 토닥임 받지 못하는 내 모습이 가끔씩 부끄러울 때가 있었다. 나는 못난 게 많아서 이런 취급을 받고 사는가. 남들 시선이 신경 쓰였다.


아무도 모른다. 내가 혼자서 고군분투하고 삭히는 삶을 사는 것을. “수고했어 괜찮아 너는 충분히 잘하고 있어. 조금 쉬어볼까. ” 스스로 위로하며맥주 한 캔을 딴다. 모금을마시면서나는 슬픔과 억울함과 답답함을 삼킨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나는 SOLO‘라는 프로그램을 보면서웃는다. 그리고 생각한다.


인간의 심리가 저러할진대, 과연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도 그 밀당이 유효할까? 둘째를 재우면서 생각한다. 이 아이가 커서 나의 품을 떠날 때, 그때 나의 삶은어떠할까?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먼 훗날 지금의 내가 안쓰러움으로만 남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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