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홀로 새벽독서 89일차 소회
사무실에 함께 근무하는 선배 중에 늘 새벽에 일어나 운동하면서 새벽 기상하는 습관이 생겼고 지금도 늘 5시나 5시 반이면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는 분이 계시다. 5년을 지켜 보며 늘 존경스러웠는데 그렇게 긴 시간 대단하다고만 생각하고 내가 해 볼 생각은 안 했다.
그러다가 12월 존경하던 분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1차 각성 상태가 되고, 2025년 1월, 아이가 스무 살이 되면서 2차 각성 상태가 되었다.
1월 6일(월)부터 두 사람의 영향으로, 박사 논문을 바로 쓰기 시작하자는 결심을 하게 되었고 새벽 독서를 시작했다. 말이 새벽 독서지 그저 1시간 일찍 일어나 1시간 독서를 하는 것. 6시에 일어나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러자 곧 우연처럼 필연이 찾아와 《엄마의 유산》을 만났고 1월 18일, 일무료 카지노 게임 주말에 무언가에 이끌려 ‘지담 작가님’을 만나게 되었고 약 열흘 만에 논문은 어디로 갔는지 ㅎㅎㅎ 없어지고, 책 읽기는 인문학 책 읽기로 변화되었다.
한 달쯤 지나니 1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간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해, 2월 11일부터 5시 30분에 일어나기 시작했다. 2월 16일부터, 7시에 지담 작가님의 인문학 강의만 듣던 일요일에도 5:30 기상을 시작했다. 2월 18일부터는 함께 글쓰기 하는 분들과 모둠이 편성되어 ‘글로별 모임’에서 함께 글쓰기 공부도 시작하였다.
3월은 최대 위기였다. 4주 연속 토요일에도 출근하는 주간이 이어져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힘든 시기였다. 지방 출장이 있는 날은 새벽에 일어나 이동해야 해서 중요한 날에 하루 불참하기도 했다.
1월 6일에 시작했으니 100일이 다가오는 것 같아 날짜를 세 보았다. 1월 18일 이전에는 주말에는 일어나지 않았으니 빼고, 2월 11일부터 주말에도 일어나 앉기 시작. 3월에는 이틀 6시 전에 일어나지 못했다. 바늘구멍을 내고 말았다. 그 날들을 모두 제외하니,
4월 12일 현재, 나홀로 새벽 독서 89일째가 되었다.
함께 공부하는 모임이 토요일 5시가 되면서 5시 기상 연습을 해 보는 중이다. 우리집 야행성 동거인이 너무 잠이 부족한 거 아니냐며 걱정하는데 출퇴근 전철에서의 휴식, 매일 8천보 걷기, 회사에 가져다 놓은 요가매트 깔고 오전, 오후 한 번씩 2회, 집에 와서 하는 근력 운동으로 체력도 키우고 있다. 보건소 상담사가 올림픽 나갈 기초 체력(괴로울 땐 무료 카지노 게임참조)이라 하였는데 잘 유지해 보려고 한다.
단기적으로는 글쓰기를 잘 하려고 독서를 하는 것도 맞다. 《엄마의 유산》에 합류하여 무엇이라도 한 번 써보기 위해 독서를 하는 것도 맞다. 그렇지만 더 중요한 목표는 학위 공부하느라 2년 간 손 놓았던 ‘진짜 공부’를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내가 왜 공부하는지를 잊지 않으려고 오랜만에 신영복 선생님의 책(주1)을 펴 보았다. 읽을 때마다 책을 경건하게 마주하게 되며 나에게는 최고의 ‘공부론’을 들려주는 분이다.
신영복 선생님은 공부의 한자 ‘工夫’에서, ‘工’은 천(天)과 지(地)를 연결하는 뜻이라 하였다. ‘夫’는 천과 지를 연결하는 사람(人)이라 하였다.(에잇 한자도 사람과 남자가 동격이구나 ㅎㅎㅎ) 공부란 천지를 사람이 연결한다는 뜻이라 하였다. 농기구로 땅을 파헤쳐 농사를 짓는 일이 공부라 하였다. 공부는 살아가는 것 자체라 하였다. 공부란 세계와 나 자신에 대한 공부라 하였다. 인간과 세계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키우는 세계 인식과 자기 성찰이 공부라 하였다.
공부의 시작은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는 것이라 하였고, 낡고 완고한 자신의 인식틀을 깨뜨리는 것이 공부의 시작이라 하였다. 우리는 생각이 머리에서 이루어진다고 믿지만 사실 생각은 잊지 못하는 마음이라고 하였다. 어머니가 떠나간 자녀를 잊지 못하는 마음이 생각이라서 생각은 가슴이 하는 것이라 하였다. ‘공부는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는 애정과 공감’이다.
그는 또 하나의 먼 여행은 ‘가슴에서 발까지의 여행’이라 하였다. 발은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삶의 현장. 애정과 공감을 우리 삶 속에서 실현하는 것이 공부라 하였다. 공부는 세계 인식과 인간에 대한 성찰로 끝나서는 안 되고 세계를 변화시키고 자기를 변화시키는 데로 나아가야 한다고 하였다.내가 왜 공부를 무료 카지노 게임지 잊지 않으려고 한다.
신영복 선생님은 실천이 없는 독서는 ‘한 발 걸음’이라 하였다. 독서가 독서로 끝나는 것, 실생활과 아무런 연관이 없는 독서는 화분 속의 꽃나무라 하였다. 이론과 실천의 변증법적 발전 과정에서 ‘실천’이 제거된 것은 한 발 보행이나 다름 없다 하였다.세계까지 변화시키지는 못하더라도 나 자신이라도 조금씩 변화하여야 한다.
학교에서, 책에서, 교실에서 생각을 키워 왔던 신영복 선생님에게 감옥에서 만난 이들, 험한 세상을 힘겹게 살아온 참혹한 실패의 경험들이 육중한 무게로 다가와 그의 사유를 견인했다 하였다.
나에게는 무엇이 사유를 견인해 왔던가 떠올려 본다. 20대에는 고통받는 이들, 차별받는 이들에 대한 공감과 정의롭지 못한 세상을 변화시켜보겠다는 무모한 의지와 기개가 나의 사유를 견인하였다. 나쁘지 않은 학벌과 이공계 전공. 주위에 취업 못무료 카지노 게임 이는 아무도 없었다. 대기업 취직이나 대학원 진학은 나를 ‘차별무료 카지노 게임’ 자의 위치에 놓을 것이었기에 남들과 다른 선택을 했다. 낮에는 활동하고 밤에는 돈을 벌었다. 스스로 선택한 ‘마이너리티’의 삶이었다. 30대에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후 나의 사유를 견인한 이는 내 아이였다. 내가 낳고 키운 아이에게 부끄럽지 않게 살겠다는 마음, 내가 낳고 키운 아이가 살아가는 이곳, 전 세계에서 가장 불행한 아이들의 나라('7세 고시, 누구를 위한 시험인가'참조)가 조금이라도 나아지기를 바라는 마음, 나와 내 아이와 어울리며 살아온 평범하지만 위대한 이들과의 관계, 그리고 나와 내 아이는 누리고 있지만 그것을 누리고 있지 못한 이들의 존재가 사유를 견인하고 공부와 배움을 지속하게 하였다.
새롭게 공부를 시작한 지 89일차. 나는 내가 왜 공부하는지 잊지 말아야 한다.
※ 주1: 신영복, 《담론》, 2015, 돌베개.
※ 표지 이미지: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