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브런치에 올린 글 목록을 들여다보니 올해 내내 도서관 이야기만 했다. 글만 그랬을라고, 삶은 더 그랬겠지. 새벽에 일어나 퇴근하고도자기 전까지 도서관에 대해 생각하고떠들어댔다. 내가 일인지 일이 곧 나인지 정체성이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하늘이 기회를 주신 걸까. 한걸음 물러나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다시 삶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를.
일주일 전부터 목이 아팠다. 팔팔 끓는 닭볶음탕 냄비 속 다리를 꿀떡 삼켜서 목 안에 화상을 입은 거라고 생각했다. 다른데도 아니고 목 안쪽화상을 어쩔 도리가 있나 싶어서 놔두다, 그저께 목이한층 아파오고 기운이 너무 없어서 병원을 찾았다. 의사 선생님은 내 얘기를 듣더니 목젖 화상일 수도 있고 감기 혹은 코로나일 수도 있지만 육안으로는부은 것만 보이지 원인은 알 수 없다고 했다. 일단진통 소염제를 줄 테니, 호전되지 않으면 다시 오라해서 약만 받아왔다.
점심을 틈타 병원에 다녀오자마자 몸이 더 안 좋아졌다. 코 안에 모였다가 한꺼번에 주르륵 쏟아지듯 콧물이 쏟아졌다. 원래도 있던 알레르기성 비염이 겹쳤나? 생각했다. 춥다 덥다 반복해서 재킷을 걸쳤다가 벗었다가를 반복하다 어느 순간 식은땀이 줄줄 났다.
간신히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속이 토할 듯 매스꺼워 올릴 뻔했다. 두통이 심하고 계속 열이 났다. 집에 와서도 마치 생리 때처럼 잠이 잘 오지 않고 가슴통증이 심했다. 허벅지가 쪼개지는 것 같고 허리가 빠질 듯이 아팠다. 몸살감기가 제대로 왔구나 싶었다.
부랴부랴 약속을 취소하고 아침 일찍 단골 병원에 갔다. 아픈 사람이 굉장히 많았다. 9시 전에 도착했는데도 순번이 거의 서른 번째였다. 증상을 말하자 코로나 검사를 해보라고 했지만 설마 아니겠지 싶어 다시 약만 처방받아 오는 길에 자가진단 키트를 구매했다. 품절이라 해서 다른 약국을 찾아 간신히 구해오는 길,코로나가 다시 유행한다니왠지 모르게 오싹해졌다.
집에 와서 땀을 씻어내고 테이블 앞에 앉아 자가진단 키트를 했다. 전에도 집에서는 음성이었는데, 병원에서 양성이 나온 적이 있어 아주 깊숙하게 밀어 넣을 수 있는 콧속 끝까지 밀어 넣었다. 결과는, 진하고 뚜렷한 두 줄이었다. 그 길로병원에 돌아가서 상황을 설명하며 진단 키트를 꺼내 접수대의 간호사에게 보려 주려고 가방을 뒤졌다. 친절함 빼곤 다 갖춘 간호사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아니, 그건 안 보여 주셔도 되고요. 저기 쓰여있잖아요. 요즘에 다 자기 부담인데 왜 다시 오셨어요?”
친절함 빼면 시체인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아~검사받고회사에 제출할 확인서받으려고요.”
친절하진 않지만 일 참 잘하는 간호사는 그 많던 줄 바로 앞쪽에 끼워주었다. 곧바로 검사하고 오분도 채 지나지 않아 확인서를 받을 수 있었다. 이제빼도 박도 못하는 코로나환자다.
며칠 전 어린이자료실에서 성인열람실인 종합자료실로 거취를 옮기게 되었다. 어린이자료실이 소음스트레스에 심각하게 노출된다는 걸 아신 관장님의 배려였다. 감사한 일이지만, 어느 상황이든 장단점은 존재한다. 새로 만난 담당 공무원(서로 '주사님'이라고 호칭 통일함)은 남자분이고 귀가 좀 어두우셨는데, 아직 성격이 파악은 안 됐지만 원칙주의자 같다. 병원 간다고 조금먼저 나가도 되겠냐는 물음에도 외출을 쓰고 가라고 하셨다. 자기가 해야 할일도잘 시키곤 했다. 또 같이 일하는 기간제선생님은 원래 이 자리에 있던 베테랑 주사님과 예전부터 친분이 있던 터라 약간 나를 터부시 하는 느낌을 받았다. 대하는 게 달랐다. 아마추어인 내가 와서 그녀가 할 일이 늘어났다고 생각하여 나를 싫어할 수 있겠다... 고 혼자 지레짐작할 뿐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첫날, 상호대차가 처음이라 책을 무더기로 들고 어디로 가야 할지 헤매며 버퍼링을 일으키자,
“주사님, 지금 뭐 하는 거예요?”하고 쏘아붙여서 그걸 본 아침 선생님이 지나가며 키득키득거렸다. 자존심에스크레치가 났지만, 대화로 오해를 다 풀었다. 그녀는 자신의 말투가 그런지 전혀 몰랐다고 하며 의식하지 않으면 그렇게 된다고 말했다. 부드럽게말하려고 의식하는 게 조금씩 눈에 띈다.
