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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cobwhy Apr 12. 2025

밍밍한 복숭아 카지노 게임

그 여름, 혜화동에서 - 2.

카지노 게임가 다가온다.


밝은 색 무릎 위 플레어 스커트를 입은, 상큼한 여름 날의 레모네이드와 같이 시원한, 마치 티브이 속 청춘 스타를 현실 세계로 옮겨 놓은 듯 귀여운 인상의 카지노 게임가 안내를 받아 내게 다가온다. 무더운 날씨에 다소 일그러져 있던 내 미간을 펴 준다.


예쁘다. 지금까지 만난 여자 중 가장. 진부한 말인 건 아는데,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 다만, 표정은 늘 화가 나 있다. 지금도 걸어오는 카지노 게임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안내를 해준 직원에게만 살짝 미간 주름을 펴며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은 뒤, 다시 인상을 찌푸린다.


'왔어?'

'...'


대답이 없다. 뭔가에 뿔이 난 것이 분명하다. 여자가 토라지거나 화가 난 이유를 갓 스물의 풋내 나는 남자 카지노 게임가 찾아내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하지만 머릿속에서 컴퓨터 팬처럼 쉴 새 없이 생각이 회전한다. 무언가 이유를 찾아 해결을 해 내야만 할 것 같다. 그전에.


'찬 음료 갖다 줄까?'

'...'

'복숭아 카지노 게임 좋아?'

'그래.'


대답은 퉁명스럽지만 심통 난 이마의 주름이 살짝 펴졌다 다시 자리 잡는 모습을 눈치챈다. 아, 날씨가 더워서 그랬구나. 안심이 된다.


따뜻한, 약간은 뜨겁기까지 한 민토차 두 잔을 들이키고는 종이컵을 들고 일어선다. 3층에 위치한 간이 카운터에 있는 직원에게 복숭아 카지노 게임를 두 잔 주문한다. 내가 건넨 일반 종이컵보다 약간 큰 컵에 자잘한 얼음과 함께 복숭아 카지노 게임를 내어 준다. 혀끝을 톡 쏘는 느낌의 새콤한 맛과 온몸에 생기가 돌게 하는 단맛이 어우러진 복숭아 카지노 게임는 우리 둘이 가장 사랑하는 여름 음료다.


'자, 여기.'


카지노 게임가 잔을 받아 바로 입술에 댄다. 두 번째 모금 뒤, 카지노 게임는 잔을 내려놓는다. 눈길은 창 밖으로, 입술은 살짝 일그러진다.


'밍밍해.'

'그래?'

'위두 가면 좋은데.'

'...'


사실 카지노 게임는 '위두'에서 마시는 복숭아 카지노 게임가 최고다. 유리병처럼 생긴 큰 잔에, 가루가 가라앉은 걸 휘저으며 마시던, 위두의 카지노 게임는 진한 맛이 일품이다. CD 틀어놓고 조명도 살짝 어두워서 분위기도 진짜 좋은데. 하지만 돈암동에서 그녀를 만나는 것은 부담스럽다. 아직 그녀와 내가 만나는 것을 주변 친구들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훈이 오빠한테 연락 왔어.'

'훈이 형?'


훈이 형이라면 나보다 한 살 많은, 굵은 목소리와 남자다운 풍채가 매력적인 형이다. 나보다는 카지노 게임의 전 남친, 창과 더 친한 형인데 무슨 일로 카지노 게임에게 연락을 했을까?


'좋아한대.'

'훈이 형이?'

'응.'


마치 기다렸다는 듯 달려드는 하이에나들.


카지노 게임는 불과 두 달 전 전 남친 창과 헤어졌다. 카지노 게임는 창에게 꽤나 적극적이었고, 두 시간 거리의 창의 학교까지 찾아갈 정도였다. 하지만 창은 카지노 게임에게 이별을 고했다. 이유는 알지 못한다. 창은 꽤 친한 내 친구지만 나도 이유를 물어보진 못했다.


그런데 그 뒤로 카지노 게임에게 교회 남자들의 연락이 쏟아졌다. 마치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다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지 몰랐다. 사람 속이란 건 정말 알 수 없다 느꼈다. 스무살이 되고 어른이 되니 그 전엔 눈치채지 못했던 인간의 여러 면들을 알게 되는 구나.


'그러니까 언제까지 비밀로 해야 되는 건데?'


카지노 게임의 말이 나를 잡생각에서 벗어나게 한다. 아, 그래서 그랬구나. 비밀 연애를 하는 우리의 형편이 맘에 들지 않는구나.


'왜 내가 마치 잘못한 걸 들키지 않으려는 듯 숨겨야 하냐고?'


컵에 담긴 얼음이 반쯤 녹았다. 그걸 휘젓다 말고, 그냥 가만히 내려다봤다.


비밀로 하자고 한 건, 다 너를 위해서였잖아. 네가 상처받지 않게 하려고. 그런데 왜 그걸 몰라줄까. 왜 내가 꼭 나쁜 놈이 되어야 하지? 그런 건, 하고 싶어서 그런 것도 아닌데.


반면 카지노 게임는 떳떳하다. 숨길 이유가 없다. 카지노 게임는 창에게 일방적으로 이별을 통보 받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자 할 뿐이다. 이제 스무살의 연애에서 교제 사실을 주변에 숨겨야 할 만큼 커다란 잘못이 있을 리가 없기도 하다.


그런 상황에선, 거절할 명분조차 애매했을 거다. 그냥, 다른 사람을 만나고 있다고 말하면 끝나는 거니까.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거절하는 처지에 화를 참았을 거다.


'우리 헤어져.'

'뭐?'

'이렇게 만나고 싶지 않아.'


그녀는 카지노 게임를 다 마시지 않고 그대로 내려놓았다. 컵받침 위에 번진 물자국이 천천히 퍼졌다.


손을 뻗었다.

하지만 닿지 못했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대로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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