아무튼 원칙주의 주사님은 좀 별로고,그녀는 좀 떽떽거린다고 생각했는데 오늘로 둘 다 나의 사랑이되었다. 앞으로 어지간히 잘못하지 않는 한 다 봐줄 카지노 게임 추천이다. 이제는 코로나가 독감 같은 질환이 되었기 때문에 사실 회사에서 병가를 안 줘도 원망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주사님이 관장님께 잘 말한덕분에 병가로 4일을 쉬게 되었고 이어서 광복절에 휴관일까지 겹쳐 거의 일주일 가량의 생각지도 못한 휴가가 생겼다.
주사님은 아주 부럽다고 농까지 던지며 푹 쉬고 오라고 말한다. 알고 보니 아주 쾌남이었다! 그녀도 내가 아프단 얘기를 듣자마자 걱정하며 그동안 너무 열일카지노 게임 추천고,아픈 건전혀미안해할 일이 아니라며 종합자료실과 어린이실의 근무를 정리해서 잘 챙겨주었다. 내 연차도 흔쾌히 대신 내주겠다고 한다. 스마트하고 의리까지많은 그녀, 알아서 척척척,든든하다. 혼자 고생할 걸 카지노 게임 추천하니 너무 미안하고 고맙다. 진짜 갱년기인가 싶을 정도로 눈물이 난다. 관장님, 주사님, 기간제선생님 다들 오늘 보여준 환대와 의리 잊지 않겠습니다. 기쁘게 갚으면서 살겠습니다. 점점 가슴통증이 심해진다. 그만 자야겠다.
아주 오랜만에 낮잠을 잤다. 밤에 잘 못 자면 다음날에 지장을 줄까, 리듬이 망가질까 걱정되어 최근 몇 개월간 낮잠을 청한 기억이 없다. 그러고 보니 계속 긴장상태였다. 6시 반에 일어나는 게꽤나 큰 부담이었던 게다.
뭘 좀 찾느라고 집안을 다 뒤집다가 의도치 않게 책상 정리를 하게 되었고 2018년 다이어리를 발견했다.아이고...자나깨나 그때나 지금이나 그놈의 다이어트...
낄낄거리다 진지하게 읽어내려갔다. 이렇게 열심히 살고 또 지키지도 못할 계획을매번열심히 세우고, 현실성 없는 꿈을원대하고도 장기적으로 품고, 유치한 사색과감상을 끄적였구나. 나름 치열하게 고민하고 살았구나.
자주 발견되는 단어. 도서관 사서 공부하기, 문헌정보학과 책 읽기, 도서관 사서되기. 60대에 도서관사서로 일하기... 10년 후,20년 후에도 도서관 사서가 있었다.
사서는 나의 꿈이었다.
이제 올해도 절반이 훌쩍 지났다. 6년전 간절히 바랐던 나의 꿈은 이루어졌다. 초심을 잃고 헤맨 건 너무 쉽게 이루어서일까. 아니다. 최선을 다했다.
일 년 반 동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남편이 아프나 어쩌나 책상앞에서 종일 허리를 비틀어가며 수업 듣고 열심히 공부했다.
언젠가 읽은 책의 문구처럼 '내가 꿈을 위해 경주한 노력은 그 꿈 자체보다 가치 있는 것'일 것이다. 나를 못 믿겠다면 그동안 기울인노력을믿고 가면 된다.
첫도서관에서 만난 꼼꼼하고 늘 흔들림 없이 침착한 미선주사님이 없어도, 두 번째 도서관에서 만난 미친 듯이 손 빠르고 일 잘하던 영지주사님이없어도 이제혼자 걸을 수 있다.이제 나 혼자서 충분히 날아오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